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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호소한 과부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끈기 있는 기도를 한다.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관한 질문을 해 옵니다. 그런데 딴 설명을 하기 전, 성경이 이에 대하여 폭 넓고도 분명한 해답을 줍니다.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참고: (티엘티 블로그 상 원어 발음에 기초한) 성경의 각 권명 약칭은  맨 아래 리스트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기도의 대상: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든 종교에 각각 일종의 기도가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자부터가 다릅니다(미카서=밐 7'18, 슈무엘B서=슘B 7'22).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사랑과 진리의 신격자이신 하나님, 곧 예호봐(=여호와/야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자녀로서 아버지를 대하듯 우리는 사랑과 진리 안에서 그 분에게 기도합니다.  


사랑과 진리 안에서 기도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세상에 흔한 그런 '박애적'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이신(!) 하나님(시 103'8..요A 4'8,16..)이 오직 그 아들이신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을 통해 보여주신 그 분의 아가페 사랑을 가리킵니다(요3'16). 이 사랑은 거듭난 사람 곧 예수님을 참 구주(Savior)와 주님(Lord)/주인/왕으로서 시인하고 고백하고 모셔들인 사람 속에 성령의 열매로서 생겨납니다(갈라티아서 5'22). 

우리는 늘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바릅니다. 미움을 갖고 기도할 수 없으며,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잠 10'18). 

또 여기서 진리란, 참된 도리 또는 길이라는 의미로, 곧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사람에게 주신 그 분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어서 거짓과 죄악을 미워하십니다(민수기 23'19, 잠 12'22, 시편 5'4). 또 늘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십니다(신 7'9, 슘A=삼상 15'29. 렘애 3'23. 시89'2)[각주:1]. 아울러 하나님은 질서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코A 14'33). 

예수님 자신이 곧 길과 진리, 생명이라고 밝히셨습니다(요복 14'6). 둘도 없는 유일성을 말해 주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곧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빼고는 어떤 기도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도 오실 약속의 메시아를 내다보곤 했습니다.) 

이 점을 많은 사람들이 잊곤 합니다. 성경 전체의 핵심이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이듯(요복 5'39), 우리의 기도도 그래야만 바람직합니다. 


기도를 돕는 예수님과 성령님

기독교 기도의 독특한 것 한 가지는 하늘 보좌와 우리 속에서 기도를 돕는 도우미가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서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비시는(!) 하늘 대사제(대제사장)이십니다(히브리서 3'1). 과거 구약 시대 때 족장들, 제사장들이나 판관들, 선지자와 왕 등이 백성을 도와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예렘 11'14), 이제는 하늘에 계신 그 분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중재자)/변호인/옹호자이기도 합니다(욥 16'19, 티모테A 2'5, 히브리 5'1~3, 8'6, 12'24). 

그러므로 우리에겐 구약 사제들과 별 다름없는 카톨맄교 식 '사제'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천주교인들이 자기네를 도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곤 하는 그 '성모' 마리아나 소위 '성인'들 등도 우리의 중재자가 아니며 그들에게 구해서도 안 되거니와, 죽은 이들에게 무엇 하나 구할 수도 없습니다. 죽은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시 30'9, 30'9, 88'10, 115'17). 그런 행동은 오히려 하나님이 엄금하신 네크로맨시(necromancy)의 죄악에 해당합니다(신 18'11, 연대기A 10'13, 예샤 8'19c). 또 천사들도 우리의 중재자가 될 수 없으며, 다만 성도의 기도의 향을 하늘로 올려가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요계 5'8). 

잊지 마십시오: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예수 크리스토님뿐입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연약하고 유한한 인생이죠(롬 8'26b). 따라서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의 말로 이루 안 되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로마서 8'26,27).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성령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엪 6'18a, 유다서 1'20).

바로 이 때문에 영언(방언)이 필요합니다! 일부 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영언의 '불필요성' 같은 것을 주장하고 심지어 영언은 기도언어가 아니다라고도 억지를 부리지만, 사도 파울은 분명히 영언은 하나님께 우리의 영이 숨은 비밀을 아뢰는 사실상의 기도언어라고 명언했습니다(코린토A서=고전 14'2,14,15). 

이 역시도 오직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다. 성경에 명시된 것을 부정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게 없습니다! 그리고 영언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반드시 따르는 표징들의 하나로(마르코스복음=맑 16'17a), 모든 성도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코A 14'2 말씀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모든 신자의 본질은 속사람인 영이기에 말입니다! 


기도는 자유로워야 하지만, 내적인 질서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이 계신 곳엔 참 자유가 있습니다(코B 3'17). 북한에서 모진 압박과 갖은 박해를 감수하며 수난하는 지하 성도들이 오직 홀로 기도할 때 자유를 느끼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께 자유롭고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시편 145'18 참고: 18'6, 77'1). 

그러나 기도를 마구잡이로 하기보다 그 속에 내적 질서를 갖추는 것이 슬기롭습니다. 이것은 형식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몇 가지로 논해 봅니다. 


기도의 원리: 구하라(ask), 찾으라(seek), 두드리라(knock)

마태복음 7장 7절에 있는 중요한 기도 원리의 하나입니다. 물론 기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영어로 첫 자만 따서 A.S.K.라고도 합니다. 

이 세 가지 행동은 모두 의지적(意志的), 적극적. 능동적이고 또 구체적입니다. 아울러 상대방에게-기도의 대상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의존적이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밋밋한 자세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자세로 해야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곧 도움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기도의 전제 조건: 믿음!

기도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과 그 믿음의 행적을 나열하고,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다(!)고 단언합니다(히 11'6). 이것은 비단 기도 때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찬양 때도 마찬가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무엇을 하든지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두 가지를 꼭 믿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1. 그 분이 살아계심과, 2 그 분이 우리의 보상자(그리스 원어 μισθαποδότης, '미스타포도테스')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말은 하나님은 듣고 응답하는 분이심을 우리가 믿는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대가와 응답을 믿으며 기도하자!

여기서 '보상자'라는 말을 우리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스타포도테스라는 이 낱말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곳에 단 한 번 사용된 매우 독특한 말인데, 급료나 대가라는 뜻의 미스토스(μισθός)와 아포(ἀπό) 즉 '-로부터'라는 접두어, -디도미/δίδωμι 곧 '되돌려주다'라는 세 낱말의 합성어입니다. 이를 더 깊이 설명하면, "(자기 지위와 가치를 내 걸고) 일꾼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대가를 주는 고용주"라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그 분 자신의 신실함과 약속에 바탕을 두고, 우리에게 믿음의 대가를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왕들A 8'24,56b; 예샤 38'7). 할렐루야!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나 그 어떤 행동을 할 때 믿음으로 하는 것을 소중히 보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뜻입니다(시 34'4, 86'7).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아갈 때마다 믿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믿음! 이것을 빼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으며, 따라서 그 분 앞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시신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사도 파울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단언했지요(로마서 14'23). 믿음 없이 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로, 믿음 없는 기도는 무당이 하는 욕심의 '넋두리'나 '푸념'과도 같은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여린 교우를 부끄럽게 하거나 비난해선 안 되고, 말씀으로 믿음을 북돋아야겠지요(롬 14'1).

믿음의 사람은 끈기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끈질기게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기도를, 불의한 재판관에게 호소한 과부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바 있지요(뤀 18'1~8). 그러면서 주님은 "하물며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정의를 이루시지 않고 마냥 그대로 놔두시겠소?"라고 물으셨습니다. 


기도의 방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방식을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흔히 '주기도' 즉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며 전례의식의 일부로 함께 읊조리곤 하죠. 하지만 실상 주님의 기도는 따로 있으며(예: 겥세마네의 기도, 마지막 만찬의 기도 등), 오히려 당대 제자들이 해야 할 기도모범으로서 예를 드신 것입니다. 이 주기도를 사도들과 첫 성도들이 훗날까지 (특히 의식의 일부로) 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아무튼 이 기도 모범을 살펴 보면, 앞 부분은 우리가 부를 1) 하나님의 칭호 곧 '우리 아버지', 2) 그 분의 이름을 기리고 높여 드릴 것, 3) 그 분의 나라가 곧 임할 것과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구하도록, 나열돼 있습니다. 비상시의 다급한 기도가 아니라면, 이런 순서는 기도의 기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접근/서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찬양과 감사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로 그 분의 문에 들어가고 찬양으로 그 뜰로 들어가라! 그 분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기려라!"(시 100'4)고 권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과 성호를 부르며), 그 분이 하신 행적과 은덕을 감사하고 찬미할 때,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할 터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우리 자신에게도 기쁨과 확신을 줍니다. 불평불만과 원망은 오늘 하루와 앞길을 막고 어둡게 하지만, 감사의 기쁨은 하루를 활짝, 밝게 열어 줍니다.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기도시들을 보면, 하나님의 다양한 칭호와 상징적/은유적 이름들을 부르며 높여 드리고, 그 분의 성품과 하신 일들을 송축하고 감사하며,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기도도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제사, 곧 성도가 그 분을 흐뭇하게 해 드리려고 올려드리는 향기로운 내음의 향제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요계 5'8). 


죄의 회개

기도의 중요한 전제 요소들중 하나는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죄와 잘못을 솔직히 하나님께 고백하고, 진정으로 뉘우치고, 행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를 품으면,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바로 이 요소 때문에도 회개는 이른 바 '골방 속 기도' 때 적절합니다. 더 진솔해지기가 쉽기 때문이죠. 그러나 숨은 죄를 뉘우칠 때, 장소와 상관 없이 속삭임으로, 또는 영언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맘과 몸이 약해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약점을 가진 사람으로 오셔서 온갖 시험과 유혹을 이기셨기에,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 2'18, 4'15)!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회개하고 걱정/근심/염려를 다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히 4'16 펱A 5'7). 

 

방해 세력 구축

기도할 때 자주 훼방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미리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을 적용하여 주위의 악령들을 꾸짖어 물리치면 됩니다. 기도가 막히거나 답답할 때, 우리는 백병전을 치르듯 방해 요소 및 악과 맞싸우며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페트로A서=벧전 5'8, 야코보서 4'7b). 그러면 그는 우리를 피하여 있게 됩니다. 

사도 파울이 영적 싸움을 설명하면서 영적 무기의 일부로 기도와 간구를 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엪 6'18,19)!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는 언제나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모든 것들의 결제 도구와도 같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기도의 '마무리'로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구할 모든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을 수 있다고 누누히 약속하셨지요(요복 14'13,14; 15'16; 16'23,24,26). 우리도 주님의 제자로서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바로 위 항에서처럼) 기도를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 곧 마귀와 그 종자들인 악령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여 물리칠 수 있고, 자타 속의 그런 영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맑 16'17a). 


기도의 핵심 내용: 우리의 간구

-누구와 무엇을 위해? 


구할 것을 아시는 성령님

위에서도 말했지만, 때때로 아니 자주, 우리는 자신이 구하는 것이 뭔지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성령님께서 간구해 주실 것을 믿고 영언으로 하는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그 분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뭐니뭐니 해도, 기도는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도시들을 음미해 보면, 각 기도자가 어떤 간구를 했는지 느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시편에는 다뷔드(다윗) 왕을 비롯한 신앙인들이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다양한 제목과 내용들을 갖고 하나님께 탄원하거나 호소한 수많은 기도시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자신과 주변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 의를 구하고, 교회를 위한 기도, 형제자매들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나라의 지도자와 기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부터 할 것을 제언해 줍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그 분의 나라, 그 분의 의(義)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덤으로 더해질(added to) 것이라고 약속하셨지요(마태복음서 6'33).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슐로모의 (기브온)기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왕들A=왕상 3'5~14). 

이 약속을 믿는 것도 작은 믿음이 아니죠. 젊을 때 남편을 여읜 뒤로 여생을 오로지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던 선지자 안나 할머니는 마침내 메시아이신 아기 예수님을 뵙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과 건강을 누리며 지냈습니다(루카복음서 2'36)! 

교회를 위한 기도에는 하나님의 참된 전체 교회와 우리 교회, 어린이들을 포함한 교우들, 섬기는 사역자들과 직분자들, 부서들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박해를 받으며 고생하는 북한 동포와 기타 해외 형제자매들과 복음사역자들 등을 위해 하는 기도도 빠뜨리지 말아야겠지요.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사람들, 병든 이들을 위한 기도도 꼭 필요합니다(행전 12'5)

특히 복음을 바로 전하는 참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중요합니다(코린토B서 1'11, 에페소서 6'18,19, 콜로세 4'3, 테살로니카A서=살전 5'25, 히 13'19).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떻게 도울지도 깨닫게 됩니다. 


나라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

구약과 신약에서 공히 나라의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할 것을 말해 줍니다(에즈라 6'10, 티모테A 2'1~4). 나라 지도자들이 밉든 곱든, 우리는 초당적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비단 왕과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장, 대법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등 고위 공직자들부터, 시간이 된다면 우리 시장/군수/읍장/면장/이장/동장/통반장까지 모든 주요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단지 그들 일부가 밉다고 해서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적을 위한 기도, 날 저주하는 이를 위한 기도가 되지 않겠지요.


이웃을 위한 기도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 도움기도와 감사를 해야 한다고 파울은 아들 티모테에게 권합니다(티모테A=딤전 2'1).  

급한 경우 외에는,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해야 올바른 기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코A 10'24). 특히 뭇 성도를 위한 기도가 그렇습니다(엪 6'18c).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넌 어떻게 네 자신을 위한 기도만 주로 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지없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 대신, "너는 자신보다 주로 남을 위한 기도를 했구나. 착하다!"고 칭찬해 주신다면, 정말 기쁨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받잡아,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사람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루카=눅 6'28). 박해 받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원수와 박해자들을 위한 기도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마태 5'44). 차원 높은 사랑의 기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남을 위한 기도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느낄 수 없었던 보람과 희열,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를 위한 기도

많은 부모들이 "나 혼자 살기도 바쁘다"며, 자녀를 위한 기도를 포기하거나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 역시도 부모들을 위한 기도를 잊고 지낼 때가 잦습니다. 특히 늙은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다 놓곤 아예 "신경을 꺼버리는", 현대판 '고려장'형 크리스천 자녀들도 늘고 있습니다. 성도의 자녀는 복의 대상입니다(시 37'26, 112'2, 147'13).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기본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뤀 23'28). 그들이 서로의 건강과 장수, 평안과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내 자녀만 위해 기도한다면, 그 역시 좁은 마음이 아닐 수 없겠지요. 


참고 부록: 기도 중 특별한 문장 형태

기도라는 것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는 빌기만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기도 중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고백/시인 형태: 나의 믿음을 수시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뷔드(다윗)처럼 하나님, 주님께 대한 나의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을 터입니다(시 18'1). 

선언 형태: "나는 믿는다! 그 분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자 없음을." 식으로 선언할 수 있고, 가령 시편 23편에다 자신의 이름을 넣어, "여호와는 나 김삼의 목자, 김삼은 부족함이 없으리!" 등으로 대입식 선언을 할 수 있습니다. 

명령 형태: 기도 도중 악령들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떠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티엘티 식) 성경 권명 리스트 및 약칭[각주:2]

구약

창세기(

미쯔라임출국(출애굽기/)

레빝(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예호슈아(여호수아서/)

판관들(사사기/판관)

뤁(룻기/)

슈무엘A(삼상/슘A)

슈무엘B(삼하/슘B)

왕들A(열왕기상/왕A)

왕들B(열왕기하/왕B)

연대기A(역대상/연A)

연대기B(역대하/연B)

에즈라(에스라/)

느헤미야()

에스테르(에스더/에슽)

욥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노래중노래(아가/)

예샤야후(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렘애)

에제키엘(에스겔/에젴)

다니엘()

호쉐아(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카()

나훔()

하바쿸(하박국/)

제파니야(스바냐/)

하까이(학개/)

제카리야(스가랴/)

말라키(말라기/)

신약

마태복음서()

마르코스복음서()

루카복음서()

요한복음서(요복)

행전(사도행전/)

로마 서신()

코린토서신A(고전/코A)

코린토서신B(고후/코B)

갈라티아서신()

에페소서신()

필리포서신(필맆)

콜로세서신()

테살로니카서신A(텟A)

테살로니카서신B(텟B)

티모테서신A(팀A)

티모테서신B(팀B)

티투스서신()

필레몬서신(필렘)

히브리서신()

야코보서신()

페트로서신A(펱A)

페트로서신B(펱B)

요한서신A(요서A)

요한서신B(요서B)

요한서신C(요서C)

유다서신()

요한계시록(요계)




  1. 신실하다는 말은 약속을 늘 지킨다는 말과도 같고, 성실하다는 의미도 지님. [본문으로]
  2. 기존 한글 성경과는 다른, 원어 발음 중심의 이 성경 권명들은 기존세대가 편의상 묵혀 왔지만, 어차피 언젠가 차세대에는 바뀌기 마련인, 우리의 잘못된(!) 초기 발음을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