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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십일조론

십일조 노예 해방?



김삼

십일조 반대 캠페인에 혈안이 되어, 도시락 보따리라도 싸 갖고 다닐 기세로 십일조 교인들을 극구 만류하는 웨비언들이 꽤 있습니다.

안티 타이딩 전도사(anti-tithing evangelists)라고나 할까요.. 자신만 조용히 십일조를 안 하면 또 모르겠는데, 동지와 아류를 포섭하고 규합하여, 드높은 아성을 구축하려고 나팔을 불며 '반십일조!'를 크게 외쳐댑니다.

이런 반십일조 운동 탓에 이래저래 각 교회의 금고가 점점 썰렁해져 가는데도, 안티들은 조금도 괘념커나 개의치 않고 교회 금고가 탕탕 비어 가길 갈망하는지 계속 그러고들 있습니다. 교회 금고가 풍성해지면 뭐 교회가 타락한 거라나 어떻다나..

그들은 한결같이 <십일조=율법> 등식을 철칙 같이, 아니 절대신앙 삼아 붙들고 거기 목을 맵니다만..글쎄요. 그 등식이 이 험하고 고달픈 세상에서 무슨 위로의 끄나풀이나 '소망의 닻'이라도 되는지? 단지, 하나의 얄팍한 플래시보나 일루전은 아닐지요?


그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십일조 짐을 지신 교우들이여 
다 이리 오시라! 
우리가 여러분을 편히 쉬게 해 드릴 테니 
  그깟 십일조, 이젠 안 내셔도 됩니다요!


안티들은 교인/성도들의 과중한 부담을 홀가분하게 덜어 주어 '만세~!' 화답이라도 받아낼 양으로 요란하게 캠페인 홍보를 해댑니다. "십일조로부터의 영원한 자유"라는 대 독립선언을 통해, 반사이익으로서 자기 '신뢰도'와 인기를 챙길 심산인지도 모르지요. 열 길 물 속을 안들, 그 속을 어이 알겠습니까. 
마치, 십일조 대 반십일조의 '남북전쟁'에서 치열한 전투가 미처 끝나기도 전 '십일조 노예 해방'을 선포한 새 링컨인 양 그들은 발산개세로 의기양양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 번 좀만 깊이 생각해 봅시다.

(비록 주권론자/종식론자이기는 하나마) 개혁신학자 잔 매카터도 요 접때 강조했듯,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가 아니던가요? 혹여 돈이나 맘몬 신의 노예가 아니라면..우리는 하나님의 노예인 것입니다.

솔직히, 노예가 주인에게 돈 문제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습니까? 노예가 주인에게 묶인 주제에 "내 것 갖고 10분의1을 내든 안 내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요?" 할 수 있나요?
착각하지 맙시다! 노예는, 그 자신이 주인의 것입니다! 몸뚱아리든 가진 것이든 모두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죄다 주인의 권한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 주님의 종, 하나님의 노예임을 새카맣게 잊어 먹은 채 돈자루 금자루를 바짝 껴안고는 "누가 뭐래도 내 돈은 내 꺼야!"-이러고들 있습니다. 반십일조 전도사들은 곁에서 맞장구를 쳐 주며, "그렇고 말고요! 10의1 좋아 하시네, 한 푼도 내 놓지 마세요!" 하고들 있고요. 
이야말로 주객전도 상황이지요.

하나님의 노예 되기가 싫습니까? 그럼 맘몬신의 노예로 전락하든지, 그래서 '마이더스 터취(터취'(Midas Touch)[각주:1]의 희생물이나 되든지요. 

제가 단언하지요: 독자가, 만약 하나님의 노예가 아니라면, 돈/맘몬신의 노예일 뿐입니다. 어중간한 딴 길은 없습니다. 노예의 원리란 그렇게 간단합니다. 흑백이 분명해요!


하나님의 노예라면 어떤..누구 말일까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온갖 억압과 억눌림, 과중한 업무와 책임, 중노동의 머슴살이? 가진 것은 톡톡 다 털리고 앗겨도 눈물을 씹어 삼켜야 하고, 혀 빠지게 일해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데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억울한 삶?

과연, 정말 그런가요?
아니죠!!
우리의 주님-거룩한 노예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볼까요?

  "너희를 향해 품은 내 생각은 내가 안다. 나 예호바(여호와)가 선언한다! 그것은 샬롬(평화/번영)이지 해로움이 아니며,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란다." (이르미야서=예렘 29'11 이하 성구 사역)

  "온전한 십일조를 내 집 곳간에 들여,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해라. 또 이제 그것으로 날 시험해 봐라: 만군의 예호바의 말이다. 내가 과연 하늘 창문들을 열어, 복을 미처 쌓을 곳이 모자랄 만큼 쏟아 부어 주지 않는지를!" (말라키서 3'10)


노예주가 이렇게 말하는 예를 독자는 역사에서 본 적이 있나요..? 샬롬과 미래와 희망과 복을 퍼붜 주겠다고 그 분을 "시험해 보라"는, 이런 너그럽고 정다운 노예주를 봤느냐는 말입니다. 미국 흑인노예해방사에서 그런 기록을 발견하신 분..?

물론, 우리에겐 또 다른 노예주가 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다른 한 쪽일 뿐이니까. 거기 대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도둑은 오되, 오로지 훔치고 죽여서 없애려 할 뿐. 나는 오되, 그들(양떼)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거요."(요한복음서 10'10)

오 할렐루야, 아멘!
우리가 하나님, 예수님 아닌 또 다른 노예주를 섬긴다면, 그 노예주는 보나마나 도둑이고 살인자/파괴자입니다! 사악한 존재 곧 마귀죠.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달콤하고 향내 나는 초컬맅을 흩뿌리며 선심 쓰는 "좋은 아저씨"처럼, 처음엔 미끼 삼아 번쩍이고 찬란해 뵈는 이것저것을 제공하는 듯 같아도, 알고 보면 나중엔 목을 조이며 어둑컴컴한 내리막바지로 끌고 가는 게 이 노예주입니다. 그 초컬맅은 결국 독약이고요.

반면, 선한 목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십일조를 하나님 몫으로 바치기보다 그 돈을 내 몫으로 챙기고 절약해서 내 볼 일에 쓰겠다는 의식은..돈만큼은, 믿음보다는 내 머리로 요령껏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이중논법적인 처신이죠. 

마치 흡연자가 예수님을 믿고도 담배를 한 대 꺼내 물면서 "하나님, 지금 요 시간만큼은.." 하듯 말입니다. [ 흡연자를 단죄하려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흡연자도 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죄인들이 다닐 가치가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결코 의인들 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죄인과 환자가 들어와 고침 받을 수 있어야 교회죠. 그러나 우리 몸은 성령님의 전(殿)입니다. 그렇다면 거기 아궁이와 굴뚝이 필요 없겠지요. ]  


말라키 3'10 말씀이 단지 구약 속에 있기에 율법이라면, 아브라함의 복과 구약의 모든 약속들도 몽땅 다 율법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사도 파울은 아브라함의 복과 그와 관계된 모든 약속은 신약인들에게 유효하다고 밝혀 줍니다(갈라티아서=갈 3장 필독!). 
 

성도가 십일조를 할 때, 자칫 율법주의로 할 수도 있고, 믿음으로 할 수도 있지요. 태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건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자세의 차이지, 제도나 방편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런데도, 반십일조 주장자들은 성도가 십일조를 율법으로 하든 믿음으로 하든 관계 없이, 십일조 제도 자체를 '율법'으로 몰아대니, (그들이야 온갖 궤변으로 뭐라고 자기방어를 해도) 그야말로 막무가내인 셈입니다. 율법주의에 치여, 가히 율법주의 편집증 환자 같습니다.  

만약 십일조가 율법이라면, 구약의 모든 약속과 복도 율법이어야 합니다! 복음일 수가 없지요. 십일조 제도가 율법이라면 논리상 모든 헌금제도도 율법일 수 밖에 없음이 논리적 귀결입니다. 수긍하든 말든. 

 반십일조론 황당 논리표 

 십일조 교인: 율법주의자. 율법의 노예.  비십일조교인: 복음적. 온전한 자유인.
하나님: 주권자 아닌 관망자.
           일일이 참견 않으심.

 나: 실제적 주권자. "돈 문제만큼은 내가 알아서 한다." 헌금도 자발적으로 한다. 십일조는 생략.
 결론: 난 율법의 노예도, 하나님의 노예도, 맘몬신의 노예도 아니다. 그냥 중간 상태의 나다.  이런 발상자는 진짜 청지기가 아니거나
 '주권적' 청지기다. 따라서, 비성경적임.
   ⓒ 도표: 김삼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노예처럼, 의지가 없는 기계처럼 부려 먹는 그런 유의 노예주는 아니십니다. 성경은 우리 같은 노예를 좀 더 고상하게, '청지기'라고 합니다.

언제 청지기가 돈의 주관자로서 돈의 씀새를 혼자 맘대로 결정하고 써도 된 적이 있나요? 청지기면 어디까지나 청지기지, 주권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주권자가 됐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어느 정도 청지기의 재량권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나머지도 신중하게 잘 써야 합니다.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그러나 십일조를 따로 떼어 놓기도 전, 온 재정을 제 맘대로 재량껏 처리하겠다는 생각은 뱀처럼 슬기로운 게 아니지요. 맘모니즘처럼, 미다스 왕처럼 미련한 겁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한 건 물론 아니고요. 


그런데 지금, 반십일조론자들은 하나님 것을 따로 떼어 놓는 갸륵하고 선한 행위를 되레 '율법주의'인 양, 율법의 노예인 양 단죄하고 있다는 겁니다.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요? 뒤집어 보면, 그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있는 거죠.


솔직히 물어 봅시다.

엘엘리온(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대사제(=대제사장)인 멜키쩨뎈 왕에게 십일조를 바친 아브람은 율법주의자였나요? 어떤가요..?

하나님 앞에, 바로 말라키 3'10처럼(!) 복을 전제조건으로 한 십일조를 언약한 야콥도 율법주의자였나요?

히브리서 7'8은 분명히 "살아계신다"고 입증된 분이 저기(하늘)서 십일조를 받으신다고 증언했는데, 살아 있는 멜키쪠뎈이나 그분을 승계한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님이 십일조를 받으시면, 그분들도 여태 율법제도를 방치해 두는 율법주의자시란 얘기인가요..........?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전제로 복을 쌓을 데가 없으리만큼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 주시겠다는 그 분이 율법주의자이신지요...........?


반십일조론자들은 이제 왜,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이 된 상태인지 깨닫겠는지요?
그들이 뭐라고 해명한들 말입니다.

  1. 건드리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뀌어 버린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의 손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