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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음악

거룩치 못한 '거룩한 성'

▲ 노래 '거룩한 성'의 작곡자, 마이클 메이브맄(예명: 스티븐 애덤즈)이 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그는 참 크리스천이 아니었고, 시장이면서 프리메이슨 신전의 오르가니스트였으며, 억울한 여인의 삶을 망친 장본인이기도 했다. 아직 확인되진 않았으나, 심지어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행 의혹까지도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거룩치 못한 '거룩한 성'

-노래 '거룩한 성'의 황당한 배경


김삼




수많은 성가들이 프리메이슨에 의하여 작시 또는 작곡됐다. 

이 비밀(?)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날뛰는 이단들처럼 한국 교회를 헐뜯고 쓰러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분별을 일깨우려는 뜻이다. 나는 한국 교회가 진정, 올바로(!) 잘 되길 바란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잘 되려면 이대로는 안 되고 분별과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며, 아울러 찬송가와 마찬가지로 성가들도 검증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거룩한 성'(the Holy City)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독창 또는 합창 등으로 자주 불린다(예: >). 특히 한국 교회 성가대나 독창자들은 유난히 이 곡을 좋아한다. 거의 독창자, 성가대마다 두루 부를 정도이다.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연주 효과가 좋고, 우리네 정서에 잘 맞는다는 뜻일까?


[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로 '거룩한 성'을 연주하곤 했던 사람은 아마도 월북 작곡가인 안기영(安基永, 

1900~1980)인 듯 하다. 그는 조선 최초로 미국에 음악 유학을 한 뒤[각주:1], 서구음악을 들여오면서도 민족적 창작에도 힘쓴 성악가/작곡가 겸 교회음악인이기도 했다[각주:2]. 안기영이 1920년대에 이미 '거룩한 성'을 독창곡으로 부른 흔적이 있다. 그가 1929년부터 일본 녹음회사에서 녹음/취입하여 발매된 소리판들 가운데는 일본 콜럼비아 음반에 취입된 테너 독창곡, '거룩한 성'이 들어 있었다. 안기영의 창작곡들은 그가 평양에서 작고한 1980년 이후 비로소 해금 조치됐다(참고 링크 http://bitly.kr/ewhN ). ]

  

작곡자인 19세기 음악인, 스티븐 애덤즈[각주:3]는 당대 일반 사회의 명사인 동시에 비밀집단인 프리메이슨 사회에서도 존중 받는 단원이었다. 그는 평생 모두 6개나 되는 라지[각주:4]의 회원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13년 9월 6일 와이트 섬 라이드 타운의 온성도성공회 라이드 교구성당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지역 라지의 동료 메이슨들도 참석했다! 고인은 프리메이슨 신전의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네들 사회에서 상당히 영예로운 직책의 하나다.  


클래싴한 '경건미'로 널리 애송되는 성가, '주기도(the Lord's Prayer)'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앨버트 헤이 맬러트[각주:5], 역시 프리메이슨 명사였다. 애덤즈와 얼핏 혼동되곤 하는 이름인 아돌프 아담이 작곡한 '거룩한 밤'(Cantique de Noël 일명 Minuit Chrétiens)의 경우, 가사는 역시 프리메이슨으로 프랑스의 로크모르 시(市)의 시장이었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플라시드 카포에 의해 작시됐다. 

더욱 놀랍게도, (위에 언급한 스티븐 애덤즈의 장례식에 영국 왕실의 비애트리스 공주 대리인 격으로 참석한 부총독, 핼럼 테니슨 경의 아버지인) 앨프릳 테니슨도 메이슨 명사였다! 테니슨은 '잃은 화음', '모래톱을 건느며' 등 주요 성가의 가사와, 우리네 찬송가에도 있는 '종 소리 크게 울려라' 등 찬송가 작시자로도 유명한 계관(桂冠)시인이다. 


이상은 모두 문서상으로 명료하게 확인되는 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니만큼, 그 진위를 놓고 필자더러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길 바란다. 

특히 올해는 프리메이슨리 (공식)창설 300주년 되는 해로 알려진다. 그래서 이 기회에 이런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분별할 필요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스티븐 애덤즈는 영국의 화려한 문화예술 번영기였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살아간, 죽기까지 명성을 누렸던 당대 영국의 사회 명사였다. 인기 높은 대중음악가이기도 했지만, 훗날 와이트 섬 카운티에 있는 라이드 타운의 시장을 5번이나 역임했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메이슨이었던 만큼, 굉장히 복잡하고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살아갔던 그였다. 



'스티븐 애덤즈'라는 이름은 그의 예명·가명이었기에 이제부터 마이클 메이브맄(약칭 MM)이라는 본명을 써 보려고 한다. 메이브맄의 가장 대중적인 명작의 하나인 '거룩한 성'은 1892년께 악보로 발행됐다. 

가사는 당대의 대중적 시인으로서 수많은 노래가사를 썼던 법정변호사, 프레더맄 에드워드 웨덜리에 의해 지어졌다. 메이브맄 못지 않은 명성을 누렸던 웨덜리도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설, 더구나 메이브맄과 다년간 동성애 파트너(!)로 지냈다는 유력설도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은 시적/음악적 효과는 어떨지 모르나, 영적 배경으로는 결코 거룩한 노래일 수가 없음을 독자는 인식하기 바란다. 이 노래의 이러한 구석을 알고 나면, 교회의 거룩한 예배 한 가운데서 보석처럼 수를 놓는 성가로서는 차마 부르기가 어려울 터이다. "차라리 (이런 배경을) 몰랐더면 나았을 것이다"는 연주자도 있겠으나, 서론에 말했듯 사실 모든 성가들은 찬송가와 마찬가지로 필히 검증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오랜 생각이다. 아무 검증 없이 아무 곡이나 골라잡아 막 부른다는 것은 일반 연주가라면 모를까, 교회음악사역자로서는 바른 선곡 정신이 아닐 것이다. 


성가대 독창자나 성가대는 회중 가운데서도 가려 뽑은, 빼어낸 음악사역자들이기 때문에, 부르는 성가들도 더 거룩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이 따른다. 단지 '효과'가 좋다고 해서 아무 거나 막 부르는 성가대를 성가대라고 하기가 어렵겠다. 효과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위한 것이지,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적 효과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요소가 아니다. 인간을 위한 것일 뿐이다. 알고 보면 거룩하지 못한 '성가'를 거룩한 성가대가 부른다는 것 자체가 큰 모순이다. 



메이브맄은 당대의 제롬 컨, 콜 포터, 조지 거슈인처럼 인기를 누린, 음악인으로서는 퍽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곡자인 데다 훌륭한 바리톤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법정에서 몰래 그 특유의 저음으로 노래를 불러, 수감자들과 법 집행자들을 숙연케 한 적도 있다! 다분히 의도를 의심케 하는 행동이었다. 

고향이 리버풀인 MM의 조부와 부친은 모두 애머처 작곡가였고, 그와 동명인 삼촌 마이클 메이브맄도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합창 지휘자였다. 이런 배경 덕분에 MM 자신도 삼촌의 뒤를 이어 불과 15세 때, 그곳 세인트 피터스 (성공회)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의 '거룩한 성'은 특히 MGM사의 블랔버스터 영화인 '샌 프랜시스코'(1936년)에서 지넽 맼다널드가 부른 뒤 본격적인 명곡이 돼 가면서, 국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영화로? 그렇다. '거룩한 성'은 세속 중의 세속도시인 할리우드를 통해 비로소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노래 작시자 웨덜리를 자연스럽게 프리메이슨으로 추정하는 이유 하나는 가사 내용에 있어, 프리메이슨리의 비밀 교리 내지 '비밀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이슨 자신들이 하는 말이다. 마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처럼[각주:6].        


'거룩한 성'에는, 물론 기독교 진리 같은 요소도 일부 담겨있지만, 동시에 '슐로모의 지혜'와 연계된 프리메이슨리의 비밀 교리도 깊이 스며 있으며, 여기서 예수는, 왕통인 슐로모와 다뷔드의 한 후손으로서 부각돼 있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메이슨들은 '거룩한 성'을 매우 강조한다. 라지 이름에도 많이 반영된다. 성지도 강조한다. 실은 십자군 때부터 그랬다. 십자군 당시 프랑스의 '성전기사단'(KT)이 훗날 메이슨단 창설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각주:7]. 초기 성전기사단의 창설자들 가운데 (역시 성가와 찬송가 작시자이기도 한), 베르나르('성 버나드')도 있었다. 




'거룩한 성'의 분석적 읽기


'거룩한 성'의 가사를 원문인 영어 가사를 중심으로 한 번 들여다 보자(반복 부분은 생략함).




거룩한 성 


작시: 프레드맄 웨덜리

작곡: 스티븐 애덤즈(= 마이클 메이브맄)

번역: 김삼


                              거룩한 성의 초판 표지 

'거룩한 성'의 초판 표지



나 지난 밤 잠자면서 

한 가닥 단꿈을 꾸었다네

옛 예루살렘 성

성전 곁에 내가 서 있었네

어린이들이 늘 부르는

노래 소리도 들었네

천사들의 목청이 

하늘에서 화답하는 줄 생각했다네


<후렴>

예루살렘! 예루살렘!

네 문들을 열고 노래하라

가장 높은 데서 호산나!

너의 왕께 호산나!


그런 뒤 내 꿈은 바뀌어 

거리엔 울림도 없고,

어린이들이 부르던 

즐거운 호산나 소리도 잠잠해졌네


해는 불가사의하게 점점 어두워져                                    

그 아침이 차갑고 서늘했네                              

 

      쓸쓸한 언덕 위에 

      한 개 십자가의 그림자가 솟았네


또 다시 장면이 바뀌어 

새 땅이 보이는 듯 했고

물결 없는 바다 곁 

거룩한 성을 난 보았네


하나님의 빛이 그 거리 위에 있고, 

그 대문들이 활짝 열려 

그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고

아무도 거부되지 않네

밤의 달이나 별들이나 

낮에 비치는 해도 필요 없네


그 곳은 사라지지 않는 

새 예루살렘이라네 


예루살렘! 예루살렘!

밤이 끝났으니 노래하라!                                                 메이브맄

가장 높은 데서 호산나!

영원히 호산나!





▶ '거룩한 성'의 작시자, 프레더맄 웨덜리. 노래 시인에다 법정변호사였던 그는 작곡자인 메이브맄과 상당기간 동성애 관계였다는 유력설이 있어 왔다.  




독자는 위 가사에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냥 보통 성가들과 다름없는가? 대체로 성경적이라고 생각되는가? 

필자도 기존 번역 가사로는 이렇다 할 문제점을 별로 몰랐다. 다만 필자의 친구가 왜 저 가사에서 꿈이 강조되는지를 장난 삼아 거론하곤 했다. 

그러다 원문을 보고서야 문제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거룩한 성' 가사의 문제점들을 몇 가지로 지적해 보이겠다. 



첫째로, 이 노래는 표면상 분명히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에 관한 것인 듯 보이는데, 정작 핵심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다 주변 얘기들 뿐이다. 또 사실상 예루살렘에게만 '호산나'라고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다. '왕'이라는 호칭 외엔 예수나 크리스토라는 이름이나 주님, 구(세)주, 또는 메시아라는 호칭도 없거니와, 십자가도 실체 아닌 그림자 뿐이다.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지은이에게는 예수님이나 크리스토를 찬양할 마음이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바른 말을 하자면, 프리메이슨 또는 메이슨 문학사상가인 웨덜리로서는 성경을 이용하여 예수 크리스토나 십자가를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를 전개함에 있어 꿈이라는 매개를 사용한 것도 최대한 모호화하는 데 도움되었을 성 싶다. 성경에서 보듯 참된 계시를 전달하는 꿈은 더 없이 명료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몽롱하기 짝이 없는 것이 꿈 속 세계이기도 하다. 간밤 꿈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웨덜리의 '꿈'은 여기서 가상적인 핔션에 진 배 없다. 따라서 그만큼 진실성이 떨어진다. 이미 성경에 있는 것을 되풀이 해설한 것 같은 것이기에. 그나마도 부정확하고 몽롱하고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우리는 웨덜리가 이 시의 내용을 계시의 꿈으로 꾸었다고 할 수 없다. 성경이 이미 말해 놓은 내용을 갖고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흔해 빠진 신사도들의 구약적 예언과 다를 게 뭐랴.     

시는 핔션이나 소설과는 다르다. 그래서 진실을 담고 써야 맞다. 가상적인 꿈이나 계시를 갖고 풀어 나간다면 그만큼 가치가 줄어든다. 그리고 문서적 계시는 성경 계시로써 끝내야 맞다. 그렇다면 꿈 얘기를 설파할 게 아니라, 성경 말씀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시적으로 고백해야 걸맞을 것이다. 



둘째로, 지은이가 성경을 빌린 내용에 있어, 부정확성을 지적하련다. 


웨덜리는, 


해는 불가사의하게 점점 어두워져

아침이 차갑고 서늘했네

쓸쓸한 언덕 위에 

한 개 십자가의 그림자가 솟았네


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마태복음서 27'45), 주님이 죽으신 당일 정오 즈음부터 오후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둠이 지속됐다고 밝히고 있다. 거기 서 있었던 사람들이 다 증인들이다. 

웨덜리의 시구처럼 아침부터 점점 해가 가려져, 차갑고 서늘했던 것이 아니다. 


마태가 기록한 어둠은 점진적인 어둠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갑작스런 어둠을 가리킨다. 그래서 일부인들은 당일 개기일식이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긴 일식도 있는가?! 

게다가 개기일식은 자연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적인 일식을 통해 그 분의 진노를 표현했다면, 좀 격이 떨어진다. 


사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한낮이며, 따라서 작렬하는 태양열과 햇빛의 최고 절정이다! 하루 중 가장 밝아야 할 그 부분을 하나님은 완전히 밤으로 바꾸셨다. 그렇게도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절망은 어두운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날의 어둠이 인류의 엄청난 죄에 대하여 진노하실 수 밖에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직접 중재하신 초자연적인 암흑이었다고 믿는다. 그 날 오후 3시(마태 27'46), 다시 밝아지기 직전인 이 캄캄함의 절정에서,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밬타니!"[각주:8]라고 처참하게 울부짖으셨던 것이다.  

마태는 이 세 시간 동안을 그냥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45절과 46절을 비교해 보라]. 


그런데 웨덜리는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았는지, 관심이 없었는지, 그냥 아침부터 해가 불가사의하게 점점 어두워졌다고 건성으로 대강, "들은 풍월" 같은 풀이를 하고 있다. 웨덜리의 시적인 주장대로라면, 암흑이 무려 6시간 이상 지속된 셈이다. 

  


셋째로, 이 시인의 문제점은 감각의 부족, 또는 감각의 초월이다. 

자신이 방금 해가 점점 어두워졌다고 해 놓고는, 새삼 얼토당토 않은 '그림자'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치가 맞지 않다! 물론 시적인 세계에선 가히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시 속에서 예수 크리스토께서 돌아가신 그 날의 실제 사건을 해설하면서 이러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캄캄함 속에서도 보이는 그림자라는 것인가? 

필자 보기에, 이 노래시를 쓸 당시 웨덜리의 마음은 칠흑 같은 어둠과 그림자보다 더 깜깜했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지은이는 주님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노래할 맘이 없는 듯, 아예 거들지도 않고 걸러버렸다. 그만큼 메이슨 사상가들에겐 예수 크리스토의 부활이 중요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승천 사건도 물론 간과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픈 것은, 시인은 헤로드 당시의 땅의 예루샬렘을 '거룩한 성'으로 불러놓고, 아무 여과 과정이나 전환이 없이 곧장 하늘의 거룩한 성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주님이 헤로드 성전을 한때나마 "내 아버지의 집"으로 인정한 것은 헤로드 등 당대 정치인들의 선을 인정하셔서가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헤로드 왕을 '여우'라고 지칭하시기도 했다. 


이 역시, 시인은 하늘 아닌 땅의 '거룩한 성'을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진짜 거룩한 성은 있거나 없거나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끝으로, 이 노래는 명백히 뉴에이지적/메이슨적인(!) 보편구원론을 내비치고 있다! 다음이 그 증거이다. 


하나님의 빛이 그 거리 위에 있고, 

그 대문들이 활짝 열려 

그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고

아무도 거부되지 않네


천국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고? 아무도 거부되지 않는다고? 천국이 무슨 무료입장 할 수 있게 개방해 놓은 박물관도 아니고.. 어떻게 아무나 막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가? 그야말로 메이슨들의 위대한 착각인 것이다. 


천국은 누구나 함부로 막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성경 자체가 구구히, 누누히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설교를 하려는 건 아니나, 한 번 대강 살펴 보기로 하자. 


우선 주님 말씀에 따르면, 천국 길은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이다. 아무나 쉽사리 들어가지들 않지만, 들어가려도 맘대로는 안 된다. 

또한 부자들이 천국 가기란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 걸인인 라자루스는 낙원인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지만 부자는 물 한 방울 얻을 수 없는 불못에 떨어졌다. 그런데 부자들,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기부도 잘 하는 거부가 많이 분포된 메이슨들이 어떻게 천국 가기가 쉽겠는가? 


천국은 침공하는 이들이 "빼앗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 바깥 어둠으로 쫓겨나 이를 갈고 슬피 울 것이라고 하셨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면 왜 그러겠는가? 누구나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라면 이를 갈거나 웃긴커녕 다들 싱글벙글 웃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들이 천국 가기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신다. 뉴에이지적이고 종교다원적인 메이슨들이 과연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적힌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다(요계 20'15).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도 '작은 예수'가 있다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니버설리스트, 보편구원론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적혀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서 14'6, (사도)행전 4'12에 정면 배치된다!


그밖에도 성경에는 수많은 '천국 입국 불가' 경고가 있지만, 여기서 다 나열하진 않는다. 

아마도 웨덜리는 다음 구절에 의하여 저 시에다 저런 발상을 옮겨놓았을 법하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요계 21'24~26 한글 개정역)


그런데 웨덜리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다음 구절을 못 봤거나 자기 사상 속에서 생략했을 거 같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1'27). 


과연 보편주의자들, 뉴에이저들, 웨덜리나 메이브맄 같은 메이슨들도 이 끝 절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그들이 과연 천국문을 무사통과하여, 천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밖에도 추가로 지적한다면, 웨덜리는 새 땅, 새 예루샬렘을 말하면서, 정작 새 하늘은 살짝 빠트려 놓았다. 왜 뺐을까? 자못 수상쩍다. 


그리고 웨덜리 자신이 꿈에 계시를 받아 쓴 것도 아니며, 저런 성스럽고 신비한(?) 꿈을 꾸었다는 분위기에 있어, 전체가 모두 확신 보다는 추정과 개연성이 주도한다. 즉 그래도 그만, 안 그래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래저래 웨덜리의 이 노래 시는 성경적이 아니며, 성가대나 크리스천 독창자가 맘껏 부를 수 있는 성가로 쳐 줄 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하물며 엉터리 신자에다 메이슨적 사상을 지녔던 웨덜리의 배경이랴! 

물론 작곡가인 MM은 이 가사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고 절창의 곡을 써냈다. 메이슨인 그에게 무슨 영적 통찰이나 분별력이 있었겠는가?



놀라운 일기장


지난 1992년 영국 리버풀에서 일기책 한 권이 발견됐다. 일기의 저자는 자신이 '쟄 더 리퍼'(Jack the Ripper, 연쇄살인범 쟄)였다고 고백했다. 참고로, '쟄 더 리퍼' 사건은 1888년 8월말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약 12주동안(9주 설도 있음),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 슬럼가인 화이트채플 골목 부근에서 5명(그 이상 설도 있음)의 성매매 여성들이 줄이어 엽기적으로 살해된 악명 높은 연쇄살인 사건이다. 약 1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영구 미제사건이다. 여전히 추측만 난무할 뿐이어서, 영국 범죄사상 최악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힌다. 


'쟄 더 리퍼의 일기' 표지와 첫 페이지. 전문가들 다수가 이 일기의 '진정성'을 추론해 왔지만, 잉크 성분을 분석한 과학적 실험 결과는 후대의 조작이라는 것이다[각주:9]



이 '일기'는 거의 가짜라는 컨센서스가 일각에 있어 왔지만, 저술 동기는 충분히 의혹을 자아낸다. 표면 상의 저자는 제임즈 메이브맄이었다. 그는 바로 '거룩한 성'의 작곡자, 마이클 메이브맄의 형이다! 과연 살인범(현재로선 살인혐의자) 자신이 자기 죄를 고백했을까 싶지만, 아무튼 저자는 일기 속에 자신의 범죄 과정을 생생히 그려놓고 있다. 



제임즈 메이브맄 역시 복잡한 생애를 살았다. 리버풀 출신의 목화 상인인 데다 메이슨이었던 그는 나이 40대에 미국을 여행할 동안, 선상에서 플로렌스(애칭 플로리/Florie) 일리저벹 챈들러라는 예쁘장한 미국 중류층 아가씨를 사귀어, 귀국 후 당시 19세였던 그녀와 결혼했다. 플로리의 아버지는 앨러배마 주 모빌 시의 시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러나 평소 심기증 환자에다 비소(砒素) 중독자였던 제임즈는 걸핏하면 어린 아내를 구타하며 지냈고, 이혼 협박까지 하다 (중추신경흥분제) 스트리키니네를 과다 복용한 후유증으로 1889년 5월 11일 죽어버렸다. 



플로리와 제임즈 메이브맄 부부의 초상화



그 후 플로리는 주로 시숙인 MM의 의심과 단죄에 따라 남편을 비소로 독살했다는 억울한 혐의를 쓰고 재판을 받는다. 당시 비소는 (근거는 거의 없지만) 최음제 및 강장제로 애용됐고, 제임즈는 생시에 비소를 주기적으로 남용했다. 후에 메이브맄 부부의 집에서는 50명을 죽일 수 있는 분량의 비소가 나왔다. 아무튼 플로리가 남편을 독살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중에 입증된다. 

이와는 별도로 플로리는 자신의 피부미용을 위해 파리잡이 종이를 적시는 까다로운 과정으로 비소를 얻어내곤 했다. 은빛 나는 비소는 당시 여인들에게 인기 있는 미백제였다. 이것이 그녀의 가정부들에게는 독살용으로 보인 것이다. 


만약 플로리가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이렇게 만든 비소를 먹였다면, 제임즈가 (주로) 소화불량으로 아파서 계속 누워 있고 MM이 그녀를 의심했을 초기에 이미 상당량의 비소가 검출됐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MM의 주문으로 제임즈의 분비물을 검사한 두 의사는 아무런 비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를 입증할 자료들은 풍부하다. 


한편, 기록에 따르면, 제임즈는 여럿 되는 정부를 두고(그 중 한 명은 제임즈와 플로리의 결혼 전, 제임즈와의 관계로 자녀를 셋이나 낳았고, 제임즈의 결혼 후에도 둘을 더 낳았다!) 줄바람을 피고 다니자, 이 결혼을 불행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플로리 역시 목화상인 앨프릳 브라이얼리와 더 아랫 시숙인 에드윈(?) 등 애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훗날 법정에서 그녀에게 매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방금 밝혔다시피, 플로리를 형의 살해범으로 고소한 사람이 바로 MM이다. 메이브맄 형제들중 맏형인 토머스와 셋째인 마이클, 넷째 에드윈 등은 제임즈의 신혼초에 일치감치 플로리 집안의 재산이 별 볼일 없음을 발견하고, 무척 실망해 이미 그녀를 경원하기 시작했다. 제임즈가 계속 병석에 있던 어느 날, 플로리는 한 가정부에게 울면서 속을 털어놓았다. "마이클 도련님이 문제"라고. 마이클이 처음부터 그녀를 의혹스럽게 보고 차게 대했다는 것. 반면 에드윈은 플로리가 가장 친근하게 여겼다. 


이처럼 '거룩한 성' 작곡자는 돈과 명예, 자기 형제, 실리(實理)와 동료 비밀결사단원끼리의 의리 등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인간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튼 플로리는 재판에서 처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비록 나중 무기형으로 감형 받긴 했어도 무려 15년간 옥고를 치르고 1904년 1월 출감한 뒤, 모국인 미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커네티컽 주 켄트의 어느 언덕바지에 있는 세 칸짜리 오두막에서,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이 단지 수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외로운 삶을 살다 1941년 죽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냥이 여인(the Cat Woman)'이라 불렀다. 

플로리는 수감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자식들과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유품 가운데는 너덜너덜 해어진 가족(family) 성경책도 있었다. 못된 남자들을 만난 탓에 참으로 가련한 삶을 살다 간 여인이었다. 



 만년의 플로렌스 여인. 돈 한 푼 없이 오두막과 누더기, 수많은 고양이들만 남기고 숨졌다. 



플로리의 재판은 최초로 미디어의 끈끈한 법정 취재를 곁들여가며, 남성 지배사회였던 19세기말 영국 법조계를 뒤집는, 가히 혁명적이고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플로리 재판건은 그녀를 동정하는 유렆과 미국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여권운동가들의 활동에 불을 지폈다. 특히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빜토리아 시대 후기, 영국 사회의 남성 중심 폐쇄성을 맹렬히 비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룩한 성'의 작곡가인 MM이 착한 사람도 아닌 망나니 같은 형을 죽였다는 불확실한 죄목을 들씌워, 생사람(?)을 때려잡았다는 점. '거룩한 성'이라는 거룩한(?) 노래까지 쓴 그가 왜 그랬어야 했을까 하는 질문이 그와 연관된 음모설까지 일어나게 한다. 



작곡자는 전설의 연쇄살인범?


더 나아가 가장 최근엔, 다름 아닌 MM 자신이 '쟄 더 리퍼'였다는 설까지 나와 사람들을 악연(愕然)하게 만들고 있다. 본 필자가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나, 그냥 웃고 넘기기엔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여, 내용을 일부 옮겨 본다. 


마이클 메이브맄을 '쟄'으로 찍은 사람은 영국의 현대 영화감독 겸 대본작가, 브루스 로빈슨. 핵심 이유는 MM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쟄 더 리퍼' 사건 시리즈 중 한 사건 때, 담벽에 살인 용의자가 끄적여놓은 것으로 보이는, 프리메이슨 상징문과 연계시킨 것이다. 로빈슨은 지난 15년간 MM의 역사를 연구 추적한 뒤 그런 결론을 얻고, '그들은 모두 쟄을 사랑한다-리퍼 때려잡기(They All Love Jack: Busting the Ripper)'라는 책으로 펴냈다. 무려 800쪽 분량이다. '그들은 모두 쟄을 사랑한다'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은, MM이 작곡한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로빈슨에 따르면, 당시 메트로 경찰국장인 촬스 워런 경 자신이 메이슨이었기 때문에 '형제'인[각주:10] 범인이 남긴 흔적을 보고, 이 사건을 영구미제로 돌렸단다. 

1888년 9월 30일, 2명의 여성-일리저벹 스트라이드와 캐터린 에도즈-가 몇 시간 간격으로 화이트채플 노상에서 살해됐다. 시리즈 살해 건으로는 3, 4번째 피해자였는데, 무참하게 난자 당해 있었다. 이튿날 이른 새벽, 워런 국장이 이스트 엔드로 달려갔는데, 시신보다는 현장인 골스턴 스트맅 선상의 한 문간 벽에 끄적여진 낙서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단다. 이 벽 곁에서 에도즈 여인의 피 묻은 앞치마 조각이 발견됐다. 


문제의 낙서는 "주스(Juwes)는 아무 것도 책잡히지 않을 사람들이다"라는 문구였다. 워런은 즉시 부하들에게 그 낙서를 지우도록 명령했다. 바로 이 점이 현대의 추적자 로빈슨에게 "만약 누군가 범인을 잡기 원치 않았다면?"이라는 물음을 떠올렸다. 로빈슨은 쟄 더 리퍼가 '천재범죄자'가 아니라, 빜토리아 시대 때 관리들의 비호를 받은 싸이코로 본다. 특히 프리메이슨들의 비호를 받았다는 것. 


로빈슨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영국 (토리당 소속) 국회의원 360명 가운데 330명이 프리메이슨들로 확인됐단다! 영국 왕실의 주요인사인 웨일즈 공 에드워드 왕자로부터 지배층 대다수가 메이슨이었던 셈이다. 워런 경찰국장도 이 거대한 메이슨 체제라는 바퀴의 톱니의 하나였다. 그는 콰투오르 코로나티 라지의 창립 멤버중 하나였고, 메이슨 역사와 비밀의식 권위자들 중 한 명이었다. 1867년 (이스라엘)성지 탐험을 가서 예루살렘 성전산 지하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단다. 


아무튼 범인 '쟄'과 경찰, 모두가 프리메이슨들이었다. 로빈슨의 심층추적에 따르면, 이 살인사건의 구석구석 메이슨 도장이 찍히다시피 했단다. 에도즈 여인의 얼굴에는 메이슨 로고의 일부인 컴퍼스 한 쌍이 칼 끝으로 새겨져 있었다. 또 두 여인의 옷에서는 금속 단추와 주머니 속 주화들이 모두 제거됐다. 이것은 메이슨 의식에서 격언적 의미를 갖는다. 돈은 메이슨들에게 악의 상징의 하나다.[각주:11] 이런 암시들이 워런의 눈과 뇌에 거의 직관적으로 전달된 것이다. 로빈슨은 이를 놓고 단언한다. "골스턴 거리의 낙서는 모든 단서들 중 가장 명백한 실마리의 하나였다."고. 


◀ 무능했기보다 감추기에 철저했다는 평가를 들어온 워런 경찰국장. 


워런은 나중에 자신이 낙서를 지우라고 명령했던 것은 반 유대계 정서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해명을 한다. 당시 런던 이스트엔드 구역에는 동부 유렆에서 갓 이민 온 유대인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서에 있었던 '주스(Juwes)'란 말은 유대인(Jew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프리메이슨들의 신화적 전설에 나오는 주벨라, 주벨로, 주벨룸의 일화에 관한 것이다. 


메이슨 전설에 따르면, 이 세 이름은 슐로모 시대 때 3명의 살인 몰이배들이었다. 그러므로 메이슨 역사에 정통한 워런 국장이 이 이름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 살인범이 일종의 메이슨 의식을 치러나가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덮으려 했던 것이다. 그에겐 그 살인범이 '형제'(단원)였던 것이다. 

로빈슨은, 워런이 쟄 더 리퍼가 누구였는지는 혹 몰랐어도, 이런 정체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1,000% 확신한다"고 말한다. 

워런 말고도 이런 내막을 알 만한 사람은 또 있었다. 그의 경감이었던 도날드 스왠슨, 검시관들중 최소한 2명(윈 백스터, 헨리 크로포드)과 시신을 점검한 최소 3명의 경의(경찰의사)들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다. 


당시 수사팀의 '무능성'은 언론상으로 공공연한 스캔들이 되어 있었다. 신문들은 경찰이 무능한 나머지 '저능으로 내리닫고 있다'며 하루가 멀다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수사는 '잭 더 리퍼'의 정체를 캐는, 실패가 뻔한 시도보다는 정체를 계속 감추려는 고의적인 '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게 로빈슨의 지론이다. 

로빈슨은 당시 수사팀은 범인이 뭘 했든, 어떻게 했든 상관 없이 단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것만으로 보호에 들어갔다고 이해한다. 궁극적으로는, 잭 더 리퍼 자신을 보호하기보다 잭 더 리퍼 때문에 자칫 위협 받을 체재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즉 체재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보호한 셈이다. "이 사실을 리퍼도 알고 있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실 로빈슨 말고도 프리메이슨을 범인으로 찍은 사람은 이전에도 있었다. 스티븐 나이트는 그의 책, '잭 더 리퍼: 마지막 해답'( Jack the Ripper: the Final Solution)에서 당대의 저명 메이슨이었던 클러렌스 공-앨버트 뷬터 왕자가 범인이었다는 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메이슨 학자들은 뷬터가 범인일 수 없다고 부정했고, 로빈슨도 동의한다. 

그러나 뷬터가 리퍼가 아니라고 해서 리퍼가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다고 할 순 없다. 


1888년 12월, 새 희생자인 메리 켈리가 살해된 한 달 뒤, 촬즈 워런은 경찰국장 자리를 물러나게 된다. 경찰은 킬러가 테임즈 강물에 투신 자살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을 퍼뜨렸다. 



메이브맄의 판이한 만년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물음은, 왜 로빈슨이 숱한 메이슨들 가운데서도 유독 마이클 메이브맄이라는 특정 인물을 '쟄 더 리퍼'로 꼽았을까라는 것. 무엇보다도 그것은 메이브맄이 그즈음 의문의 행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90년을 기점으로 MM은 갑자기 본향이자 본거지였던 리버풀을 떠나 와이트 섬의 라이드로 행동 반경을 옮겨 간다. 노래 시인인 웨덜리와의 의문의 동거 관계를 멈추는가 하면, 엉뚱하게도(?) 자기 가정부 '로라'와 결혼하여 그리로 이전해 갔다. 딱 부러진 또렷한 이유가 없이 그랬다. 


사뭇 의문스런 행보이다. 여태까지 있던 곳에서 잘 나가던 음악인이었고, 사회적으로도 누가 봐도 탄탄해뵈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인으로서도 스티븐 애덤즈라는 예명으로 쓴 곡들과 자신의 성악 연주로 인기가 치솟던 때였다. 

구태여 돌연 섬 지방으로 옮겨갔어야 했던 까닭이 과연 무엇이었나...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시점이 묘하게도 '쟄 더 리퍼'의 다섯 번째 대상이 희생되고 난 무렵이었다고 로빈슨은 짚는다. 


MM이 살던 빜토리아 시대는 어느 모로 보나 그가 활약하기 좋은 때였다. MM이 웨덜리와 명 콤비를 이루었듯, 비슷한 때를 살며 빜토리아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희극 작가 윌리엄 길버트와 작곡가 아터 설리번[각주:12]도 명 콤비로 아우러져 인기를 모았다. 설리번 못지 않게도 MM은 다양한 곡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섬 지방으로 옮겨간 것은 여태까지의 인기몰이를 다 내팽개치고, 완전 개전의(?) 새 생활을 결심했다는 것으로밖에 뵈지 않는다. 새 생활..? 지금까지의 헌 생활, 낡은 삶, 또는 옛 생활에 문제가 컸던 것인가? 로빈슨은 바로 이 점에서도 MM을 수상쩍게 본 것이다. 1896년에는 웨덜리와 서로 단절했다. 


물론 형 제임즈가 죽고, 형수가 살해혐의로 재판을 받아 사상 최악의 판례가 된 점 등도 주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잠재적인 외연적 요인으로서 '쟄 더 리퍼' 사건이 걸치적거리는 것이다. 정말 MM이 연루됐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여태도 알 수 없지만서도. 


로빈슨은 '쟄 더 리퍼' 사건 후 동료 메이슨들이 MM에게 이젠 떠나서 타지에 숨어 지내야 할 때라고 타이른 것이라고 추정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MM은 라이드에서 5회나 거듭 타운 시장직을 맡는다. 그밖에도 다양한 공직을 갖고 있었다. 추정이 아닌 당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특히 이 타운의 메이슨들에게 존경받으며 지냈다. 


이처럼 '거룩한 성'의 작곡가, 마이클 메이브맄의 지상 삶은 표면상 썩 괜찮았다. 

괴이했던 그의 형 제임즈나 기구했던 형수 플로리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 '거룩한 성' 등이 수많은 연주가들과 성가대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거룩한 성'이 과연 거룩한 성가라고 독자는 생각하는가? 


물론, 작곡자는 단지 작시자의 가사를 받아 곡을 썼을 뿐이니 구태여 작곡자를 이모저모로 몰아대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독교적인 곡을 쓸 동안 가사의 감화를 받아 그만큼 몰입하여 써 내는 것이 노래 작품이니, 작시자나 작곡자나 거룩(holy)함을 논한 만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안 그런가? 또한 자신의 작품에 몰입한 정신과 영혼에 대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곡을 아무 생각 없이 연주하는 크리스천에겐 책임이 전혀 없겠는가? 성도들은 무심코 그 곡과 가사를 거룩하다고 믿지 않겠는가? 그런 효과는 좋은 설교를 장식한 나쁜 예화와도 같은 것이다. 


이래서 분별과 검증이 필요한 법이다. 비판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무조건 긍정주의 원칙 아래 분별과 검증까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성도들은 늘 속고만 살아갈 것이다. 교회와 교계의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이 거룩하고 모든 것이 무난하다는 안일한 믿음을 갖고서. 




  1.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엘리슨 화이트 컨서버토리(Ellison-White Conservatory of Music)에서 2년간 공부했다. [본문으로]
  2. 작곡가 나운영은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는 홍난파의 '봉선화'가 아니라 안기영의 '산고개' 등 초기 노래들이며, 최초의 오페라도 현제명의 '춘향전'(1950)이 아닌 안기영의 '콩쥐팥쥐(1941)'라고 강력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자료에 따르면 최초의 한국가곡은 아마도 같은 작곡가가 '산고개'보다 먼저 썼던 '해당화'(김안서 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홍난파/현제명과의 이런 역사적 오차의 이유는 필시 그가 월북한 데 대한 반감이 작용한 한국의 정서 탓이 아니었을까? [본문으로]
  3. Stephen Adams라는 이름은 예명이다. 본명은 마이클 메이브맄, Michael Maybrick이다. [본문으로]
  4. lodge. 메이슨들의 지역별 지부이자 모임 장소. [본문으로]
  5. 한국에서 흔히 '말로테'라고 불리는데 본디 그런 발음이 아니다. [본문으로]
  6. 모차르트 역시 프리메이슨 명사였다. [본문으로]
  7. 이를 기념하는 드몰레이(청소년메이슨단)도 있다. 자크 드몰레이는 성전기사단 최후 단장으로 프랑스 왕에게 화형 당했다. [본문으로]
  8. 하나님,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아람어. 시편 22'1을 인용한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체현화하셨다. [본문으로]
  9. 이 일기에 사용된 잉크에 대한 다양한 과학실험 결과,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한 방부제인 클로로아세타마이드가 발견됐다. 참고: http://www.casebook.org/dissertations/maybrick_diary/factfile.html 이에 따라 여러 과학자들이 이 일기를 조작된 가짜로 결론지었다. 여럿의 담합이 아닌, 각자의 독립적인 연구의 결과였다. 따라서 이 일기의 저자를 19세기말 당대의 실제 인물로 삼는 진지한 담론들은 이젠 더 가치가 없다는 것이 본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이럼에도, 이 일기에 아직 미련을 갖고 제임즈 메이브맄을 '쟄 더 리퍼'로 몰아대는 연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제임즈가 절대 '쟄 더 리퍼'가 아니었다고 주장할 순 없다. [본문으로]
  10. 메이슨들은 서로 형제/brother, 호칭 Bro., 전체를 Brethren 등으로 부른다. [본문으로]
  11.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온갖 죄악의 뿌리라는 성경적 입장과 다르다. [본문으로]
  12. 성가 '잃은 화음', 찬송가 '전진하라 그리스도 군사들(믿는 사람들은)'로 유명한 설리번 역시 프리메이슨 명사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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