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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성경 지대의 지진 (아구르)


성경 지대의 지진

- 왜 성경을 편파적으로만 보나?


지진은 균열과 파괴를 낳는다. 통일과 조화를 가져 오지 않는다. 지진이 지나간 곳은 갈랫길 투성이다. 깊은 구덩이가 패고, 없던 주름이 진다. 있던 곳이 없어지고, 없던 곳에 폐허더미가 쌓인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지진의 공격처럼 성경의 진리들을 쪼개고 흩어 버리고 나눠 버린다. 통일과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성경에 자기 생각을 굴복시키기보다 자기 생각에다 성경을 끼어 맞추고 새롭게 조리해서 색다르게 제시한다.
자기 생각만을 전달하지 않고 성경을 빌려 자기 생각을 합리화 한다. 자기 주견을 굳히기 위해 성경을 원용한다. 그건 진리에 복종하려는 태도이기보다 성경을 이용하려는 방식이다.

성경을 그런 식으로 대하다 보면, 결국, 교회의 진리지대가 지진 현장 같이 돼 버린다.


성경은 온전히 대해야 한다. 온전히 보고 읽고 듣고 온전히 묵상해야만 하는 게 성경책이다. 이 세상의 어떤 책을 어떻게 읽든 그건 독자의 자유이지만, 성경만은 그렇지 않다. 성경을 온전히 대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래서 성경은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가름하는 잣대와 척도이기도 하다.

성경에 대한 첫 인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른 책은 몰라도 성경에 대해서만큼은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경을 순수하게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편파적인 일방적인 성경 해석과 편견 탓에 수십 년 또는 한 평생 성경을 오해하고 살아간다. 또 성경에서 나름대로 뭘 빼거나 더하는 가감행위를 한다.

성경을 잘못 번역한 경우도 그렇다. 다양한 역본에서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오역들이 발견되곤 한다. 대표적 사례라면, 아마도 한글개역성경의 '방언'(方言)이라는 초기 번역일 것이다. 방언이라는 말은 분명히 지상에 존재해 온 한 지방의 기존 언어, 토속어 또는 사투리 따위를 가리킨다. 성경 원어의 의미는 분명히 그게 아니고 천상적 기원의 새 언변인데도, 초기 번역자들에 의해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진 결과 수 십 년간 계속 그렇게 쓰여져 오다 보니 굳어져 버렸다.  
 
일각에서 '절대완전유일최고...'의 성경이라고 형용사가 부족할 정도의 극단적인 수식어로 일방적인 찬사를 받는 제임즈왕역(KJV)도 알고 보면 오역 투성이다.
이래서 번역자들의 책임이란 크나크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번역자를 반역자라고 했겠나?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이 흔히 성경을 대하는 가장 잘못된 태도 하나가 한 쪽으로의 치우침이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소위 '비움'과 '내려 놓음'의 영성이다. 불교적인 공(空)/무아/탈속 사상, 도교적인 자연주의 초탈/신선 사상, 동양철학적 '청빈' 사상, 카톨맄교적인 수도원 영성 등의 입김에 끈끈히 영향을 받아 온 한국 교회의 신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복과 풍요, 번영을 위한 기원 등을 몽땅 고대 무교에서 영향을 받은 '기복 사상'으로 싸잡아 단죄하는 그들 자신이 불교/도교/동양철학/천주교 등에서 영향을 받는 작태는 역지사지나 적반하장 격이다. 

자기 뜻을 버리고 자아를 죽이고, 자신을 몽땅 비우고 의지와 욕심 등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그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렇게 한 쪽만을 강조하다 보니 성경의 다른 약속들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그런 좋은 약속들도 다 포기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유일한 뜻인 양 한 쪽만을 극대화 한다. 모든 걸 비우고 모든 걸 내려 놓으라고만 강조하다 보니, 창세기부터 성경 뒷 부분까지 명시된 성도의 믿음의 대가, 복과 번영, 형통과 잘됨의 약속들은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별 가치나 의미가 없다.
그들은 남들에겐 몽땅 비우고 다 내려놓으라면서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사상은 결코 비우거나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적이고 위선적이기도 하다.


비우고 내려 놓으려면,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제로점까지? 무아지경까지? 완전 공허까지,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 놓으라고? 성경에 명시된 약속들까지도? 누구 맘대로? 성경의 약속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던가?

몽땅 '비우기'와 '다 내려 놓기'를 강조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자신을 몽땅 비우거나 다 내려 놓고 자기 뜻을 버리고 (그들 식으로) 자아를 죽이려면, 매일 자신들의 기도제목과 믿음도 다 포기해야 할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들 식 주장에 따르면, 구원을 받고 싶어도 "제가 구원받는 게 꼭 하나님의 뜻이라면.."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치유도 마찬가지..."저를 고쳐 주소서!"가 아니라 "님의 뜻이라면 낫게 해 주셔도 되오며, 혹 아파 죽어도 아버지의 뜻이옵니다"로 다 통일하여 바꿔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맞다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가 아니라 "모든 걸 비우고 내려 놓습니다. 그저 가난하게만 살게 하옵소서!"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의 반 쪽만 믿고 싶은 것이다.


주님께서 신자에게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심은 곧 자아를 부인하고, 육정을 못 박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 하심이지, 믿음의 대가와 복과 번영, 형통과 잘됨의 약속까지 믿지 말고 버리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란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고 하신 것이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든 사도들이든 '비움'과 '내려놓음'의 신학을 설파하신 일이 없다. 단지 두려움과 잘못된 육정, 근심과 염려 따위는 그분에게 맡기라는 말씀은 있다. 한 쪽으로 치우쳐 육정도 다 비우고 내려 놓으라면, 부부의 성생활도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결국 도교의 신선놀음, 불교의 탈속, 카톨맄교의 독신사제/수사 영성 따위가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 돼 버린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뭔가?
믿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믿음의 대가를 비롯한 성경의 모든 약속들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성경을 믿으려면, 지진 난듯 쪼개진 조각이나 반쪽만 믿을 게 아니라 전체를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오늘날 크리스토 안에서 모든 신자들에게도 약속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창세기의 하나님은 태초에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번영과 번성을 약속하셨으며, 왜 주님께서는 인류-믿는 자들의 불행을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로 오셨으며, 왜 파울은 아브라함의 모든 복이 우리에게 전수됐다고 계시로 선언했으며, 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의 영혼이 잘 되듯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길 바란다"고 축복했는가?

왜 '비우기'와 '내려 놓기'만을 강조하면서, 복과 번영과 풍요는 함께 강조하지 않는가? 초기교회에서 결코 폐지한 적이 없고(고전 16:2) 지금도 엄연히 유효한 십일조는 "사라졌다"고 주장하는가?


몽땅 비우기, 내려놓기만을 강조하는 것도 혹 신앙이라면, 그건 반 쪽 신앙이다.
성경을 반 쪽만 믿어선, 어디까지나 반 쪽짜리 신자일 뿐이다.

비우기와 내려 놓기만을 강조하는 인사들을 한국 교회 강단 도처에 세워 보라.
조만간 한국 교회는 텅텅 비게 될지 모른다.
불교나 천주교도 비우기와 내려 놓기를 더 많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비워라...모든 걸 내려 놓아라...
이런 비성경적인 해괴한 이상 영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 천주교나 불교로 가게 될지 모른다.
명심하라.


한국교회는 성경의 반 쪽만을 보는 '외눈' 신세를 벗어나고 옹근복음을 되찾아야 한다.

몽땅 비우기와 다 내려 놓기를 강조하는 인사들을 경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