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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영화&드라마

'오두막'은 기분풀이 신학?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 한 맼켄지?



오두막은 기분풀이 신학?




'오두막'과 윌리엄 폴 영에 관하여 하고픈 얘기와 전할 정보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당초 예고한 대로, 시리즈로 차근차근히 엮어나가기로 한다. 이미 밝힌 대로 이제부터는 필자 자신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두루 소개하기로 한다. 



'오두막' 저자, 윌리엄 폴 영(이하 '영')은 이 책이 단순히 '핔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이 책에서 표출한 자기 나름의 신학이 대중은 물론 기독교계에서 패스 되길 내심 바랐다. 그의 그 다음 책을 보면 안다. 

[ 본 글의 내용은 뉴에이지 비평/검증가인 워런 스밑, 그리거리 리드 등의 통찰을 빌렸다. 스밑 자신, 과거 뉴에이저였다가 성경의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으로 현재 기독교 변증가로 활약하고 있다.]  



구원은 필요 없다?


미국 유명 기독교 미디어의 하나인 트리니티방송사(TBN)는 예로부터 문제 명사들의 프로그램들을 두루 방영해온 곳으로 교계 일각에서 지탄을 받아왔다. TBN은 폴 영의 새 책, '하나님에 관해 우리가 믿는 거짓말들'(Lies We Believe About God 이하 '거짓말')을 대뜸 홍보하기로 작심했다. 물론 장기 베스트셀러인 '오두막'으로 공중에 붕 뜬 듯한, 폴 영의 명성 때문이었다.


'오두막의 회복'(RTS)이라는 타이틀의 이 주간 시리즈물은 '거짓말'의 내용을 매주 새 에피소드로 소개하면서, 심지어 TBN의 기금모금 방편으로 홍보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덟 번째 에피소드를 소개하다 돌연 중단해 버린 뒤, 더는 이 책을 소개도, 홍보도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인터넷상에 포스트돼 있던 '거짓말' 1~7까지의 에피소드에서 TBN이 홍보하거나 프로모션 하던 내용들도 모두 솎아 내고 단지 에피소드 #1만 원래 그대로 남겨 두었다. 까닭은 정확히 모르고 추정할 뿐이지만, 계속 홍보하고 선전하기엔 필시 너무나 문제가 많은 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거짓말'을 통해 영은 자신이 '보편구원론자(Universalist)'임을 공개 표명했다. '만인구원설'이라고도 불리는 보편구원론(Universalism)이란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메시아(=크리스토)를 따로 믿을 필요가 없다는 사상이다. 


영은 자신의 책 관련 성명에서, "'구원 받아야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라면서 '크리스토는 각 인간 속에 이미 계신다'고 주장, 성경을 정면 부인했다. 그렇다면 믿을 필요도 없는 크리스토를 애당초 언급은 왜 하는가? 여기 보편론자들의 자가모순이 있다. 어느 주요 사역회는 방송사측에 보낸 서신에서 영의 프로그램을 TBN이 방영한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철저한 신독(神瀆)"이라고 규탄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오두막'의 표지 디자인을 주도했던 그래핔 디자이너, 데이브 올드리치 씨(올드리치 디자인사 대표)는 올해 4월 4일 '페이스붘'에 올린 에서, 자신이 오두막 프로젝트에 관여됐던 것을 깊이 유감으로 생각하며, 이제 더는 책의 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유는 '오두막'의 신학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많기 때문". 

이래서.. 오두막이 단순한 핔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헬로 크리스천'사 윌 모울의 보도에 따르면, 올드리치도 본래는 수많은 다른 독자와 영화 관객들처럼 '오두막'의 스토리에 홀딱 반해 무려 10년이나 사로잡혀 있으면서 자신이 그래핔을 맡았던 것을 일대 영예로까지 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랍 벨, 브라이언 매클러런 등 교계 문제 명사들의 글을 읽다가 돌연 자신이 보편론 신앙을 향한 위험한 길목에 섰음을 깨달았다. "이건 아니다"란 판단이 선 것. 

올드리치는 "주님께서 나를 이 낭떠러지에서 끌어내어 주심을 감사한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의로운 재판장이셔야 함을 느꼈다. 


그러던 차 '오두막' 영화가 개봉되자, 올드리치는 책에 대한 환멸과 '낭떠러지'의 위경이 잊었던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이 책을 대중이 진리로 믿게 만드는 데 자신이 일부 기여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결국 모두에게 공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올드리치는 말한다: "저는 당시 얼마나 분별력이 부족했었나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늑장을 부리다 뒤늦게야 유감과 사과를 표합니다." "많은 분들은 아직도 이 책이 단지 하나의 핔션으로 의도됐다고들 말하죠. 그러나 저자인 윌리엄 폴 영 자신이 "'오두막'은 신학이다. 단, 스토리에 싸여 있는 하나의 신학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뉴에이지 세계로 향한 길목


교계 비평가 그리거리 리드는, "속임수가 점진적으로 퍼지는 질환이 되어 있다"며 지난 불과 수십 년간 교회는 뉴에이지 앞에 무장해제 되다시피 성경적인 분별의 벽이 무너져버려 교인들이 무감각 상태가 됐을 뿐더러, 교회 지도자들이 사실상 뉴에이지와 새 영성의 다양한 활로를 되레 증진하고 있다고 간파했다. 


비밀집단 등의 사상적 기초를 이뤄온 신지학(theosophy) 리더의 한 명인 앨리스 베일리는 일찍이 뉴에이지의 교회 침투 및 암약을 내다보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기독교회의 다양한 지류들은 성 침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목청으로 섬길 수 있다. 또한 세계 계몽(일루미네이션, 곧 뉴에이지 사상)의 핵으로서 말이다."


오늘날 세계 교계를 깊고 폭 넓게 침투/잠식해온 다원종교적인 소위 관상(contemplative)영성, 떠오름(이머징)영성, 리더슆 영성, 미래영성, 미로명상, 에네아그람(에니어그램)..등 무수하고 다양한 영성들의 교회 침투는 베일리의 예견이 놀랍게도 맞아 떨어진 현상들의 일부이다. 한 마디로, 미국의 신학대학과 성서대학을 포함한 대학가에서 관상기도를 가르치지 않은 곳이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많은 지도자들과 학도들, 신자들은 이것이 배교의 낭떠러지로 향한 큰길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랍 벨 목사가 '벨벹 엘비스'를 펴냈을 때, 일부 인사들은그가 성경을 트위스트한 것을 몰각/무시한 채 "획기적"이라고 찬사를 던졌다. 다음으로 문제작 '섹스 신'을 써 냈을 때 그들 일부는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청소년 지도자들은 여전히 그를 상찬했다. 

이윽고 벨은 그의 책, '사랑의 승리'에서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고 보편구원론을 선언했다. 그는 현재 악명 높은 뉴에이저 크리스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와 뉴에이지 구루인 디팩 초프라와 함께 플랫폼을 나누고 지낸다. 


텔리비전 방영물 시리즈 '더 바이블'을 선전해온 로마 다우니 부부는 본래 뉴에이지 계열 대학을 나왔고, 그녀의 뉴에이지 신앙을 여태 버린 적이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계의 수많은 명사들을 포함한 인사들이 이 시리즈를 적극 지지/증진해 왔다. 다우니의 시리즈엔 심지어 영지주의 양념도 뿌려졌지만, 많은 교단들과 그룹들이 이를 우려한 때는 이미 영화 홍보에 너무 많은 기금을 투자한 뒤였다. 그리거리 리드는 "그들에겐 비진리를 밝혀냄보다 돈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정곡을 찔렀다. 


리드는 오두막이 나올 즈음, 이미 우리는 경험-베이스 신앙의 '필요 느끼기' 신학에 대하여 오래 예비수업을 받아왔다고 폭로한다. 우리는 나무에서 버찌를 따듯 성경에서 입맛대로 솎아가며 필요한 부분만 애용하기 일쑤다. 


리드는 자칫 비진리일 수 있는 정서적 호소의 위력을 자신이 몸소 겪은 체험담을 통해 입증한다. 그는 어떤 이슈에 대하여 5~10분간의 동영상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에 젖어있다가 뒤늦게 그것이 전혀 크리스천 비디오가 아니며 기독교 메시지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비성경적인 뉴에이저들이 만든 것이었다. 


리드는 말한다: "진상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정서적으로 훜엎 됐었다. 진리의 성경적 기초가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훜엎 돼 있을 터이다. 이를테면 미혹된 것이다. 그들은 미혹에 중독된 나머지 좀 더 센슈얼하게 유도되고 육적으로 영감된, 다음 한 방의 미약(媚藥)을 기대하고 추구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신앙'의 바탕이 되어 그것 없이는 못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두막'이 성경의 하나님을 대체해 버리자 너무 좋아 했다. 그들은 내심 깊이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며 '나쁜 일들'이 발생(?)하므로 불편하게 느껴왔고 그 점이 햇빛 버전 기독교를 뒤엎는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그들은 '오두막'을 통해 자신들을 기분 좋게 해 주시는 새로운 면모의 하나님을 알게 됐다. 폴 영은 이를테면 성경의 하나님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진짜 하나님은 이런 식의 분이다." 그러면서 섬상위 내지 (그리스 여신 소피아를 포함한) 성사위의 희석된 버전을 내놓는다.  


리드는 "약간의 분별력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토한다. 속임수의 문이 활짝 열려있음을 너무나 과소평가했었노라고. 리드가 '오두막'에 관해 의심하자, 친구 목회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줄줄이 그와 절교하고 떠나갔다. 한 친구 목사는 외쳐댔다. "나는 다년간 하나님과 관계를 갖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나의 '파파'를 되찾았어! 넌 내게서 그 분을 앗아가지 못해!"라고. 


그들은 흔히 "그건 단지 핔션이야. 성경이 아니라고!" 하곤 한다. 뭔가 가슴을 때렸다고 해서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저버리고 말씀 도살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나 진 배 없다. 리드는 묻는다. "그럼 사탄적인 '네크로모니콘'(공포물 작가 H.P. 러브크래프트와 그 추종자들이 쓴 이야기에 나오는 공상적인 흑색마법 교과서)을 읽지 그래요? 그것도 핔션인데. 내용상 단지 핔션일 뿐인 포르노는 어떻소? 볼 수 있겠소?" 


핔션일 뿐이라고? 도대체 그들의 표준이 뭔가? 너무나 극명히 잘못된 것이어서 다루기 꺼려지는 선에 머물기로, 나름의 '사상(事象) 지평선'을 설정했다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성경을 곡해하고 진리를 무시하더라도 받아들이기로 오케이 하고 정당화하기로 한 게 얼마이고 어디까지인가? 



기분 풀이 신학


'오두막'의 천재성은 얼마나 교묘하고 간특하게 성경을 성운과 달무리처럼 부옇고 헐겁게 둘러 착용했냐는 데 있다. 리드의 표현대로, 윌리엄 폴 영은 성경 속 하나님의 참 본성을 적당히 토막쳐버리고 하이브리드 삼위일체를 만들어, 과거 끔찍한 비극과 크나큰 슬픔을 겪은 독자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그런 신학을 대표하고 있다. 


리드의 말을 더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불 타는 덤불로 나타나셨다. 하지만 난 그 분이 덤불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모쉐 앞에서 불 타는 덤불 속에 나타나셨지 덤불이 아니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쉬바, 붇다, 사라유 따위의 모습으로 결코 나타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출 3'14). 하나님은 바위/반석과 같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바알 같으시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미저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이다. 그런데도 '오두막'은 두 가지 다 잘못 제시해 놓았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의 상실과 슬픔을 겪는다. 그래서 "하나님, 왜?"라고 묻거나 절규하곤 한다. 그러면서 돌보시는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늘로 불러 달라거나, 또는 성경의 욥처럼 연유를 모를 비극 가운데서도 제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곤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 대하여 이미 그 분의 말씀 속에서 대답해 놓으셨다. 


"너는 온 맘으로 예호봐님을 신뢰하거라. 자신의 생각에 기대지 마라."(잠언 3'5). [이하 성구들은 사역임] 

"하나님의 길은 완전하다! 예호봐님의 말씀은 순수하다! 그 분은 님을 신뢰하는 모두에게 (둥근)방패가 되어 주신다."(시편 18'30) 

"보시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어떤지를!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기까지 하니 말입니다.."(요한A서=요일 3'1)


오두막은 하나님의 개념을 적당히 느슨하게 포용함으로써 기분을 풀어 주는 임시변통의, 만병통치약이나 위약(僞藥)인 셈이다. 그것이 통증을 일시 가시게는 해 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속임수의 열린 문 앞에 우리를 놓아 둔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그것이 제시하는 예수도 성경대로의 예수님이 아니다. 


리드는 묻는다: 오두막이 제시해 놓은 하나님이 성경대로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여성인가? 벙충맞고 어리버리한 젊은이가 예수님이란 말인가? 성령님은 힌두 강물 이름을 가진 소녀이신지? 소피아가 우리 삶의 재판장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오두막이 제시한대로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가는 최상의 길인가, 아니면 성경이 말한 대로 유일한 길인가?

"그건 비유이고 이야기일 뿐, 성경이 아니다!"라고 누군가는 대들 것이다. 그렇다면 일리 있는 주장점을 밝히려고 핔션으로 포장한 비진리는 다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오두막'은 심판/판단하지 않는 하나님, 이리저리 변할 수도 있는 신, 예수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 단지 더 나은 길이라고 제언하는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다. '오두막'을 통해 감정이 진리를 짓밟고 승리하는 통에, 수 천만 달러 베스트셀러가 됐다. 오두막을 본 팬들은 "성경의 팩트로 나를 혼동시키지 말아요. 기분이 좋으니까!"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영의 두 번째 책 '이브-재상상한 아담과 이브'는 (고대 유대신비학인) 카빨라와 오컬트 주제와 영지주의 야담 등으로 점철돼 있다. 이것도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할 텐가? 그럴수록 문은 넓어진다. 

리드의 표현을 빌자면, 사탄은 교회 중심부로 골문을 향해 점점 더 깊이 밀치고 다가든다. 아무런 저항이 없음을 볼 때마다 그는 더욱 굳세어져 그 다음 차원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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