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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갈 3:7] 우리는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가?

credit: shaggy359 from flickr.com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시오: 믿음에 의한, 바로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임을!"   
(갈라티아서 3'7 사역. 참고: 3'8,9,13,14)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 믿어지십니까? 쉽게 안 믿어집니까?

아브라함이라면 그저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들과 밖엔 관계가 없는 줄 아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우리는 아무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었기에 우리와 무관하다면, 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과 우리는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님이 유대인이기에 우리랑 아무 상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또는 아브라함이 구약인이기에 신약인인 우리랑 무관한 겁니까?

아브라함과 우리가 '무관'함을 강조하는 신자일수록, 역설적으로 유대인들을 선민(選民)으로 존중하려는 성향이 강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안 그래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기네가 "지상 유일의 선민(選民, the chosen)"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타국인이 이스라엘 유대인촌 동네를 찾아가기만 해도 '이방인'이라며 차갑고 험한 눈총을 주며, 심지어 돌팔매질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찾아가면, 쌍스런 욕설까지 하며 더욱 더 반감을 갖고 저주까지 합니다. 소위 '성지순례'로 그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서 빨리 뜨라고, 꺼지라고 합니다. 그야 말로 율법주의의 화신 같죠.
그들의 혈통적 선조 아브라함까지도 그들의 그런 언동을 본다면, "나, 늬네 선조 안 할래!" 하고 넌더리를 칠 법 합니다. 과연 그들이 정녕 선민이라면, 애당초 하나님이 주신 선민의 위치와 매겨진 성격이 그런 것이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뻗대던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독사 새끼들", "마귀 자식들"이라고도 하셨던 사실을.

그렇다고, 저는 유대인 혐오주의자는 결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현대 유대인들이 참 불쌍해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오늘날 예수님을 참 메시아로 "믿는다"는 소위 '메시아닠 유대인'들(Messianic Jews)조차도 타 민족 크리스천들을 '이방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인들이나 다름 없이 여전히 유대 절기를 지킬 것을 강조하면서, 신구약을 동시에 꼭 같이 강조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갈라티아 3장의 정신에 현저히 배치됩니다.
우리는 이제 크리스토 안에서, 율법적인 명절 준수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들입니다!


벤야민(빈야민/베냐민) 지족 곧 샤울 왕손으로서 히브리인들 중 히브리인인 사도 파울은, 다시 할례와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개처럼 왕왕 짖어대는 유대교인들에게 깜박 속아 헷갈려 하는 갈라티아 교우들에게.."비록 여러분은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지만,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엄히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믿는 우리가 곧 아브라함의 자손/후예/후손들이라고!
여러분과 저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말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저는 믿어집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이 뭘 말해 줍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다는 건가요??

아브라함의 영적, 혼적, 육적, 물적..4차원의 복을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됐다는 뜻이죠! 할렐루야. 갈라티아서 3장이 말해 주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4차원'이란 단순히 영/혼/육/물이 서로 차례로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우리가 신자라면서, 이 사실을 모른다든가 알면서도 누리지 못한다면 적지 않은 불행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대다수 신자들이 선뜻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리의 하나입니다.

..신자인 우리가 아브라함의 아들딸이라는 사실..
..그래서, 선조 아브라함의 영/혼/육/물에 걸친 복을 받아 누린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엄연히 성경이 말해 주는 진리인데도 좀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란 말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그런 다중(多重) 복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구약인들이 누리던 복에 그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지상에 유대인(!)으로 오셨던 주님이 이방인도 아닌 바로 유대인들(!) 중 유대인(!)인 사도 파울에게 친히 주셔서, 이방인들인 갈라티아 교우들에게 보내게 하신 계시입니다.

   "너희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너희들도 아브라함의 영/혼/육/물적인 복을 받는다!"

믿어집니까?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복됩니다.


흔히 신자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또는 아브라함과 무관한(?) 영적인 복만 누린다고들 생각하죠. 현실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서 구원만 받을 뿐이라고들 믿죠. 혼적/육적/물적인 복과 우리는 상관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마치 혼적/육적/물적인 복은 부정한 것이기라도 한 듯.


그런데 우리..하나씩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과 무관하게 과연 우리가 영적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시던가요? 마태복음서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읽어 보신 적 있는지요? 아브라함이 없는 예수님..상상할 수 있나요?
그리고,
왜 아브라함이 율법 아닌 믿음의 사람이었나요?

또, 아브라함의 복은 영적인 복 뿐인가요?
우리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기에 영적인 복 곧 '영혼의 구원'만 달랑~ 받는다는 말인가요? 천만에~.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차원의 복을 받게 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누리던 복과 같은 복을 우리도 받는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영적인 복뿐 아니라 나머지 차원의 복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역강조하는 이유는..우리가 오랫동안, 영적인 복만 받는다고 '세뇌' 돼 왔기 때문입니다. 독자나 저나 마찬가지 상황이 아닙니까?
더욱이 요즘, 한국 교회는 6.25 한국전 이래 피폐했던 지난 몇 십 년간 점점 경제부흥이 돼 이제 배가 부르다 보니, 풍요/번영/형통을 무조건 단죄하고 심지어 이단시 하는 이상한 풍토가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점차 경시하거나 거부하고. 소위 '청빈'을 강조하는 천주교식 수사(修士)/수도원 영성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또..흔히들 아브라함의 영적인 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복은 구약인/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을 교계 일각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뭇 구약적인 발상입니다.


몇 가지 생각해 볼 물음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을 위해 오셨습니다만, 그 분이 단지 '영혼 구원'만을 위해서 오신 것인지요? 만약 그것이 옳다면, 루카복음서(눅) 4'18,19에 기록된 메시아 예언 내용들이 '영혼 구원'만을 가리킨다기엔 너무 폭이 넓지 않나요..어떻습니까? 예샤야후(이사야)가 예언한 이 말씀은 분명히 장차 오실, 그리고 이미 오신(!) 메시아 곧 예수 크리스토에 관한 것인데..영혼 구원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메시아 사역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곧 메시아의 구원사역엔 영의 구원뿐 아니라 혼과 몸의 구원(치병), 이와 직결된, 마귀로부터의 해방/자유, 가난을 포함한 율법적 저주로부터의 자유 등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즉 메시아의 구원은 영/혼/육/물..4차원적인 복을 모두 아우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파울이 말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엘리온(가장 높으신 분) 하나님은 그 분의 사제인 멜키쩨뎈(멜기세덱)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복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최초의 십일조를 바친 바 있습니다. 이 축복 사건은, 앞으로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이 대대로 복 받을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와 율법의 모든 저주를 영원히 박살내 버리셨는데, 거기-박살 대상-엔 죄와 죄책은 물론, 율법과 구속, 공포/두려움/가난/질병 등 저주, 마귀와 악령들의 억압등도 다 포함돼 있었습니다(갈 3'13 비교: 신명기 27'11-26; 28'15-68).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와 해방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선, 영혼 구원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발동돼야 합니다. 영혼 구원에만 믿고 거기 집착한다면, 나머지 복은 제한될 것입니다.

예컨대 치병과 악령축출 역시 믿음으로 이뤄집니다.
주님은 물론 사도들도 이를 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대명(지상명령/대위임령) 가운데 하나로, 믿는 사람들에겐 응당 따르는 표징으로서 악령 축출과 해독(害毒), 치병 등을 말씀하셨습니다(마르코스복음서=맑 16'17,18).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려는 사람들에겐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요구됩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고, 그 분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분이 살아계심과 미스타포도테스(보상자)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히브리서 11'6).


결국, 아브라함의 4차원의 복은 예수 크리스토님에 대한 믿음으로 옵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이 영/혼/육/물적인 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누립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누릴 4차원적인 복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크리스토님과 그 제자들은 앞서 그 복을 누렸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주님은 병을 앓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예호바(여호와) 로페-치유자이십니다.
   주님은 악령에 시달린 적이 없습니다. 마귀의 유혹도 말씀으로 통쾌히 퇴치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 차원의 가난이라면 몰라도, 지상 차원, 면걸(免乞) 차원으로 가난하시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속은 본래 가난했으나, 동방박사들의 예방과 선물 이후 요셒이 사업을 일으켜, 최소한 부자 2대에 이은 매우 근면한 목수 비지니스로 최소 8명 이상의 식구가 "찌들어지게 가난했던" 게 아니라(그런 발상은 전혀 근거 없음) 동네에서 널리 알려진 명장 목수 가문으로서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누렸으며..
주님과 제자들은 3년간 세상 사람들 보기에 거의 '무위도식'하면서도 걸식한 적은 없습니다. 초기엔 제자들을 기꺼이 "와 보라"고 초청하셨고 그들이 가 보고 만족했던 사역본부 격인 장소도 있었지요.
주님 일행은 평소 음식 사 먹을 돈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거부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일부러 부자 되길 삼가야 하고, 부자는 천국도 가기 어렵습니다만..그렇다고 가난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아닙니다. 실로 아브라함의 복은 물적 풍요도 보장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허용하신 뜻에 따라, 사도들처럼 가난에 처할 수도 있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이 영적인-영을 위한 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치병을 포함한 복합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환자/장애인들을 치유하신 뒤 언제나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했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혼/육/물 차원의 해방과 자유, 풍요와 번영도 믿음으로 이뤄집니다.

독자는 예수님을 믿어, 거듭났습니까?
그렇다면, 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렇다면..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복을 누릴 자격과 특권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요즘의 많은 잘못된 가르침과는 달리, 크리스천들은 내세적 복은 물론 현세적 복도 누리게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탐닉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세상과 거기 있는 것을 사랑하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죠.

우리는 양 극단을 피해 균형 있는 복을 고루 누리며, 주님 오실 때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어야 좋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독자는 복됩니다.
물론 모든 독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