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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죄 써서 불태우기, 옳은가요?(물음과 답)




죄 써서 불태우기, 옳은가요? 




물음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전 모두 모여 

지난 해 지은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종이에 적어 태우는 것은 옳은 것인가요?





'새해 이브'나 특별한 때에 종이에 자기 죄를 쓴 '죄 목록'을 만들어 불태우는 관행은 천주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재의 수요일'과 마찬가지로) 퍽 미신적입니다.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이런 행습(行習)이 교계에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퍽 오래 전부터 국내외 청소년들의 캠프퐈이어(campfire) 집회 같은 데서 마지막 날 모닥불에 둘러앉아 강사의 지시에 따라 죄의 목록을 만들고 모닥불에 던져 태우는 일종의 레절루션(resolution=결의/결단/다짐/해소/해결) '세레머니'가 있어왔지요. 


지난 2006년 미국 언론 월스츠맅저널(WSJ)은 교계에 늘고 있는 이 관행을 뉴스거리 삼아 기사화한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연소성이 강한 재질의 종이를 개발하여 '죄 목록'이 되도록 빨리 불타게 한다네요.


천주교에는 사순절이라는 절기가 있고, 이 절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직전에도 회개/참회와 연계된 사흘간의 참회일이 있는데, 이를 일부 영어권에서 'Shrovetide(슈로브타이드)'라고 하죠. Shrove Sunday(참회주일), Shrove Monday(참회월요일), Shrove Tuesday(참회화요일)라는 사흘간입니다. 


동사 '고백성사를 하다'라는 뜻인 이 동사는[각주:1] 고대에 '쓰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scribere'(스크리베레)에서 유래됐습니다. 어원이 같은 영어 낱말 'scribe'(스크라이브)는 동사: "쓰다, 필기자로 일하다" 명사: 서기(관)/율법학자/필경사/대서인/문인/기자..등으로 쓰입니다. 또 목공들이 목재에다 먹통으로 선을 긋는다는 뜻으로도 쓰이죠. (소위 '도시은어'로는 shrive가 "(비밀집단 따위에) 가입하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카톨맄 사제가 '평신도'의 고백을 듣고 그 죄가 "사해졌다"고 선언해 주는 것을 소위 '사죄선언'(absolution)이라고 하는데, 철저히 비성경적인 의식입니다. 사죄는 오직, 몸소 죄인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현재 하늘 대사제(대제사장)로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카톨맄교가 일방적으로 만든 제도인 사제제는 구약종교나 이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이 저지르고 있는 '고백성사'는 크리스토님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스스로 가로채어 행하고 있는 셈이지요. 



아무튼 참회할 죄를 종이에 끄적인다는 것은 바로 이 낱말-shrive의 고대 어원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보입니다.  

천주교 안에서조차도 사제에게 죄를 참회하는 소위 고백(shrive)성사는 행해도, 죄를 써서(shrive/scribe) 불태우기식의 성사는 그다지 공식 관행이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천주교 일각의 관행이 신교에도 침투해 있는 것은 유감된 일입니다. 



죄를 종이에 써서 불태운다는 개념은 몇 가지를 시사(상징/암시)하는데.. 


첫째로 불을 써서 짐승 등의 제물을 태운 구약제사인 번제(燔祭)/화제(火祭)와 향제(香祭) 등을 연상시킵니다. 이 모두가 구약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약성도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이방신들에게 번제나 화제 심지어 자녀를 불에 태워 죽이는 인신화제를 바치는 것을 혐오하셨습니다. 


둘째로는, 중세 천주교 이후 지속돼온 소위 면죄부(免罪符)를 연상시킵니다. 죄를 써서 불태우면 그 죄가 사해지는 듯한 일종의 착각개념과, 땅에서 고인의 가족/친척 등이 돈을 풀어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고인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개념과 은연히 상통하는 바 있습니다. 


셋째로는, 중세 천주교에 흔했던 죄수의 화형을 연상시킵니다. 죄인들을 불태움으로써 저주 받을 죄를 다스린다는 개념입니다. 


넷째로는, 이것은 본래 북구나 아시아 등지 이교도들의 전통 장례였던 화장(火葬)과 무근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교도들의 화장은 죄의 결말인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막연한 신적 존재 앞에서 고인의 죄를 사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죽음과 죄가 서로 연계된 다른 사례로, 고대 켈팈들의 '죄 먹기'(sin-eater)가 있습니다. 예컨대 한 개인이 고인의 가슴에 놓인 빵과 맥주를 먹고 마신 뒤 한동안 고립되어 있는 일종의 죄풀이/살풀이 의식입니다. 고립됐다는 행습은 광야에서 고립된 채 죽어간 성경의 아사셀 양/염소를 연상시킵니다. 이교적 관행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고대 제사의 왜곡된 모방처럼 느껴집니다.]


성경엔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예가 없지요. 그러나 성도의 시신을 화장한다고 해서 그가 말일에 휴거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사실이라면, 화형된 순교자들도 해당할 터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전통적 또는 토속적 관행들이 설령 죄를 뉘우치는 진실한 감정에 근거했더라도 상징과 그림자 또는 심리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원한 지옥불 속에 고통 당할 비신도/죄인들의 운명을 연상시킵니다. 물론 믿기 전 비신자였던 우리들은 죄 탓에 죽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들이었지만, 이젠 더 이런 연상은 신자에겐 걸맞지 않습니다. 

설령 죄 목록 불태우기가 마땅히 죄인이 들어갈 지옥불을 상징한다 해도, 그것으로 무엇이 해소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 모든 죄의 대가는 이미 우리 주님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음으로써 모두 치르셨고, 영원히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우리는, 죄에 관해서는 날마다 우리의 하늘 대사제(대제사장)이신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고 성결을 유지하면서 최종적 구원을 완성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우리 죄를 불태우거나 화제를 드리는 일 따위는 구약 때와 같이 실제의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현대의 크리스천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그 불이 전혀 죄를 태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 목록 불태우기는 전혀 무의미한 헛 상징에 불과합니다. 


따지고 보면 죄인들의 심리적 만족 효과를 노린 일종의 해소책이며, 천주교에는 소위 '관상기도', 마리아 등 성인들에게 '대신기도'를 구하는 중재요청, '묵주기도', '면죄부' 등 심리적 효과를 노린 관행들이 많지요.  


죄의 목록을 써서 불태운 뒤의 재는 재의 수요일과도 약간 연관이 있습니다. 지난 해의 종려주일에 쓰였던 종려가지를 불태운 재를 이마에 발라주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돌아가리라)"는 전형적인 중세 천주교 관행이죠. 이 역시 전혀 성경적인 근거나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적인 올바른 죄의 고백/회개는 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 분의 보혈과 하늘 대사제이신 그 분의 중보를 힘입고 하나님께 조용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개인이 자기 죄를 하나님께 직접 뉘우친다는 점에서 개인 차원입니다. 성경을 보면 집단차원의 회개는 주로 구약시대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신약교회가 집단적인 회개를 한 사례가 성경엔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 현대 교회가 예배 때 의식적/의례적으로 참회기도를 하는 것은 다소 구약적이고 천주교적인 성격을 띱니다.   



이런데도 신교 일각에서 목회자나 지도자들, 청소년 리더들이 이런 죄목록 불태우기를 성경적인 올바른 행습인 양 실행하거나 권장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며, 마땅히 사라져야 할 관례입니다.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에겐 시각적/심리적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죄와 회개의 중대성, 대속과 용서의 진리 등 기독교의 치명적인 개념을 자칫 경박화시키고 오인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도움되셨기를..




  1. 시제변화: shrive>shrove/shrived>shriven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