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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모세오경

야곱에 대한 오해 풀기



흔히 사람들이 성경의 야콥(야곱)에 대해 상당히 일방적인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음이 발견됩니다.
남들에 비해 되도록 그를 폄하하려는 정신 또는 습벽 같은 것 말입니다.
야콥이 땅에 살아있다면, 퍽 섭섭해질 노릇 아닐까요? 
아마도 형용사적/극적인 묘사에 치중하던 옛 주일학교 교육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만.
마치 코린토교회가 선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점들 탓에 동네북이 되다시피 한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야콥을 약은 사람, 꾀돌이쯤으로 알다 못해, 심지어 언뜻 간교하고 사악한 인물로 비유하기가 일쑤인데요..마치 다뷛(다윗)의 맏아들인 암논 왕자에게 이복누이 타마르(다말) 공주를 강간하도록 꼬드긴 요나답 정도로 이해하려는 성향이 없지 않습니다. 

'야콥'이라는 이름부터가 선입견이 따르기 쉽습니다. 모태에서 형 에사후(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해서 '발꿈치잡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더군다나 나쁜 인상이 박히기 쉽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아기가 형아기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게 무슨 큰 잘못인가요..? 그렇게 보는 생각이 이상한 것이죠.

쉐잌스피어의 비극, '오텔로'에 나오는 악역인 이아고(Iago)의 이름은 명백히 야콥에서 왔습니다. '이아고'는 웨일즈/스페인/포르투갈 등에서 쓰여온, 야콥의 변형이니까. 스페인의 지방명 산티아고도 산트+이아고 즉 '성인 이아고'의 줄임형 이름입니다. 샌디에고도 같은 뜻이고요. 그래서 티아고, 디에고도 모두 같은 계열의 이름이죠. 
아마도 쉐잌스피어는 성경의 야콥을 간교하다고 연상하여 이 이름을 택했을 터입니다. 안 그래도 '베니스의 상인' 때문에 반유대주의자라는 의혹을 받아온 쉐잌스피어인데, '오텔로'에 나오는 이 인물의 개성도 야콥과 가장 걸맞다고 자기딴엔 생각한 모양입니다. 
 

   [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사실 '야콥'(제이콥)은 영어권에서 가장 선호/애호되는 이름들의 하나다. '제이콥'은 미국에서 지난 2009-2010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의 퍼스트네임으로 최고 선호된 이름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신약 성경의) 같은 이름인 '야코보'가 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도 요한의 형인 순교자였다. 주님의 네 아우들 중 한 명(신약 성경 야코보서의 저자)의 이름이기도 했다. 야콥은 또 파생된 수많은 이름 변형들로 유명하다. 가장 흔한 영어명의 하나인 '제임즈'(James)도 야콥에서 왔다. 제잌스/제이/짐/지미/재클린..프랑스어의 자끄 등도 모두 같은 어원의 이름들이다. 과거 라틴어 '야코부스'에 콧소리가 들어가 '야콤부스'가 되어 이탈리아의 지아콤보>지아코모 등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스페인어의 '하이메'(Jaime)도 뿌리가 같다. ] 


아, 물론 하나님 앞에 감히 바로 설 자가 없지만서도, 야콥은 여러 모로 하나님께 복 받은 믿음의 사람이었음이 확실합니다. 어떻든 간에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 주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 12 지파가 탄생하지 않았나요. 또한 메시아 족보에 나타나는 한 주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 야콥의 장점을 쉽게 갖추지 못하면서도 야콥 같은 단점은 누구나 공통으로 갖기 쉽지 않을까요?
"천만에. 난 야콥처럼 간사하진 않아!" 하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려울 터입니다.
우리 누구나 나쁜 본성들이 여기저기 저변에 숨어 있으니까요.


히브리서 11'20,21에 따르면, 야콥은 선조 아브라함과 이짜크처럼 믿음의 사람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야콥이 비록 그의 단점 탓에 하나님께 훗날-후손들 시대에 간접 책망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높이 사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야콥의 기도대로 다 들어 주셨고요, 복을 내려주셔 달라는 그의 십일조 서원대로 몸소 이행하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양떼들 가운데 건강한 점박이/얼룩양, 얼룩염소들의 새끼들이 태어나는 족족 초자연적으로 야콥에게 모두 할당해 주셨습니다(창 30'28-43, 31'7-13 참고). 이것은 유전학이 발달하지 않은 당대에 야콥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권능이었지요! 

그런데도 마치 야콥이 무슨 '음모'를 꾸며 라반의 양을 가로챈 것으로 주장하는 일부 성경학자/신학자/설교가들이 있는데..도대체 성경을 제대로 아는지, 논리와 과학을 아는지, 초자연은 얼마나 아는지, 또한 야콥과 라반의 도덕적, 신앙적 차이를 아는지 모르겠네요.

라반은 권위와 수적 우세로 얼마든지 야콥을 해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은 라반을 막으시고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31'7,29). 또한 귀향길에도 야뽘 강변에서 성자님이 그와 씨름 끝에 그를 축복하셨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야콥의 모든 험한 생애와 온갖 환난 가운데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비록 선조들만큼은 아니라도, 그를 장수하게 하셨습니다. 


인격적으로도 야콥은 그의 외숙 라반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는 것을 성경으로 입증해 보죠.  

오해의 속설과는 달리, 그가 외삼촌의 양떼를 속여 "빼돌린"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마리라도!
그가 보유한 양떼는 모두 정정당당히 얻은 것들이었지요. 
오히려 반대로, 외숙인 라반은 야콥을 처음부터 속였던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야콥의 아내가 된 라반의 두 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답니다(31'14-16)!  

야콥이 가족과 자신이 건전한 노동으로 정당하게 얻은 소유물들을 라반과 그 아들들의 질시와 탐욕(!)으로부터 지키려고 몰래 떠나갈 때, 라반에게 큰 의심을 사서 추적 당하기도 하지만, 나중 야콥이 진실 그대로 해명합니다(31'38-42). 추호도 거짓이 아닙니다!
 
즉 그가 외삼촌의 양들을 칠 때, 철저히 잘 지켜서 단 한 마리의 암양이나 암염소도 무슨 충격이나 사고로 낙태된 적도 없었습니다. 
야콥이 몰래 양들을 가로채어 먹은 일도 없었고요. 
일설처럼 야콥이 간사하기만 했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랬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혹시 무슨 탈이 나서 자기가 치던 양의 수가 모자랄 때는 스스로 보충했습니다! 들짐승에게 물려 찢긴 양은 외삼촌에게 그냥 갖고 가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대신 충당했습니다. 

Very impressive(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바른 태도와 올곧은 생각인가요! 
책임성이 철저하고 충직스럽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소 이런 모범을 보이는지요? 

야콥은,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 주던 어머니의 친오빠인 라반에게, 관계를 빌미 삼아 각별히 봐 달라거나 부당한 신세를 지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철저히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 뿐입니다.   


자, 여기에 비해, 외삼촌 라반은 대조적으로 얼마나 치사한 사람이었냐를 보죠. 라반은 식구들중 누가 낮이나 밤에 도둑맞은 양이 있으면, 무조건 모조리 친척인 야콥에게 변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도 야콥은 이를 거절하지 않고 거기 응해 주었습니다. 원문의 뜻이 그렇습니다(39절). 야콥은 또, 밤낮으로 들판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외삼촌의 양떼를 지켜 주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요(40절). 

그러니, 라반에 비해 야콥은 얼마나 신사적입니까.
그런데도 야콥의 이 해명을 적당히 꾸민 핑계이고 거짓말로 안다면,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눈과 마음이 비뚤어진 거죠. 
 
우리가 잘 아는대로, 라반은 사랑한다는 조카인(29'13-15) 야콥에게 예쁜 둘째딸 라헬을 준다고 속이고 (용모와 시력이 약한) 맏딸 레아를 먼저 그에게 주었고, 두 딸을 파는 '몸값' 격으로(참조: 31'15) 각 7년씩 14년간, 양치기 무료 봉사를 요구했으며, 그 후 야콥이 품삯 대신 얼룩/검정 새끼양과 얼룩 염소들을 요구하여, 6년간 튼튼한 양과 염소들을 수많이 얻자, 라반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야콥을 경원하고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30'43, 31'1). 
바로 이 점이 야콥 가족이 떠나게 된 동기가 된 것이죠. 

라반은 또, 야콥의 얼룩양들이 자기 양떼에 섞이지 않게, 또 야콥이 혹여 자기 양을 훔쳐갈까 전전긍긍하면서, 아들들이 돌보는 자기 양떼를 야콥이 치는 양떼로부터 사흘길이나 뜨게 했습니다. 
그러고도 라반의 아들들은 야콥이 자기네 양을 다 들어먹은 것처럼 생각했지요. 
도무지 사랑하는 친척 같지가 않아요! 
과연 누가 더 악한 것입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고약하고 괘씸한 상황은..야콥이 라반을 섬기며 산 이 20년 기간동안 라반이 야콥의 품삯을 10 회나 변경한 사실입니다! 되도록 더 주려고 한 게 아니라 되도록 덜 주려고 깎은 것이죠. 
웬만한 사람 같으면, "에라, 치사하다~!"며 금방 떠나버리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야콥은 그 긴 세월을 꾹~ 눌러 참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야콥과 라반의 품성이 비교가 되는가요. 적어도 라반에 비해서-그리고 웬만한 현대인들에 비해서도- 야콥은 훨씬 더 정직하고 순결했는데, 선조에게서 대물림한 신앙도 신앙이려니와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복을 믿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죄가 많았고, 일생이 순탄하지 않고, 문제도 많이 겪은 사람이었지요.
그런 점도 오히려 우리가 닮아 있지 않습니까. 

자, 이런데도 왜 많은 신자들이 야콥을 주로 간사하고 악한 존재로만 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설교 때나 주일학교에서나 평소 대화 때 야콥을 형편 없이 폄하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아서이죠. 
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눈길보다는 너무 모든 것을 외적/도덕적으로만 판단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도 세상에서 약삭빠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일을 겪어서인지.. 


나는 그런 신자들에게 우리가 야콥처럼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구해 보자 하고 싶습니다. 
야콥 같은 믿음을 가지면야 왜 복을 못 받겠습니까. 
아, 물론 '청빈'을 추구한다며 복과 형통이 무조건 싫다는 데야 할 말을 잃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복을 바라지 않는 인생은 별 볼 일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멀어지니까요. 

아무튼 히브리서 기자가 야콥을 분명히 불신의 악인이 아닌 믿음의 의인으로 본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 긍정/부정 시각을 성경에 맞춰서 가질 필요가 있지요.
진리에 대해선 예/아니오를 분명히 가리되, 획일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야콥이 간사하다 해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난 그래도 야콥보다 괜찮은 인간입니다"라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야콥을 바로 압시다. 
별 이유 없이 말글로라도 야콥을 헐뜯거나 "때려잡지" 맙시다.
하나님의 복을 열렬히 사모한 그의 믿음과 열정을 우리도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듭시다.  
정당하고 충직스런 노동과 봉사로 일관한, 건실한 정신을 그에게서 본받읍시다.

단, 야콥의 단점은 뭐든 본받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