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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뇌우와 입당감사


지난 9월 16일 저녁.
우리 카운티에 실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것 같다. 이국 땅에 살아 온 수 십 년래 첫 경험이다.

불과 5분간의 돌풍뇌우(突風雷雨)로 내가 사는 지역을 중심한 뉴욬시 일부가 완전 난장판이 됐다. 일각에서는 '토네이도'(회리바람)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광역 회리바람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번에 '태풍의 눈'도 직접 봤단다. 회리바람 겸 태풍이었다는 말인가.

넓고 좁은 모든 거리와 골목골목의 크고 작은 가로수와 전신주들, 주택 뜰마다의 거목과 고목, 정원수들이 쓰러졌다. 수많은 고목들이 뿌리째 쓰러지느라 아래 옆에 붙은 보도 블렄도 덩달아 홀딱 뒤집혀 땅 속 '창자'를 드러냈다. 역사와 동네의 자랑거리였던 거목들의 최후가 이렇게 허무하고 무참하다니! 수많은 자동차들이 나무 아래 깔려 납작해지거나 짓눌렸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한 운전자는 달리던 도중 거목이 덮치는 바람에 차 안에서 즉사했다.

메인스트맅의 한 공동묘지 곁에 줄줄이 늘어선, 키가 엇비슷한 거목 가로수들은 늦가을 논의 볏단처럼 한쪽으로 모조리 나란히 자빠져 나무 아래 깔린 차들도 즐비하고, 틔울 공간이 없어 비상 복구 요원들이 길을 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어떤 지역은 아예 골목마다 차가 막히고 노랑 경계선이 쳐져 몇 블렄을 내려가도 도무지 큰 도로로 빠져 나갈 길이 막연하다. 며칠이 지나도 그렇다. 이건 그야말로 자연의 전쟁터다.  

밤낮 사이렌 소리와 붉은 점멸등 빛이 천지를 뒤덮었다. 경찰차/구급차/소방차/복구차량 등이 쉴 새 없이 질주했다. 새벽엔 이 기회를 이용한 범죄 차량이라도 발견됐는지 총성까지 울렸다. 지금은 1인용 박스 리프트가 달린 벌목차량들이 매일 작업하고 있다.  

우리 집이 있는 곳 등 일부 지역은 며칠 단전이 되어 밤엔 켜진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고, 인터넽 서비스도 끊겼다. 나의 통신수단이라곤 다행히도 하루 전 충전시켜 둔 셀폰 밖엔 없었다. 냉장고의 음식물과 얼음들도 녹아갔지만, 이튿날 밤늦게나마 전기가 빨리 복구되어 큰 피해는 없었다.  


그 날 저녁 그 시점에, 나는 폭풍우 한 가운데서 차 안에 갇힌 채 고스란히 돌풍뇌우를 목격하고 겪어 봤다. 이번 경우는 나로선 실로 난생 처음이다. 집안에서 떨며 태풍을 겪은 적은 몇 번 있지만.
검은 먹구름이 덮인 하늘 밖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조용했다가, 모든 것들이 너무나 요란하게 한꺼번에 돌변했다. 닥치는 순간까지 전혀 예감도 상상도 못했다. 

생각해 보니 상황이 참 묘하고도 희한했다.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던 길에 중국 마트에 들러 주전부리를 이것저것 몇 가지 사서 돌아왔는데, 웬일인지 아이는 차 안에서 먹기를 마다 하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길 바랐다. 하릴없이 먼저 귀가시켜 놓고, 잠시 좀 떨어진 길가에서 입맛이 당기는 대로 혼자 군것질을 하던 중 돌연 그것이 들이닥쳤다. 죄많은 이 군것질쟁이에게 폭풍이 본때를 보여 주기라도 하려던 걸까.
 
창 밖의 무서운 바람소리가 겁나게 귓전을 울리고, 뇌성벽력이 치더니 소나기가 사납게 차창을 때렸다. 양쪽 가로수의 굵은 나무 윗 가지들이 춤추는 듯 뒤흔들리면서 여기저기 부딪친 나뭇가지들이 마구 부러지고 떨어져 거리는 삽시간에 마치 전지(剪枝) 후의 과수원 땅바닥처럼 변해 갔다. 교차로 부근도 그랬다. 나중에 들어 보니 풍속이 최대100 마일이었단다.

나의 차창과 범퍼, 지붕에도 나뭇가지가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차체도 바람에 뒤흔들렸다. 레이디오의 클래싴 음악을 틀어 놓고 버적버적 과자를 씹으며 잠시 긴가민가 했다가, 이건 보통 폭풍이 아니다 싶어 겁 먹은 나는 "주님, (몰래 군것질은 잘못했습니다). 도우소서!"라고 빌면서 살 길을 모색했다.

우선 둥치가 크고 키가 커 보이는 나무들 아래를 한시바삐 피해야 했다. 반대 방향인 집 쪽으로 가느라 주차한 자리에서 서둘러 차를 빼어 유턴(180도 회전)을 했다. 길바닥에 깔린 굵은 나뭇가지들을 조심조심 피해 가로수 키가 비교적 작은 집 쪽으로 서둘러 엉금엉금 기듯 운전을 했다. 속이 타고 똥줄이 타 들어와도 그래야만 했다. 바람소리 탓에 잘 들리지도 않는 라디오는 금방 꺼 버렸고, 입으로는 연신 영언(방언)을 중얼거렸다.
최대한 집 가까이 주차하다가 빗사이로 둘러 보니, 바로 동구 밖 길의 양 입구 쪽은 이미 떨어진 굵은 나뭇가지로 막힌 상태였다. 몇 달 전 폭풍 때 늘어졌던 전깃줄도 또 다시 늘어져 보였다. 

조심해서 집으로 들어가다 보니, 어느 새 폭풍우는 그쳐 있었다. 불과 5분 전의 엄청났던 물바람 지옥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이 감쪽같이 잔잔했다. 남은 것은 정적과..거리에 온통 널부러진 녹색 잔해들이었다.

집 입구 계단 곁 테러스 위의 삽이나 비 같은 연장들도 계단 위에까지 넘어져 나뒹굴고 있어, 혹 돌풍이 다시 불면 행인들에게 위험할 거 같아 얼른 치우고는, 다시 길 쪽을 내다 보니 떨어진 수많은 나뭇가지 때문에 차들이 맘 놓고 못 다니는 것 같아 다시 거리로 나갔다.

나무가지들을 치우고 있는데, 몇몇 동네 사람들도 나와서 함께 치우고 있었다. "오, 마이~!"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표정들이다. 어쩌다 교차로 쪽에서 들어온 몇몇 차량들은 빠져 나갈 길이 막연해 서 있거나 조심조심 기어가는 듯 했다. 몇 집 건너 한 이웃 아낙네를 도와 길을 막은 굵은 가지를 치우고 있는데, 어떤 운전자가 지나가면서 "탱큐, 레이디즈" 했다. 체육복에 달린 후드를 쓴 나도 싸잡아 여자로 본 모양이다.

집안에 들어와 보니 아뿔싸, 정전이었다. 집안에 불빛이라곤 전혀 없이 컴컴한 데다 냉장고건 컴퓨터건 모두 죽어 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를 식구들의 웅얼거림만 들렸다.
  

[ 며칠 전 일부를 메모해 둔 이 글의 초안 일부도 컴퓨터 배터리에 조금 남은 전력으로 쓴 것이다. 이것도 조금 후면 못 쓴다는 심정으로 자판을 두들겨댔다. 배터리가 많이 약해져서다. 전력이 언제 복구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라디오도 전기용이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양초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식구들이 여기저기 숨은 플래쉬라잍을 꺼내 아쉬우나마 방안을 밝혔다. 그나마 내 방 것은 한밤에 배터리가 가 버렸다. 배터리를 살리랴? 바깥에 나가 상점에서 새 것을 사랴? 지금 어디 가서 뭘 하랴? 전혀 감이 안 잡혔다. ]


이튿날 새벽, 우여곡절 끝에 막힌 길을 뚫고 여기저기 노란 안전선이 둘러 쳐지고 경찰 차량이 막고 있는 닫힌 거리를 돌고 휘돌고 또 돌아 나가, 얼마 전 협력 교역자로 섬기기 시작한 우리 교회당으로 향했다. 평소 8분 정도인 거리가 30분 이상 걸렸다. 간밤에 "교회당에 가서 좀 돌아 봐 보라"는 형뻘 친구인 담임목사의 연락을 받고서였다. 그의 집은 교회에서 나보다 훨씬 멀다.

새벽기도를 나온 교인은 물론 한 명도 없었다. 교회 뒷뜰의 큰 나무 한 그루도 자빠져, 메인 생추어리(중앙 예배실)에서 뒷뜰로 나아가는 입구 주변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중간 뜰로 돌아가는 쪽문조차 무용지물이었다.

교회당 바로 옆집 곁 거대한 가로수 한 그루도 뿌리째 뽑히면서 교회 뒷 마당으로 내리덮쳐 평소 막아 놓은 다른 블렄으로 향한 정원 진입로 입구 양쪽에 둘러쳐진 교회 담장 일부를 이중으로 떄려 눕히고 그것도 부족한지 다른 옆집의 차 진입로까지 완전히 막아 버렸다. 그 집의 뒤뜰도 또 한 그루의 집채만한 정원수가 쓰러져 큰 대자로 눕다시피 했다. 앞뒤로 곱배기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다행히도 교회당 뜰 안의 나무는 바로 건물 곁에 섰지만, 지붕 쪽이 아닌 반대 방향의 뜰 쪽으로 쓰러져 큰 피해는 없고, 나무 아래 있던 몇몇 작은 정원수와 꽃나무들, 화분들이 짓눌려 부러지거나 깨졌다. 뜰 둘레를 장식하고 있는 여러 가로등 중 한 개도 바람막이 유리가 파손되고 가운데가 부러져 당시 참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낡은 구식 지붕이어서, 그 쪽으로 넘어졌다면 보나마나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교회 뜰 정문 위를 장식한 양쪽 넝쿨나무도 위쪽의 굵은 가지가 부러져, 실타래처럼 휘감긴 수 십년 묵은 넝쿨 더미의 무게가 아취 문을 뒤덮고 짓눌렀다. 


날이 밝고 아침이 되자, 교회 일꾼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큰 나무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손에 전기/가스용 톱이나 전지가위 따위를 들고 나타났다. 손바닥 부분이 붉고 두텁게 처리된 한국산 작업용 면장갑이 필요하다기에 부랴부랴 한인 마켙에 가서 더즌을 사다 나눴다.

나무는 잔 가지부터 쳐 나가면서 굵은 가지, 몸통, 밑둥지까지 차례로 해체해 나아갔다. 그동안 이 동네에선 유일하게 분수터가 둘 씩이나 되는 드넓은 뒷뜰을 자주 찾는 온 교우들과 함께, 정들었던 한 그루 나무의 장례를 치른달까. 그런 심정이었다.

체인쏘의 톱날 돌아가는 소리, 가스용 톱 모터가 돌아가는 파란 연기, 주변에 휘날리는 노란 톱밥 가루 따위가 뜰 안을 가득 메운다. 게다가 평소 나무 밑 그늘에 숨어 있다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교우들에게 달려드는 각다귀 떼와 모기를 막느라 모기향 피우는 냄새까지 충만하다. 

토막 치고 잘라낸 나무가지들을 바지런히 땔감처럼 끈으로 묶어 늘어 놓다 보니, 드넓은 뜰안이 순식간에 나뭇짐으로 가득해졌다. 나무 크기가 우습게 볼 정도가 아니었던 것. 교회당 안에 벽난로가 있었다면, 올 겨우내 땔감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도들은 부엌에서 정성껏 장만한 점심으로 나무와 씨름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일꾼들을 대접했다. 그렇게 저녁까지 온 종일 나무 분해 작업에 매달렸다.


나무가 지붕 쪽으로 쓰러지지 않은 것 외에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느껴진 또 한 가지는, 전보다 교회당 모습이 훤해졌다는 것. 나무에 가려졌던 흰 벽과 가지런하고 고전적인 하얀 창살 등이 한결 환하게 보인다. 나무가 건물 쪽으로 쓰러졌다면, 이 모두가 한낱 폐허더미일 뻔 했다.
사실 교회 입당 준비를 하느라, 며칠 전 임시관리인 격인 건축가 집사님의 온 가족이 마치 미술작품을 제작하듯 들러 붙다시피 페인트 칠을 해 둔 것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창문 틀, 뜰 귀퉁이의 작은 정자와 그 진입로 입구의 장식 아취문, 분수대 곁 구름다리, 여러 벤취들이 하얗게 새 옷을 입었다.  

정성을 들인 모든 부분들은 아무 피해 없이 고스란히 보존됐고, 다만 가로등마다 양쪽에 걸어둔 화분의 일부와 꽃나무, 담장 일부와 넝쿨 등이 바람 피해를 입었다.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 컸다.


그리고 오늘은 입당 감사예배를 드린다. 중간 예배실 앞쪽, 정원 뜰 한가운데 오솔길 노변 등이 가지런히, 십 여 개 국화 화분 등 꽃으로 조촐하게 장식됐고, 행사비를 아끼느라 초대장 제작/우송도 생략하고 순서지도 자체 제작했다. 


돌풍뇌우를 겪은 뒤라 오늘의 감사와 감격은 유다르다.
온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