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비평/영화&드라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비평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비평

-싸탄적인 학대성욕



2월 하순 한국에서 개봉되는 미국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각주:1]

한 여대생이 젊은 비지니스맨 남성을 사귀면서 그의 변태적인 학대성욕에 희생돼 가는 모습을 그린 내용이다. 이 영화의 수입은 한국의 성도덕을 크게 흔들 수도 있는 위기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성 모럴을 통째로 뒤집는 면모, 곧 변태적인 학대 성욕 때문이다. 영어로는 흔히 'BDSM'으로 통칭한다. 결박(bondage)/지배(dominance)/가학 및 피학(sado-mazochism) 등이 모두 아우러진 괴기스럽고 혼합적인 형태의 '섹스 파티'이다. 


이 성의 '축제' 가담자들은 서로 일종의 지배자/피지배자로 주종관계를 형성하여 신체적/정신적인 압제를 주고 받으면서 성적인 고통의 쾌감(?)을 나눈다. 여기엔 피차 농도의 '상한선'에 대한 약속 아래 고문에 가까운 학대와 농락, 악용, 조종 등이 포함되며, 때로는 강간도 저질러진다. 물론 온갖 기이한 형태의 엽기적인 성도구들이 사용된다. '50가지 음영'이란, 바로 남자 주인공인 크리스천[각주:2] 그레이가 상대인 여대생, 애너스테이저(아나스타샤) 스틸을 갖고 놀면서 구사하는 변태 행위의 다양성을 암시한 것이다!   


이러한 성적인 극단은 필시 영화의 바탕인 원작을 쓴 여성작가 E. L. 제임즈 자신의 체험(?) 또는 상상에서 우러났을 것이다. 이성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지배/압제 당하는 온갖 성적 장난과 행위를 통해 아슬아슬하면서도 고통스런 극단의 변태적 쾌감 내지 쾌락을 누리는 모양이다. 성을 즐기다 즐기다 "갈 데까지 간" 곧 막다른 '경지'에까지 이른 상황이다. 철저히 비뚤어져 있고 가히 악마적이다. 그런데도 이 3부작 시리즈 소설이 전세계에서 1억 권 넘게 팔릴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했다니 정말 놀랍다. 영화 역시 굉장한 관심을 끌어 50여 개국에서 이미 총 1억 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렸단다. 제작한 감독도 여성이다.   



성경은 영적 음란을 포함해 이런 것을 통틀어 "딴 색(色)"(개정역: "다른 육체")을 좇는 것으로 묘사한다(신약 유다서 1'7). 정상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성생활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바로 고대의 소돔/고모라가 동성애를 포함하여 음탕하기 짝이 없는 온갖 변태성욕의 만족을 추구했기에 이를 가리켜 한 말씀이다. 성경에는 또한 이를 본 딴 성 타락 및 결과 등 다른 극단의 케이스를 숨김 없이 기록하고 있다(판관기=삿 19,20장). 

바꿔 말하면, '50가지'의 작가 제임즈는 소돔/고모라까지도 능가하는 변태 유형의 성행위를 추구해 왔다는 말이 된다. 



구글에서 'fifty'라는 검색어만 입력해도 '50가지 음영' 관련건이 무려 2억 5,500만개(!)나 뜨는 것을 보니,이런 왜곡된 변태적/가학적 성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선호도가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그만큼 사람들의 심성이 죄악과 타락, 퇴폐성 탓에 왜곡돼간다는 말이고, 성욕의 만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BDSM의 갖은 '성행위'들 가운데는 뇌 속의 산소를 줄이면 몽롱한 환각에 가까운 쾌감을 느낀다고 해서 질식 상태까지 몰고 가 상대방을 사경에 빠뜨리거나 실제 치사 사건도 발생한다. 따라서 이 성 파티엔 잠정적인 중범죄의 가능성이 늘 개재되기 마련이다. 



내용이 이렇다 보니 주연을 한 배우들마저도 일말의 문제의식 또는 위기감 같은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주인공 '애나' 역을 맡은 다코타 좐슨은 "너무나 선정적이어서 엄마 아빠가 안 봤으면 좋겠다"고 꺼려 했고(>) 실제로 그 어머니가 단도직입적으로 "난 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부모 역시 유명 배우들이다.

 

상대역(그레이)인 제이미 도넌도 "내가 어떤 여성에게도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녀(좐슨)에게 저질러야 했다"며 자신이 아이의 아빠라고 밝혔다(>). 도넌이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는 그가 자신의 역을 연기한 '섹스 굴(dungeon)'에 들어가 있다가 귀가하고나면 아내와 아이에게 손을 대기 전에 먼저 샤워부터 철저히 했단다. 또한 두 주인공은 촬영 전에 비해 서로를 혐오하게 됐다! 

무엇을 말하는가? 정상적인 성 모럴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언저리의 막판 성희의 난장판이라는 것이다. 


출연 배우마저들마저도 이 소설/영화의 내용에 욕지기가 나고 넌더리가 쳐질 정도였다는 얘기다. 그만큼 껄끄럽고 떨떠름했다는 말이다. 그런 걸 왜 출연했을까? 물론 돈과 인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영화의 인기도에 관련, 도넌은 "대중의 인식이 늘 평균 선(善)과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면서 히틀러를 예로 들고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대중의 인식과 일치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뢉 슈워츠월더의 분석에 의하면 도넌의 이 말은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곧 '선'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돼버린다. 나치 당시 독일 민중이 히틀러를 좋아했던 것이 선일 수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좐슨과 도넌의 양심에 일말의 가책(?)이나마 느꼈던 것도 별 의미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미래 후속편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튼 도넌은 아내의 불편한 심기 탓에 후속편엔 출연하지 않으련다는 후문도 있다.  



BDSM 따위의 변태 행위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필자의 20대 후반기 시절, 부모님이 집에 세 들인 한 젊은 부부는 거의 밤마다 고통스런 신음 같은 소리를 내곤 하여 식구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새색시가 소리내어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곤 하여 내심 젊은 부부가 남의 집에 갓 세 들어 살면서까지 맨날 부부싸움을 할까 궁금하고 불편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을 자주 출입하는 교회 아낙네들이 귓속말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을 우연히도 엿들었다. 평소 아주 조신해 뵈는 그 새색시가 한 여름에도 늘 소매 긴 옷을 입은 채 수돗가에 나와 있곤 하는데, 언뜻 봤더니 팔목 속과 목 아래 등이 매맞은 듯한 상처 투성이여서 너무나 놀랐다는 것이었다. 매 자국의 이유를 캐물었더니 억울한 내력 같은 것을 털어내놓긴커녕 부끄러워 하며 차마 입을 열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간파했다. 그만큼 학대/피학대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생각 밖에 주변에 흔하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혐오감과 거부감을 자아내기 마련인 BDSM은 성격과 수위에 따라 법적으로 학대/폭행 등 범죄 행위로 규정될 수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특히 괴기스런 성 행태를 그린 핔션/넌핔션 등으로 내용이 공개됨에 따라 몰랐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급기야 이를 본받아 비슷한 행위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흔하다. 

요 며칠 전에도 쉬카고의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1학년의 지도자급 학생인 모함마드 호세인 군(19)이 같은 또래 여학생을 데리고 가학적 성폭행을 한 혐의를 받았는데 실상 '50가지'를 "재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타고 사악한 것을 쉽게 본받는 강력한 전염성을 시사해 준다. 



이는 세속인들조차 넌더리 칠 일이지만, 크리스천들은 절대로 이런 초(超) 극단을 택하거나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나 영화를 볼 생각도 말고 호기심도 버려야 옳다. 이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사람 잡는 미친 색욕의 광란이다. 알고 보면 마귀와 그 졸개들이 사람들을 꼭둑각시 장난감 삼아 벌이는 농탕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셔서 서로들 몸을 욕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로마서 1'24 사역)




  1. '그림자'가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이름 그레이를 낱말 뜻대로 회색으로 비유, 다양한 음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본문으로]
  2. 작가는 왜 하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기독교 윤리를 넌지시 모독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상대역인 '애너스테이저'(아나스타시아: 부활이라는 뜻)도 4세기 순교자의 이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