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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General Topic

경배도우미: 성경대로의 메시아수난

(독자가 다니시는 교회의 대안용은 아닙니다. 형편 상 경배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모임과 성도의 친교에도 힘써야 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진리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공의와 정의, 의의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오직 아버지의 의로움 때문이라면
오래 전 이 세상을 여러 번 진멸하실 수 밖에 없으셨지만
길이 참으시고  
물로 크게 한 번 씻으시고
무지개로 언약을 세우시고
인류에게 구속의 길을 여신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존귀한 성자님,
독생자 예수 크리스토님을 우리 위하여
아낌 없이
아낌 없이
아낌 없이
보내 주셨습니다

보라-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으시고
저주를 도말하시고
죽음 권세를 영원히 이기시고
보좌 위에 앉으신
주님,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오 할렐루야~!
영광을 돌립니다
거룩하고 존귀한 그 이름을
드높입니다
찬양과 경배를 홀로 받으시기 합당하신
어린양 주 예수 크리스토!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노래합니다
모든 존영을 바칩니다

우리의 몸과 맘, 삶을 다하여
주님을 기리기 원합니다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라도
영광을 받기를 기뻐하시는 주님께
우리, 향기가 되기 원합니다
야웨 하나님, 주 예수 크리스토님!
우리를 받으소서

우리의 경배
우리의 찬양
우리의 믿음
우리의 헌신
우리의 시간
우리의 몸과 맘
우리의 영혼
우리의 삶
우리의 모두를
받으소서!

예수 크리스토님
유월절 어린양이 흘리신
그 넘치는 보혈
샘 솟듯 흘러 나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고대 아람나라의 나환자였던
나아만 장관처럼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풍덩~
잠길 수 있는
그 보혈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양의 피
고맙습니다 주님

본래 죄인일 수 밖에 없던
우리의 '원죄'와
죄책과
과거의 모든 죄를 속하시고
지금도 믿음으로 나아 오는 사람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시는 주님
어린양의 피로 덮어
보호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의 언행심사 간
모든 허물과 잘못 죄와 악을
용서하소서


거룩한 보혈로
거룩한 보혈로
거룩한 보혈로
씻기시고 덮으소서
나의 주님

오 영광, 할렐루야!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와
그 어린양께
영원히 존영을 바칩니다
 
만세 전 죄값을 대신 치르실
죽임 당할 어린양을 예비하신
야웨 이레-예비하신 공급자 하나님

어린양이 채찍 맞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야웨 라파-치료자/의사이신 주님

어린양의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와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세상이 모르는 참 평화를 안겨 주신
야웨 샬롬-평화의 군주님!

어린양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의 기쁨을 주신
야웨 니씨-우리의 깃발과 승리여!

어린양의 피로 우리를 씻기시어
우리를 세상과 구별지으시는
야웨 메카데쉬-우리를 성결케 하시는 주님

어린양이신 선한 목자, 대 목자의 이끄심을 통하여
우리를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이끄시는
야웨 로이-우리의 목자님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임마누엘
성령님으로서 지금 우리 속에 살아계시는 하나님
야웨 샴마-거기 계시는 주님!

어린양께 복종하고 그 뜻을 전달하는
하늘의 모든 천군천사를 이끄시는   
야웨 쩨바옽-만군의 주님

어린양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고
우리에게 의의 예복, 갑옷, 의의 가슴판을 주셔서
의인으로 삼아 주시는
야웨 치케누-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

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홀로 영원히 살아계시는 야웨-자존자
가장 높으신 하나님-엘리온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따이
우리의 도움이신 바위-에벤에제르의 하나님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시고
홀로 모두 받으소서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귀한 피를
우리 죄를 모두 씻기시고
용서하시고
덮어주시고
지켜주시는
보혈의 샘!
세상 죄를 홀로 지고 가신
어린양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경배하나이다

노래합니다

구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죄짐을 벗기고 자유 주는 오 주 피의 힘 그 피의 힘
  유혹과 악 이겨 승리 주는 오 놀라운 주님 피의 힘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어린 양 주의 피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귀하다 어린 양의 피

  정욕과 교만도 떨쳐 내는 오 주 피의 힘 그 피의 힘
  갈보리 보혈로 너 씻겨라 오 놀라운 주님 피의 힘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어린 양 주의 피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귀하다 어린 양의 피

  우리를 눈보다 희게 하는 오 주 피의 힘 그 피의 힘
  죄 얼룩 다 씻고 생명 주는 오 놀라운 주님 피의 힘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어린 양 주의 피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귀하다 어린 양의 피

  왕의 왕 주 예수 섬길 힘은 오 주 피의 힘 그 피의 힘
  날마다 노래로 찬양하리 오 놀라운 주님 피의 힘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어린 양 주의 피
     권능 있네 놀라운 권능 귀하다 어린 양의 피

성경대로의 주님의 수난을 묵상해 보렵니다.

[카톨맄 교회력에 따라 '수난절 기간'이어서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토님의 몸인 하나님의 참 교회는 제도교회가 만들어 놓은 소위 교회력에 묶여 운영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일년 내내 교회력에 묶여야 한다면 어디서 어디까지입니까? 카톨맄은 거의 맨날 서로 다른 죽은 옛 '성인'의 고유한 기념일로 교황청에서 지정해 놓고 지킵니다. 카톨맄 교회력을 지켜야 한다면 그것도 다(!)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지킨다는 겁니까? 우리는 교회력에 따라 '재의 수요일', '사순절' 따위를 꼬박꼬박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통회할 게 있다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면 될 것을..]

다만 한 번 이 시즌을 계기로 성경이 말하는 수난을 올바로 깨닫자는 뜻에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과 경륜을 성경대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입견과 편견 탓이지요. 특히 주님의 수난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영광과 권능, 권세만 생각하지 그 분의 수난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대인들이 그렇지요. 유대인들의 관념 속에는 수난하신 메시아 개념이란 없습니다. 메시아의 수난은 그들 마음 속에 도무지 자리 매김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22편이나 이사야 53장을 메시아의 수난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수난하신 예수 크리스토님은 유대인들이 오래 기대하고 열망해 온 메시아 후보 명단에서 배제된 대상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구약 성경의 메시아 예언이 예수 크리스토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을 적극 내세우지요.
그들이 예수님 당대보다 훨씬 이후에 만든 구약 성경인 '마쏘라' 사본 자체가 그런 식으로 왜곡된 흔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수난 예언의 결정적인 본보기인 시편 22:16 끝 부분을 이상하게 뒤틀어 놓았지요. 아예 문장도 안 되게끔 전혀 다른 뜻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저의 글 '시 22:16 뒤틀지 마라' 참조.]
 
그 이유는 고대의 그리스어 구약성경인 70인경(Septuagint, LXX)이 기독교를 지지하려고 쓰여졌다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오해한 데서 옵니다. 그러나 70인경 역자들 자신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학자들이었고 이 성경이 쓰여진 시기 상으로도 예수님 탄생 훨씬 이전이기 때문에 타임 머쉰이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마쏘라 사본이 메시아에 관한 기독교 교설들을 애써 피한 흔적 같은 게 있습니다.

이것도 주님이 자기 백성에게 배척 당하고 버림 받으리라는 예언의 성취인 셈이지요.

이 점에서는, 이스마일(성경의 이슈마엘) 즉 '이브라힘(성경의 아브라함)의 아들의 후손'이라는 아랍계의 한 명인 무함마드가 창시한 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교는 예수님을 무함마드 다음 가는 '이싸'라는 대언자로 받들지만, 이싸의 수난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도 예수 크리스토가 아닌 사형수 '유다'로 해석하지요. 

아무튼 대다수 유대인들이나 모든 회교도들의 이같은 견해와는 달리..

놀랍게도 구약의 대언자들은 입을 모아 한결 같이 메시아의 수난을 예언합니다.

한 번 볼까요?

1. 이스라엘의 조상이자 이슈마엘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수난을 내다 봤습니다.
아브라함은 성자님을 뵈었고 아들 이짜크가 메시아의 한 예표임을 느꼈습니다(창 22:1~14 참조). 아브라함은 또 멜키쩨뎈이 하늘 대사제 예수님의 그림자/예표임도 느꼈습니다(창 14:18~20). 바로 아브라함이 만난 성자님을 통하여 알 수 있었지요(요복 8:56).
 
2. 유대인들이 가장 받들고 중시하는 토라(모쉐 5경)의 기자인 모쉐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3:15(끝), 21을 잘 살펴 보십시오. 이것은 메시아의 수난을 예표한 것임을 모쉐는 알고 있었습니다. 모쉐는 대언자였기 때문이지요!

아담/하와의 둘째 아들 아벨은 믿음으로 최초의 어린양 제물을 바쳤고 자신도 카인에게 희생 당함으로써 예수님의 예표가 됐습니다(창4:4, 히11:4). 창세기 기자인 모쉐는 이 의미를 익히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모쉐는 또 광야에서 만든 성막과 그 내용물, 법궤, 제사 제도 등이 장차 오실 예수 크리스토의 수난을 예표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것입니다. 
모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크리스토의 수난 전에 엘리야와 함께 셋이서 만나 수난에 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마 17:3). 물론 유대인들은 전혀 믿지 않는 대목이지요. 

3. 하나님과 오래 동행한 고대 의인 에놐은 예수의 (수난 후) 영광과 미래 심판을 내다봤습니다(유다 14,15). 의인 욥도 비록 히브리인은 아니었으나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내다 봤습니다(욥 19:25,26).

4. 다윋은 구약 시대 때 메시아의 수난을 가장 많이 내다 본 사람의 한 명입니다. 왕이지만 대언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가 메시아 수난/부활에 관해 쓴 예언 기록들입니다.

시 16:9,10 (행전 2:23~35과 대조해 보십시오).
시 22:1~21 수난 - 이 부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으로 모두 성취됐습니다! 복음서의 수난 부분과 대조해 보십시오.
이어지는 22:22~31은 부활/승천/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과 대조해 보십시오!     

5. 대언자 이사야는 예수님의 수난에 관해 가장 많은 예언을 한 사람입나다(이사야 52:14, 53장 전장). 포로 시대 때 바빌로니아-페르시아/메대 제국 정부의 고관이었던 히브리 대언자 다니엘도 메시아의 수난을 내다 봤습니다(다니엘 9:26).

또 다른 대언자 제카리아(스가랴)의 제카리아 서 12:10은 이스라엘 백성이 배신하고 찌른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시 22:16b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일부 사본은, "그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로 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바로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심을 암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13:7은 예수님의 체포와 수난으로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마 26:31 참조).
그리고 그 앞 13:1은 바로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샘을 가리킵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고 이루려 오셨기에 메시아에 관한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이루려 하셨고 그대로 성취됩니다(예: 루카 22:37).
지상에 나타난 그 어떤 자칭 '메시아'도 이처럼 철저히 구약을 이룬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크리스토 외에는 모두 가짜 메시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을 드리진 않습니다만 유월절(저주가 이스라엘을 넘어 감, 출 12장)/무교절(누룩없는 떡을 먹는 날, 출 12:15)/초실절(첫 수확 기념일, 레 23:10) 등 이스라엘의 세 명절은 메시아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에집트에서의 첫 유월절날 어린양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집집마다 대문에 바른 것은 바로 예수 크리스토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악의 형벌과 저주에서 지켜 준다는 암시지요. 또 어린양의 고기와 누룩 없는 빵, 쓴 나물 등은 모두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또 예수님은 잠자는(죽은) 자들의 첫 부활의 열매였습니다(코린토A 15:20)!  
 
그밖의 여러 대언자들이 메시아의 임재와 승리, 영광을 부분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대다수는 여전히 마음이 강퍅하여 메시아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유대교만 그런가요? 수난을 잘못 이해하는 기독교 교파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믿긴 믿지만 성경을 오해하기에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방문 당시 북경의 러시아 공사관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람(예수)의 상을 보고 놀랐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식의 성화상이었지요. 만약 연암이 성경대로의 예수님을 올바로 소개 받았다면, 한국은 더 일찍 제대로 된 복음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구교나 정교회 등 몇몇 교파들은 단적으로..정도 차는 있지만, 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크고 작은 예수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묵상하기를 좋아 합니다. 그들이 있는 곳 어디에나 이 십자가 예수상이 있는데..그들은 이것이 우상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이 아닌 그들의 시스템에 따르면, 신부들 즉 그들의 사제들이 '사제'이려면 고대 성막/성전의 사제들처럼 끊임 없이 매 번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짐승 대신이라도 매 번 드려야 할 제물이 있어야겠고 그래서 예수님을 매 번 죽으시는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 신앙의 상당량은 '상상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관상기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성화상기도('이콘 기도'라고도 하며 정교회에서 유래된 특정 모양의 성인상 앞에서 기도함)나 미로 명상(labyrinth: 미로 모양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묵상) 따위도 일종의 상상의 종교행위이지요. 결코 성경대로 믿는 기도나 신앙이 아닙니다!]

사제들은 구약 사제들처럼 짐승을 죽이는 행위를 하지 않지만, 미사 도중 성체성사를 할 때마다 매 번 크리스토가 죽는 상상을 합니다. 얇고 둥근 면병으로 된 그들의 '성체'가 곧 예수의 몸이라고 주장하지요. 신도들은 사제들에게서 이 면병을 받아 먹는 성체성사를 치러야만 소속 의식을 갖고 안심합니다.
반드시 사제 앞에서 해야 하는 고백성사도 그런 맥락입니다. 실로, 사제들에게 매인 사람들이고 사제제도에 묶인 일종의 '노예'들인 셈이지요. 성령님이 계신 곳엔 자유가 있는데 카톨맄 신도들이 과연 자유롭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직접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건만, 그들은 온갖 경들을 외며 사제들에게 고백성사를 합니다.
아직도 수천년 전의 구약시대를 탈피하지 못한 현장입니다. 이것은 카톨맄 시스템이 신도들을 사제들에게 종속시키고 사제단에 묶어 두기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종교의 영(spirit of religion, religious spirit)에 속박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성체' 속에 '작은 예수'가 갇혀 있다고 믿고 예수님의 몸으로 받들어 먹습니다. 면병은 왜 모두 둥글까요? 숨은 이유가 있을 터입니다. 그들은 또 '감실'이라는 데다가 예수님을 "모셔 두고" 있다고 굳게 믿고들 있지요.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크리스토를 섬기는 게 아니라 크리스토가 사제 제도를 억지로 섬기게끔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토가 사람들을 섬기신 것은 땅에 계시던 지난 날로 족하고 충분합니다!

카톨맄의 예수님은 지금도 고대의 짐승처럼 매 번 죽으시고 피를 흘리셔야 하는 예수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신부'들은 아직도 고대와 같은 '사제'들입니다.
[카톨맄교의 수장이며 모든 사제단의 대표인 '교황'은 늘 총각이거나 홀아비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거룩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고대의 모든 사제들은 다들 결혼을 했으며 카톨맄이 '초대 교황'으로 받드는 페트로조차도 장가를 가 아내를 데리고 선교를 다닌 사람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참 사제는 ('성소'를 받아 특정 신학교에서 훈련된 총각/홀아비들이 아니라..) 바로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이시며, 우리 신자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사제입니다(페트로A 2:9). 그리고 예수 크리스토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구약 제사를 단번에(!)-딱 한 번 만에-영원히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피를 흘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그것이 끝났다!)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구약의 대사제들이 백성들의 죄악을 위해 매 번 치러야 했던 피비린내 나는 지긋지긋한 동물제사를 통한 죄인들의 구속 사역을 단번에, 영원히 완결 짓고 끝내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다윋/슐로모 왕 시대엔 한 번에도 수 천 마리씩, 나중엔 이루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짐승들을 쳐 죽여 각을 떠서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제들은 오늘 말로 정육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또..안 그래도 후세에 이상한 제사종교가 나올까 봐 히브리서 기자는 '단번에'라는 말을 단단히 강조해 주고 있지요. 한 번 볼까요?

"그 분은, 대사제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그 다음에는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처럼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분이 단.번.에. 자신을 바쳐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7:27 사역)

"그분은 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가 아닌, 오직 님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성소로 들어 가셨습니다."
(히 9:12)

"이 뜻을 따라 예수 크리스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히 10:10)


다음은 카톨맄 성체성사를 정면 반박한다고 할 수 있는 성구입니다.
잘 보십시오. (괄호 속은 필자의 것)

크리스토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감실)에 들어 가시지 않고 / 오직 참 하늘에 들어 가셔서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사제(사제)가 해마다(매번) 다른 것들(미사)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듯 자주 자신을 바치려고 하지 않으실 테니 / 그러려면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지만 이제 자신을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애려고 말세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히 9:24,25,26)

크리스토님은 카톨맄 성당의 감실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크리스토님은 좁고 얄팍한 면병 속에 짓눌려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크리스토님은 하늘에 계시고 신자들의 영 속에 계시며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계십니다! 
성소를 받아 홀몸으로 지내면서 신학교에서 훈련 받은 사제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엄연히 영적인 사제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페A 2:9).

예수님이 영원히 끝내고 완결 지으신 것을 매번 피를 흘려가며 또 다시 죽으실 일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두 번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히 6:6b).
 
카톨맄은 사제들이 행하는 성체성사로써 신도들의 죄가 사해 질 수 있다고 굳게 믿지만,
우리는 성경을 따라 나 자신이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회개하고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냐고요..?

다음을 보십시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크리스토의 피가 어떻게 여러분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히 9:14)

우리는 사제가 아닌 크리스토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성경이 구약제사처럼 매 번 사제를 통해 드려야 하는 성체성사/미사를 지지합니까? 천만예요! 다음을 보십시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매번) 늘 드리는 것 같은 제사로는 나아 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히 10:1)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매 번 '사제'들이 집전해야 하는 카톨맄의 성체성사가 구약 제사보다 더 잦아졌고 더 번거로워진 제사인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라도-지금이라도 (사제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하늘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장담하냐고요?
다음을 보십시오!

"그 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크리스토)을 믿음으로써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에페소 3:12)

"따라서 형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기에.."

(히 10:19) 

"그러니 우리는 위대한 대사제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곧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그러므로 담대히 은총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자비를 얻고 때에 맞는 도움의 은혜를 찾아 누리도록 말입니다.
" (히 4:14~16 중략)

"그분을 향하여 우리가 지닌 담대함이 이것입니다. 곧 그분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요서A 5:14)

우리는 그들처럼 사제들 아니면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담대히 나아 갑니다! 거듭난 우리는 죄인 아닌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하여 늘 크리스토께 용서 받기 때문입니다.

소위 수난절 기간만이 아니라..
언제나 자주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 묵상하고 동참하며
늘 승리하는 삶이 되길 희구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 크리스토의 크신 은총과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
성령님의 감화하심과 기름부음, 넘치는 복이
여러분에게 항상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008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