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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개혁왕 히즈키야 (메시아계보대장정 56)




바탕본문: 왕들B서(열왕기하) 18:1-8, 연대기B(역대하) 29:1-11



놀라운 전환


히즈키야(히스기야)는 남국 유다 왕국의 제12대(아탈리아 여왕을 포함하면 제13대) 왕입니다.
이름의 뜻은 '주/야웨님의 힘'이라고 풀 수 있고요.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놀라운 파라독스/역설이라 할 만 합니다!
(분열왕국시대) 남국 유다 최악(!)의 왕 아하즈(아하스)의 아들인데도 최선/최상의(!)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악인 중 악인이었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선인이고 의인이요 성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삽상한 전환"이 아닐 수 없죠!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완전 무색해지는 상황이 아닐까요. 어떻게 아하즈에게서 이런 아들이 나왔을까요? 사람의 생각으로는..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하즈를 능가한 북 이스라엘 최악의 왕 아하브(아합)는 아들 요람(예호람)도 아버지처럼 악했는데 말입니다.

나쁜 아버지에게서 응당 나쁜 아들이 나리라 기대하는 게 거의 당연귀결이 아닌가요.
그런데도 전혀 그렇지 않은 히즈키야를 보면, 유다 왕국을 끔찍히 사랑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 때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아버지가 나빠도 어머니가 좋으면, 착한 아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도 히즈키야가 그런 케이스였을 것입니다. 천만다행스럽게도 아하즈는 좋은 왕비 하나를 뒀습니다. '아비야'("주/야웨님은 내 아버지"란 뜻. 왕들B 18:2엔 단순히 '아비' 곧 "내 아버지"로 표기.)라고, 제카리야의 딸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비야는 히즈키야 왕자에게 어릴 때부터 선한 영향을 주었을 터입니다.

더 나아가, 아비야의 아버지 곧 히즈키야의 외조부인 제카리아는 탁월한 선인이었음이 거의 틀림 없습니다.
[ 제카리야는 아마도 시기적으로 연대기B 26:5에 나타난 대언자였을 가능성이 있어 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사야 말고도 제카리야/미카 등의 주요 대언자들이 살았다고 봐야 합니다. 미카 역시 요탐-아하즈-히즈키야 시대에 걸쳐 활약했지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시대에 사역했음은 주님의 크신 은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제카리야는 딸인 아비야에게 어렸을 적부터 깊은 영향을 끼쳤을 터입니다. 아마도 딸이 미래의 왕비가 되리라는 모종의 계시를 성령님을 통해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으로써 선한 외손자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깊은 간여와 중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겠지요. 아울러 히즈키야가 어릴 적부터 하나님께 열린 선한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었고.

히즈키야는 선조 다빋의 모든 선행을 본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모처럼 대하는, 속 시원한 말입니까! 수많은 유다 왕들이 히즈키야처럼 하지를 못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다빋처럼 율법 말씀을 사랑하고 연대기를 비롯한 역사 문서를 통해 배운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가장 훌륭한 구약 대언자의 한 사람인 이사야가 그를 영적으로 보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즈키야의 즉위 때 나이가 25세였습니다. 아버지 아하즈 왕은 불과 16년의 통치기간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만..히즈키야는 그 2배 가까운 29년간 다스리면서 온갖 좋은 일들을 하지요.

놀랍게도 그는 등극 원년 첫달 첫날부터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들어갑니다. 여태까지 부왕의 사악한 행각들을 묵묵히 지켜 보며 안타까워 속을 조리고 태우며 지내다가,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그동안 맘에 품고 있었던 개혁을 즉각 단행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위의 만족감과 희열에 젖어 있거나, 위엄과 권위, 긍지 따위를 챙길 마음이나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부왕의 악정과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을 누그러뜨리고 늦추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신본적인 맘이 아닐 수 없죠.

우리는 때가 됐다고 확신하는 선하고 좋은 일에는 되도록 신속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저지른 온갖 잘못의 회개(뉘우침+고침)엔 재빨라야 좋지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징계, 진노나 관망 등을 덜 겪을 수 있게 됩니다.
전례를 볼 때, 더는 묵혀 두고 미루다간 전과 버금가거나 되레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산당 제사가 그랬습니다. 산당 제사는 성전을 짓기 전의 슐로모 당시는 과도기여서 그런 대로 하나님이 봐 주셨더라도 성전이 지어진 이후로는 마땅히 산당들을 철거하고 철폐했어야 할 일입니다. 


개혁왕 히즈키야의 면모

우리는, 앞서 유다 왕 아사/예호샤팥/아마찌야/우지야 등의 통치기에도 비록 부분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개혁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살펴 보면 알지만, 히즈키야 만큼 철저히 한 군주는 전무후무했습니다.


왕들B서 18장 앞 부분은 우선 개괄적으로 히즈키야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하나님 주 야웨님을 의지하되 (남쪽) 유다 왕들 중 전무후무함. 
     (물론 북 이스라엘 왕들은 평균적으로 더 악했으므로 결국 분열왕국 시대 전체를 통틀어 히즈키야 같은 개혁왕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께 달라 붙어 그 분을 떠나지 않고 모쉐의 율법/계명들을 지킴.
   • 주/야웨님이 함께 하셔서 어디로 가든 형통하게 하심.

물론 온 맘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지켜 행한 왕은 후대의 요시야도 있지만, 히즈키야만의 각별한 점이 있었다고 이해됩니다(왕들B 23:25).  


개혁 의지 천명


히즈키야가 과감히 손을 댄 최우선 개혁과제가 뭐였을까요?
물론 성전 청결작업이었습니다!
아하즈 시절 굳게 닫혔던 성전문을 열고, 내팽개쳐져 여기저기 바뀌어 왜곡되고 훼손되고 황폐화됐던 성전 곳곳에 대한 보수공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주/야웨님께의 경배제사 재개(再開)를 위한 성전 대청소를 실시합니다. 여기엔 성전사역자들인 사제들과 레비 지족이 앞장서야 했지요. 이들은 우상숭배에 골몰했던 아하즈 시대엔 내버려지다시피 했던 "쓸모 없는" 존재들이었다가 이제서야 빛을 보는 셈이 됐습니다.
이들 중 다수도 역시 지난 날 아하즈왕의 소위를 지켜 보던 속 심정이 히즈키야와 같았을 것입니다. 헤매는 왕의 어둠 속에 자신들과 사역이 내팽개쳐진 채.

히즈키야는 온 사제들과 레비임들을 성전 동편 광장에 소집하고 연설을 통해 자신의 개혁 의지를 천명합니다.

    "레비 족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지금부터 여러분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또 여러분의 선조의 하나님 주/야웨님의 전을 정결하게 하오. 성소에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오!
우리 선조가 범죄하고 주/야웨 우리 하나님 눈 앞에 악을 행하였소. 그 분을 저버리고 그들의 낯을 돌려 주/야웨님의 처소를 등졌지요. 또한 낭실 문들을 폐쇄했소. (성소의) 등댓불을 끄고 성소에서 향제를 드리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바치지 않았소.
그래서 주/야웨님께서 유다와 예루샬렘에 노하여 내버리셨소! 여러분도 아다시피 두려움과 놀람,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셨소. 그 때문에 우리 선조가 칼날에 쓰러지고 우리들의 자녀와 아내들이 포로로 잡혀갔지요.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 주/야웨님과 언약을 세워, 그 분의 엄중한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소.
나의 아들들! 이제부터는 게을리 하지 마오. 주/야웨님께서 이미 여러분을 택하셨고 그 분 앞에 서서 섬기고 받들며 향제를 바치게 하신 것이라오."

이 짧고 힘찬 연설에서 개혁왕으로서의 히즈키야의 속마음이 여러 모로 절절이 느껴집니다.  

우선 그는 나라 대표로서 그동안 오물 같은 죄악과 우상숭배로 더럽혀지고 내팽개쳐진 하나님의 성전과 사역에 대해  깊은 회오를 느낍니다. "어서 빨리 성결을 되찾자!"라고 온 맘으로 외치는 듯 합니다.

또한 선조가 배신하고 경배를 중지했기에 결국 중징계를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주/야웨님의 아픔과 진노를 절감하고, 그 분 앞에 크나큰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 진노가 더 머물러 있기 전, 가장 먼저 그 분의 온정과 은총에 호소하여 그 노를 가라앉혀 드리고, 임박한 불길을 돌이켜야 할 절박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그러려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쳐 언약 즉 서원을 하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을 위한 왕의 중재적 역할이 돋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여러 왕들이 우상에게 경배하면서 주/야웨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전을 마구잡이로 짓밟다시피 해 온 데다..다름 아닌 히즈키야의 부친 아하즈가 눈에 더 실감 나 보이는 다메쉨 신들을 섬기려고 그곳 이교 제단을 본 따 '제단'이란 것을 만들고, 성전 기구들을 모아 파괴하고 성전문을 닫아 걸고, 예루샬렘 곳곳에다 우상의 단을 쌓고, 각 성읍에다 산당을 세워 다른 신들에게 향제를 바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끓어 오르는 분노를 자아냈었지요.

더구나 아하즈는 자신의 입장이 급박한 '막다른 골목' 내지 '벼랑 끝' 상황에서도 더욱 딴 신들을 의존하려 했고, 하나님의 은총을 전혀 감사하거나 보답할 줄 모르는 완벽하고 철저한 배신자였습니다.

이러한 역대 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대언자를 통해 이사야서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히즈키야는..하나님을 경시하고 배신하는 나라들의 멸망을 수시로 경고하는 이사야의 엄중한 예언들을 통해 그 분의 진노의 칼날 끝을 몸소 "피부로" 느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서 지난 날에 대한 무조건 용서를 빌고, "제발 노를 돌이켜 주소서~!" 하고 처절히 탄원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회개의 영이 그에게 역사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볼 때, 히즈키야 왕자는 어릴 적부터 율법 말씀을 사랑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악한 아버지 밑에 이런 아들이 있었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와 같은 왕을 유다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전 정화 개시

히즈키야 왕의 연설에서 개혁 의지를 읽은 레비 족, 곧 사제들과 그들을 돕는 사역자들은 분명히 감화를 받아 의연한 맘으로 일어나 개혁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제사지족의 3계열인 케핱/메라리/게르숀의 후손들, 음악을 맡은 3족인 아샆/헤만/예투둔(에탄) 등의 후손들 14명의 지도자들이 자기 형제들을 모아 정결례로써 자신들을 성별하고 성전에 들어가 왕의 명령대로 성전 청소를 단행했습니다.

사제들도 그동안 폐쇄되다시피 했던 성전 안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꺼내어 성전 뜰로 갖고 나와서 전 바깥 키드론 계곡의 시냇가에서 불태웠습니다.
정화작업은 정월 첫 날 시작돼 성전 뜰과 번제단 등을 거쳐 8일에 현관에 이르렀고 다시 8일 동안 성소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성소 안의 번제단과 떡 진열상, 주변의 모든 부속 기구들까지 모두 깨끗이 했고, 과거 버렸던 기구들도 모두 되찾아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이 16일만에야 겨우 끝난 것입니다. 이로 미뤄 보건대, 성전 규모가 큰 것 외에도 지난 아하즈 통치기간 중 얼마나 성전이 더러워졌었고, 잡된 것들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전 정화 작업을 끝낸 사제들, 레비 사역자들은 히즈키야 왕에게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히즈키야는 "이제야 성전이 깨끗해졌구나"라고 흐뭇한 마음에 젖어 들 사이도 없이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릴 생각부터 했습니다.


속죄제를 바침

히즈키야 왕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도시의 귀족들을 소집하여 함께 주/야웨님의 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동안의 죄과를 뉘우치고 회개하기 위해 하나님께 정성껏 제사로써 경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제사 규모는 조촐했습니다.

먼저 수송아지/수양/어린양, 각 7마리씩을 나라와 성소와 유다인들을 위하여 대사제 아론의 직계손인 사제들을 통하여 속죄제물로 바쳤습니다. 수소와 수양, 어린양들을 차례로 잡아 그 피를 단에 뿌리고 번제로 불살라 바쳤습니다.
또 속죄 제물인 수염소를 왕과 회중 앞으로 가져오자, 그들이 안수한 뒤에 사제가 역시 잡아서 그 피를 단에 바침으로써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했습니다. 


찬양제의 회복

아울러 음악으로 바치는 레비인들의 찬양제사도 회복했습니다.

즉 성전 안에 늘 머물 음악인들의 제도를 재개하여 고대의 다빋 왕과 다빋의 선견자 같, 대언자 나탄이 제정한 규례대로 메첼렡(제금: 한 쌍으로 된 타악기로 현대의 심발즈에 해당)과, 네벨(비파)/킨노르(수금) 등 현악기들을 연주하며 찬양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레비인들은 다빋의 악기를, 사제들은 나팔을 들고 번제단 곁에 서자, 왕의 명령으로 사제들이 예물을 불에 태우는 번제를 시작함과 동시에 시편을 읊조리고 악기를 울리면서 온 회중이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번제가 끝나기까지 레비인들의 찬양음악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감격스런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사를 마치자 왕과 귀족들은 함께 모두 엎드려 주/야웨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그러자 왕과 귀족들이 레비 사람들에게 다빋과 선견자 아샆의 시편으로 하나님께 특별 찬양을 하도록 명령했고 레비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찬송을 한 뒤 몸을 굽혀 경배했습니다.


백성들의 예물

이처럼 거룩한 속죄제의 경배와 찬양이 끝나자 히즈키야 왕은 회중으로 참석한 뭇 백성에게 하나님께 예물로 바칠 헌물을 가져 오라고 호소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성결케 됐으니 마땅히 드릴 제물과 감사 예물을 주/야웨님의 전으로 가져들 오시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저마다 기쁨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 정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번제물: 수소 70마리, 수양 100, 어린양 200
    별도로 바친 소: 600, 양 3,000


바칠 제물이 이렇게 많았지만, 사제의 수가 모자라 짐승을 일일이 다루지 못하므로 정결례를 거친 레비인들이 곁에서 도왔고, 다른 사제들의 정결례까지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레비인들은 자신을 성별하는 데 각별히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데는 그만큼 성결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번제와 화목제에 속한 기름과 번제에 속한 전제(포도주 제사)가 순서대로 모두 갖춰졌지만
이 모든 일이 퍽 갑작스레 이뤄졌어도 이처럼 충분히 제대로 갖춰진 것은 야웨 이레 은덕 때문이었음을 히즈키야와 백성들이 알고 기뻐하고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오랜 기간을 두고 모든 것을 차근차근히 철저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비록 갑작스러워도 즉흥적인 믿음의 열성과 헌신, 하나님께 맡기는 정성도 중요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즉 부왕 아하즈 시대를 비롯한 과거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뉘우치는 히즈키야의 속죄의 헌신과 서원, 열심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백성들을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의 심각한 죄악에 그토록 진노하셨다가도 이처럼 온정으로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히즈키야는 내친 김에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무교절/유월절 명절도 온 백성과 함께 대대적으로 지키게 됩니다. 시리즈 다음 회에서 다루렵니다.


저는 외래어 표기를 원음에 가깝게 하자는 생각입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