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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전도자 슐로모4-전도자의 결론 (메시아계보대장정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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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슐로모 왕이 당대 최대의 전략도시 하조르 요새지에 세운, 6개 방을 곁들인
  대문 (왕들A=왕상 9:15) 


예배의 핵심은 말씀 경청


전도자 슐로모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미련한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전도서 5:1).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경청.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성경 말씀을 가질 수 있고 성령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우리 다수는 성경책을 읽고 묵상하며..또 거듭났으니 성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에 모시고 있으니 현 지상에서는 이보다 더 가까울 순 없지요!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께 어리석은 예배를 드리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자신을 위한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실천/실행하는 것이겠지요(야코보 1:22~25).

어리석은 예배가 무엇일까요?
악을 행하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1b 절). 죄악을 행하면 하나님께 즉각 회개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지요. 회개란 것을 하고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똑같은 죄를 짓고 있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이 위선이 버릇이 되면, 그 다음은 불도장 찍힌 양심이 돼 버립니다(티모테A 4:2). 위험한 상태죠. 우리는 거듭나기 전의 (옛) 행실을 놓고 거듭 회개하는 초보 단계를 벗어나야 합니다(히 6:1).


인간은 미래를 모른다

전도자가 본서에서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은 바로 미래의 사안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전 3:11b,22b, 6:12b, 7:14b, 8:7,17, 9:1, 10:14b, 11:2b,5b,6).
미래를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내일 일, 아니 다음 순간을 알지 못합니다.
혹 예상은 할 수 있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래를 안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쟁이들과 가짜 예언자들..또는 해럴드 캠핑(패밀리 레이디오 대표, 전직 장로)처럼 재림 날짜 계산을 하는 문제 인사들입니다.
그 날은 분명히 하나님만 아시고 하늘의 천사들도, 심지어는 아드님(예수 크리스토님)도 모른다고 했는데, 부득부득 "안다"고 주장하니 가증한 일입니다.

    [ 점술꾼들이 상대방의 미래를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악령들을 통해 얻은 비슷한 추정을 내 놓는 것입니다. 점 치러 가는 사람에게 지폈거나 씌웠거나 역사하는 영들은 점 후보자의 속을 어느 정도 알기에 점쟁이에게 들붙은 악령에게 알려 줍니다. 물론 사람들은 잘 모르지요. 점쟁이의 혼은 악령들이 주는 정보를 받아 해독합니다. 이런 영들은 개인이 안팎을 잘 아는 친숙령(familiar spirits) 그룹에 속하는 영들입니다.

점을 볼 때 점술꾼들이 "용케" 알아 맞춰 "용한 점쟁이"로 봐 주는 경우는 이런 배후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 보러 간 사람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저주가 머물러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점 본다는 것-있을 수 없는 일이며 철저히 회개하고 온전히 끊지 않는 한 저주에서 놓일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끊어 주신 저주를 제 손으로 도로 뒤집어 쓰는 셈이지요.
아울러 신자는 엉터리 예언으로 '점술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미국에서 뜨는 '대언자'들이 많은데,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참 대언자인지 우리는 그들의 뿌리와 열매를 밝히 알아야 하고 성경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장래 있을 일들을 미리 그의 종들에게 알리시고 행하십니다.
교회엔 예언의 은사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세에 교회에 '특별계시'가 있다고 성경은 밝혀 줍니다(행전 2:17~21).
성령님은 우리가 꼭 밝히 알아야 할 중대한 결정 사안과 미래의 일들은 우리의 영과 양심을 통해 꼭 필요한 때에 미리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언가'나 점술가가 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게 아닙니다. 개인과 교회(거듭난 성도들의 공동체)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누구에겐가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해서 자꾸 묻고 답하다 보면, 점술가가 되기 쉽고 상대방을 그렇게 만들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시는 것 한 가지가 점술과 거짓 예언입니다(민수기 23:23, 신명기 18:10,14, 예슈아=여호수아 13:22, 슈무엘A=삼상 15:23, 왕들B=열왕하 23:24, 이사야 44:25, 예렘 14:14, 23:25,26, 27:10,14,15, 29:8,9, 미카 5:12, 제카리아=스가랴 13:2, 말라키 3:5, 마태 7:15, 24:11,24, 페트로B 2:1, 요서A 4:1, 요계 20:10, 22:15).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 성령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꼭 필요한 때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주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점술가, 세속 예언가들은 결코 지구촌의 미래, 역사의 미래, 하나님의 미래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안다면 싸탄에게서 얻은 거짓 정보일 뿐입니다.
"용케" 알아 맞춘다고 해도 얼마 안 가 거짓 예언임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뿌리와 열매를 보아 알 수 있지요.


전도서의 결론

전도자의 간증수기와도 같은 전도서의 결론은..
 
    첫째로, 하나님이 주신 삶을 감사하며 즐기되 아무 낙이 없을 때가 오기 전 하나님께 귀정(歸正) 내지 귀착(歸着)하라는 것입니다(12:1). 혹시나 마음이 떠나 있다면 주님께 되돌아 가 하나님께 늘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침륜하지 말고 뒷걸음 치지 말고 믿음과 신앙의 절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경계선을 분명히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힘이 스러지고 현저히 쇠약해질 때가 옵니다(12:2~7).
개인의 종말, 즉 죽을 때가 옵니다. 물론 노년까지 강건한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퍽 드물지요.
 
전도서 12:1~8은 개인의 종말을 암시/시사/상징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슐로모 자신의 종말을 먼저 고백하려는 뜻입니다.

12:12을 보면 이 전도서를 쓴 주 목적이 슐로모가 늘그막에 자신의 아들 레호보암에게 가르치려고 썼다는 추정을 하게 합니다(왕들A 12:2). 이것은 잠언의 많은 부분들이 그러함과도 같습니다(잠 1:8, 2:1, 3:1, 4:1..등).
그러나 아버지의 과거를 너무나 잘 아는 레호보암은 슐로모의 기대에 부응해 주질 않습니다. 레호보암은 하나님이 싫어 하시게 되는 한 악인입니다. 그의 나라는 결국 두 동강이가 나고 맙니다.

그러나 레호보암은 슐로모에 이어 메시아 선조의 대열에는 포함됩니다. 슬프게도 그는 메시아 선조들 중 본격적으로 사악한 사람의 한 명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당대 최고의 현인 슐로모가 온갖 슬기를 짜내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쓴 잠언과 전도서가 그 아들 레호보암 왕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까요?
슐로모의 지난 과거 행실이 아들에게 충분한 교훈과 영감이 될 만큼 모범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부모의 신앙 교훈은 자녀에게 보여 줄 행실과 열매로 뒷받침 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전도서의 내용과 결론은 옳습니다.

전도서의 총 결론은 바로 맨 끝 절 부분이지요.

    "들은 바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이것이 사람이 할 일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함께 모든 숨은 일들까지 선하든 악하든 심판에 붙이시리.
" (12:13,14)  


우리가 예수 크리스토와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 경외와 계명 준수 즉 말씀 순종을 잘 하면
결국 심판은 우리에게 덜 두려운 대상일 것입니다.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