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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 (4)



바탕본문 에페소 3'14-19 (사역)


    이렇기 때문에 나는 내 무릎을 아버님께 꿇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온 가족의 이름이 일컬어지지요.
    그 분께서 여러분에게 그 분의 영광의 풍요 대로, 그 분의 성령에 의하여
        권능이 (각) 속사람 안에 강화되게 하시기를!

    믿음을 통하여 크리스토님이 여러분의 마음들 속에 머물러 계시길! 
          여러분이 사랑 안에 뿌리박히고 든든해져서,

    온 성도들과 함께 (사랑의) 너비와 길이, 또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으시길!
    그리고 지식을 초월하는 크리스토의 사랑을 아셔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에페소 3'14-19은 에페소서에 나타난 파울의 두 번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알고 보면, 너무나 심오하고 스케일이 넓어 우리의 입이 벌어지게 만듭니다.
파울이 뜻하는 바를 최대한 전달받고자 되도록 성구의 직역을 시도했습니다.
다양한 번역들에 의역이 많아 내용상 혼동스럽기 때문입니다.


14,15절은 실제 기도 내용이 전개되기 전, 머릿말 같은 부분이지요.

우선 여기서(14절) 우리는, 사도 파울의 기도 자세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이 기도를 합니다.
파울은 힘들게 치르는 옥살이 가운데서도 자주/수시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무릎 꿇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특히 바로 이 편지의 수신인인 에페소 교회의 장로 등 지도자들이 밀레토스에서 파울과의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그의 고별사를 들은 뒤 모두 함께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했던 것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을 터입니다(행전 20:17-36).

다름 아닌 우리 주님께서 이 무릎 꿇는 기도의 본을 보이셨지요(루카복음서=눅 22:41).
무릎꿇기는 곧 자신을 낮추어,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자세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진지하고 간곡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신/구약의 신앙 위인들이 이렇게 경배와 기도 때 무릎을 꿇곤 했습니다. (왕들A=왕상 8:54, 에즈라 9'5, 다니엘 6'10, 행전 9'40). 


15절은 여러 성경역본들이 번역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번역들마다 뜻이 제가끔입니다.

    - 그 분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온 가족의 이름이 일컬어지지요.

특히 "파사 파트리아 엔 우라노스 카이 에피 게스"(πᾶσα πατριὰ ἐν οὐρανοῖς καὶ ἐπὶ γῆς) 곧 "하늘과 땅의 (모든/온/각) 가족(또는 족속)"이란 문구의 뜻이 뭐냐에 대해 거의 학자마다 생각이 엇갈립니다.

주석도 아닌 이 메시지에서 이것을 다 풀 순 없고..저는 다만 하늘에다 역점을 둘 때, 하늘의 성도/천사와 땅의 성도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한 가족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말을, 땅의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시고 따라서 모두들 한 가족이라고 풀이한다면, 그것은 보편구원론적이고, 더 나아가 뉴에이적이어서 문제가 많습니다. 하늘의 성도/천사들과 땅의 죄인들이 같은 한 가족의 일원일 수가 없지요. 교회인 우리는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크리스토님 안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기에, 온 우주의 아버지이심은 사실입니다(행전 17:24,2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영원히 하늘 모든 존재들과 함께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셔서, 자동으로 한 가족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셋째) 하늘의 모든 영들과 한 가족이려면, 오로지 예수 크리스토를 믿어 거듭난 영들이어야 합니다.
이 점을 우리는 참고하여, 온 우주, 온 세상이 한 가족이라느니 하는 잘못된 찬송가 가사나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튼 파울은 여기서, 아버지이신 그 분으로부터, 그 분을 통하여 우리가 한 가족으로 일컬음 받는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삼위 하나님 안에서 그 분을 신으로 받들고 사는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명시한 파울은 이제 성도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빕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우선.. 

    그 분께서 여러분에게 그 분의 영광의 풍요 대로, 그 분의 성령에 의하여 권능이 (각) 속사람 안에 강화되게 하시기를!

전절과 연결시켜 볼 때..파울은, 크리스토 안에서 한 가족인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는 바로 그 분께 이런 기도제목을 아뢰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기에, 아들이 아버지께 자식으로서 받는 유업처럼 이런 것들을 받도록 빌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면 이런 것들을 받아 누릴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파울이 말하는 그 혜택이 뭡니까?


    첫째로, 그것은 우리 영 속에서의 권능 강화 작업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가득 넘치는 영광에 따라,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행전 1:8에 나타난 예수님의 최후 위임령에서 보듯, 성령님이 땅에 내리심으로써 우리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오가는 모든 세대의 대표로서 초기 교회에 주어지니까, 오가는 모든 세대의 신자들의 교회의 일원으로서 권능 부여를 다 함께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풍성한 영광을 따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권능도 함께 받곤 했습니다. 모쉐가 그랬고, 광야시대 이스라엘의 70장로가 그러했으며, 판관(사사)들이 그러했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신약인들, 교회인들인 우리는 구분과 차별 없이 하나님의 넘치는 영광의 덕분으로 모두들 성령님을 통하여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권능은 성령님께 처음 받을 뿐더러, 우리 속에서 더욱 강화되며, 강화될 수 있고, 강화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맑(마르코스복음서) 16:17,18의 예언과 행1:8의 위임령이 오순절날 성취됐을 때, 그것은 우선 영언(방언)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각 신자는 처음에 영언을 하게 되고 은사를 받고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더욱 강화되길 기도해야지요.  


오늘날..중세초기에 천주교에서 유래된, 소위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관상기도로써 하느님/신과의 합일을 추구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권능이란, 이른 바 '비움'(emptying)을 통해 어떤 '도'에 이르는 경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신과의 합일을 통해 일종의 종교적 신비나 '황홀경'을 맛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소극적이고 낭비적인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권능은 그런 게 아니지요.
우리가 성령님으로부터 받고 강화되는 권능은 위력적이고, 생산적입니다!
교회에 유익을 주고 신자에게 도움과 덕을 끼칩니다.

요즘은 또, 소위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이 권능 부여와 관련된 '임파테이션'(impartation 나눔)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뭇 뉴에이지적인 말이지요. 임파테이션은 본래 컴퓨터정보학에서 쓰이는 말로, 정보분배를 뜻합니다. 그들은 캔저스시티예언그룹(KCF) 출신자들이나 베니 힌이나 타드 벤틀리, 손기철 등 소위 능력자들의 안수를 통해 '임파테이션'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안수를 통해 신자가 성령님을 모셔 들이고 영언을 말하고 병 고침을 받는 등의 이적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안수자의 손은, 임파테이션이란 것의 주체가 아니라..영감과 권능/은사 전달의 도구/수단에 불과합니다.  
 
파울은 티모테에게 함부로 안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안수이든 간에.
권능은 안수로만 받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안수로 인해 권능 전달을 받았다고 해도 권능의 강화는 개인이 삶 속에서 지속적인 헌신과 말씀묵상, 기도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자들은 자꾸만 자기 같은 명사들에게 나아와 임파테이션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이것이 실제로는 개인의 명사화(名士化) 운동입니다. 모든 신사도운동 사람들이 주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접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활용하기보다 베니 힌이나 손기철에게로 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권능 강화는 힌이나 손기철로부터의 '임파테이션'으로 되는 게 아니라..성령님을 통하여 개인의 영 속에서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우리 개인의 속사람 곧 영 속에서 권능이 강화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나의 속사람 속에서 성령의 권능이 강화될수록, 성령께서 내 영을 통하여 내 혼과 몸을 다스리기 쉬워집니다. 내 온 삶, 전인적 삶이 더욱 온전히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신자의 신자다움은..그 혼과 몸이 영에게 얼마나 지배를 받냐에 달린 것입니다.
파울이 로마서 7장에서, 죄와 거룩이라는 서로 다른 세력이 자신 속에서 대치해 있는 상황을 보고 탄식한 것은, 곧 때때로 속사람 대신, 육 곧 혼과 몸이 더 강화돼 영이 지배적이지 못한 탓임을 뜻합니다. 


    둘째로 영 속에서 권능이 강화되면, 성령의 9 열매가 고루 맺힙니다(갈라티아 5:22,23).
개인에 따라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정도가 다름을 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차별하시는 게 아니라, 속에서 이뤄지는 권능 강화 작업의 수위에 따라 열매가 균형 또는 불균형하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성도마다 아홉 열매가 고루 맺혀 탐스럽고 알차게, 여물어지고 무르익는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셋째로, 주어진 은사로써 더욱 남을 섬기게 됩니다. 교회와 이웃에게 유익을 줍니다. 코린토A서(고전) 12장에 나타난 성령의 9은사 목록대로 개인에게 따로따로 분여된 은사를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덕을 끼치고 이웃의 도우미가 됩니다.

즉 지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몸의 각 부분은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느 부분이 어느 쪽을 우습게 보거나 "불필요하다"거나 탓할 수가 없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성도이든 하나님 앞에 존귀하며, 각기 주어진 은사와 맡겨진 소임이 있는 법입니다.
어린이라도 그렇고, 지체/정신 장애인이라도 그렇습니다. 세 살짜리 어린이도 거듭나 영언을 하고 장애인이 믿음으로 거듭나면, 그 영이 살아 영언으로 기도와 찬양을 하고, 은사도 받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파울의 이 기도의 남은 부분은 다음 기회에 다루렵니다.



티엘티 성도는 모두들..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서
각자 그 영 속에서
아버지의 영광과 성령님을 통하여
권능이 늘 강화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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