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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음악

'고요한 밤'의 문제점


'고요한 밤'의 문제점

-최고의 캐럴 비평



평소는 거의 전혀 아니고 단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불리는 캐럴 내지 '찬송가'들이 상당수 있다. 더구나 '고요한 밤'은 여느 곡들보다 더욱, 성탄절이면 교회마다 빼 놓지 않고 부르는 절대 필수곡목이다. 왜 그럴까. 내년이면 이 찬송가의 가사는 창작 200주년이 된다. 곡은 그보다 2년 후에 그렇고.

이 시는 대체로 널리 알려진 설인 1818년이 아니라 그보다 2년 전인 1816년에 지어진 것이며, 곡은 2년 뒤인 1818년에 쓰였다. 이 노래의 자세한 창작 내력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래 링크 속 글은 필자가 분별/검증에 주력하지 않던 당시 쓴 것이다.) http://scissurl.com/7/c4j 


한 가지 밝혀두는 것은 이 노래를 비평함으로써 기성 교회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당초 카톨맄교에서 시작한 이 노래에 문제가 있기에 재고해 보자는 것뿐이다. 참 개혁은 전통이라 해서 무조건 고수하기보다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장가?


'고요한 밤'은 수많은 신/구교 교인들에게 일종의 강한 향수를 불러내는 게 분명하다. 물론 너무나 오래 많이 불러오기도 했지만 그런 곡은 한 둘이 아닐 테고,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을 터이다. 

이 찬송가가 하나의 자장가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 곡 끝 부분은 한글 가사의 경우 '아기 잘도 잔다'로 현 상태를 설명하는 서술문이지만, 원문(독일어)은 "(아가야) 하늘 평화 속에 잘 자거라"라는 전형적인 자장가 형태로 되어 있다. 우리네의 '아기 잘도 잔다' 역시 자장가의 일종이다. 창작 후 첫 연주 당시는 비록 '빠른 춤곡'처럼 불렀다지만, 적어도 시인의 가사는 그렇다. 자장가는 포근한 엄마 품 속 같은 그리움을 자아낸다. 


   Schlafe in himmlischer Ruh


작시자가 당초 그런 자장가적인 의도로 썼다는 것이다! 영어도 비슷하게 번역됐다. 독일어/영어 등은 이렇다 할 존대형이 따로 없어 뚜렷한 차이가 없지만, 한글이니까 예수님이기에 구태여 존대형으로 한다면, '잠드소서', '잠자소서', '주무소서' 등이 된다. 


헐, 그런데 아무리 성탄절이라곤 하나, 지금 예수님에게 우리가 자장가를..? 과연 그래야 하나? 



여기서 우리는 이 찬송가가 마치 성극이나 성탄 씬처럼 과거 역사를 상상의 무대 위에 재구현하려는 재현적 의도가 분명함을 느낀다. 연례 크리스마스의 정신 자체와 모든 캐럴들이 그렇듯 말이다. 

이 찬송가를 평소에 부를 수 없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은 지금 자장가를 받으실 영원한 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우리가 자장가를 예수님께 찬송가로 바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자장가의 가사를 억지로 바꿔서라도 매년 부르고 있다. 왜 그래야 하나? 예수님이 어린 시절이 못내 그리워 매년 이맘 때면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시는가? 아니, 사람들이 본래 그런가? 매년 생일 때마다 어릴 때 엄마에게 들었던 자장가를 듣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둘째로 이 찬송가의 문제점은 번역 가사의 애매모호성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원작이 각국어 번역에 100%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주된 원인은 우선, 구미의 라틴계 언어는 정형시의 경우 반드시 매줄 끝이 운율(라임/rhyme: 정형시에서 낱말의 뒷 발음을 맞추는 관행)화돼있어 자기 언어별 음운에 맞추다 보니, 뜻이 상당량 달라진다. 예를 들면 원문인 독일어는 1절 끝 운율이 Nacht와 wacht, Paar와 Haar로 돼 있지만, 영어 라임은 night와 bright, Child와 mild로 뜻도 독일어와는 많이 다르다.  

둘째로, 비라틴계 언어의 경우 그 나라 상황과 문화정서에 맞게 의역하기 마련이다.  


독일어 가사 첫 절을 직역해 보자.


  1. 

   Stille Nacht! Heil'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och heilige Paar. 

   Holder Knab' im lockigen Haar, 

   Schlafe in himmlischer Ruh!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두들 잠들고, 

  정답고 거룩한 한 남녀만 깨어 지키네

  복되신 곱슬머리 아기님,  

  편히 주무셔요, 하늘 평화 속! (이하 한글 가사는 필자 역)


그 밤이 고요한 밤이었을까? 과연 거룩한 밤이었을까? 오히려 캄캄한 죄악과 절망의 밤을 밝히기 위해 오신 주님이 아니시던가? 또 베틀레헴 마을이 모두들 곤히 잠든 가운데 마리아/요셒 부부만 깨어있길 바라는 것은 이 시인의 바람이고 상상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가 더 쉽다. 왜냐하면 지금 베틀레헴은 로마 제국의 속국인 온 천하에서 저마다 호적하려고 귀국한 유대 동향인들로 가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관마다 만원이라고 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밤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세상이 시끄럽든 고요하든, 이 죄악 세상에 내려오신, 성육한 하나님 아기 예수의 탄생에 무슨 큰 관계가 있을까? 아무튼 분명한 것은 시인은 알프스 티롤에서 고요한 산기슭을 내려다보며 이 시를 연상했다는 점이다. 

  

정작 주님 탄생의 그 밤에 평온하고 조용한 곳은 목자들이 양을 치는 들판이었다. 다른 곳이 아닌 거기 천사들이 왔다. 또한 거기에서 이 마을로 아기 왕을 경배하러 온 사람은 목자들 뿐이었다. '곱슬머리'란 말은 별 의미가 없는 데다 약간 유치하기까지 한 느낌이지만, 천주교 사제인 시인은 중세 성화에 그려진 귀여운 백인 아기를 연상한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 독일어 가사가 영어로는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sleep in heavenly peace,
   sleep in heavenly peace.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기 동정녀 엄마와 아기 곁, 온통 평온하고 밝네

 상냥하고 온화하신 거룩한 아기님,

 하늘 평화 속 잠 잘 자소서 


독일어 원문과의 중요한 차이를 보는가? 한 번 비교해 보자.


   (독) 모두들 잠들고, 정답고 거룩한 한 남녀만 깨어 지키네


   (영) 저기 동정녀 엄마와 아기 곁, 온통 평온하고 밝네


분명히 독일어 원문에는 (남녀) '한 쌍'(Paar)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의 a pair에 해당한다. 그런데 영문에서는 남자(요셒)는 빠지고 동정녀와 아기뿐이다. 한글로는 '주의 부모'로 옮겼다. 

영문은 왜 이럴까? 한 가지 아는 사실은 1859년 성공회의 뉴욬시 트리니티 성당에서 사목하던 좐 프리먼 영(Young) 사제가 자신의 영역 가사를 처음 발행했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통용되는 이 캐럴의 영문 가사이다. 영은 어쩐 영문인지 요제프의 '한 쌍'에서 마리아만 남기고 요셒을 빼버렸다. 


물론 요셒보다는 마리아가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요셒이 아기 예수의 잉태와 출산에 직접 생리적으로 관여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태와 루카(누가) 등 두 복음서의 성탄 기록에서 보는 대로, 아기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에 즈음한 요셒의 역할은 다대했다(예: 루카복음서 2'16). 요셒을 뺐다는 것은 카톨맄/정교/성공회/루터교 등이 '성모'로 흠숭(欽崇)해온 마리아에 대한 각별한 중시 사상을 연상시킨다. 


아기 예수를 동정녀 마리아와만 얽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카톨맄 전통이 정교와 성공회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늘 성체성사 때 면병 속에 담긴(?) 작은 예수를 생각하며 마리아를 '신모(神母, Mother of God)'라고 부른다. 이런 발상엔 '성모자'를 한 묶음으로 그린 중세의 옛 성화들의 영향도 많다. 그런 그림들은 흡사 신화 속의 '여신과 아들'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주장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마태복음서(1~2장), 루카복음서(2장)를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성탄 및 유년기 성장에 있어 요셒의 역할은 뚜렷했다. 비록 마리아만큼은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말이다. 영문 가사에서 그 점이 좀 아쉽다. 



독일어 원문의 나머지 절들을 보기로 하자.


  2. 

   Stille Nacht! Heil'ge Nacht! 

   Gottes Sohn, o wie lacht 

   Lieb' aus deinem göttlichen Mund, 

   Da uns schlägt die rettende Stund'. 

   Jesus in deiner Geburt!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님의 거룩한 입에선 사랑의 웃음이 나오고

  우리에겐 구속의 은혜가 동터오네

  예수, 성탄의 주님!


  3. 

   Stille Nacht! Heil'ge Nacht! 

   Die der Welt Heil gebracht, 

   Aus des Himmels goldenen Höhn, 

   Uns der Gnaden Fülle läßt sehn, 

   Jesum in Menschengestalt!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 하늘 금빛 찬란한 데서

  세계의 평화 가져오시고

  풍요로운 은혜 우리 눈에 보이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4. 

   Stille Nacht! Heil'ge Nacht! 

   Wo sich heut alle Macht 

   Väterlicher Liebe ergoß, 

   Und als Bruder huldvoll umschloß 

   Jesus die Völker der Welt!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늘 힘있게 아버지 사랑 내리네

  또 우리의 다정한 형제로 (오시는)

  예수, 온 세상 사람들을 품으시네!


  5. 

   Stille Nacht! Heil'ge Nacht! 

   Lange schon uns bedacht, 

   Als der Herr vom Grimme befreit 

   In der Väter urgrauer Zeit 

   Aller Welt Schonung verhieß!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래 기다려온 주님

  우리를 진노에서 풀어주시고

  조상들의 암흑시대로부터

  온 세상 구속(救贖)받았다 선언하셨네


  6. 

   Stille Nacht! Heil'ge Nacht! 

   Hirten erst kundgemacht 

   Durch der Engel Alleluja, 

   Tönt es laut bei Ferne und Nah: 

   "Jesus der Retter ist da!"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목자들이 맨 처음 천사 찬양 보고 들었네 

  멀리 또 가까이서 또렷이 들리는 소리

  "구주 예수님이 나셨네!"



2, 3절은 비교적 복음적이고 그다지 문제가 없어뵈지만, 4, 5절은 보편구원론의 냄새를 풍긴다. 

천주교는 신교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사실상 타 종교를 관용하고 온 세상이 구원받을 것처럼 주장한다. 여기서도 "온 세상이 구속됐다"란 선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선언을 하신 적이 없다. 온 세상이 자동으로 모두 구속된 것이 아니라, 다만 구속 위업이 성취됐다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으니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 분의 보혈은 온 세상 죄를 씻고 남음이 있지만 오직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들만 대속(代贖)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말해준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도 대속과 구원을 받을 길은 없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상들의 암흑시대'(der Väter urgrauer Zeit)라는 부분이다. 모어는 중세 교회가 암흑 시대를 주도했던 역사적 사실을 시인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과거의 선조들은 다 영적 맹인이었다가 천주교에 의해 비로소 복음의 여명이 왔다고 보는 걸까? 만약 천주교 자체 역사의 암흑성을 모어가 여기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스스로가 맹인에 불과한 셈이 된다. 천주교 자신들만 암흑을 면한 반면 나머지 세상이 다 암흑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변호적인 주장을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적반하장인가!

그 암흑 속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 마르틴 루터가 아니었던가.



'고요한 밤'은 가장 위대한 성탄 찬송가, 아니 더 나아가 가장 위대한 찬송가의 하나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살펴보면 이런 문제점들이 보인다. 그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의 개념 자체처럼 전통에 따라 이 노래를 불러온 우리의 관행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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