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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카톨맄(천주교)

사순절의 모순들




사순절의 모순들

―'글로리아'를 삼가라?


김삼




사순절을 비롯한 다양한 교회 절기 관행이 성경적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은 사순절(Lent)에 지키는 금욕적 행습들이 '성경적'이라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경건을 위한 금욕은 성경에 따라 개인에게 달린 것일 뿐, 집단으로서 규정할 근거가 신약성경엔 없다. 그런데도 카톨맄과 그 유사 전통들은 그러고들 있다. 

성경엔 그런 이상한 절기가 없으며[각주:1], 사순절 준수를 처음 결의한 주후 4세기의 니케아 회의 전까지, 첫 교회와 초기 교회들의 그 누구도 사순절을 지킨 흔적이 없다. 또 중세의 주요 (종교)개혁가들도 사순절을 배격하고,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위 '개혁교회'의 다수가 사순절이란 것을 지키고 있으니, (필자도 정통계열 장로교인이지만) 참으로 딱하고 통탄스런 모순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신 것이나 모쉐(모세)의 40일 등을 사순절의 근거로 잡는 것은 억지스럽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가 사순절인 40일간 계속 금식해야 할 것 아닌가?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못한다! 필자가 무슨 '종교올림픽' 선수도 아니고, 예수님이나 모쉐님의 40일 금식 신기록(?)에 맞도전할 용기도 능력도 관심도 없다. 

더군다나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유는 간단하다. 율법을 대표하는 모쉐님과,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여 성취하신 예수님이 이미 해 놓으신 작업인 만큼, 나는 이런 (일부) 율법적 요구를 피하여 가며 주님만 뒤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왜 주님과 맞먹으려고, 주님보다 앞서가려고 하는가? 

 


사순절 지킴이의 선두주자인 구교 전통의 대표적인(?) 위선을 하나 집어 보자. 이것은 필자가 직접, 거의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사순절 기간동안 '글로리아 데오 인 엑쉘시스'(Gloria Deo in excelsis)라는 경문을 외거나 찬가를 부르지 않는다. 알고 나면 너무나 어이 없는 자가모순적 관행이다. 이 구절은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그들의 표기)께 영광'이라는 천사들의 노래다. 

사순절 기간에 이 영광 문구가 들어가는 찬가를 부르지 않는 그들 나름의 이유는 캐럴 중 캐럴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들의 성탄 축하송이기 때문이란다! 이를테면, 이 화려한(?) 송가는 그들의 대림절(待臨節)[각주:2]과 성탄절 당일이나 거기 준한 축하 절기에 적합한 것이지, 참회와 금욕의 기간인 사순절엔 걸맞지가 않다는 것이다. 사순절을 지키는 신교측에선 이 관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키는지 무시하는지는 모르겠다[각주:3]



자, 우리 이 관행을 좀 깊이 살펴 보자. 그들은 금욕을 하다 하다 이 영광 노래까지도 '금식'(fasting)하겠다는 발상이다. 독자는 이해가 가는가?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혹 신독적(神瀆的) 발언(??)인지는 몰라도, 하느님께 드릴 최고의 영광송도 삼가서 사순절 기간만큼은 하느님이 이 찬가나 문구를 듣지 못하시도록, 그 분을 '금식'시켜 드리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가 뭔가?! 물론 그들의 '글로리아 데오 인 엑쉘시스'를 포함한 전례적인 라틴어 미사가 과연 얼마큼 거룩하신 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관행의 더 큰 모순성과 위선성이 따로 있다. 

다음을 보라. 루카복음서(눅) 19장 38절이다. 


"이르기를, '복되셔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님! 하늘에 평화! 또 가장 높은 곳에서 영광!'이라고 하였다." (필자 사역)


어린 나귀를 타고 주님이 예루샬렘으로 입성하신 때, 곧 시민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호샨나!..'라고 외친, 위 구절 속의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때는 바로 그 분의 수난 며칠 전이다! 어찌 보면, 사순절의 절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절정에서 사람들이 (라틴어 식으로 하면) '글로리아 데오 인 엑쉘시스'라고 외쳤으니, 천주교 전통에 따라 소급 적용해 보면, 당대 예루샬렘 시민들이 사순절 교칙을 정면으로 어긴 셈이다! 


더 나아가, 주님의 탄생 때 '글로리아' 문구를 처음 사용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같은 복음서를 쓴 루카 자신이었다(루카 2'14)! 그렇다면―구교 사순절 전통에 따르면, 루카도 우선적인 위칙자(違則者)였다. 사순절에 감히 이 문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과연 독자는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은 성경에 대한 천주교의 일대 무지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사순절의 적폐(?)는 이뿐 아니다. 


'사순절에 삼갈 만한 66가지'라는 카톨맄 사람의 글을 읽고 쓴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독자들은 거기 금기 사항을 더 보태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구교 사순절은 성생활을 금기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 경건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각자 알아서 할 사안이란다. 


성경(슈무엘A=삼상 21'4,5)을 보면, 극도의 질투에 사로잡힌 샤울 왕의 칼날을 피해 청년들을 거느리고 광야를 유리(流離)하던 난민 시절의 다뷔드(다윗)는 젊은이들의 광야 금욕 생활의 실상을 제대로 알았던 사나이였다. 사제(제사장)나 레빝(레위인)들이 먹을 수 있는 성전 음식을 먹기 위해 대사제를 찾아왔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식욕을 위해 '금식'을 깨려고 앞서 성욕 발산을 자제한 셈이 되었다. 

주님은, 안식일 무노동/금식을 갖고 당신의 제자들을 단죄하며 폄론하는 당대 종교인인 파리새들에게 다뷔드와 그 동료들의 이 전철을 예로 드시면서 바른 전통을 깨우쳐주려고 하셨다(마태복음서 12'3,4와 여타 공관복음 관련 구절 참조). 그런데 오늘날 사순절 금욕주의자들의, 어쩌면 파리새들보다 한 수 뒤인, 전통주의/율법주의와 위선도 엿보이곤 한다. 


이처럼 카톨맄교에서 유래된 사순절이란 것을 지키다 보니, 더 손해를 보는 쪽은 신교측이다. 

다양한 구교 문헌들을 보면, 중세 후기부터는 사순절 기간 동안 부부 사이의 성생활을 금기시하는 내용이 없다. 즉 사순절에 성생활을 즐겨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아예 할 수 없는 '독신성소'를 받은 특수층(?)인 사제/수사/수녀들은 빼 놓고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신교 사람들 특히 일부 부부들은 사순절에 흔히 성생활을 삼간다. 여성인 아내들 쪽이 더 그렇다. 비유적으로는 구약의 광야 40년과도 맞먹을 정도인 40일 동안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남편들을 '굶긴다'고나 할까..그런 사례들이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 말은 곧 사순절 기간동안 그만큼 출산 사례가 적다는 얘기이며, 신교계 출산율 저하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세계 카톨맄 인구는 (구미를 빼 놓고) 특히 중남미권과 아프리카에서 아직도 "짱짱한" 편이다. 신교의 경우 사순절 동안의 인구 감소 때문에 교세(敎勢)에도 불리한 셈이다.   



사순절 관행의 우스꽝스러운(?), 아니 웃지 못할 모순점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의 글 소재의 일부가 될 것이다.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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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ruthnlove.tistory.com/entry/사순절은-왜-비성경적인가2


https://truthnlove.tistory.com/entry/사순절은-성경적인가-3

  1. 신약성경 갈라티아서 3장에서, 사도 파울은 각종 절기를 삼가 준수하는 행위를 '초등학문'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본문으로]
  2. Advent. 천주교 교회력에 따라 성탄절을 기다리는 4주 기간. 강림절,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3. 일부 신교 교회 성가대가 '미사곡'을 연주할 경우 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