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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교회력과 교회명절

사순절이 의를 이루는가?

중세의 사육제(카르니발)


김삼


오늘날 우리 신교(또는 '개신교') 교계에서, 심지어 개혁주의권 일각에서도 점차 율법적인 구교(또는 천주교/카톨맄교)를 본떠서 '사순절'(Lent)이란 것을 애써 지키느라 교인들을 묶어두는 데 대하여, 새삼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교계에 대하여 깊은 비애와 회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요즘은 한국 교회도 다수가 사순절을 지킨다고 언론이나 각 교회 주보로 밝혀지곤 한다. 교단 또는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사순절용 큐티/명상 자료집들도 발간된다. 
이건 분명 신교계에 과거에 없다가 유행처럼 새로 생긴 한 경향이다. 확실히 외부에서 왔으며, 따라서 더 말 할 나위 없이 천주교에서 전이된 관행이다.

사순절이 성경의 40일에서 온 것이라느니 어떻다느니 뭐라고 이론을 만들어 쌓아도, 사순절이 좋아 지키겠다는 구실일 뿐, 이맘 때 교회력을 따라 신/구교가 함께 지키는 이 장황한 절기는 분명히 성경적인(특히 신약적인!) 기원이 없으며, 이것은 중세 천주교의 수많은 비성경적 작품들 중 또 다른 하나이다. 사순절이 마치 성경에서 직접 온 계시처럼 주장하는 일부 목회자/신학자/설교가/지도자들의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가히 이단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 아마도 신교의 사순절 준수 관행은..'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으로 신교계에 관상(觀想) 영성(contemplative spirituality)과 소위 '영성훈련'(spiritual formation) 바람을 몰고 온 종교다원적/혼합적인 퀘이커, 리처드 포스터가 명상과 금식, 수사적인 고독/금욕/정적(靜寂)/청빈/'비움' 따위를 강조하고  신교 에큐메니즘의 바탕을 닦아 놓으면서, 더욱 부추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 하면, 사순절 관행은 '영성훈련'과 밀접한 연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순절에 특별 큐티/명상인가를 곁들이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큐티가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큐티 교재 중에는 "요상한" 성경 해설도 많고, 관상영성이 깊이 배여 있음이 간파된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에 큐티를 본격 보급하기 시작한 고 H 목사는 D 서원을 통해 엄청난 양의 외래 영성을 마구잡이로 뿌렸다. 그 막대한 칭찬(??) 또는 책임(!!)에 대한 응답을 그가 올라간(?) 하늘에서 어떻게 감당했는지는 모르나..
그러므로 오늘날 신교권까지 카톨맄 사순절을 지키게 된 데는 관상영성/수사영성/영성훈련의 배후가 있다는 것이다. 


사순절에 대한 개혁가들의 태도는?

그건 그렇고, 중세 개혁가들은 사순절을 지켰는가?
개혁가들은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거나 그 카톨맄 정신을 배격했다.

스위스 개혁가 울리히 츠빙을리는 1522년 처음으로 사순절 관습에 도전, 취리히의 인쇄업자들이 힘을 북돋는 데 필요한 매일의 육식을 옹호했다(힘을 쓰려면 물론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 당연하다!). 츠빙을리는 사순절의 관심은 "복음에 대한 순종보다 로마에 대한 순종에 있다"고 제대로 지적했다.
 
프랑스 출신의 개혁가, 장 칼뱅은 그의 대작인 '기독교강요'에서 사순절은 "미신적 관행(!)"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런데 칼뱅을 거의 신격화 하다시피 해온 현대의 일부 개혁교회를 비롯한 신교계가 바로 그 칼뱅의 교훈을 왜 굳이 간과해 가면서까지 천주교의 '미신적 관행'을 부득부득 지켜대는지 아연실색해진다. 개혁을 하다하다 이젠 칼뱅 신학을 개혁해 보겠다는 굳은 의지에선가..? 아니면 사순절을 미신적 관행이라고 믿었던 칼뱅의 생각이 미신적이었던가? 

마르틴 루터는 사순절 금식을 "선행으로 뭔가를 공로로 삼아 보겠다는 것"이라며 천주교의 가르침은 금식이 죄를 면제해 주고 구원점수를 따게 해 준다는 식의 허황되고 거짓된 개념이라고 질타했다. 


차제에, 사순절을 지키는 신교 교회들에게 묻는다: 

   개혁가들도 거부감을 갖거나 적극 경계한 사순절을 20-21세기인 이제 와서 왜 신교와 개혁교회가 지키겠다는 것인가?  

   개혁교회는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철저히 배제하고 거의 이단시하면서, 어째서 (사순절을 적극 선호해온) 감리교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가? 모순된 처신이 아닌가? [ 필자는 반감리교주의자가 아니다. 논리상 그렇다는 말이다. ]

   사순절을 굳이 지키겠다면, 왜 사순절에 앞서 카르니발(사육제/謝肉祭)은 안 지키는가? 40일간 육식도 삼가고 천주교 수사들의 곡식/채식을 중심한 율법적 식습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을 본받아 수사들의 '기도자세'인 겹친 팔 모양을 땄다는 '프렡젤'(pretzel) 과자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교도 사순절을 준수해야 한다면, 응당 사육제도 치러야 하지 않겠나? 천주교도들처럼 사순절에 들어가기 전 거나하게 힘껏 양껏 잔뜩 고기를 먹고 나서 고기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하고, 아쉽지만 각종 고기들에게 "바이바이" 하면서 작별한 다음 40일간 고기를 멀리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금욕적이고 '경건한' 사순절로서 훨씬 더 실감이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제대로 사순절답지 않나?

고기를 삼가려면 철저히 삼가야지, 약간만 삼가서 되겠는가? 교우들 가운데 정육점이나 갈빗집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는 않겠는가? 그냥 알아서 해야 하나? "집사님, 지난 사육제 때 고기를 많이 팔아드렸으니까, 사순절 끝나면 또 한꺼번에 많이 팔아 드릴게요~! 그때까지 고기는 교우들에겐 팔지 말고 기다리세요. 비신자들에겐..알아서 하시고요." 할 것인가?

고기 안 먹기는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음식을 갖고 율법적으로 묶어 놓으려는 발상은 티모테A서(딤전) 4'1-5의 자유 정신에 어긋난다. 단, 자발적인 금식을 제외하고서다.
그리고 육식을 안하겠다면서 생선/계란/우유/초컬맅 등을 즐겨 먹는 것도 모순일 것이다. 카톨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생선 외에 그런 더 많은 음식들은 인체에 더 큰 쾌락과 함께 더 많은 자양분이 된 나머지 그 섭취로부터 생긴 잉여 물질이 "(남성) 정액 성분을 더 늘려 주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더욱 육탐(肉耽)을 하는 동기가 될 뿐"이라고 경고했단다. 그것이 수사/수도 중심의 카톨맄 신학이다!
아마도 신교도 앞으로 모범적으로 사순절을 잘 지키려면, 사순절 기간동안 임신하는 부부도, 사순절 아기도 없어야 할 터이다.


천주교의 '사순절'을 따라 지키면서 '재의 수요일'은 또 왜 안 지키는가?
천주교가 그런 신교계를 보면, 속 한편으로는 향(向)카톨맄 성향을 고소해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소(苦笑)도 할 것이다. 신교계 일각에서 천주교를 흉내내는 일부 관례들을 보면, 객관적으로 우습다 못해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부 교파/교단 사람들이 카톨맄 사제들을 본받아 목 앞에 로만 칼러 비슷한 것을 착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본디 천주교에서 독신자로 헌신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독신도 아닌데, 로만 칼러를 흉내내니 우습지 않냐는 것이다. 

신교가 사순절을 지키련다면, '재의 수요일'도 지켜야 앞뒤가 맞고 짝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웬지 조만간 신교도들도 이마에다 십자가 모양의 재를 바르고 다닐 때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마도 각 교단 총회가 '재의 수요일' 준수 여부를 서둘러 결정하려 들지 모른다. 한심하다.

딴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매년 미국 길거리에서 사람들 이마 위의 십자가 모양 회인(灰印)을 보면, 섬뜩해진다. 마치 죽음 같고 그림자 같은 그 색깔도 색깔이려니와, 그들이 미소를 띠면 더구나 영 어울려 보이질 않는다. 참 회개보다는 뭔가 어둡고 오랜 전통과 제도에 얽맨 노예들의 상징과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다. 그런 것을 경건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율법과 제도의 종교이지, 참 생명의 도리는 아니다.  

아니면 개 교회별로, 자유재량으로, 당장 내년부터라도 '재의 수요일'도 지킬 것인지..? 그래서 목회자들이 천주교 사제들처럼 교우들의 이마에 재를 찍어 바르며 교인들을 묶어둘 생각인지? 회개를 자아내는(?) 재의 파워를 느낄 건지? 그렇다면 구약 성도들처럼 아예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재를 온몸에 뒤집어 쓸 일이지, 왜 찍어바르는 약식만 즐기겠다는 건가? 편리해서? 자기편의를 추구하는 것도 참 회개인가? 현대인을 위한 현대식 회개라서? 바쁘다 보니까..? 바쁘단 핑계의 약식 회개도 회개인가? 철저한 회개가 진정한 회개 아니고..?
그리고..내년에 쓸 재를 만들기 위해 종려주일에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를 말려서 불에 태울 것인지..?

그런 것들이 진정 회개를 이루고,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의를 이루는가? 아니라면, 사순절은 왜 지키는가?


사순절로 하나님을 묶어 둘 생각인가?
'사순절 특별기도', '사순절 특별명상/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특별히 나아가겠다면, 상대적으로 하나님도 역시 사순절을 지키시라는 말이 되어버린다.
사순절 특별 묵상모음, 특별 큐티 등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가 사순절을 이렇게 열심히 지키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도 여기 응하셔서 사순절을 지켜 주세요. 그래서 우리의 특별기도와 특별 명상을 들어주시고 받아주소서"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논리상 맞아들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우리의 율법적인 사순절로 복음과 자유의 하나님을 묶어 놓겠다는 말이 아닌가? 절기준수 자체가 율법적인데, 복음적 사순절이라는 것도 있는가?


돌아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단번에 완성하신 제사를 통해, 절기 지킴과 제사를 비롯한 율법의 온갖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벗겨 주심으로써, "삼가 절기 지키기"로부터 영원히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이젠 초등학문에 불과한 절기 준수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계시는 초기교회 성도들이 구약시대/율법시대로부터 신약시대/복음시대/은총시대/교회시대/성령시대로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사도 파울에게 주신 특별한 복음 사안이었다(갈라티아 4'8-11).

우리가 유대교와 달리, 모든 절기를 일일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다만 주님이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한 날-"안식 후 첫날"-을 기념할 뿐이다.
그런데도 요즘 구교나 유대교를 닮겠다고 천주교 절기, 유대교 절기 준수 시절로 되돌아가겠다고 우기니, 그저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 파울이 말한 것이 헛되어지나보다(갈 4'11).

초기교회 성도들은 과거의 안식일과 성전 중심의 생활로부터 점차 은총시대로의 과도기로 접어들면서, 성도의 친교/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주님의 날을 비롯해 거의 날마다 모여 떡을 떼고 가진 것들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다고 성경은 기록했다. 바꿔 말하면, 계율과 절기 중심의 삶을 벗어났다는 말이 된다.


개혁가들은 천주교 작품인 사순절을 지키지 않거나 그 개념 또는 개념의 일부를 거부했다. 그런데 맨날 '개혁주의'를 외쳐온 개혁교회들이 마땅히 천주교 전통이 아닌 개혁가들의 전통을 따라야 하겠거늘, 개혁가들도 지키지 않은 천주교의 사순절을 함께 지키겠다니, 이 무슨 개혁교회인가? 아예 개혁이란 말을 빌지를 말든지..
아니면 개혁가들의 전통을 도로 뒤집어 재개혁을 하겠다는 의미인지..?


과연 사순절 준수가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는가?
우리를 절기 준수에서 풀어주신 하나님께, 사순절 특별기도와 사순절 특별 명상에 귀를 기울여 주시라는 요구인가?
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왜 율법시대로 돌아가 삼가 절기를 지키려 하는가?
'주일성수'가 모자라 이제 '사순절 성수'도 하겠다는 건가?

십자가 위에서 풀어 주신 쇠사슬을 왜 다시 몸에 칭칭 감겠다고 나서는가? 왜 벗겨 주신 무거운 멍에와 코뚜레를 다시 등에 지고, 코에다 꿰갰다는 것인가?

개혁교회 일각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청교도 신앙의 원조인 바로 그 청교도들은 신대륙에서 사순절은커녕 '성탄절'도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신교가 구교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신교 '아기'가 구교 '엄마'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구교가 신교의 엄마 맞는가? 성모 마리아를 섬기니까..?

교회의 뿌리가 하늘 예루샬렘이 아닌 로마였나?
이천년여 전의 '모든 길은 로마로'가 '다시 모든 길은 로마로', '신교도 로마로'가 돼 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 말세에 신교가 율법적인 사순절을 지켜가는가? 뭔가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복음적인 사순절'이란 것도 있는가?

신교가 구교를 본받아 전에 안 지키던 사순절을 꾸역꾸역 지키련다면, 구교가 지키는 나머지 절기들도 점차 본받아 지키겠다는 암시가 된다.

사순절을 지키게 된 신교는 앞으로..
    사육제도 지키게 될 것이고..
    재의 수요일도 지키게 될 것이고..
    다양한 '성인/성녀'들의 추모기념일을 포함한 나머지 온갖 절기들도 점차 지키게 될지 모른다.
 두고 보라.. 앞으로 안 지키게 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전에 안 지키던 사순절도 이제 지키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도 파울이 경계하고 경고한 그 삼가 절기 준수 정신으로 되돌아가, 신교 교인들이 모조리 구교인이나 유대교인 같은 꿋꿋하고 철저한 '절기 지킴이'들이 될 것이다 .

이러한 신교를 구교는 "어서 오너라 아가야, 엄마 품으로! 아고, 반갑구나. 착하기도 하지. 널 몇 세기 동안이나 기다렸단다." 하며 두 팔로 반겨줄 테고, 신교는 "엄마 엄마! 몇 세기동안 그리웠어요! 기다려 주셔서 고마워요.." 하려는 판국인가. 그러면 구교는 "오냐. 이제부터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 하여라, 안 그러면 도로 내쫓을 거야!" 할지 모른다. 신교 아가는 "아니예요, 엄마! 잘 할 테니, 이젠 다신 내쫓지 마세요" 할 것인가.


이상하게, 요즘 교계에서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냄새가 점점 더 나는 것은 필자만인가?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처사"라고 흔히 응수하는데, 성경 진리와 복음으로 되돌아가자는 외침이 제도교회 아성 무너뜨리기가 되어선가? 

교회를 다시 세우려면 순수 복음으로 돌아가야지, 구교로 돌아가는 게 교회를 세우는 길인가? 그렇게 세운 교회가 얼마나 교회다운 건지..??

 
신교인 우리가 왜 구교의 절기인 사순절을 지키게 되었는가? 왜..?
왜 우리가 지금 로마로 가고 있는가?
뭔가 이상한 것-종말현상-을 느끼지 못하는가?
로마가 우리의 엄마인가, 예루샬렘의 첫 교회가 우리의 모 교회인가?

교회는, 왜 성령으로 시작한 일을 몸으로 마치려는가?
형제들, 자매들이여. 일부 교우들만이라도 제발 정신을 되찾아 절기지킴이로부터 벗어나 진리지킴이, 복음지킴이로 서 있자!

   주 예수 나의 바위니
   나 거기 굳게 서리라
   딴 곳은 모두 모래땅!

('이 몸의 소망 무엔가' 후렴에서 필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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