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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언(방언)론

종식인가 지속인가?





종식인가, 지속인가?

―'중단론자'(Cessationists)들에게 묻습니다. 




여기서 종식론(Cessationism)이라 함은 '중단설', '중단론'과도 같은 말로, 전통주의 신학 학설의 하나입니다. 딴 번역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편의상 종식론으로 통일해 부르렵니다. 까닭은 중단설은 일시성의 뉘앙스가 짙은 반면, 종식론은 영구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죠. 특히 개혁주의 측에서 내세우는 이론은 일시적 중단이기보다 영구적인 종식에 더 가깝습니다. 


과연 무엇이 종식/중단됐다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그냥 '은사중단론'이라고 단순히 부르기도 하지만, 협의적 어휘이고, 알고 보면―종식론 학자들의 말을 이모저모로 따져 보면―성령님의 초자연적 권능/은사/계시/신유/영언(방언) 등이 다 '종식'됐다는 뉘앙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나의 신학교 스승들이 거의 예외 없이 그런 입장들이었습니다. 모두 개혁주의자들이었지요. 


그러나 종식론은 이미 '속사도 교부들' 때부터 주장돼 온 것입니다. 이것을 카톨맄 신학자들에 이어 개혁가들도 대물림했고, 지금 종식론자들은 신/구교나 칼뱅주의권/아르미니우스주의권 양쪽에 다 흔합니다. [카톨맄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한 쪽으로는 성경의 신비적인 것들이 '종식'됐다고 믿으면서 한편으로는 자기네 발명품인 소위 화체설이나 '성흔(스티그마타)', 중세의 '어둠'과 '무(없음/텅빔)' 개념 및 관상영성, '마리아 발현' 등 불건전한 초자연과 신비로 치달은 점이죠. 그러니까 정작 성령님의 신비는 안 믿고, 악령들이 흉내를 내는 신비는 따르는 셈입니다. 근래 그들에게도 영언 등이 회복됐다는 소위 '성령쇄신운동'이 있다곤 하나, 비성경적인 마리아/교황/성상 숭배와 아울러서 하기 때문에 사탄이 활약하기가 훨씬 더 쉬운 환경이죠. ]



그러니까 제 말은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종식론자들이 개혁주의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개혁주의권에서 가장 종식론의 부르짖음이 드높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요즘의 개혁주의는 사실 획일성이 강합니다. 영언 등 초자연적 역사를 모두 한데 싸잡아 신사도운동 또는 불건전한 신비운동으로 몰아가려는 흐름이죠. 그 가운데는 영언 등이 암만 시도해도 "안 나와서", 또는 시작하고 나니 하도 이상해서 "이건 아니올시다"로 결론을 내리고, 그쪽으로 돌아선 모양새도 흔합니다. 그것이 편한(?) 결론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건전한 신앙생활이 다 그렇게 편한 것일까요? 오히려 어찌 보면 고된 게 신앙생활 아닌가요? 사실 영언기도를 하다 보면, 이것처럼 편한 것은 없습니다! 성령님께 혀까지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이니까요.

   

반면 종식론에 반대되는 견해는, 성령님의 초자연적 권능/은사/계시/신유/영언(방언) 등이 아직 초기교회와 다름없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는 견해로, 이름 하여 비종식론 내지 지속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 비단 오순절교 뿐 아니라 대다수의 교파에 폭넓게 퍼져 있습니다.  

현대 오순절교 운동은 초기교회의 특징인 영언 등이 사라졌을 리 없으리란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순절교 운동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있어 왔지만, 그들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즉 성령의 초자연적 권능/은사/계시/신유/영언(방언)은 교회 유사 이래 예외없이 모든 교회에 주어진 것이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예수 크리스토님, 그리고 성부/성자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어제와 오늘, 언제나 한결 같으시기 때문이죠. 왜 종식론자들은 하나님의 이런 불변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이 성구들을 딴 방향으로 해석하겠지요. 성령님은 늘 한결 같으시지만 그분의 권능/계시/은사/신유/영언 등은 불변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도중에 그칠 수도 있다(마지막 날엔 그치지만)..―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사실상 한결 같으신 것이 아니지요.


필자는 개혁주의권에 머물어 있지만, 종식론은 뿌리가 잘못 되었고 완전히 성경과는 다른 비진리라고 믿습니다. 이 글은 종식론자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씁니다. 그들을 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함께 마음을 열기 위하여 그들에게 권고하기 위해 씁니다. 



종식론 주창자들은 요즘 특히 한국 개혁주의권에 흔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런 것을 부정하는 것이 '개혁'이라는 것의 일환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아이러닉하게도 필자의 신학교 시절 남보다 유난히 "뜨거운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학생들은 기숙사 옥상에서 다른 학생에게 할렐루야 발음을 반복시키는 '영언 연습'인가를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는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런 현상(?)을 백안시하곤 했지요. '뜨거운 감자' 같은 그런 것에 대해 "모르는 게 약"이라는 식의 발상도 은근히 있었습니다. 


종식론과 비종식론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예컨대 교회에 따라 영언을 허용하는 곳도 있지만,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영언자들이 교회 안에서 맘대로 기도할 수 없어 영언을 통한 필수적 도움('중보')기도도 못하는 판입니다. 한 마디로 자유가 없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양측이 대립하는 상황일 때도 있습니다. 한 교파는 물론, 한 교단 안에도 종식론자들과 비종식론자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신학이 몰고 온 결과이죠.


사실 종식론측 입장은 반대 쪽에 비해 훨씬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권능이나 신유 같은 것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날의 신유는 과거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흔히 하고, 은사들의 경우도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종식이 아닌 변질이라고들 보는 셈이죠. 이것은 성령님에 대한 오해이며, 한편으로는 성령님과 사탄의 활동을 구분하지 못한 영적 분별의 결핍 탓일 경우가 많습니다. 


알고 보면, 영언에 대해서도 종식론의 입장은 매우 일방적/편파적/획일적입니다. 가령 코린토A(고전) 14장에서 영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듯한 부분만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급기야 거기에다 코린토 교인들의 모든 잘못을 결부시켜, 모든 것이 그들의 은사활용 탓인 양 demonize하는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자신들은 은사종식을 굳게 믿기 때문이죠. 자신들이 영언을 하지 않거나 은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을 은근히 합리화하려는 바탕을 깔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14장을 면밀히 읽어 보면 알지만, 파울(바울)님이 부정시 했던 것은 단지 당시 코린토교회 안에서 통역 없는 영언으로 마구 말을 하고 딴 사람을 가르치려 들던 무식한 관행에 관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14장의 2, 4, 12-18, 26-28, 39절은 어떤가요? 특히 18절은요? 파울이 영언에 대하여 사뭇 긍정적이지 않나요? 왜 이 점을 시인하려 들지를 않나요? 왜 공정한 파울의 입장을 한 쪽으로만 몰고 가나요? 그런 성향은 공평이 아니라 비겁함이죠. 



이제 종식론자들에게 묻습니다(이하 존대어미 생략).


행전 2:17-21에서 인용된 요엘서의 예언과 관련하여...


계시가 '종식'됐다면, 요엘의 예언은 계시에 관한 것은 아니던가? 17,18절에 나타난 예언/환상/꿈은 계시가 아닌가? 동시에 코린토A서 12-14장에 나타난 은사들중 다수가 계시가 아닌가? 왜 페트로(베드로)는 오순절에 나타난 영언 현상(행 2'4,6~15 참조)과 연계하여 요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말했는가? 

요엘의 예언은 초기교회에만 성취되었는가? 현대에도 적용되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약 그렇다면, 요엘의 '말세'(17절)는 현대는 제외된 말세인가? 어디까지의 말세인가? 종식론자들의 주장대로, 오순절로 끝나는 말세였는가? 어느 구절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는가? 오히려 심판때까지 이어지는 말세가 아니던가(행 2'19,20 참조). 왜 평소 컨텍스트를 강조하는 종식론자들은 문맥상 연결된 이 19, 20절을 볼 줄 모르는가?!


페트로는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행 2'33. 사마리아 교회 및 기타 교회도 포함! 참고: 행 8'18 '..보고..') 즉 영언(!)을 포함한 (요엘 예언의 모든) 약속이 그들과 그들의 자녀 그리고 모든 먼뎃사람들 곧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2'39)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얼마든지'가 얼마든지가 아니라 오순절까지의 얼마든지인가? 그 이후도 포함된다면 단지 성경전서가 마련되기까지인지? 성경전서 보유자는 곧 '얼마든지'에서 빠져-생략돼-버리는지? 첫 성경전서가 완간되자마자 요엘이 말한 꿈도 환상도 다 사라졌는지?? 


정말 궁금한 것: 종식론자들 식으로 (예: 행전과 코린토서의 영언을 서로 '다르다'는 식) 성경구절들을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면, 왜 종식론자들은 요엘 예언이 예언/환상/꿈만 말했지, (페트로가 시사한) 영언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고는 따지지 않는가? 다시 묻는데, 왜 그런 건 따지지 못하는가?? 종식론자들 식으로 따진다면, 이 경우 응당 페트로가 잘못 아니겠는가? 단지 페트로는 사도이기에 따지지 않고 봐 주는가?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것 역시 편향이 아니겠는가? 


종식론자들은 종식론의 '타당성'을 설명하느라 [영언=외국어론/지방/지상 언어] 등식 이론을 펴는데, 그렇다면 현재 그들이 영언으로 굳게 믿는 모든 외국어 곧 모든 지상언어도 현재 함께 종식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고전적 의미의 영언만 종식되고, 해석적 의미의 영언은 종식되지 않는 것인가? 종식론 자체의 모순 아닌가?


종식론자들은 기록계시가 완성되면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종식되었다고들 주장하지만, 계시가 없는 백성은 분명 방자해진다(제임즈왕역: '망한다')고 하셨는데(잠언들 29'18), 이 잠언 계시는 현대엔 적용되지 않는 '계시'인가? 현대의 백성은 계시가 없어도 성경전서만 있으면 굳건히 안 망하는가? 그래서 현대 국가들이 존속해 있는 것인가??


권능에 관한 예수님의 수많은 약속들이 있다. 예컨대, 요한복음 14-16장의 내용 가운데 주님이 거듭거듭거듭(!) 약속하신 '무엇이든지'(요복 14'13,14; 15'7,16; 16'23)는 무엇이든지(whatever)가 아니고 단지 권능/계시/은사/신유/영언 따위는 빼 놓은 무엇이든지인가?


코린토A서(고전) 12장의 은사 관련 내용은 현대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만약 적용된다면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종식론 신학의 규정에 의해서만? 또 적용되지 않는다면 아예 다 적용되지 말아야지, 왜 은사를 현대적으로 고쳐 해석하는가? (예: 지식/지혜의 말씀은 계시가 아니라 설교나 성경에서 받은 조명적 영감 등을 가리킨다는 일방적인 자해석. 개인이 받은 조명이나 감명, '영감'을 계시로 본다면, 이건 신사도들보다 더 위험하다!) 


코린토서 13장에 강조된 사랑에 관하여: 사랑이 있기에, 모든 것들이 그쳤는가(13'8~10)? '온전한 것'이 벌써 왔는가? 온전한 것이 곧 종식론자들의 말처럼 성경전서의 출현인가? 그럼 예언과 지식도 그쳐야 하지 않는가(13'8)? 왜 지식은 살짝 빼고 영언과 딴 은사만 그쳤다고 주장하는가? 왜 그들은 지식을 유달리 강조하는가? 왜 자신들의 설교를 '예언'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리고..과거 권능과 은사가 필요했다면, 현대에는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성경전서를 가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은 어제나 오늘, 언제나 그리고 처음부터 나중까지 한결 같으시다(히브리서 13'8. 참고: 히 1'11,12; 요한계시록 1'4,8,17; 2'8)고 했는데, 종식론에 따르면 오순절 불과 얼마후 모든 게 종식되어 변하고 바뀌었으니, 하나님은 한결같지 못하신 분이 아닌지? 성령님은 그렇게 자주 변질되시는 분인지?? 


맑 16:17a에 따르면, 분명히 주님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이 따른다고 하셨는데, 현대 크리스천의 표징은 그냥 달랑 성경전서뿐인지..?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지..???


예루샬렘 초대교회를 비롯한 초기 교회가 다들 권능/계시/은사/영언 등을 활용하고 즐겼는데, 그들은 교회의 표본이 아니었는지? 점점 사라지는 게 올바르고 마땅한 표본이라면, 종식론에서는 소급적 표본은 표본이 아닌지? 이 경우 연역과 귀납 논리 중 어느 쪽이 올바른 교회를 보여 주는 건지?


   예루샬렘교회 

   사마리아교회

   코르넬리우스 가정교회

   에페소교회

   기타 파울이 개척한 모든 교회들..


그 모든 교회에서 권능/계시/신유/은사/영언 등이 점점 사라져갔다는 증거는? 만약 훗날 권능/계시..등이 사라졌다면, 왜 주님은 요한계시록 앞 부분에서 분명 말세교회(!)인 7 교회에게 그런 뜻을 비치시지 않았는지? 이미 사라진 것을 끼고 있으면 안 된다는 유의 경고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끼고 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파울님은 모든 권능이 두루 나타났고 9가지 영적 은사를 고루 활용한 분인데(예컨대 모든 교우들보다 더 영언을 말함! 코린토A서 14'18), (종식론에 따르면) 그가 자신을 본 받으라고 한 말은 그런 것들은 다 빼고 나머지만 본받으라고 한 뜻이었는지?


파울은 코린토교우들이 영언/은사를 활용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사용상의 주의를 준 것인데도, 단지 영구적으로 금지하라고 한 것인지? 그렇다면 권능/계시/은사/신유/영언 등은 단지 신약이 완성되는 몇 십년만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인지?


성경전서처럼 기록계시의 완성만이 곧 완전한 것이고, 따라서 그 이후의 계시가 모두 거짓이라면, 당연히 천주교의 모든 가르침도 거짓인데, 왜 신교 일각에서는 영성 등 천주교 방식을 따르고 있는가? 


현대의 모든 권능...활용자는 다 그릇된 것인지?

모든 권능/계시/은사/신유/영언 활용자는 모두 예외 없이 단지 신사도들인지? 그렇다면 그런 활용자들은 다 싸탄의 사람들이고 다 지옥 자식들인지, 천국에는 종식론 신봉자들만 들어간다는 보장이 성경에 따로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활용자들은 다 지옥가는데도 천주교/진보계 종식론자들은 단지 종식론을 따르기에 다들 천국이 보장되는 것인지? 


일부 종식론자들의 주장처럼, 성경해석과 조명, 영감도 다 '계시'라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 아니겠는가?!(헉) 계시가 사라졌다면서 어떻게 다시 계시를 논하는가? 자체 모순이 아닌가?


개혁신학은 종식론이라는 부정적 이론으로 출발했고 지탱해 왔으나, 도대체 그들의 긍정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성경전서만인가? 신자가 성경전서 책만 갖고 있으면 자동으로 권능의 사람이 되는가? 온 천만에~!


종식론자들은 성령님의 뜻도 여쭙지 않은 채 '종식' 됐다고 선언함이 사실 일방적인 해석이고, 오히려 나중 교회에 큰 해악이었다는 '불편한 진상'이 입증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오도하고 호도한 큰 죄악은 과연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지? 단지 "몰랐다"는 무책임한 답이 용납되는 답일 수 있을지?


개혁주의 종식론자들은 주권주의와 신본주의를 강조하는데, 단지 성경전서가 있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권능/계시/은사/신유/영언 등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지극히 인위적, 인본주의적인 주장은 아닌가? 성경전서만 갖고 이 험악한 세상을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인지? 왜 구약인들은 구약전서가 있었는데도 메시아의 권능이 필요했던 것인가?


초자연적인 것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초자연적인 구원과 거듭남이 있을 수 있는지? 결국 내가 거듭난 것도 권능..계시보다 더 가치가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성령님은 성경의 저자이시기도 한데, 그분의 모든 나타남이 불과 1세기 안팎으로 '반짝' 나타났다가 그렇게 거의 금방 종식될 정도로 눈이 짧으신 분인지? 하나님이 근시안적인지?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먼뎃사람들"은 실상 딱 성경전서가 나타나기까지의 사람들인지? 그럼 후대의 나머지 신자들은 뭔지? 


개혁주의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미주 한인교계의 대표적인 사례: 개혁신학교 J 교장의 영언 사건)이 지난 1980년대에 영언을 하고 한인교회들이 많이 성장했는데, 그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의 장난에 불과했는지? 또 필자가 아는 많은 한국 목회자들도 한때 영언을 시작했고 지금껏 하는 사람도 많고 긍정하는데 그들이 모두 마귀의 사람들인지? (성령과 마귀의 중간 지대는 없음!) 필자의 가족도 전원 영언을 하며, 필자의 부모도 영언을 하시다 세상을 뜨셨는데, 모두 악령들에게 홀려서 그런 것인가? 본 진리와사랑(티엘티) 블로그의 수많은 독자들 특히 간증을 올린 애독자들이 다 영언을 하는데 그들이 악령이 들린 것인지?



종식론에 따르면 종식론자들만 순수한 성령의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인지? 종식론자들 가운데도 카톨맄,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 극진보/극보수주의자나 관상 영성가 등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그들 가운데는 수많은 잘못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뭔지? 단지 종식론자들이기에 건전한 것인지?


파울님은 코린토B서 1'20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이 얼마이든지 크리스토님 안에서는 '예'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라고 했는데, 왜 종식론자들은 영언의 약속이 포함된 마르코스복음서(맑) 16'17,18을 비롯한 하나님의 약속들에는 왜 "예/아멘!"을 하지 않고 '아니오/노멘!'을 연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있는가??? 왜 그들이 강조하는 Gloria Deo를 이 방면에선 실천하지 않는가? 



종식론자들은 위 질문에 대하여 답변해 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