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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T 토론광장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 (온누리)



애독자 온누리님은 구약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네필림을 말한다고 보십니다. (아랫 글 참조)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곧 우리 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개념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온누리님의 기조발언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일부 중략)

   창세기 6장 1절-8절

    1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1)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1)육체이므로 범과함이라 
    4 당시에 땅에 2)네필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2)장부가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에서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1-8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의미에 대한 몇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만, 개혁주의에서는 대개, 셋의 후손-믿음의 계열로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천사들을 일컫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뒤틀린 해석이 있습니다.)

네필림을 말합니다. 장부요,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장의 구성을 살펴 보면(구문상), '하나님의 아들들- 네필림- 용사-유명한 자'가 동격어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미상으로도 그렇습니다. 문맥에 가장 부합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들을 믿음의 계열로 치부해 버리면, 창세기 1장-11장의 족장 이전 역사의 의미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뒤틀려 버립니다. 그리고 족장 이후 역사와 출에굽 이후로 이어지는 구원역사의 상궤(常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해석자가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으로 바르게 해석을 기한다면 의당 위의 해석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4절을 주목해 봅시다

"당시에 땅에 네필림이 있었고"

이 때 '당시'란 1-2절의 시상(시대)을 반영하는(뒷받침 하는) 말씀입니다. 그 시대(1-2절의 시대)에 이미 네필림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요(넓게는 노아 홍수가 있었던 당시를 포함합니다.)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그런데 왜, 뜬금없이 당시에 땅에 네필림이 있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을까요?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네필림을 동격으로 칭하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과 4절의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문장을 이 네필림이란 단어로 연결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하나님의 아들들- 당시에 땅에 네필림-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로 문장을 짜나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4절 후반부에서 나오는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자식을 지칭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네필림을 더욱 구체화 시키는 말씀입니다.

아담 후손이 땅에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들에게서(사람에게서) 딸들이 태어났습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는 점입니다.

지면에 사람들이 퍼져나간 시점이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한 때라고 본다면, 그때 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의 횡포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벨 대신 주신 아담의 아들 셋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4장 2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 다시 말해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에 등장하는 믿음의 계열에 속한 자들을 지칭한다면 그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처음부터,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가인의 계열-불신의 계열)보다 전혀 나을 게 없었던, 아니 오히려 가인의 후손보다 더 하나님의 명령을 헌신짝 버리듯 했던 자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던 그들이 '믿음의 계보요,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면 첨부터 그들은 믿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거나 입술로만 하나님을 부른 빈 껍데기였을 뿐입니다.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였고 그 후손 라멕도 소년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구리와 쇠로 각종 기구를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는 약한 자들입니다. 힘이나 부나 명성으로 세상을 이기고 지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만일 셋 계열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카인의 계열)을 아내로 삼았다면 우선은 믿음을 저버린 것이요(경건한 자녀를 낳을 수 없기에), 다음으로는 가인의 계열보다 힘이 더 세고 우악스러웠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내를 하나도 아니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기 위해서는 힘이나 부나 명성으로 우격다짐 내지는 위협을 통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뺏다시피(강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고대에) 가능했을까요? 셋의 후손들에게 말입니다. 여자가 아무리 아름답고 마음에 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믿음 없는 가인의 후손, 곧 살인자의 후손이요 살인자들인(라멕의 경우) 그들 사람 보다 더 죄에 대해서 담대했다는 말입니다.

살인자들 보다 더 용감무쌍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야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아내로 삼을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로 보건대 이들을 어찌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카인의 후손에 속한 어떤 자들'을 말합니다. 가인의 오대손 라멕이 그 냄새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네필림(장부)이요 용사요 고대에 명성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본문은 성적으로 타락한 그 당시 사회상을 정점으로 해서 모든 종류의 죄악이 만연한 세상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가인의 계열의 죄가 셋 계열에 까지 영향을 미쳐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자처하면서 무법천지로 만들어가는 가인의 계열이 주도하는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지 못 하고 함께 동화되고 휩쓸려 간, 셋의 후손들의 믿음 없음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입니다. 아담의 계보 후반부를 한 번 살펴볼까요?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집니다. 믿음의 사람 에녹이 하나님의 아들들 중 하나였다면 어찌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 중 일부만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았다구요?

므두셀라는 자기 손자 노아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심판의 경고를 전해 듣고 그 후로 113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가장 오래 살았었지요. 라멕은 자기 아버지 므두셀라보다 2년 뒤에 죽었습니다. 라멕은 그 시대 상황(노아를 낳을 당시)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5:29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셋의 계열은 이와 같이 자기 조상 아담과 그 후손들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정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자기 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고롭게 일한다고 합니다. 라멕의 고백은 창3장 17절로 19절 말씀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멕은 여인의 후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담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노아-안위함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 라멕은 홍수의 심판을 보지 않고 홍수가 나기 5년 전에 죽었습니다. 자기 아버지 므두셀라보다는 2년 후에....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1)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1)육체이므로 범과함이라

위 3절 말씀의 경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경고 후에도(4절에서 "그 후에도..."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계속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뱀의 말에 더 솔깃해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마귀의 말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문자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계열-믿음의 계열이라고 주장합니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너희가 먹는 날에는...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본문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 없이 살고자 했던 자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되어 사는 자들의 결국이 어떠함을 보여주신 심판의 원인과 근인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위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을 사람들 안에 포함시키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줄곧 이렇게 해석해 왔고 가르쳐 왔습니다. 다른 분들의 해석도 존중합니다. 저도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성경을 읽는다고 자부합니다.

"사람이 땅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는 아담(사람)이 아다마(흙(ground)-우리 성경은 '땅'으로 옮김)에서...란 뜻입니다. 4절에 "당시에 땅에 네필림이 있었고..."에서 여기서 땅이란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그 땅-하아렛츠'를 뜻합니다. 아담의 후손이 그의 근원인 흙을 기경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땅에(바아렛츠-on the earth) 네필림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네필림은-그 당시 사람이 거하는 모든 곳으로서의 땅(지구)에- 군림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 올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란 글의 인용 본문인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네필림"을 동격어로 보는 서구의 건전한 성경신학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구문론적 분석을 통해 그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욥기에서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해서 곧장 위 본문도 천사들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특히 모세의 글을 처음 대하던 일차독자인 출에굽세대와 그 자녀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개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이해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아주 특별한, 다시 말해 하나님처럼 행세한 어떤 특정한 집단을 염두에 둔 그 시대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는 네필림을 giants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네필림이란 단어가 딱 3번 나오는데요. 창세기 6장에서 1번, 민수기 13장 33절에서 두 번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에서 믿음이 없는 열 정탐꾼들의 보고에서 "네필림의 후손 아나크의 네필림"이라 칭합니다.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서등을 통해서 본다면, 아낙 자손은 단순히 키가 큰 족속일 뿐입니다.
당시 정탐꾼들이 키가 큰 아낙 자손을 네필림의 후손일 거라고 추정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민수기에 나오는 네필림과 창세기에 나오는 네필림을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나오는 네필림을 용사요(그 당시 시대 상황상 그렇게 봄이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명성이 있는 유력한 자들로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의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을 밝히고자 함입니다. 원인은 아담의 타락(죄)입니다. 근인은 그 죄가 점차 커져서 죄악의 물결이 세상을 온통 뒤덮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악된 세상을 심판의 물로 쓸어버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실 정도로 세상에서는 죄악이 판을 쳤습니다. 왜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실 정도가 되었을까요? 자칭타칭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사람(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생육, 번성, 충만의 틀이 깨어져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일부일처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아버렸습니다.

장부(大丈夫)요, 용사요(싸움에 능한 자), 명성이 자자한 자들인 그들이 힘과 부와 명성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음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이나 동물에게 종족보존본능을 주셨기에 사람이 아내로 맞은 여자를 사랑함으로써(욕구를 발산함으로) 자녀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음"으로 인해 장가가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여자들은 시집을 갔지만 한 남편에게 수십 수백명의 아내가 있음으로해서 남편과 잠자리 한 번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자행하고 여자도 여자와 더불어 그러했던 것입니다. 모노섹수얼 소사이어티(monosexual society - monogyny - 일부일처제)가 붕괴되고 일부다처제가 성행함으로 호모섹수얼 소사이어티(homosexual society )가 초래되었던 것입니다.

위 본문은 성적문란이 극해 달했던 노아홍수 당시의 사회상을 그려볼 수 있는 단적인 말씀입니다. 완곡한 표현일지라도 우리로 알아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상이 된 세상!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섬기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상숭배는 영적간음이이요, 육적간음을 유발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들'로 돌아가 봅니다. 세상에서 큰 자가 누구입니까? 장부처럼 보이는 자가 누구입니까? 모든 일에 능한 용사가 누구입니까?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자칭타칭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가 아닙니까? 부와 권세와 명성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사는 것이 육신의 안일을 위해 편하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힘을 길러 하나님의 아들들과 같이 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불법과 불의를 자행하더라도 우선은 크게 되고 보자는 마음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큰 자가 되면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처럼(하나님처럼) 되면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는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던 자기들의 조상 아담의 길을 가고자 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된 자들을 일컫는 비꼬는 말입니다.(하나님편에서 말입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이 곧,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