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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 (11)

    (콜로세 1'9. 사역)

    이 때문에도 우리는 (소식을) 듣던 그 날로부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를 마지 않고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그 분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그득 채워지되, 모든 영적인 슬기와 깨달음 가운데서 그러기를!


우리는 사도 파울의 여러 기도들을 시리즈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콜로세(딴 표기: 골로새/콜로사이/콜로새)서에 실린 그의 기도를 갖고 앞으로 몇 회 계속 다루렵니다.


먼저 서론적인 얘기를 잠시 나누죠.

콜로세서는 파울이 당대의 콜로세에 있던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교회는 이 편지에도 등장하는 인물인 에파프라가 세운 교회로 추정됩니다만(콜 1'7; 4'12), 이 편지에 오네시모의 이름이 있고(4'9), 파울이 필레몬에게 콜로세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필레몬 1'22), 본래 오네시모의 노예주였던 필레몬의 가정교회에서 시작된 교회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필레몬서=몬 1절 참조).

더욱이 에파프라(필렘 23절), 아키포는 콜로세서, 필레몬서에 공통되게 이름이 나열된 인물이며, 특히 후자는 필레몬 가정교회에서 콜로세 교회로 옮겨간 인물이 틀림없습니다(필렘 2절; 콜 4'17). 아무러나 분명한 것은 필레몬 가정교회와 콜로세 교회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콜로세는 (현재 터키 서부의) 매안데르 강의 지류인 리쿠스(현 코나즈 하천) 강변 골짜기에 라오디케아/히에라폴리스 주변에 있던 고대의 도시로, 에페소에서는 동쪽으로 약 100마일(약 170km) 지점입니다. 현재는 터키의 '에게' 지역인 데니즐리 지방의 호나즈입니다[각주:1]. 콜로세는 훗날 '코나/코네'로 불리기도 했지요.

콜로세/라오디케아/히에라폴리스 등 이 세 도시는 본래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일부였지만, 신약시대엔 로마 제국 소아시아 지방에 속해 있었습니다.
본서(2'1; 4'13,15,16)에 위 세 도시의 이름이 모두 나타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이 세 도시들 주변은 매우 부유했습니다.
강가여서 땅이 비옥했고, 풀과 목장이 많아 많은 양떼를 길렀고, 아울러 털실/털옷의 제조/염색 산업이 흥했습니다. 콜로세에서 만들어진 붉은 털옷은 '콜로시누스'라고 불리는 명품 브랜드였답니다. 
특히 픙요로운 라오디케아는 이 지역 정치경제의 중심지였지요(요한계시록 3'14-18 참고). 히에라폴리스는 '신성도시'라는 뜻으로 여러 온천/욕터로 유명했고, 물에 약효가 있다고 하여 환자/노약자/은퇴자 등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다 지내다 죽는 사람들을 위해 주변에 대형 공동묘지도 조성돼 있었습니다.  

콜로세는 그러나, 1세기 후반에 지진 등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크게 약화돼 거의 사라집니다. 훗날 비잔틴 시대엔 대신 신도시 '코나'로 발전하게 되죠. 지금도 아직 고대의 옥외 극장 등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고대 도시가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이곳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역사가 짧았습니다.


각설하고..

파울은 이 서신에서 긍정적인 얘기들과 함께, 콜로세 교우들의 영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주면서 스스로들 올곧게 바로잡을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앞서, 위의 계시적인 기도를 하고 있으므로, 성령님께서 파울을 통해 콜로세 교회에 매우 적합한 기도를 시키셨다고 할 수 있죠.
새삼스런 얘기지만, 파울의 기도는 특히 성령님의 계시를 통한 기도이므로, 주관적이기보다 객관성이 강한 기도이며, 따라서 신자들의 그 어느 모국어 기도보다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기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지요.


파울은 기도하기 전, 이처럼 기도하게 된 동기를 밝힙니다.

    "이 때문에도 우리는 (소식을) 듣던 그 날부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를 마지 않고 간구합니다:.."

기도가 실린 1장의 앞 부분을 보면, 파울과 동역자들이 콜로세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데, 크리스토 예수님 안에 있는 교우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그리고 하늘에 쌓아 둔 소망, 곧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이래 열매 맺으며 자라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콜로세 교우의 이런 현황을 그 교회 대표인 에파프로가 직접 와서 옥중에 전달해 주자, 파울과 동역자들은 감격했고, 바로 그 날부터 다시 이런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파울의 다른 기도들과도 같이 때와 상황에 맞고 현장/현실 감각이 또렷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만큼 파울이 콜로세 교우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맘으로 기도를 해 왔고, 또 그렇게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그득 채워지되, 모든 영적인 슬기와 깨달음 가운데서 그러기를!"

여기서 '그 분'이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굉장하고 초자연적인 방편을 통해서만은 아닙니다. 요즘 '예언'과 '이적'들로 인기몰이를 하는 교계의 명사, 데이빋 오워처럼 예언자/대언가여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알 수 있지요.
성령님께서 대언자들을 감화하셔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그 분의 뜻을 더욱 깨닫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이런 예화가 어떨지 모르지만..러시아와 주변 나라의 기존 체제를 온통 뒤엎어 버리고 70여년간 공산 학정을 베풀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의 철저한 사상적 토대는, 독일의 카를 맑스나 프리드리히 엥겔스, 자국의 블라디미르 레닌 등의 사회주의/공산주의/유물주의 무신론 사상을 그들이 밤낮 연구/명상하고, 매스터하여 실천한 결과였습니다.

그 결과, 지구촌에서 가장 땅덩이가 큰 나라와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를 비롯한 엄청난 분량의 나라 사람들이 공산화돼 있었지요. 그들의 상징인 붉은 빛, 적색이 상징하듯 부르주아 봉건사상, 자본주의 체제 '박멸' 이데올로기와 혁명 열기에 피가 끓던 그들은 물불을 안 가리는 행동을 일삼게 되어, 러시아 자체에서만 최다 약 2억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위성국가를 포함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더 보탠다면 엄청나지요. 오죽하면 한국에서도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빨치산' 박헌영 등 남로당까지 이 사상에 물들어 결국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나요.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동독과 러시아에서는 하루 아침(?)에 공산 체제가 무너져 버리는 바람에 위성국가들도 결국 그렇게 돼 갔지만, 아직도 미국 공산당을 비롯, 전세계 각국에 엄연히 공산세력이 잔존해 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경제 면에서 자본주의 체제보다 우세하지 못하다는 게 입증되자, 그들은 요즘 그 대신 무신론/유물론/진화론 사상 등을 구 기독교권에 적극 퍼뜨리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친북계 좌파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듯.   

이 모든 것이, 맑스 등 선구자의 이데올로기를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섭렵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철학계에서는 맑스 같은 사람을 "무덤 속에서도 아직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가의 한 명으로 불러 주기도 합니다.   


그에 비하면, ..소위 크리스천이고 예수쟁이라는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긴다는 우리는 과연, 그들처럼 그렇게 철저한 열혈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으려고 기를 쓰고 애를 쓰면서 성경을 연구/묵상하고 그 뜻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느냐..?

돌아 볼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듦을 어쩔 수가 없군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데도 오히려 '광신자'가 될까 봐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며 "벌벌 떠는" 우리가 아닌지요.

우리가, 공산당이 맑스를 연구한 만큼만이라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으려 했다면, 지구촌엔 이미 벌써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돼 주님의 재림이 앞당겨졌을지 모릅니다.

공산당은 맑스/엥겔스/레닌 사상을 실천에 옮겨 온 세계를 공산화하기만 하면 분명히 계급과 차별이 없고 프롤레타리아, 무산 대중이 물질을 공유하는 자유세계 이상향이 올 줄로 굳게 믿었기에 세상 곳곳에서 목숨 내 걸고 피 흘리며 혁명을 이뤄 나갔던 것입니다. 철저히 잘못된 사상을 갖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을 진리로 믿는 만큼 그 진리를 위해 싸우고 헌신하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 이것이 그런가요?"하고 말씀을 묵상하던 베레아 사람들만큼도 신사적이지 못하지요(행전 17'11).

가끔 제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냐, 알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냐..고 물어오는 독자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으려면, 우선 가장 먼저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묵상해야 합니다.
그 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허용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먼저 그 분 말씀 속에 있습니다(로마서 12'2).
 
먼저 성경에 밝지 못하고 투철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을 찾다간, 자칫 그 분의 뜻 아닌 '뜻'을 찾아 실족하는 예가 많습니다. 아마도 데이빋 오워나 '신사도'들 등 수상쩍은 예언가들이 그런 모델 사례가 아닐까요.  


아무튼, 그래서 그 말씀 말씀이 우리 머리와 '뼈'에 새겨지고, 이윽고 내 영에 파고 들어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머물 때(!), 머물 때(!), 머물 때(! 요한복음 15'7),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의 모든 국면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됩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성도 속에 그득~하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앎, 지식은 성령님의 슬기와 분별, 통찰을 필요로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파울의 다른 기도에서 충분히 익힌 바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비슷하면서 분명히 성격이 다릅니다.

지혜는 늘 지식보다 차원이 높고 깊지요.
지혜가 컴퓨터라면, 지식은 거기 담긴 데이타/정보와 같은 것입니다.
지혜가 하드웨어라면, 지식은 소프트웨어 같은 것입니다.   
지혜가 인터넽이라면, 지식은 거기 오가는 내용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슬기가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바로 알고 깨달을 길이 없습니다.
뱀 같은 슬기가 없이는, 우리가 혹 비둘기처럼 순결해도 '밥통'/멍청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구나 파울의 이 기도가 우리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이 때문에도 우리는 (소식을) 듣던 그 날부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를 마지 않고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그 분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그득 채워지되, 모든 영적인 슬기와 깨달음 가운데서 그러기를!


본 블로그 티엘티는 처음부터 분별과 통찰, 검증 등을 가장 강조해 왔습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것이 없어선 안 되기 때문이죠. 
분별도 성도와 교회의 매일 삶에 있어 하나님의 뜻의 일부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그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 나타난 분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꺠달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유난히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곧 진리라고 말해 버립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 자체요, 진리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가페이지 세상의 속된 '적당주의', 무조건적 관용주의 '사랑'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갑니다.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고,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분별과 통찰의 슬기가 없이는, 성고가 세상을 올곧게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과 신은 마귀, 그 자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아는 지식과 슬기, 깨달음에 넘쳐야겠습니다.


새 주간에도..
우리 주 예수 크리스토님의 은총과 평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성령님의 이끄심과 친교가
티엘티 독자들에게 늘 함께 하길!

아멘

 

  1. 호나즈는 그리스어 '코나'에서 왔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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