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좁은 문,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도,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서, 찾는 이들이 적다오. 

-마태복음서 7:13~14 (이하 성구는 사역)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작아서 길도 좁죠. 골목길은 더 좁고요. 반면에 미국 같은 곳은 땅이 워낙 넓어서 길도 널찍널찍~하다네요. 우리나라의 도(道) 같은 단위인 주(州)가 미국엔 50개나 되고요.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크기가 미국의 웬만한 주 하나보다 작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시원시원한 길에서 차들도 씽씽 마구 달리고, 요즘 말로 "어마무시한" 속도로 과속질주하는 드라이버도 많다네요.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길이 넓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야만 빨리 빨리 지나갈 수 있고, 활발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또 보기에도 넓은 길이 좁은 골목보다는 훨씬 시원해 보이겠지요.


예수님이 사시던 유대 나라인 이스라엘도 원래 작은 땅입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이스라엘의 총 면적은 약 2만 제곱킬로미터 크기인데요. 이와 비슷한 크기의 나라들을 보면..

지부티 23,200 제곱킬로미터

벨리즈 22,966 제곱킬로미터

엘살바도르 21,041 제곱킬로미터

슬로베니아 20,273 제곱킬로미터.. 

등이 있답니다. 

이스라엘의 면적도 이와 비슷한 2만 단위의 땅으로, 20,770 제곱킬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땅(20,569 ㎢)보다 약간 더 크다고 하네요. 그러니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알 수 있죠.

자, 이렇게 보면 그 작은 땅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곧 유대인들도 자연히 드넓은 땅을 좋아하게 되고, 넓은 길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선지 몰라도, 넓은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예수님 당대의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한 길이 성전으로 향한 찌온(시온)의 대로(大路)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이처럼 넓은 길을 좋아하고 그런 길을 찾는 것이 당연할 법 합니다. 그래야만 보기에도 시원하고, 쉽게 잘 통과할 수 있고 그만큼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영적으로는 어떨까요? 영적 세계에서도 넓은 길이 더 좋을까요? 영적으로도 무조건 넓은 곳이 좋을까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드넓은 길로 걸어가라 크고 넓은 길이 곧 천국길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좁은 길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역설적이죠. 이왕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요? 

사실 본문은 먼저 '좁은 길'이 아닌 '좁은 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후반부를 보면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또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작고 길이 좁아서..'라고 돼 있습니다. 문 뒤에 길이 잇대어 있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 되지요. 


왜 주님은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실까요? 

이왕이면 더 넓고, 더 훤하고, 더 시원하고, 더 밝게, 더 빨리 걸어갈 수 있고, 달려갈 수 있는 큰 문과 큰 길은 왜 마다 하고, 콧구멍 같이 작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오솔길이나 골목길, 산길처럼 좁다란 길로 걸어가라고 하실까요? 

주님 자신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넓은 문, 걸어가기 좋아하는 드넓은 길은 멸망으로 이끄는 길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세상의 물리적인 진짜 문과 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여기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과연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널찍한 문과 드넓은 길이 과연 무엇일까, 어떤 문이고 어떤 길일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 그 넓은 문은, 만인보편주의(universalism)적이고, 상대주의(relativism)적이고, 포용주의(inclusivism)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말하면 어떤 종교를 믿어도 괜찮다는 주장입니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 한 분이신 구세주 예수 크리스토를 믿어야 하는 기독교를 믿는 대신에, 불교나 도교, 힌두교...등등등 다른 종교를 믿어도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죽은 뒤에 낙원에 갈 수 있다는 그런 신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떤 방법으로나 통하는 그런 사상이고 그런 문이고 길이라는 것이죠. 그럴 듯하게 들리죠? 그만큼 넓은 길이니까 더 긍정적으로 들리고 더 낙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바로 거대한 함정이라는 겁니다! 보기 좋고 들어가기 좋은 그 넓은 길은 진리의 길이 아니라, 정반대로 비진리의 길, 멸망으로 가는 길,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는 거죠. 얼마나 놀랍고도 비극적인 함정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하기 쉬운 그 길이 곧 생명의 문이 아닌 죽음의 문이고, 행복이 아닌 불행의 지름길이고, 복이 아닌 저주의 길, 영생이 아닌 영원한 멸망길이라니, 얼마나 서글프고 슬픈 노릇인가요! 


문제는, 그 넓은 문과 그 넓은 길을 세상 사람 대부분이 좋아하고 걷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중성과 인기라는 것은 늘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이름과 명예와 인기가 올라가고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 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창 잘 나가고 인기가 '짱'인 목사님이라고 해서, 그 분이 늘 그 인기와 명성을 언제나 간직하고 유지하면서 살아간다고 장담할 수가 없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데, 높은 나무 꼭대기 위에 올라갈수록, 실수로 떨어지면 그만큼 타격과 상처가 크고, 심지어 죽기도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만큼 위험도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인기 절정에서 갑자기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우리가 가끔 보게 됩니다. 높이 솟구쳐 오른 만큼 공허감과 허무감이 컸다는 얘기이겠지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더 높은 인기를 누리고, 넓고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스릴을 맛보며 즐기면서 살아갑니다. 또 소위 진리라고 불리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철학 사상과 다양한 종교를 찾고 따르고 믿으면서 편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구속 받기를 싫어 하고, 하나뿐인 절대진리라는 것을 믿지 않고, 그런 협소한 진리 개념 자체를 숨막혀 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언제나 상대적으로 다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저렇게 편하게 살아갑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 너도 나도 옳지 않은 게 없다는 식으로 상대적인 신념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게 다 좋은 것 아니냐, 너 좋고 나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그냥 푸근하고 마냥 너그럽게 살아간다는 게 세상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그런 길로 가지 말라고. 겉보기에 좋다고 그런 넓은 문과 넓은 길로 자칫 들어섰다가는 정말 "골로 간다"는, 영원한 멸망길로 가는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위험지대나 위험한 절벽길은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는 간판이 있습니다. 자꾸 미국 이야기를 해서 좀 "거시기"하지만, 미국 네바다 주 부근에는 '51지대'라는 굉장히 넓은 땅이 있는데요. 그 속은 아주 비밀스러운 극비의 장소여서, 나라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 빼놓고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지요. 그래서 51지대를 둘러싼 경계 울타리의 곳곳에 '접근하거나 침범하면 무조건 발포한다'는 경고 간판이 붙어있답니다. 들어가면 죽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세상의 넓은 문과 큰 길은 그런 위험 경고판이 붙어있지를 않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세상의 문이고 세상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들어가서 맘껏, 실컷 활보하는 곳이 거기--곧 멸망길입니다. 

아무도 그 문앞에 서서 위험을 경고하거나 '멸망길'이라고, "이 길로 가면 죽어요!" 하고 예고해 주지도 않습니다. 보기도 좋고 들어가기도 좋고 걸어가기에도 좋은 그 문과 그 길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비극입니까!?


시편 23편을 쓴, 구약의 시인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비록 캄캄한 죽음 골짜기로 걸어도 해악을 겁내지 않음은 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그것들이 저를 위로해 줍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길은 사람들 보기에 널찍하고 아주 편해 보여도 그 끝은 어두운 죽음길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팔을 넓게 활짝 벌리고, "웰컴! 웰컴! 자, 어서 누구나 이리 들어 오세요~ 환영합니다"고 진심으로 반겨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커먼 마귀가 길 옆에 웅크리고 있다가 언제라도 잡으려고 목숨을 노리다 결국 지옥에 보내려고 기다리고 있는 문이고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럼, 그 반대로 좁은 문은 어떤 곳일까요?

주님이 들어가기에 '힘쓰라'고 하시는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그곳은 너무나 작은 문이고 좁은 길이기에,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참 적다고 하십니다.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진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참된 것은 거의 언제나,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소."(요14:6)라고 하십니다. 


옳습니다. 참된 길은 오직 하나-예수 크리스토뿐입니다! 그 분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유일한 길이 곧 성경이고 기독교입니다.  

이 길 외에는 다 멸망길이고, 이 진리 외에는 다 거짓이고 비진리이며, 이 생명 외에는 참 생명과 영생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아주 묘~해요. 마귀의 본성을 닮아, 사람들을 호리길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오직 한 길뿐"이라고 말해 주어도 "아냐, 그건 그냥 하나의 길일 뿐, 또 다른 길도 있어"라고 뒤틀어 말합니다.  


예수님은 또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참으로 그대들에게 말하오. 문을 통과하여 양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도둑이고 강도라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오."라고 하십니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문으로 이끌거나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된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자꾸만 예수님이 아닌 자신을 강조하거나, '더 넓은 길이 있다'며 성경 진리 그대로가 아닌 딴 소리를 하거나, 색다른 길 또는 방법을 전하거나, 지정된 불이 아닌 딴 불을 피워 향 제사를 드리려 할 때-이상하고 색다른 영성을 갖고 와서 예배하려 할 때-그건 궁극적으로 죽음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이요, 길이라는 겁니다. 


문은 하나 뿐-오직 좁은 문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문이고, 절대 진리의 문입니다. 

잊지 마세요! 그 문과 길은 바로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그리고 속지 마세요! 진리와 천국을 향한 길이 그밖엔 없습니다. 

영원히 아멘.



'성경묵상연구 > 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 처녀 비유에 숨겨진 비밀  (12) 2018.11.17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  (11) 2015.08.27
주님을 깨우라?  (10) 2015.05.10
누구에게 보일 것인가(마6'1-6)  (8) 2015.03.28
갈릴리 여인들  (14) 201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