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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막 7:24-30/마 15:21-28] 굴욕에 굴하지 않는 믿음!




굴욕에 굴하지 않는 믿음!

-쉬로푀니케 여인에게서 배우는 것



묵상바탕본문: 마르코스(마가)복음서 7'24~30

참고본문: 마태복음서 15'21~28 



우리가 마르코스(마가)복음서 7'24-30에 나타난 쉬로푀니케(Syro-Phoenicean 한글성경:  수로보니게 ) 여인에게서 배우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자신의 귀한 어린 딸에게 더러운 악령이 들려 안타까워하며 고통을 겪어온 이 어머니는 튀로(Tyre, 히브리어: 쪼르, 한글성경: '두로')에 사는 이방 여성이었습니다. 튀로는 이스라엘 북서쪽 지중해 해변의, 고대로부터 레바논의 '백향목'(cedar, 삼나무)과 무역으로 유명한 도시국가로, 시돈과도 나란히 이웃하고 있어 '튀로와 시돈'으로 한데 묶어 자주 불렸습니다. 주님께서 튀로로 가셨다가 시돈을 거쳐 오신 과정도 그래서입니다(31절, 마태 15'21). 


고대의 다뷔드(다윗) 왕대에는, 이 쪼르(튀로의 히브리어)의 왕인 히람(=후람)과 다뷔드가 서로 '절친'으로서 훗날 슐로모(솔로몬) 때까지 두 나라가 상호 교역을 하며 친근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참고: 본 블로그의 '메시아계보대장정' 시리즈23  http://scissurl.com/2/nni ). 튀로는 예수님 당대 오래 전부터 푀니케(또는 페니키아 한글성경: 베니게) 지방이면서 옛 아람인 쉬리아(수리아/시리아)에 속해 있어 "쉬로푀니케"로 불리곤 했습니다. 예컨대 행전 21'2,3을 보면, 이들 지방이 지중해에 면한 항구들로 서로 인접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이 예수님이 튀로 지방에 가셨을 때, 이 여인을 만나시게 된 경위입니다. 우리 주님의 명성은 유다 뿐 아니라 인접한 이방 땅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여기 튀로에서도 한 집에 들어가셔서 아무도 몰래 조용히 계시려 했으나 이내 소문이 자자히 나 버렸습니다. 권능이 넘치신 주님이시건만, 때때로 이것은 그분으로서도 어찌 해 보려야 해 보실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이 여성도 평소 간절히 열망해온 주님이 오셨단 소문을 듣고 혹여 놓칠세라 부랴부랴 뛰쳐나와 주님을 찾아 뵌 것입니다. 



이 여성과 주님의 만남은 여러가지로 깊은 충격과 큰 의미성을 던져줍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악령 들린 딸을 구출해 달라는 이 가여운 여인에게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어찌 보면 가혹할 정도로. 


   "자녀들부터 먼저 배불리 먹게 해야 하오. 자녀들의 떡을 갖다가 개들에게 던져 줌이 마땅치가 않소."


헉! 우리 주님 맞습니까? 어떻게 사랑의 주님이 이런 말씀을..?? 이건 차별도 엄청난 차별이고, 모독도 이만저만 모독이 아니지요. 아무리 이방 여인이라지만 오직 악령 들린 딸을 위한 모정으로 달려와 고쳐 달라고 하소연하는 불쌍한 그 모녀 가족을 어떻게 주님이 '개..'라고 하실 수 있는지요? 더구나 이방 땅에 오셔서까지 감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주님, 왜 이러시죠..예?



그런데, 우선 우리가 알 것은 주님이 땅에 계시던 그 무렵은 아직 구약시대였다는 현실입니다. 복음서에 기재된 내용이라고 해서 신약 시대가 아직은 아닙니다. 참된 신약시대는 성령님이 인류에게 내려오신 오순절을 기점으로 삼지요. 물론 주님은 이방 땅에도 빛을 비추시고 이방인들도 돌보시려고 오셨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진 않고, 아주 특별한 경우 사마리아 등 일부 인접지역만 이따금 찾으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은 현실적으로 맞습니다. 아직은 신유 등의 혜택이 주로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유대인들이 아직은 이 양식을 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당대에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했던 것도 맞습니다. 유대인들로서는 거의 합법적인 언사였던 거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심지어 동족의 피가 섞인 고대 이스라엘 북 왕국 수도의 혼혈족인 쇼므론(사마리아) 사람들조차 개돼지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과연 여느 유대인들과 다름없이 내심으로도 이 여인을 포함한 이방인들을 '개'로 취급하셨을까요? 정말 그랬다면, 여인을 끝내 고쳐주시지 않았을 터입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구태여 쇼므론의 쉬카르(수가) 마을에 들어가 남정네가 다섯이나 되던 여인도 만나시지 않았을 뿐더러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며, 열 나환자들 중 사마리아인의 감사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튀로까지 오셔서 이 여인에게만 노골적으로 그런 구약적/유대적 이방인관을 처음부터 표출하시면서, 여인의 불쾌감을 자아내려고 하셨냐는 의문이 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진심이라기엔, 뭔가 의도적이지 않습니까?


마태복음서는 이 사건에 관하여 좀 더 면밀하게 당시 상황을 그려보여 줍니다. 게네사렡(갈릴리 북서쪽)에서 사역하시던 주님이 이곳 튀로-시돈 땅으로 향발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과 함께 튀로 인근의 한 유대인 집에 머무셨을 법 합니다. 그런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일단 바깥 길에 나서셨던 모양입니다. 때마침 주님을 찾는 데 성공한 이 여인이 목청 높여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다뷔드 자손이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딸에게 지독한 악령이 들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이방인이나마 이 여인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오랜 예언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바로 그 분-다뷔드 왕손이신 메시아-이심을 어렴풋이나마 믿고 있었음을 느낍니다. 정통 이스라엘 후손들의 세계에 근접하기는 어려웠어도, 나름의 신앙을 지켜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그 분이 내 딸을 꼭 고쳐 주실 거야!"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튀로 출현 뉴스를 듣자, "뭐야? 그분이 오셨다구?! 그럼 지금 당장 만나뵈어야 해!"하고 옷을 대강 차려 입고 허둥지둥 달려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가십니다. 시쳇말로 태도가 "썰렁"하십니다. 문맥으로 보아, 아마도 여인은 주님이 잠자코 계시니까 답답해져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은 듯 합니다. 


   "다뷔드 자손이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딸에게 지독한 악령이 들렸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조바심과 안달이 났습니다. 안 그래도 남 몰래 조용히 지내려고 하신 주님인데, 여인이 마구 소리지르며 '정보 노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제자들이 딱한 처지의 그 여인을 함부로 막아서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요. 그래서 자연히 주님의 기색을 살피게 됩니다. 


   "라삐(선생)님, 저 여인이 계속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돌려 보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주님이 이번에는 제자들의 말엔 대꾸를 않으신 채, 여인에게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 밖에 딴 곳으로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소."

 

여전히 냉랭한 무드의 말씀이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옳습니다. 주님이 일하실 영역은 주로 거기까지였고, 훗날의 나머지는 성령님을 통한 제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근엄한 주님 말씀은 아랑곳 없이 바로 이 때다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며 호소합니다. 딸을 기어코 고침 받아야겠다는 그녀의 열망이 조금도 요동치 않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셔요!"


이에 주님은 여인을 개 차원으로 비하하는 아까 그 말씀을 하시며 짐짓 물리치려 하십니다. 

그러나 여인은 재빨리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헐~, 이 얼마나 멋있는 대답입니까! 극한상황에 처한 믿음은 이처럼 재기 넘친 답변도 하게 만드나 봅니다. 

여인의 이 놀랍고도 슬기로운 답변은 우리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오, 여인, 그대의 믿음이 크오! 그대가 이 말을 했으니, 그대 소원대로 될 것이오."


이처럼 믿음의 말은 중요합니다. 이방인이지만 '부스러기'만큼은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 부스러기를 먹은 이방인들이 심심찮게 있어 왔지 않습니까? 로마군 백부장도 그랬고, 고대의 나아만 장군도 그랬습니다. 


아무튼 여인이 '부스러기' 고백을 하고 난 순간, 집에 남아 있던 어린 딸에게서 더러운 잡령들이 떠나 물러가고 소녀는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기어코 소원을 이룬 어머니가 기쁘고도 바쁜 맘으로 헐레벌떡 집에 달려와 보니, 지난 세월 그렇게도 비참한 어둠의 노예로 지내던 딸이 정신이 말짱하게 되돌아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인은 순간 사랑스런 딸을 와락 껴안으며 눈물이 복받쳐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다시 한 번 소문에 듣던 대로 예수님 그 분이 오래 예언돼 온 다뷔드의 후손이신 대언자/메시아임을 확신하며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에도 이 쉬로푀니케 모녀는 계속 신앙인으로 살아갔음이 거의 틀림 없을 터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주님은 이왕 이 여인을 위해 이방 땅을 찾으실 바에야, 왜 처음부터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지 않고 처음엔 엄준하고 냉랭하게 대하시다가, 나중에서야 뒤늦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시고 칭찬까지 하셨냐는 물음이 뜰 수 있죠.


몇 가지로 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과연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유다를 위하여 오셨고, 이후 유다를 찾은 해외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의 모든 이방인들은 이후 사도들과 성도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소원을 갖고 이제나저제나 학수고대하던 이 특별한 이방 여인의 믿음과 기도에 응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신앙의 이방 사람들은 당대에 흔하지 않았습니다. 한 로마군 백부장도 그런 드문 사람의 하나였습니다만. 

여기서 또 우리가 느끼는 것은 주님은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주변 이방인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이방 땅에도 빛을 비추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의 최선을 이끌어 내시려고 몇 단계 '신앙 테스트'를 통하여 도전을 주십니다. 과연 이 여인은 주님의 기대대로 뛰어난 신앙을 입증했습니다.  


   우선,  주님은 여인이 부르짖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이 두 번째 부르짖고, 제자들이 그녀를 되돌려보내자고 했을 때, 주로 이스라엘 사람만 신유의 대상에 해당된다는 엄연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급기야 주님은 여인을 '개' 차원으로 밑바닥까지 낮추시며 짐짓 굴욕감을 주셨습니다. 상대방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죠. 마치 한층 더 바짝 달군 풀무 불로 금을 제련하듯 그녀의 신앙을 최대한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웬만한 사람 같으면 자존심 때문에 그냥 떠나 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 몇 단계의 시련을 거쳐가며 굴욕감과 자존심도 모두 내던져버리고 믿음의 테스트에 거뜬히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 쉬로푀니케 여성의 이름은 우리가 몰라도 그녀의 믿음은 성경을 통해 대대로 기념되고,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본받을 신앙의 모범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간구하러 믿음으로 나아올 때, 이 여인처럼 자존심 따위는 뒤에 내던지고 봐야 합니다! 그런 자존심은 이럴 때 우리의 믿음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때로 세상 앞에서 거룩한 자존감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여인은 개 취급 당하면서도 오직 믿음의 소원 하나를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바닥까지 완전히 낮아졌습니다. 거의 '개'가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순간 주님은 탄복하시며 "여인, 그대의 믿음이 크오!"라고 칭찬까지 해 주십니다. 평소 모든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 당해온 이방의 한 여성이 주님의 놀라운 칭찬을 듣는 순간입니다. 

이 얼마나 "삽상한 전환"인지요! 소녀 속에 있던 온갖 잡령들까지 일시에 굴복시킨 믿음이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어둡던 이방 땅 튀로, 쉬로푀니케에도 이런 빛난 믿음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래야 합니다. 이 이방여인처럼 부끄러움도 모욕감도 누르고 담대히 나서서, 어떤 굴욕감도 자존심도 두려움도 극복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버틸 수 있는 믿음이어야 좋습니다! 

물론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이건 '헝그리 정신' 정도가 아니라 '불독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주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 믿음을 보유할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신 뒤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셨다고 기술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 한 가지가, 주님이 튀로에 가셨던 것은 오직 이 믿음의 여인 한 사람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밖에 특별히 다른 사람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튀로-시돈에  스스로 찾아가신 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함이 아직 아니라, 그 가운데서 단 한 명의 특별한 신앙인을 만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오래 기다리며 하나님께 안타깝게 기도해온 이 여인의 애타는 소원을 들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어찌 보면, 주님은 이 한 여인의 기도에 응해 주려고 튀로까지 가셨던 셈인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그러나 이 여인이 호락호락 곱게 쉽게 소원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믿음의 험한 도전을 톡톡히 치르고서야 비로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도전을 이길 길은 믿음!-오직 믿음 뿐이었죠. 그만큼 성도의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힘은 그만큼 큽니다! 아울러 주님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의 믿음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 역시 중요합니다. 


흔히 많은 교인/신자들은 단순히 희망이나 소원을 믿음과 혼동하곤 합니다. 그러나 소원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믿음은 아니죠. 믿음은 말씀에 기초하여 따르는 입술의 고백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이 쉬로푀니케 여인의 경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부스러기'를 붙잡은 고백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추가하여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신유를 비롯한 이런 은총과 복이 자녀들의 양식이라는 진리입니다(맑 7'27, 마 15'26). 자녀들의 빵/떡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지만, 이제 예수 크리스토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됐습니다(갈라티아서 3'7~9,14). 그렇다면 신유와 기타 은총과 복도 자녀의 신분과 함께 합법적으로 우리들의 빵/떡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멀리서 바라만 볼 게 아니라 함께 먹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음입니다. 남들만 누리고 나는 누리지 못한다면, 복음의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의 빵과 만나입니다(요한복음서 6'35,48, 51). 그래서 그분의 모든 좋은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분을 "먹"기만 하면, 복음으로 약속된 그분의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들이 그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요복 10'10b). 우리가 구원을 받아놓고 더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불행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것인 은총을 모조리 받아 챙겨야 옳습니다. "나야 뭘..", "내가 뭐라고..", "구원만 받아도, 천국만 갈 수 있어도 감지덕지지" 라며 점잔을 떨며 이리저리 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손님의 태도일망정 자녀의 태도가 아니죠. 자존심을 다 내팽개치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목표했던 것을 기어코 얻고야 만 이 쉬로푀니케 여인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참 믿음엔 양보라는 게 없습니다. 포기를 모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는 그 분이 살아계심을 믿고, 아울러 그분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대가를 주시는 보상자(미스타포도테스)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쉬로푀니케 여인 같은 '불독 믿음'-기르고 간직합시다!



두 복음서의 모순? 

'카나안 여인' vs '헬라 쉬로푀니케 여인'


마태복음서 15'21~28 기록은 마르코스(마가)복음 7'24~30 기록과 대동소이한데도 약간의 차이가 있어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그중 한 가지는 동일인으로 보이는 이 여인을 전자는 '카나안 여인'으로, 후자는 헬라인인 쉬로푀니케 족 여인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바르고 맞고 한 쪽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 마태와 마르코스는 서로 모순되게 기록한 것일까요? 그래서 성경의 '허점'을 드러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나안 여인과 헬라 쉬로푀니케 여인-둘 다 맞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서를 우리가 곰곰이 들여다 보노라면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이 마태는 주로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겨냥하여 이 복음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카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주신 이래로 이 땅에서 밀려나간 모든 사람들은 카나안 사람들인데 북쪽의 인접한 땅인 레바논 부근 튀로 쪽으로 밀려나갔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카나안 족을 모두 멸하라고 했으나 이스라엘은 일부를 남겨두었습니다. 


[ 카나안은 고대에 노아의 아들 함의 후예였습니다. 그는 노아에게 복보다는 저주를 받은 인물입니다(창세기 9'25,26). 카나안 족은 이름 그대로 카나안의 후예들입니다. ]


그런가 하면, 마르코스는 (루카복음서처럼) 주로 이방인들을 위해 그의 복음서를 썼습니다. 이 복음서가 예수님의 행적 중심으로 간추려진 이유가 그것이죠. 그래서 당연히 이 여인은 쉬로푀니케 사람으로 당시 광역적인 헬라-로마 문명권 아래 이방에 속해 살면서 헬라어(그리스어)를 썼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쉬로푀니케라는 명칭 자체가 그레코-로만처럼 헬라-로마식 명칭입니다. 

따라서 마르코스가 이 여인을 '헬라인'이라고 한 것은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참고로, 푀니케(페니키아)는 튀로/시돈/뷔블로스 등 주요 도시국가를 발판으로 삼아 당대에 지중해 연안을 두루 다니며 무역업을 하던 족속으로, 크레테(그레데)/퀴프리스(구브로)/퀴레네(구레네)/렢키스/시칠리/카르타고/사르디니아/이베리아 반도까지 광대한 지역을 모두 그들의 무역대상지였습니다. 

푀니케 사람들은 바다달팽이 '뮈렉스'에서 나온 염료로 물들인 자색 옷(참고: 행전 16'14)과 그리스어 문자 자음의 기초가 된 초기 알파벹으로 유명했습니다(모음은 없었음). 

그들의 종교는 주로 카나안 토속종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