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

-주님을 놀라시게 한 큰 신앙


 

바탕본문: 마태복음서 8:5-13

 

 

예수님께서 그 분의 3년 공생애(공사역) 전반기에 만나신 이 믿음 좋은 백부장의 스토리만큼 우리에게 감격적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사건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자극과 도전이 된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한편으로는 "오늘날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이죠. 그만큼 현대 세상에서 믿음이 희박/희귀해져 가고 있다는 얘긴데요..이 백부장의 스토리는 우리의 얕고 초라한 믿음에 힘을 실어 주고 굳세게 해 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는 기회를 통해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되기를 갈구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보다 전장인 마태복음 5-7장에서 이른 바 '산상보훈' 그러니까 5,6,7장-모두 석 장에 걸쳐 기록된 산 위의 교훈 말씀을 길게 하신 다음 산에서 갓 내려오셨을 때, 한 나환자가 다가와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자, 주님은 "내가 원하오. 깨끗해져요!"라고 선언하셨고 그의 나병이 곧 깨끗해졌다는 스토리가 치병의 다른 한 케이스로 앞서 일어났습니다. 

이 나환자가 치유 받은 내용도 이 백부장 스토리와 서로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지금 이 백부장은 당대의 노예인 착한 하인이 중풍병으로 방안에서 날마다 누워 지내면서, 물론 몸도 아프지만 (일을 하지 못해 마음으로도) 무척 괴로워한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대뜸 "그럼 내가 가서 고쳐줄게요"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너무나 황송해 하면서 "아, 주님! 우리 집에 몸소 오신다는 것 자체를 제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면서 "다만 말씀만 해 주셔요. 그러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헐~, 이게 웬 믿음입니까!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백부장은 자신이 당대 세계 최대의 제국인 로마 군대의 병사들-최소한 100명 단위의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면서도 한낱 떠돌이 유대인 라삐에 불과한 예수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하고 있으니, 정말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죠. 안 그런가요?

종주국의 군대를 이끄는 장교라면, 자칫하다간 얼마나 자기 콧대를 높여가며 자기 위치를 내세우겠습니까? 하다 못해 동네를 순찰하는 경비병 아저씨라도 떵떵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 백부장은 더 나아가 그 이상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니까 "저도 (상관인) 남의 손 아래 있는 사람이고요, (장교인) 내 아래에도 (부하) 군사들이 있으니까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오고, (집에 있는) 내 종에게도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정말 놀랍네요! 그는 믿음이 하도 좋다 보니까 말도 참 술술술술 조리 있게 잘 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말 잘 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정말 슬기롭게 주님께 말씀을 잘 드리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겐 그만큼 지혜를 더 주신다고 믿습니다. 겸손은 지혜가 더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 같습니다. 



백부장의 이 말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자기의 모든 상관들 이상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단순히 여느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신뢰하기에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자기 종이 나을 줄로 믿었던 "투철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치유의 권능을 100%(!) 믿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랬기에 직접 오지 않으셔도 된다며 말씀 한 마디만 바랐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아니 결국은 죽었던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주님이 자기 집에 꼭 와 주시기를 바랐던 카페르나움(가버나움)의 야이로 회당장과는 사뭇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이 백부장이 지금 처음으로 이 라삐를 뵙기 전에 이미 그 분에 관한 소문과, 구전으로 전해 들은 그 분의 말씀, 그리고 유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춰왔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씀 한 마디!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죠. 오늘 우리가 이 백부장처럼 옛 시대 그대로를 살아간다고 하지 않더라도, 이 성경 말씀만 보면 우리도 백부장 같은 믿음을 배우고 그 믿음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크리스토님, 메시아님을 로고스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주님의 입으로 나온 모든 말씀 하나 하나가 우리의 약이 되고 치유의 권능이 되고 힘이 되고 생명이 될 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 '한 마디'를 믿기 어려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보다는 뭔가 희한한 기적과 이적, 환상과 계시를 보기를 더 원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천사를 보게 해 달라고, 굉장한 환상과 이적을 겪게 해 달라고, '입신'을 하게 해 달라고,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성경보다 더 믿으려고 합니다. 

마냥 그런다면, 이것은 위험한 신앙이죠. 그러다가 자칫, 빛난 천사로 곧 잘 가장하는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갖다주는 "헛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만 자꾸 찾다 보면, 마귀가 거짓 허상을 갖다 보여 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주님은 토마에게 "너는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지요.

 

우리도 이 백부장처럼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낫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로마 군 백부장의 상관은 천부장, 그 위에 또 더 높은 장군들과 사령관 등등이 있을 텐데, 이 군 체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꼭대기엔 로마 황제가 있어서, 그의 말대로 일사불란하게,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당대 세계 최고의 군대 조직이었죠. 


그러니까, 지금 이 백부장은 자신의 그 모든 상관들보다, 심지어 로마 황제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 받드는 심정이었거든요. 자기 하인의 치병을 위해서. 실로 놀랍지 않은가요? 



둘째로, 이 백부장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하인으로 또는 일개 부하로 여겼습니다.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럼 낫겠나이다!" 하는 이 말은 "이 종(부하)에게 그저 명령만 내려 주세요! 즉각 말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주님 말씀대로 다 되겠지요. 충~성~!"과도 같은 절대복종의 고백입니다. 


사실 종주국 군대의 장교로서 종속국인 이스라엘의 한 초라한 목수 출신의 라삐에게 이런 겸손을 보인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웬만한 믿음 갖고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 백부장은 정말 주님을 하늘 같이, 곧 하나님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믿었다는 얘기죠. 


사도 행전에서도 우리는 이런 훌륭한 믿음의 로마 군 지휘관을 발견하게 됩니다(행 10,11장 참조). 바로 그 유명한 로마 백부장 코르넬리우스(고넬료)였지요! 그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뭇 신들을 믿지 않고, 또 당시 신처럼 떠 받들려 신 노릇하던 로마 황제보다는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자기의 신으로 섬기면서 경배하고, 불쌍한 유대 백성을 돌보며 수시로 금식기도를 하기까지 하는 착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그를 택하여 구원하시려고 사도 페트로(베드로)를 보내어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바로 이 코르넬리우스 때문에 그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복음이 최초로 이방인에게도 전해지는 놀라운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계급장이나 지위를 중시하지 않고, 주님과 하나님을 더 높여 받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또 자기 종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니, 주님은 그의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평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이 꼭 자기 종을 고쳐주고 말겠다는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노예인 하인에 대한 그의 끔찍하고 애틋한 애정을 느끼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노예는 그냥 노예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자기 노예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노예가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잘 감당하여 주인의 손발 노릇을 다하여 마음을 기쁘게, 시원케 해 주는 사람이었다는 뜻일 터입니다. 주인의 일을 정말 자기 일처럼 해 주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 백부장은 병든 이 하인을 불쌍하고 딱하게 여기면서, 빨리 반드시 고쳐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예수님이 어디 계신 것까지 확인하고 찾아와 뵙고 꼭 고쳐주십사고 믿음으로 간청한 것을 보니, 정말 인정이 많고 덕스러운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영혼과 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수많은 유대인 환자들과 장애인들을 고쳐주신 것은 먼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아온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고쳐주셨지요. 


이 백부장의 심정도 마치 주님의 그 마음처럼 온정과 사랑으로 차 있었군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누군가 아픈 교우들 또는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 불쌍히 여기는 온정의 마음과 사랑으로 기도하고 사랑의 주님께서 꼭 낫게 해 주시길 믿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이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높이는 백부장의 겸손한 마음과 또 말씀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신앙을 몸소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가족이나 교우들에게 자신의 믿음에 대한 신뢰를 얻고 인정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백부장처럼 주님께 먼저 인정 받는 믿음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게 아무리 인정 받고 칭찬 받더라도 주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탕 본문 뒷 부분에 보면, 주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이 놀라운 믿음에 찬탄해 마지 않으시며 제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참으로 말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소"라고 토로하셨습니다. 


주님을 놀라게 해 드리는 믿음!-이 얼마나 부러운 믿음인가요? 그런 믿음을 가졌다고 주님께 인정 받고 칭찬 받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택한 선민인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에 불과한 이 백부장인 그가 주님께 이런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주님께 온맘을 다해 믿음으로 고백하고 신뢰했다는 뜻일 터입니다. 


주님께서는 3년간 공생애 중에서 여러 환자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그대들의 믿음이 어디 있소?", "믿음 없는 사람아, 왜 의심했는가?"라고 물으시면서, 심지어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도 산을 움직이고 돌무화과 나무라도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게 할 수 있다고 보장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겨자씨 만한 믿음조차 갖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겠지요. 그 작은 겨자씨 알 만큼의 믿음을 갖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정말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으로서 주님께 칭찬받은 이 백부장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기보다 하나님과 주님께 칭찬받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자기 하인의 병이 낫기 위해 말로만 듣다가 처음 뵙는 주님 앞에 완전히 삶을 내놓은 이 백부장처럼 우리도 주님께 전적으로 매달리고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런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자'란, 단순히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믿을 신', '놈 자 자' 곧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끝으로, 주님은 이 백부장에게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가시오, 그대가 믿은 대로 되기를~!"


할렐루야~, 이 얼마나 복스러운 말씀입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해 주시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일 때 가능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믿음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계급을 본 것도 아니고, 착하고 점잖아서도 아니고, 로마인만큼 유대인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그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끔찍히 사랑해서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그가 겸손해서도 아니었고...오로지 그의 믿음! 믿음을(!) 보시고 이런 선언을 해 주신 섯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선언의 말씀을 듣도록 끝까지 믿음으로 그 분을 붙잡고 신뢰해야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의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선언은 중요합니다. 우리 믿음이 중요할 뿐더러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시는 선언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 간구할 때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되어라!"라는 선언을 들어야겠습니다. 이 백부장을 본받아 주님 앞에 겸손히 꿇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믿음으로 '대쉬'(dash)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성경묵상연구 > 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 처녀 비유에 숨겨진 비밀  (12) 2018.11.17
좁은 문, 좁은 길  (7) 2018.06.03
주님을 깨우라?  (10) 2015.05.10
누구에게 보일 것인가(마6'1-6)  (8) 2015.03.28
갈릴리 여인들  (14) 201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