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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


기름부음의 정확한 뜻이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구약시대의 선지자가 왕으로 세울 자에게 행하는 의식 행위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목사는 이를테면 신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세분화된 직책 중에 하나가 아닌가요? 목사 안수= 기름부음...헷갈립니다.




답:


기름부음은 성경에 나타난 고대의 '기름 붓기/바르기'(塗油, anointing, unction)를 가리키며, 단순히 물리적이거나 더 깊은 차원의 매우 복합적인, 실제적/상징적 의미를 겸한 개념입니다. 더 나아가 가장 깊은 의미, 곧 영적 의미가 곁들여지기도 합니다. 


부어 바르는 기름의 종류엔 주로 올리브 유와 향유가 있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난 유대인의 상처에다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주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상처를 달래는 치유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루카복음서=눅 10'33,34). 물론 이런 효과는 길레아드의 유명한 유향 연고에도 있었습니다만(참고: 창세기 37'25, 예레미야서 8'22; 46'11).


그러나 환자에게 치유 안수를 할 때 예수 이름으로 부어 바르는 기름은 물리화학적 치유 효과보다는 하나님의 권능을 통한 치유를 상징하는 기름 부음입니다(마르코스복음서=맑 6'13, 야코보서 5'14). 


그런가 하면, 부활한 나자로의 누이 마리아, 베타니의 여인 등 3명의 여성이 각각 예수님의 머리와 발등에 부어 바친 순수한 고가의 나드 향유는 주님의 대속적 죽음을 기리고 기념한 드높은 차원의 기름부음이었지요(마태복음 26:7, 루카 7:38, 요한복음 11:2). 훗날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 후 그 시신을 위해 향품과 향유를 마련했다가 주님이 앞서 미리 부활하신 통에 직접 사용하지는 못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눅 23:55-56).

 

이 기름부음은 동시에 집에 초대되어 온 귀한 손님들에게 향기름을 부어 바르던 오랜 히브리 전통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참고: 루카 7'46, 시 141'5). 물론 이처럼 머리에 바르는 기름/향기름은 보통 사람들이든 여유 있는 귀인들이든 평소 목욕 후에 스스로 하던 것이기도 했지요(뤁서=룻 3'3, 슈무엘A서=삼하 12'20). 심지어 주님은 금식 때도 세수를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를 것을 교훈하셨습니다(마태 6'17 참고: 다니엘서 10'3).

     

우리는 저 유명한 다뷔드의 시, 시편 23편에서도 그런 시사를 봅니다. "주님은 내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 바르십니다."(6절)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상 차리기, (포도주) 잔 채우기와 겸했기에 주님이 이 기자를 존귀한 초청객으로 대우했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다뷔드를 왕으로 기름부으심과 아울러 성령의 기름부음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그밖에도 즐거움, 형제 우애와 단합 등이 기름부음으로 비유되기도 했습니다(시편 45'7; 133'2). 


고대에 모쉐가 아론의 사제(제사장) 임명식을 거행하면서 아론과 아들들의 머리에 관유를 부은 것이나(미쯔라임출국기=출 28'41; 29'1,6~9,21,29; 30'25,30; 40'13,15, 레빝서=레 8'12), 판관(사사) 겸 대언자 슈무엘이 샤울/다뷔드에게 기름을 부은 것 등은 하나님이 사역을 감당할 직분자들을 골라 뽑으시고 임명하셨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슈무엘A서=삼상 9'16; 10'1; 16'1).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성령 안에서 기름을 붓고 영적으로도 성령께서 그들에게 기름 부으셨다는 이중적 의미를 포함합니다(참고: 슘A 16'12,13). 


그렇게 기름부어진 사람들은 모쉬앟/마쉬앟로 불렸습니다. 메시아(그리스어 크리스토스)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구약의 기름붓기는 모든 예언을 성취하신, 왕/대언자/대사제를 겸한 참 메시아님이신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지요. 즉 메시아 예수님은 이 모든 사역을 총괄하여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사건은 바로 요르단(요단) 강변에서 침례(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후 이루어졌습니다(마태 4'16,17). 성령께서 갈라진 하늘 틈으로 비둘기 모습으로 내려와 주님 위에 임하셨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널 기뻐한다"라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기름부음은 바로 주님의 모든 공적인 권능/대속 사역의 바탕이었습니다. 즉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시험을 이기고 돌아오신 얼마 후 나자렡 회당에서 예샤야후(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읽으신 후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루카 4'16~21). 

이 예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주(예호봐=여호와)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 부으시되,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이들에게 자유를, 

   눈 먼 이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짓눌린 이들에게 놓여남을,

   주님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시려 함.


이것이 메시아 사역의 예언 내용이었고, 이 예언을 모두 성취하신 그런 메시아/크리스토님은 역사상 오로지 예수님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바로 이 메시아가 '기름부어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은 더 광역적으로 성도 전반에 걸쳐 적용됩니다. 


우리는 구약적 의미의 기름부음은 주님의 메시아 되심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더불어 끝났음을 보게 됩니다. 즉 주님은 12 사도들을 비롯한 제자들을 직접 기름 붓지 않으셨고 유다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오순절 당일 성령께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직접 기름 부으셨습니다(행전 2'3,4). 그후 사도들은 교회 일꾼들을 기도로써 안수하곤 했지요(행전 6'3~6). 즉 초기교회의 안수는 사역적 기름 부음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역적 기름부음으로서의 안수는 남용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성령께서 택하시지도 않았고 거듭나지도 않고 권능도 부여받지 않은 사람들이 단지 어떤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제도에 의하여 '안수'를 받는 폐단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서품'이라고 하여 사제들을 안수하기 시작합니다. 

신교의 목사제도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제도에 의했다고 안수가 다 헛되고 기름부음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말 거듭났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거듭난) 성도를 기름부으신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이렇게 밝히 말합니다. 


   "(교우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압니다...여러분은 주님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여러분 속에 머물고 있으니 아무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분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여러분을 가르쳐 주신 그대로 주님 안에 머무시오." (요한서신A=요일 2'20,27).  


이 말은 그렇다고 결코 성경 말씀이나 교회의 교사 직분, 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상 지금 요한은 적 크리스토, 미혹자들, 거짓 대언자들을 경계하라는 교훈으로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요A서 2'18~29 참조).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에게 기름 붓고 봉인하셨기에 우리는 말씀을 풀어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기름부음을 받아 진리의 말씀을 바로 풀어 바로 가르치는 올바른 사역자들입니다. 


사역자들은 여느 성도와 마찬가지로 먼저 거듭나야 하며, 행전 2장 이후에 나타난 성령님의 사역 패턴 그대로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 채우심('성령충만')을 받고, 은사를 받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신학적인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초기 교인들처럼 영언(방언)을 하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성령님의 패턴에 따르지 않고선 사역에 필요한 참된 권능을 받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학에 능해도 그렇습니다. 


신학과정을 거치고 안수나 '서품'을 받았다고 해서 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사역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학 과정을 거쳤더라도 별의별 엉터리 사역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성경을 벗어난 발언을 남발하는 진보주의 신학자들, 성경보다 교황 말을 더 중시하여 마리아 우상숭배를 하는 소위 '사목자'들, 더구나 동성애 주교 따위가 참 사역자이겠습니까? 


그러나 거듭난 성도에게는 사도 요한의 말처럼 기름부음이 내주하고 있습니다. 


성도 개인에 따라 기름부음으로써의 결과인 성령님의 영적/사역적 은사가 주어집니다만(코린토A서=고전 12'4~10; 28~31), 이 역시 믿음으로 받습니다. 


사실 성도 누구나 (은사)영언을 비롯한 이 은사들을 활용하도록 되어 있고, 목(회)자나 교사 등이 이 은사로서 가려지고 분별되고 뽑혀야 하는데, 현실은 거의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온유하신 성령님은 그 분을 (말씀에 따라 올바로) 믿음으로 열망하고 환영하는 곳에만 기꺼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지상 사역 때 사람들이 그분을 믿음으로 반겨 드린 곳과 대상에게 활동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반기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는데, 강제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은 샤울(사울>파울) 같은 일부 극소수 케이스, 아니면 환상에 불과합니다. 누구에게나 똑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진 않습니다. 


기름부음의 개념은 근래 신사도개혁운동(NAR)에 의하여 특히 남발/남용되어 왔습니다. 임파테이션이란 용어도 그들의 자칭 '기름부음' 개념의 일부이죠. 그들은 이상한 이적/신비 현상들을 갖고 자기네가 온갖 기름부음을 독차지한 양 주장해 왔죠.

그러나 ('늦은비운동'에 이어) 신사도운동권에서 발생하는 집단쓰러짐, 짐승 울음, 발작적 경련/진동, 금니/금가루 등 온갖 괴이한 현상들은 그들의 기름부음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증하고 있습니다. 

신사도들이 강조하는 소위 '기름부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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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엘티 2013/02/18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름부음에 관한 새 글입니다.

    • 참자유 2013/02/18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름부음에 대해 그 동안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부분이 없지 않았었는데,, 구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오직예수^^ 2013/02/19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름부음의 광의의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일단, '목사 안수= 기름부음 이라는 공식은 성립하는데, 기름부음 받을 사람의 자격조건이 형성되어 있느냐, 아니냐 의 문제가 있다' 라는 설명으로 이해하면 되는건지요?

    제가 언젠가 이곳 TLT에서 쿤달리니 현상에 관한 글을 읽었을때, 그들도 안수를 통해 쿤달리니 현상을 전이한다는 사실을 알았읍니다. 그렇다면 안수를 통해 어떠한 영의 전이현상이 이루어 진다고 볼수 있겠는데요, '기름부음=목사 안수=불특정 다수의 영(악령 포함)의 전이현상' 이라는 공식도 성립될 듯 하네요.
    저는 기름부음이라는 단어의 쓰임을 확대하기 보다는 성경에서 쓰인대로만 이해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개진해 봅니다...^^;;

    • 티엘티 2013/02/19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직예수^^님^^. 숨을 좀 돌린 다음 체인 질문을 받겠습니다. ㅎㅎ

    • 온유한 2013/02/23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은혜의 지금시대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다 기름부음받은
      자들이죠. 그래서 우리를 왕가의 제사장이라고 하지않나요.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제사장이 아니요. 없다고 소위 평(?)신도도 아니죠. 우리는 모두 성도이며 제사장입니다.
      특별히 기름부음을 따로 받을 자가 있는것이 아니고 우리는 모두 직분과 사명을 받은 기름부음받은 성도들입니다.

  3. faith 2013/02/20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저도 기름부음이라는 단어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갑니다.

  4. 감사 2013/02/20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본문 내용 '기름부음'과 관계없지만
    열왕기상 3장 4절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천일동안 소를 제물로 드린 것이 아닌 일천마리 소를 태워서 하나님께 드린걸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들이 일천일동안 하나님께
    제물드림으로 말씀하고 있어서 정말 그러한지 NIv 성경을 찾아보니
    ~thousand burnt~ 태우다로 나옵니다.
    제가 알고 있는것이 틀린것인지 궁금해서 여쭙니다.
    하나님이 일천번제를 드림으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심이 아니라
    솔로몬이 하나님앞에 자신을 출입할 줄 모르는 작은 아이존재로 표현하면서 자신에게 "듣는 마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자세땜에 하나님이 그 고백이 너무 이뻐서 지혜를 주신것이라 생각되는데 목사님들은 일천번제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마음이 영~ 거시기 합니다.

    • faith 2013/02/2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티엘티 어딘가 댓글에 달려있습니다.아니면 메시아 계보 대장정 시리즈에 올라와 있을지도... 제 기억으로도 일천일동안 드리는 번제가 아니라 일천마리를 한꺼번에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티엘티 2013/02/20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고하시길..
      http://truthnlove.tistory.com/727#comment2481145

      다음 원글 내용의 일부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보혈을-지나-토론-후기

      가장 중요한 것은 일천 번제(燔祭)이지 '일천번(番) 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약적이고도 (성경 기술과는 사뭇 다르다는 의미에서) 비구약적인 헌금(?)을 굳이 제대로(?) 하려면, 1,000통의 봉투에 든 현금 예물을 교회당 강단 앞에서 한꺼번에 불살라야 한다는..헐~!

      이 헌금의 신약적인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서는 자행되고 있죠. 누가 시작했는지 참 머리는 비상(??)합니다. 이 '일천번제'를 하다보면 자연히 십일조 의욕도 약화(?)될듯.

  5. 온유한 2013/02/23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름의 성질. 막을 형성한다는 것이죠.
    프라이팬에 계란 후라이를 할때도 팬과 계란이 붙지않도록
    기름을 칠합니다.
    기름은 물과 대별되는데 물과 잘 섞이지않죠.
    물은 세상을 나타내는데 그 물에서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나오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불을 잘 타게하는데는 또 기름만한게 없습니다.
    기름부었다는 표현은 그래서 참 적절하다고 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지는, 성도를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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