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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영화&드라마

'오두막'은 뉴에이지성 작품


3월에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개봉된 영화 '오두막(the Shack)'이 4월 20일 한국 전역에서도 일제히 개봉됐다. 영화나 책을 보려는 독자들 특히 크리스천들은 이 작품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 글에선 먼저 순수하게 필자 자신의 견해를 비친 뒤, 다음 회에 다른 이들의 비평을 고루 나열해 가며 인용해 보려고 한다.  


책과 영화 '오두막'은 나름으로 본 뉴에이지적인 하나님 상을 각색해 극화해 내고 있다. 이는 성경의 그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이런 비스무리한 것들을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자기네 감정에 맞다며 이런 식으로 무조건 감성적이고 인간친화적인 하나님을 찾곤 하는데..하나님은 절대 그 분의 존재양식을 벗어나시지 않는다. 인간의 상상에 구속받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저자 윌리엄 폴 영이 이 작품 다음으로 쓴 책의 내용을 보면, 그가 '오두막'에 성경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지향적인 많은 사람들은 이런 감성적인 거짓 신성에 속아 가며 놀아나고 있다. 


영(Young)은 성부, 성령, 암시된 제 3의 신적 존재인 '소퓌아' 등 세 존재를 모두 여성으로 내세웠다. 왜 그랬을까? 최대한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답이 없다. 물론 여성이 통째로 감성적인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여성은 남성보다는 좀 더 여리게, 더 서정적으로 그려지질 않는가. 

사람들은 흔히 엄마 품을 그린다. 그래선지 하나님까지도 여성화하여 상상하길 즐긴다. 카톨맄 사람들은 늘 엄정하고 어려운(?) 하나님보다는 마리아에게 먼저 접근하길 희구한다. 대신 "빌어 달라"고 구걸한다. 참된 중보자를 잊어버렸고 잃어버린 것이다. 천주교 일각에서는 성삼위를 넘어 '제4위'의 신격체로서 마리아를 격상시키길 희구하며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여성화 내지 중성화를 지향하는 흐름들이다. 

사람들이 뭐라든, 오두막의 '파파'는 성경의 그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의 예호봐(여호와) 하나님은 늘 자신을 아버지로서 나타내셨지, 여성 또는 '어머니'로 계시하신 바 없다. 어머니처럼 비유된 그럴 듯한 표현들이 있어도 그렇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을 푸근한 엄마처럼(?) 뵈는 흑인 여성으로 표현/상징/비유한 것은 저자의 선의(善義)(?)야 어떻든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신모독적이다. 물론 백인 여성, 황인 여성이라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이다. 영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결코 눈에 뵈는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인간이 그 분을 눈으로 보면 죽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분을 눈에 "뵈는" 형상적 존재로 대리하신 분, 구약 성도들에게 수시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마침내 인간과 함께 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말씀이 몸을 입고 오신,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신 임마누엘-곧 성자님이신 훗날의 예수 크리스토님이시다. 또 성부님과 성자님을 대리하여 영으로 오신 분이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부/성자/성령의 성삼위 하나님을 눈에 뵈는 세 인간으로 묘사한 것은 넌센스요 성경을 뒤튼 신관이며, 어쩌면 하나님 아닌 우상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존재로 만든 모든 것이 우상이라고 성경이 명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성경과 신학에 무지한 사람이며,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랬다면 더 볼 것 없는 뉴에이저이다.  


'오두막'은 처음부터 혼동을 갖다 준다. 신이신 하나님을 흑인으로 묘사한 것도 그렇지만, 젠더 상의 혼동도 자아낸다. 여성을 남성적인 '파파(Papa=아버지!)'로 부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도 어이가 없다. 삼각형을 사각형이라고 우기거나 코끼리 몸통에다 나귀 꼬리를 달아놓고 돼지라고 우기는 것 같은 혼동이다. 

저자는 그래서 은연 중 양성적(androgynous)인, 또는 동성애적인 신관을 추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동성애 커플 사이엔 한 쪽이 남성 또는 여성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남자끼리 또는 여성끼리 서로를 '남편' 또는 '아내'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간지럽지 않은가.

한 마디로 저자처럼 흑인 여성을 파파 또는 성부 하나님으로 부르며 모시는 광경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혼동의 도가니'라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을 성 싶다. 


이런 혼동과는 달리, 여기서 성자(聖子)로 나타난 남성은 책과 영화 내용상 "제대로"(?)인 한 유대인 목수이다. 왜 제대로인가? 왜 이 경우는 성경대로 남성이고 유대인인가? 저자는 철저히 왜곡되고 포장된 여성 '성부'가 자아내는 혼동감을 어떤 정통감으로 상쇄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관객들이 그동안 숱한 영화에서 봐온 그 '예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더라도 별 의미 없는 정통감이다. 유대인 남자 목수인 이 성자가 흑인 여성 성부에게 종속된 형국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설정을 통해 노리는 것은 뭘까? 모종의 뉴에이지적이고 초인종적인 평화? 아니면 함 족이었다고 알려진 흑인들이 야펱 족인 백인 또는 쉠 족에게 종속되다시피 했던 과거를 잠재의식 속에서 뒤집는 치유적 전복일까?  아니면 그냥...아무 것도 아닌 걸까?  


여기서 본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저자나 독자/관객이 의식하든 않든, 이 책과 영화에서 '오두막'이라는 장소는 뉴에이적이고 최면적이고 심리적인 내적 치유를 추구하기 위해 설정된 하나의 포맽과도 같다는 것이다. 

주인공 '맼'이 딸을 비참하게 잃은 상처는 어떻게든 치유돼야 한다는 의식 아래 '성부'/'성자'/'성령' 등이 그뤂으로 총동원되어 피해자의 마음을 어르고 있다. 

왜 하필 딸이 희생된 그 오두막일까? 과거 상처의 맥시멈 치유를 위해선 바로 상처 입은 현장으로 거슬러 되돌아가서 해야 한다는 최면요법적 회귀 의식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사뭇 심리적이고, 관상적(觀想的) 내지 관조적이고, 최면요법적이다. 흥미롭고도 과히 놀랍지 않게, 이 책과 영화를 추천하는 상당수의 교계 명사들이 심리적인 관상기도와 내적 치유를 강조하는 관상가들이다. 말하자면 상호적 독심술처럼 서로 내적으로 생각과 마음이 통한 것이다. 


아시안계 여성으로 현신(顯身)된 '성령' 역시 여러 모로 신독적(神瀆的)이다. 

성경에 따르면 첫째로, 성령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을 가시적 존재로 묘사하는 건 우상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둘째로, 성경은 성령 역시 여성도 중성도 아닌 남성으로 묘사해 준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KJV 등 일부 옛 성경 번역판들이 성령을 중성적으로 묘사한 것은 대단한 오역이다. 

셋째로, 사라유(Sarayu)라는 이름은 이교(힌두교)적 연원을 갖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흐름이라는 뜻인 여성적 어원인 '사르'에서 왔다. 남성적 어간인 사라유는 공기, 바람의 흐름을 가리킨다. 저자가 왜 성령을 사라유라고 호칭했는지 알 만하다. 성령을 가리키는 데 쓰인 히브리어 루앟 또는 그리스어 프뉴마 등이 바람/호흡 등의 어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유는 또 고대로부터 존속해온 인도의 강 이름이다. 인도의 우타르칸드와 우타르 프라데쉬를 아울러 흐르는 이 강은 고대 경전인 베다경과 고대 인도 서사시집인 라마야나에도 언급돼 있다. 

왜 저자는 이런 설정을 했을까? 

여러 모로, 그는 기독교적이기보다 세계통합 종교적인 평화를 내심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보편구원론(universalism)적 입장이다. 한 마디로 단언컨대, 윌리엄 폴 영의 구원관은 비기독교적, 비성경적이다. 그리고 그는 뉴에이지 성향이 다분하다. 


결론적으로 '오두막'은 뉴에이지와 신세계질서(NWO)가 추구하는 세계 단일종교를 향한 흐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참된 기독교도, 성경적 진리도 아니다.  

다음 회에는 다양한 비평적 정보와 교계 비평가들의 견해를 더 읽어 보기로 한다.


관련 글:

http://truthnlove.tistory.com/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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