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비평/미술

미켈란젤로 종교작품 속 동성애 모티브


성경 인물들 다수가 반라 또는 전라로 그려진 시스티네 성당 천장화(미켈란젤로)

(다음 링크에서 좀 더 화상도가 높은 사진을 대할 수 있다. >)



미켈란젤로 종교작품 속 동성애 모티브



김삼  
 

카톨릭은 계시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종교다. 신본주의 아닌 인본주의 신앙이다. 크리스토보다는 교황 중심, 진리보다는 전통 중심이며 마리아 흠숭주의도 바티칸 교황청의 작품이다. 그래서 인본적이라는 것이다. 전통 중심의 교회가 신본적일 수 없다! 신본주의라면 마땅히 성경 중심이어야 한다.  
 
거대한 성당과 요란 뻑적지근한 각종 장식물들, 교황/추기경/대주교 등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거창한 옷차림 등에서 뭔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영적 감각이 둔한 탓이다. 마찬가지로 바티칸 시국의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 안팎의 온갖 복잡다단한 그림과 조각품, 장식 등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영적 안목이 결핍된 셈이다.
 
비신자라면 모르되 신교권의 기독교/종교 미술 평론가, 교수, 아티스트, 칼럼니스트들이 카톨릭 문화의 전성기였던 중세/르네상스 시대 작품들을 '기독교 명작'의 진수라느니 '성서예술'의 극치라느니 입에 침이 마르게 호평, 극찬하는 것은 서글프고 위험하기까지 한 현상이다. 과연 거듭난 사람들인지 영적인 신자들인지 의혹스럽다. 비꼬는 게 아니라 솔직한 느낌이 그렇다.

2005년 봄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콘클라베가 열린 시스티나 채플(La Cappella di Sistine). 이곳 천장과 제대 쪽 앞 벽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본명: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걸작품'들이 널려 있다. 전교황 요한 파울로 2세는 생시에 이 낡은 작품들의 복원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교황을 뽑거나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그 곳은 '거룩한 성전'은커녕 왠지 불결한 영들이 득시글대는 '소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인가.  
 

르네상스 거장들의 동성애 성향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는 선배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에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질투심으로 이 천장화 제작에 임한다. 당대 명장들은 이탈리아 귀족들이 재정 지원을 해 주는 교회 미술 일거리를 놓고 암암리에 경쟁과 질시 속에 헐떡였다. 결코 거룩한 감정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는 동성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 동성애자들의 한 '수호성인'과도 같다. 그와 동명이인인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크쇼 호스트인 미켈란젤로 시뇨릴레 역시 유명한 게이 액티비스트다. 미켈란젤로란 이름의 뜻은 '천사 미카엘'이 아니던가. 천사장/대천사의 거룩한 이름을 이들이 욕뵈는 셈이다.  
 
동 시대 화가 다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벤베누토 첼리니, 지오바니 안토니오 바찌 등도 공적으로 남색 혐의를 받은 바 있고 도나텔로도 비슷한 의혹을 받았다. 바찌의 애칭(?)이 '남색자'(Il Sodoma)였다! 다빈치의 경우 지금도 이탈리아 현지에 그가 2개월간 수감/통제됐다는 장소에 유명한 남성 모델 추문 사건이 전해져 온다.
'라가찌'(ragazzi)라 불리던 당대 남성 누드 모델 다수는 견습생/도제를 겸했다. 당시는 동성애가 폭로되면 그대로 사형감이었다니 요즘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자유(?)를 누리며 활개치는지 실감 난다!
 
말하자면 당대 화가들은 목숨 걸고 순애보적(?) 동성애에 빠졌던 셈이다. 특히 도나텔로는 모델들을 고를 때 앞다퉈 얼굴이 핸섬하고 근육미가 뛰어난 미남 청소년들을 낚아 채다시피 하여 창작생활과 함께 수시로 동성애에 탐닉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 온다. 명화가와 미소년 모델 간의 '사랑'..뭐 그런 숨은 스캔들이 흔했다.

이런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한 교권의 주문에 따라 '거룩'하고도 불결한 작품들의 제작에 참여했던 게 역사적 사실이다. 


미켈란젤로의 동성애 문학
 
미켈란젤로는 시각적/정서적으로 남성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돼 있었기에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늘 갈등과 죄의식을 느끼며 작품에 반영시켰다(Wikipedia 'Michaelangelo' 항 참조). 그의 죄의식은 말년으로 갈수록 깊어진다.
 
그는 서정시인으로도 한 가닥 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의 생애'를 쓴 영국 미술사가 존 애딩턴 시몬즈(아들)는 1863년 피렌체 현지에서 미켈란젤로의 부오나로티 가문의 유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미켈란젤로의 시 여백에 적힌 고인의 조카손자 '젊은 미켈란젤로'의 메모를 발견했다. 미켈란젤로의 시 작품이 원형대로 출판돼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까닭은 '남성적 사랑'(amor virile)이 표현된 탓. '아모르 비릴레'란 문구는 르네상스 당시 '파이데라스티아'(paiderastia) 즉 남성 성욕의 완곡한 은유였다.
 
이 메모 내용으로 미뤄 보아 미켈란젤로 사후인 1623년 출판된 고인의 시와 소네트 중 연애시에서 남성대명사는 모조리 여성대명사로 바뀌면서 그의 호모에로티시즘이 카무플라주 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자신이 양성애자였던 시몬즈는 대명사들을 남성으로 도로 바꾸고 영문으로 옮겼다니 아이러니하다.

미켈란젤로의 시 작품 대다수를 차지하는 300여편의 소네트/마드리갈은 그의 제자이자 이상형 '연인'인 토마소 데이 카발리에리(Tommaso dei Cavalieri)에게 바친 연애시다. 둘이 처음 만날 당시 미켈란젤로는 57세, 토마소는 16세였다. 둘은 숨지는 순간까지 서로에 충실(?)했다.
 
또 1543년 처음 만난 이듬해 바로 세상을 뜬 16세의 꽃미남 체키노 데 브라치의 죽음이 못내 애석해 48수의 짧은 조시들을 썼다. 그밖에도 돈을 요구하는 경박한 모델 게라르도 페리니, 페보 디포지오 등과 동성애 관계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미켈란젤로는 다빈치처럼 평생 독신자에다 이성과의 연애 사실도 거의 없다. 당대인들이 실제로 그를 '남색자'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 미켈란젤로는 그림과 조각 속 '성서 인물' 대다수를 동성애자로 묘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룩한 성전'을 동성애의 영으로 가득 채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예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동성애적 성욕을 구체적/적극적으로 표현한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누드가 넘실대는 프레스코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스티나 천정화의 부분에 나타난 이뉴도(복수: 이뉴디)


시스티나 천장화나 전면 벽화를 보면 전나/반나 바람의 '성서인물'과 이교적 인물 투성이다. 차마 오래 못 쳐다 볼 만큼 얼굴이 뜨뜻해지는 노출 신들이 많다. 평론가들은 "왜 거룩한 명작을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고 이상하게만 보는가. 위선 아닌가?" 할지 몰라도 오히려 짐짓 '성스런' 작품으로 봐 주는 것 자체가 위선이 아닌가 싶다. 이래저래 카톨릭 예술은 위선 문화와 위선 종교의 첨병인 셈이다. 
 
세미누드는 로마/그리스 신상 조각에서 흔해도 알몸은 드물었다. 물론 사적인 작품들은 달라도. 중세 때는 아담/이브, 아기 예수의 묘사에만 누드가 사용된다. 그러나 르네상스 때는 도나텔로를 기점으로 특히 미켈란젤로(!)를 통해 종교화/개인화를 막론하고 남성의 전라를 포함한 누드가 성적인 오버톤을 '자제'한 채 활용되다가 바로크 시대 때는 여성의 누드가 주종을 이룬다. 
 
당대 예술엔 기독교와 이교적 요소들이 적당히 '짬뽕'돼 있었다. 시스티나 입구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파'로 장식돼 있다. 시스티나 천장화의 주요 '성경인물'들 사이에 낀 각 4명씩의 나체 미남청년 이뉴도(ignudo, '나신들'이란 뜻), 쿠피도를 닮은 발가벗은 남녀 어린이 등은 천사가 아니다. '남녀 천사'들 사이에 태어난 통통한 아기천사 따위는 하늘에 없다! 천사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 당대의 한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의 '잠자는 쿠피도'를 고가로 사서 서재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뉴도는 미켈란젤로 나름의 특이한 둘레 장식 소재가 되어있다. 이뉴도는 한결 같이 얼굴은 여성 같고 몸은 근육질이다. 그 일부는 참나무와 그 열매(도토리)를 끼고 있는데 참나무/도토리 모티프는 표면상 귀족 델라 로베레 가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내적으로는 남성/동성애를 암시하는 풍자적 심벌이다. 
 
시스티나 제대 벽화 '최후의 심판'의 캐릭터 다수는 훗날 성당 내 '포르노'에 낯 붉어진 교권 세력의 짜증과 명령으로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그나마 얄팍한 앞가림들을 덧붙인 것이다. 물론 교황은 있는 그대로를 더 좋아했다. 교권이 엄하던 중세 시대에 왜 이렇게 벗기길 좋아했을까? 물론 거듭나지 않은 철저한 죄인의 성적인 모티브 탓이다.
 
'최후의 심판' 속엔 미켈란젤로를 해코지하려던 추기경에 대한 복수심에 지옥 속에서 벌거벗은 추기경의 아래 부분을 뱀이 물어잡은 끔찍한(?) 풍자와 시니시즘이 포함돼 있고 사도 바톨로뮤의 한 쪽 손에 쥐어진 얼굴 가죽은 영락 없는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다(!). 이처럼 도처에 음모와 어젠다가 숨어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됐을 때 이것과 교황의 개인 채플 속의 나체 그림들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외설" 혐의를 받는다. 추기경 카라파와 몬시뇰 세르니니 등은 벽화 제거에 나섰지만 교황은 거부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죽으면서 '치부 가림'법이 통과돼 고인의 도제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페리조마(간단한 속옷그림)로 가린 것이 현재 그대로다. 미켈란젤로는 한 때 '외설의 시조'(inventor delle porcherie)로 불리기까지 했다. 카톨릭 역개혁시대 때 미켈란젤로 작품을 시작으로 모든 종교화의 치부를 덮어 가리는 대대적인 '무화과잎' 운동이 펼쳐졌다.

미켈란젤로의 동성애적 취향과 모티브는 천장화에 더 잘 나타나 있다. 최초 인간 아담의 창조 신을 한 번 보자. 영화 '벤허'의 도입 장면으로 쓰였고 여기저기 '홈피' 주제화로도 애용되는 유명한 그림이다. 흙으로 갓 지어진 나체 바람의 아담의 손에 손을 거의 마주 친 할아버지 모습의 창조주는 왜 하필 핑크 빛 옷을 입고 있을까.
 


아름답게 보이려고? 글쎄다..여기서의 핑크는 동성애를 암시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핑크와 로자(rosa) 즉 장미가 같은 뜻이었다. 당시엔 핑크 빛 장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장미는 물론 연애를 상징한다. 여기서 아담의 몸통은 근육질이어도 얼굴은 여성적이다. 그리고 다리는 안 쪽으로가 아닌 바깥 쪽으로 열려 일부러 치부를 드러냈다.

말 난 김에 짚고 넘어가는데, 중세 미술에서 처음과 나중인 영원하신 하나님을 길고 허연 수염 난 할아버지로 묘사한 것은 영원을 시공간 안에 가둔 참을 수 없는 인본주의 소치다. 구태여 하나님을 그려야 한다면 오히려 30대의 젊은 크리스토처럼 묘사했어야 했을 터이다. 크리스토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아무튼 제 2계명을 위배하는 소치다.
 
아담 창조 때 활기차고 박력 있는 모습의 창조주가 이브의 창조 장면에서는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짙은 보라빛 망토를 걸친 채 손을 펼쳐, 아름답기보다 어글리한 얼굴에 슬프고 어둔 표정, 기도하는 몽유병 환자 같은 포즈의 이브를 불러내는 듯한 괴이한 모습은 이미 동성애 환자이다시피 한 작가의 여성에 대한 거부감과 당대에 충만했던 여성 경시 사상을 암시한다.

여기 이브 보다는 같은 천장화에 나타난 '델피' 서양무당(sibyl)의 모습이 월등히 아름답다! [미켈란젤로는 서양무당들을 서구식 '예언자'들로 삼아 성경 대언자들과 대조시키고 있다! 이 역시 황당한 범죄요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모독이다.]  
 
여성에 대한 이런 거부감은 아담 이브의 범죄, 노아 홍수 장면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담/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에서 나무 위의 뱀은 유방이 있는 반인반수 여신 '릴맅'(Lilith)으로 묘사된다. 중세미술의 공통적 캐릭터인 릴맅은 아담의 '후처' 내지 첩이자 싸탄이다. 한국 초기의 이단사상가 김백문(이스라엘 수도원 대표)에게서 물려 받은 통일교 원리강론에 나타난 '하와'의 성 모티브와도 일맥상통한다. 멜 깁슨의 영화 '크리스토의 수난'에서 싸탄이 여성스럽게 묘사된 것도 별 다름 없는 맥락이다.


같은 장면에서 이브의 머리는 아담의 하체 쪽으로 바짝 근접해 있는 모습도 흔히 지적 받는 사항이다. 왜 하필 이렇게 묘사해야 했을까. 그런 은근한 '포르노'는 미켈란젤로 작품 도처에 나타난다. 범죄 후 쫓겨나는 이브는 영락 없는 남성으로 묘사돼 있다. 부드러움이라곤 전혀 없고 추악한 표정에다 고목 줄기 같은 근육질의 몸매다. 어떤 평론가는 시스티나 미켈란젤로 그림 속 여성들을 "젖가슴 슈워지니거"에 빗대었다. 이것은 여성경시 사상 외에도 어차피 범죄한 자는 이성애 아닌 동성애를 하게 돼 있다는 식의 미켈란젤로 식 철학인지도 모른다.
 
홍수에 쫓기는 사람들도 남녀 구분이 거의 없이 우악스런 체격을 갖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미켈란젤로의 잠재 의식 속에 동성애는 어차피 죄악과 추악과 연계돼 있다는 포기적 개념이 은연 중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그에게 성령님의 '영감'이 작용했을 리 없다. 성령님의 영감이 없는 예술은 이미 기독교 예술이 아닌 것이다!
 
벌거벗은 노아와 세 아들의 그림은 특히 흥미를 끈다. 이 장면에서 미켈란젤로는 동성애적 정서를 최대한 심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거의 장면마다 매 번 이런 어젠다를 갖고 제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시스티나 성당은 '성스런' 소재를 빌려 벌거벗은 음란과 동성애의 상징으로 가득 채워 놓고 그런 장식과 그림에 찬탄, 숭배까지 하는 우상숭배의 산당이다. 그렇게해서 미켈란젤로는 동성애와 음란의 악령에 사로잡혀 평생 시달린 사람이다!
 
혹 미켈란젤로가 동성애 표현 어젠다를 작품 속에 펼치지 않았다 해도, 또는 그가 혹 동성애자가 아니었다고 해도,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장식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다! 성령님과 무관하다. 다만 거룩을 빌미 삼은 악의 예술일뿐. 그래서 카톨릭 문화는 선악, 성속의 구분이 없는 인본주의의 '짬뽕' 예술이자 '짬뽕' 종교다. 물론 신교에서도 그런 위험성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다비데와 미동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걸작 '다비데'(다윗)상을 보면 미끈한 근육질의 알몸이다. 혈맥과 근육은 물론, 체모를 포함한 아랫도리까지 구체적으로 상세히 묘사해놨는데 완전히 그리스 신화 속의 신상이지 유대인인 진짜 다윋은 전혀 아니다. 진짜라면 필히 있어야 할 할례의 흔적조차 없다. 

'다윋'상은 본래 피렌체 대성당(Il Duomo)의 높은 벽면에 설치할 목적으로 작업이 시작됐다는 일설이 있다. 그랬다가 공공 장소에 세워두기로 도중 변경됐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비교적 빈약하고 두 팔이 길어진 것도 아래서 올려다 볼 때의 시각 차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 성당의 높은 벽면에 남성의 알몸 조각상이 선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신교 같으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미켈란젤로의 대담함 내지 뻔뻔함에 그저 경악스럴 뿐이다.

조각상이 설령 기독교에 받아 들여진다 치자. 그렇다면 오히려 무화과 잎도 아닌 어린양의 피묻은 양털로 덮여져야 할 '성서인물'들이 왜 이처럼 알몸들이어야 하는가. 나체여야 더 아름다운 것인가? 미술품은 으레 '껍질'이 벗겨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속물 근성이 아닌가. 나체는 고대로부터 음란과 직결된 주요 우상숭배 대상의 하나이기 때문. 
 
동성애자들은 특히 미소년을 탐한다. 성경에서는 동성애나 남창 윤락 행위를 '남색', 남색의 상대자인 어린 남자를 '미동'이라 했다. 철학과 예술이 발달했다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특히 남색을 유행삼아 즐겼다. 플라톤의 '향연' 등에 나타나 있듯 플라톤을 비롯한 주변의 철학자들도 수시로 미동을 상대하던 남색자였다. 그런 무리가 '위대한 철학자', '성현'으로 불린다. 왜 그럴까. 영적 분별력이라곤 전혀 없는 탓이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중세 문화의 화려한 동성애 신드롬은 카톨릭에 대대로 전승된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카톨릭교회 사제 수 만명이 남자어린이 성학대/성추행에 관련돼 있고 미국 카톨릭이 엄청난 배상금으로 망해 가는 이유는 뭣 때문인가? 시스티나를 비롯한 카톨릭 주변환경에 넘실대는 동성애 악령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뿐만은 아니다. 그 점에서 사탄의 간계는 퍽 성공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나 그 비스름한 중세 화가들을 위대한 기독교 예술가인 것처럼 '명작 감상'을 요구하고 권장하는 교계의 평론들을 읽을 때는 욕지기가 날 정도다. 더욱이 자신들은 거듭났으면서 거듭나지 않은 동성애자들의 작품을 존중하는 것은 가치전도가 아닌가! 어찌보면 카톨릭 교권 자체가 이미 외설로 규정한 바 있는 고전적 포르노를 '명작감상'이란 미명 아래 합리화하려는 위험한 경향이 아닐 수 없다. 이 어찌 영적 분별 결핍증 문화가 아니겠는가.
 
평론가들은 그런 것을 일일이 가려 가면서 우상숭배, 외설로 단죄하면, "기독교 문화의 틀과 영역이 좁아지고 줄어든다"고 친절하게 일러주며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란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이 즐기고 좋아 하는 감상/애호 대상으로 그칠 노릇이지 왜 기독교 문화계 전체를 통째로 자기 시각과 '영역'으로 끌고 들어 가며 매도하나? 우상숭배 유도 행위는 아닌가. 그렇다면 카톨릭이 열렬히 받드는 모든 마리아 초상과 '마리아 발현' 그림들, 역대 교황 초상화나 이콘도 '명작'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나? 어떤 건 빼고 어떤 건 넣고..불공평하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그런 평론가나 식자들이 보기에 '명작'이라곤 눈 씻고 봐야 얼마 안 되는 척박한 신교 문화권에서 설치며 아쉬운 나팔을 불 게 아니라 아예 카톨릭 사제가 되어 '기독교명작'들이 차고 넘치는 꿈의 패러다이스 바티칸에 들어가서 명작들 속에 푹 빠져 여생을 즐기면 더 보람되지 않을까? 참 생각할수록 영적으로 어두운 평론문화 풍토가 아닐 수 없다.
 
중세 카톨릭 문화 자체가 프랜시스 쉐이퍼의 이른 바 '은총'의 소산이 아니라 인본주의와 우상숭배의 일환임을 왜 모르는가. 이런 현상은 기독교의 뿌리를 하늘이 아닌 땅에, 예루살렘이 아닌 로마에 두는 탓이다. 거짓 교회와 참 교회의 분리, 차별화가 절대 필요하다.

기독교 예술인, 미술평론가들이여. 로마로 가는 길에서 빠져 나오라! 육안과 감관에 속한 시계에 묶이지 말고 그 너머 영들의 세계를 직시하라! 성령의 도움으로 현실 너머 영계를 꿰뚫어 보는 형형한 안광을 갖자. 참된 기독교 예술은 거듭난 자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풀어 나가는 것이며 그 본질은 세상이 아닌 저 위에 있다. 그리고 기독교예술의 참된 평가 기준은 신약 필리포 4장8절에 있다. 카톨릭 미술이 이 기준에 맞다고 생각되는가?


'문화예술비평 >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러와 '기도하는 손'의 경건미?  (16) 2014.05.13
화가 뭉크의 종교적 모순  (0) 201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