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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 코너/Faith의 믿음묵상

[겔 40-48] 에스겔 성전의 정체 (Faith)





도면 해설: 에스겔서 성전 구조 

Inner Court: 안뜰

Outer Court: 바깥뜰

A: 제단(43:13-17) 

B: (역할이 설명되지 않은) 건물(41:12) 

G1: 바깥문들(40:6-17,20-27)

G2: 안쪽문들(40:28-37) 

K1: 백성의 제사용 부엌들(46:21-24) 

K2: 제사장용 부엌들(46:19-20) 

PC: 제사장 방들(42:1-14) 

R: 바깥뜰 둘레의 방들 30개(40:1-7) 

RP: 사역 제사장실(40:44-47) 

T: 본성전(40:48-41:11,13-14,16-26)   

  


에스겔서 40장-48장은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 역시 성경을 읽다가 도대체 역사상 실재하지 않은 이런 면밀한 성전 구조와 상세한 제사 규정을 왜 이렇게 여러 장에 걸쳐 기술하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두루 찾아 보고 나름 결론 내린 것을 여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름의 결론일 뿐이기에 헛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티엘티 여러분이 검증해 주시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가운데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서 40-48장에서 주요 쟁점이 되는 것을 하나씩 살펴 보면,


  • 상징적 모델인가? (영적 해석) vs 실제적•물리적 모델인가? (문자적 해석)


에스겔서의 성전에 관한 논란의 가장 큰 줄기는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혹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할지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나타난 구체적인 건물 척량은 문자적 해석의 주요 논거입니다. 만약 상징이라면, 요한 계시록이나 다니엘서 등에 나타난 '짐승', '말탄 자' 식의 서술로 충분한데, 흡사 모세의 성막을 연상시키는 꼼꼼한 설계를 단순히 영적/상징적으로만 보는 것은 이 척량 규정들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단번의 제사로 율법의 요구가 성취된 신약시대에는 과거 구약시대에 비밀로 감추어졌던 것이(골 1:26) 드러났습니다. 모세의 성막도, 솔로몬의 성전도 신약의 그림자이며, 하나님이 명하신 그 자세한 규정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통해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 시대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신약 시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에스겔의 성전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자적 해석에 비해 오히려 더 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영적 해석이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에스겔서 성전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예 틀리다고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 신약의 가르침을 통한 영적 해석이 오히려 성경적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벧전 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과거에 존재한 것인가? vs 미래에 실제로 건설될 것인가?


에스겔 성전이 스룹바벨 성전 혹은 헤롯 성전으로 실현된 예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제 1성전도, 스룹바벨이 재건하고 헤롯이 대대적으로 보수한 제 2성전도 에스겔서의 성전과는 같지 않으며, 또한 에스겔 48장의 12 지파 모두가 동일한 몫으로 나눠 받는 땅 분배는 과거에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해석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에스겔 성전을 이루어지지 못한 계시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포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에 에스겔의 모델대로 성전을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견해는 곧 하나님의 예언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좌우됨을 말하는 것이기에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견해로, 에스겔 성전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금 거룩함과 예배에 관하여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건전한 해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 미래에 물리적으로 건설될 성전이라면 시기는?  천년왕국? vs 영원(새 하늘 새땅)?


에스겔 성전의 물리적 실현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체로 천년왕국설을 지지하는 듯 합니다. '영원설'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는, 

    1) 계 21장에 나타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직접 성전 되시기 때문입니다. 

    2) 에스겔서에서 땅의 경계로 바다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바다'는 사라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3) 에스겔서에는 제사에 관한 규정들이 나오며, 그 곳의 제사장들은 땀을 흘리고, 결혼을 하고, 군주(prince)에 대해서도 그 백성의 산업을 뺏지 말 것이 기록되어 있는 등 요한 계시록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4) 에스겔 성전 규정에는 '외국인'에 대한 규정, '날 수'에 관한 규정, 심지어 죄를 범한 레위인들에 대한 규례가 나오는데, 모두 영원 시대의 새 예루살렘에 적합치 않습니다.(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제 3 성전? 제 4 성전?


에스겔 성전이 물리적으로 천년왕국에 건설될 것이라 주장하는 의견도 전천년설을 주장하느냐, 후천년설(환난후 휴거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제 3 성전이 될 것인지, 제4성전이 될 것인지로 의견이 나뉩니다. 

환난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으로 보는 전천년설에스겔 성전이 바로 지금 유대인들이 준비하는 제3성전이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전천년설 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한데다 이들이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 역시 대부분 예수님의 초림으로 성취된 예언을 근거로 합니다. 여기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에 대한 논의까지 하는 것은 너무 방대하기에, 그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3성전으로 주장하든, 제4성전으로 주장하든 에스겔 성전의 문자적 실현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선 같으므로 이에 대해선 제4성전설을 비판하면서 논의하겠습니다.

 

후천년설(천년왕국이 환난 후에 있을 것으로 보는 의견) 가운데 에스겔 성전의 물리적 실현을 주장하는 의견은 제3성전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민족적 메시아(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관련 있다고 보면서 (마 24:15-21, 살후 2:1-4, 슥 11:16)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등에 기록된 환난기간이 지난 후 에스겔 성전이 제4성전, 즉 천년왕국 성전으로 건설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설(에스겔 제4성전설)을 지지하는 견해는,


   1) 스가랴서 6:12-15 말씀을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스가랴서에 기록된 미래의 성전이 바로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 곧 제4성전(천년왕국 성전)이라고 합니다. 한편 유대인 제3성전 지지자들의 성전 건설 근거이기도 합니다.


슥 6:12-15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하지만 저는, 스가랴서의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성취된 예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말씀은 우리가 전에 먼 데 있었으나(엡 2:13, 17)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벧전 2:5, 히 3:6, 엡 2:21,22)



   2) 에스겔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지형적 특성이 과거 혹은 현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점을 듭니다. 즉 에스겔서 48장에 나타난 땅 분배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 계시록에 기록된(환난기간) 지진 등의 사건으로 지형이 완전히 달라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 에스겔서 48장의 땅 분배는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에 오히려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믿음이 부족했던 단 지파부터 가장 믿음이 강했던 유다 지파까지 땅을 공평하게, 동일한 면적으로(겔 47:14) 나누신 것은 예수님의 비유 중 주인의 관대함으로 품꾼들 모두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급한 비유(마 20:1-16)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벧후 1:2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하는데 이 역시 그 행위와는 상관없이 동일하게 땅을 분배한 에스겔서 땅 분배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 아닐까요?


   3) 앞서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그것의 실제 건축을 위함이었듯이 에스겔의 성전도 실제 건축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을 지을 때는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대상 28:10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등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에스겔서에서는 '이 설계대로 지으라'고 명령하셨다는 부분은 없고 그냥 측량하라, 보이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이 성전이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아닐까요?


겔 43:10-11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Ezekiel 43:10-11 “As for you, son of man, describe to the house of Israel the temple, that they may be ashamed of their iniquities; and they shall measure the plan. 11 And if they are ashamed of all that they have done, make known to them the design of the temple, its arrangement, its exits and its entrances, that is, its whole design; and make known to them as well all its statutes and its whole design and all its laws, and write it down in their sight, so that they may observe all its laws and all its statutes and carry them out. [ESV]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도록 성전의 구조를 보여 주라 하십니다. 성전을 보여 주는 것이 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까요? 우리의 죄악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곳은 오직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알게 되면 자기의 죄악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들이 그 죄악을 부끄럽게 여긴 후에는 성전의 구조, 디자인을 알게 하라 하시고 모든 규례와 법도, 율례를 알게 하고 지키게 하라 하십니다. 즉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악을 깨달은 후(회개 한 후)에는 내 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도와 연합하여 성전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설계(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죠. 


요 2:20-21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엡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결론적으로, 저는 에스겔의 환상 속 성전은 결국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에스겔의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 없는 예수님의 몸된 성전과 또한 성도들이 연합하여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져 가는 성전된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레위인이 아닌 새로운 제사장 계열의 임명(겔 40:46; 43:19; 48:11),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큰 새 성전 규모(겔 40:48-41:26), 번제제단 규정(겔 43:13-27), 제사장들에 대한 규제를 비롯해 40-48장 대부분에서 제사 제도에 대한 내용(예: '희생제물(40:41)', '내 모든 정한 절기(44:24)',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로 삼을 지니라(45:17)' 등등)이 너무나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음은 결국 미래(천년왕국)에 있을 물리적인 제사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에스겔이 미래 동물제사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으니 써진 그대로 믿고 그것을 신약의 진리와 조화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에스겔서의 동물 제사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히브리서는 분명히 말하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영원한 단번의 제사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더이상 죄를 위한 제사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나 분명한 신약의 가르침 안에서 에스겔 성전과 제사 규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허용된 것인지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히 10: 1-5, 18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에스겔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밝히 말씀하신 신약의 진리와 모순됩니다. 어떠한 신약 기자도 미래 동물제사가 다시 이뤄지리라는 가르침을 주지 않으며, 에스겔서 자체에도 이것이 문자적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상징이라고 말하는 구절도 없습니다만 이는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성막이 '상징'이라고 말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신약의 진리 안에서 그것이 상징임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에스겔 성전의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히브리서를 비롯한 신약 전체에 기록된 이 진리 곧 제사가 폐하여졌음을 왜 '문자 그대로' 믿지 못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속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천년왕국에서의 제사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천년왕국에서의 제사는 죄의 '대속'을 위함이 아니라 성전과 제사장, 제단 등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정결례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보혈은 오직 '죄의 대속'에만 효력을 미치기에 여전히 정결례는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천년왕국에서도 여전히 죄가 있기에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는 그런 제사를 통해 그 임재하심을 죄로부터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에스겔서 45장은 명백하게 속죄제를 드릴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히 10장의 말씀과 어긋나며, 그럼에도 에스겔서의 제사(속죄제 포함)가 미래에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에스겔서에 속죄제를 비롯한 여러 제사의식이 있는 것은 어린 양 예수님의 희생제사가 구약시대 선지자인 에스겔에게는 감추어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는 구약제사 하나(속죄제)의 성취가 아니라 구약 전체 율법의 성취임을 위의 주장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겔 45:23 또 명절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준비하되 곧 이레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sin offering)를 드릴 것이며


또한 제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호한다는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제사를 통한 보호도 필요치 않으셨습니다. 


   6) 에스겔 성전의 제사 규정은 천년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즉 구약의 제사 규정이 실제 죄를 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앞으로 오심과 그 희생사역에 대한 믿음의 상징이듯이, 천년왕국에서의 제사도 실제 죄를 사하지는 않으나 과거 '이미'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서 다양한 제사들이 '기념'을 위한 것임을(출 30:16, 레 2:2,9; 5:12 등등) 근거로 삼습니다. 또한 천년왕국에도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기도 한다고 생각하여(사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천년왕국에 태어날 후손들에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가르칠' 목적이라고 얘기합니다. 


-> 에스겔서는 분명히 그러한 제사가 기념이나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속죄와 감사 등을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겔40:39, 42:13, 43:19, 43:21, 43:22, 43:25, 44:27, 44:29, 45:15, 45:19, 45:22, 46:20)


또한 심지어 예수님이 오시기 전 제사가 필요했던 시대에도 하나님은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히 10:6)'라고 하셨는데 기념을 위해, 혹은 가르치기 위해 동물제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요? 단지 '기념'하기 위해 그 많은 동물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는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9)'라고 기록합니다. 죄를 없애지도 못하는 제사를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도살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천년왕국의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 유대인의 중재자로서의 지위 회복이 천년왕국에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물리적 성전이 필요한 이유라고 합니다. (주로 세대주의에서 주장합니다)


-> 하지만 롬 9:23-26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성경은 유대인의 중재자적 지위 회복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주의 몸(교회)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저는 물리적 해석설은 어느 것도 타당하지 않은 반면, 영적인 해석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해석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에스겔서의 성전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건전한 해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좀 더 적어보면,


   1. 에스겔서에 묘사된 제사의식이 모세의 제사규정과는 많이 다릅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 대해 성결의식(정결례)을 행했던 것과 달리, 에스겔 서의 사독(Zadok) 계열 제사장들에 대해서는 따로 정결례가 없고 오직 그 제단에 대한 정결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겔 43:20). 이는 십자가의 피로 이미 깨끗하게 되어 또 다른 성결의식이 필요 없는 참 신자들이 제사장들(벧전 2:9)이기 때문 아닐까요? 


   2. 에스겔서에서 지키라고 명명된 절기들 역시 모세의 율법과 달리 대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에 규정된 무교절, 나팔절, 속죄절, 맥추절, 오순절에 관한 규정은 없고, 오직 유월절과 장막절, 안식일과 초하루(new moon)만 나옵니다. 


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초하루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Let us therefore celebrate the festival)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여기서 바울은 절기와 초하루, 안식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대속죄절을 비롯해 유교절, 무교절, 나팔절, 맥추절, 오순절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리심과 성령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지만, 장막절은 천년왕국에 성취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에스겔서에 오직 유월절(예수님의 초림), 장막절(예수님의 재림), 안식일과 초하루만 기록되어 있는 것과 연관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성만찬(유월절)과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다림(장막절), 그리고 앞으로 있을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로서의 안식일(주일), 초하루(이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 10:10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심일까요? 삼상 20:5, 18, 24 등에서 다윗과 사울왕이 초하루절기를 지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4:22-23을 보면 초하루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 말씀을 배우는 듯한 암시가 나옵니다. 초하루절기의 의미는 말씀공부일까요?) 만이 있기에 에스겔서에서도 그 절기들만 나타난 것 아닐까요?


(결론)

영적인 해석을 채택한다 해도 여전히 에스겔서에 나타난 '군주/왕자'가 누구인지, 사독 계열 제사장들과 구분된 레위인들은 누구인지 등의 의문이 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과 같은 이유로 에스겔서 성전을 해석하는 것은 영적인 해석이 가장 타당하며, 그 중에서도 신약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건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