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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뉴하우스의 돌보며걸으며

뉴하우스의 파리 카타콤 견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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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번쩍 나게 하는 수많은 차량과 거리의 사람들.
그 거리를 가로지르며 도시 한가운데 센 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을 끼고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웅장한 고전 양식의 라임스톤(석회암) 빌딩들의 숲은 정말 장관이고 예술이다. 

여기는 파리.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느낌과 더불어...하다 못해 진열된 과일들마저도 예술인 이 곳의 분위기에 나는 쉽게 매료된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충분히 든다.

그러나 ‘와우’ 하는 감탄과 신나는 기분, 그리고 모처럼 누리는 여유와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이름도 거창한 화려한 '예술의 도시' 파리 안에 숨어 있었다. 여느 여행이나 마찬가지로 봤다는 것, 나도 갔었다는 자기만족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유독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여행지도 있다. 

그래선지 파리 여행 하면 만인의 정해진 코스인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노틀담 대 성당 외에 가 볼 만한 수많은 유적과 아름다운 공원 그리고 센 강물 위 크루즈, 기막히게 맛있던 카푸치노 등 이 모든 것들도...카타콤(지하묘지)에서 내 마음과 눈이 받은 충격을 지우진 못 한다. 

카메라에 선명히 찍혀 남겨진 해골과 뼈로 이룬 인산인해.
그러나 여행 중 카메라가 필요 없는 곳이 있었다면 바로 파리 외곽지대의 이 카타콤일 성 싶다.
왜...?
카메라를 사용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내 눈이 사진을 찍어 앨범 아닌 내 가슴과 기억 속에 저장한 덕이다.

여느 관광코스와는 달리 길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출입구가 말해 주듯 좁은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 간다. 희미한 불빛이 우리을 맞는다. 석회암을 파내어 생긴 공간이다. 음침하기 이를 데 없다. 

그칠 기색이 없이 천장에서 쫄쫄거리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내는 소리가 죽은 듯한 적막을 깨고 너무 크게 귀청을 때린다. 차갑게 떨어져 내 머리를 적시던 물방울에 깜짝 놀란다. 섬뜩하다.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나 물세례를 주며 아는 척 하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어쩌다 두런두런 하는 다른 관광객의 소리가 있으나 아무도 큰 소리로 신나게 이야기 하는 이는 없다. 사방의 뼈들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다시 맞추어져 되살아 나지 않는 한 그저 마냥 적막한 곳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냥 칼슘 덩어리일 해골과 뼈의 산더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Stop! This is the Empire of Death.”(정지! 이곳은 죽음의 제국입니다)라는 싸인이 한여름의 더위를 싹 쓸어 간다.

터널 양쪽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해골과 해골들. 뼈와 뼈들...
얼마나 겹겹이 쌓여 있나 안을 흘깃 보면 끝이 없어 보인다. 엄청난 수의, 온갖 인체 부위의 뼈들이 나란히 줄 맞춰 빼곡히 쌓여 있는 모습에 이내 질려 버린다. 세상에 태어나 이처럼 많은 인간 잔해를 한 자리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나 혼자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앞서 가는 남편과 아들아이를 놓치면 안 되기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나니 호기심이 발동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한 때는 다 살아 움직이며 파리의 거리를 누비던 이들 아닌가? 궁금해진다. 뭐하던 사람들 일까? 누구 누굴까? 각 자 이름이 있을텐데. 여자일까, 남자일까? 아주 작은 해골도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도 있나 보다.

금실로 수 놓은 귀족 옷을 입던 이도 있었을 것이고 평민도 있었을 것이다. 빵 굽던 이도, 치즈를 만들던 이도, 와인 메이커도 있었겠지. 채석장에서 라임스톤을 캐던 석수도 있겠지. 자기가 파던 채석장에 다시 들어 와 있는지도 모르고. 손에 물 한 번 안 묻히고 산 귀족 부인도, 그녀의 하인들도 다 이곳에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나 한 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지.

당대의 귀족도, 평민도, 혁명에 의해 희생된 자들도, 빈민도 남녀노소가 구분 없이 뒤섞여 있다. 부와 지위들 누리며 살던 귀족의 다리 위에 평민이 다리를 턱 걸치고 있지는 않을까고 상상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살아 있을 땐 분명 이렇게 뒤섞여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 텐데. 

결국 죽음 뒤에라야 인간 사이에 생긴 격과 담 그리고 거리가 이렇게 어이없이 허물어지나 보다. 차별 없는 곳이 죽음 후의 삶 같다. 그렇다면 죽음의 결국은 이 카타콤이 보여 주듯 이들의 뼈가 모여 있는 세상 한 구석에 불과한가? 만인들의 육신의 잔해가 머무는 곳이 우리의 종착역이란 말인가?
 
파리의 건물 대다수는 석회암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유명한 도시의 지하는 돌을 파 내고 난 채석장들이 거미줄 같은 터널을 이룬다고 한다. 지하철이 다니는 길도 같이 엮어져 있다. 물론 접근금지 지역이 대부분이고 극히 작은 일부만 관광지로 오픈돼 있다.

이 카타콤엔 1786년 부터 뼈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바로 이 때는 프랑스혁명이 고조돼 가던 무렵이다. 묘지는 점점 붐비고 필요한 땅이 모자라자 정부는 묘지 자리를 회수하면서 거기 매장됐던 옛 파리 시민들의 유해를, 외곽지역 여기저기 뻥뻥 구멍이 뚫린 라임스톤 채석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장작업은 1860년까지 계속된다. 카타콤으로 옮겨진 유해만도 5-6백만 구에 달한다고 한다. 

관광객에게 극히 일부 오픈된 곳만도 길이가 1 마일(1.5km)이나 된다. 천장까지 평균 높이는 5 피트(1.5 m). 그 뒤로는 차이가 있는데 어떤 곳은 20야드(18m)나 된다고 한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 속에서 분주히 사는 우리.
우리 각자의 삶에도 끝이 있다.
내가 바라보던 그 수많은 인생의 지나간 흔적의 영원한 결국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 인생의 결국을 나는 안다.
이 죽음의 제국이 내 삶의 종점이 아닌 것을. 

나 대신 사망의 권세를 깨 버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안다.
죽음이 나를 뼈들의 산더미 속에 가두지 못한다는 것을.
천국의 소망이 내겐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과의 만남은 내가 아직 산 자들의 땅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미 죽어 있는 저 많은 사람들, 아니 죽음의 흔적만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외치고 아무리 전해 주어도 그저 벽에 반사되어 허공을 때리며 되돌아 오는 메아리일 뿐임을. 소용 없다는 것, 이미 늦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카타콤 밖에 나오니까 환한 빛이 잠시나마 죽음의 흔적 앞에서 차가워졌던 마음을 녹여 준다.

나는 아직 산 자들의 땅에 있어 감사하다.
아직은 들려 줄 수 있어 설레고 가슴이 벅차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 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찬송가 15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