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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리뷰

사순절은 성경적인가 (2)?



중세의 사순절 전 카르니발


카톨맄교는 봄철을 위해선 '사순절'(Lent)을, 겨울철을 위해선 '대강절'(Advent, 일명 강림절/대림절)을 만들어 놨다. 천주교도들을 성경이 아닌 교황과 전통, 제도 중심의 천주교리에 복종시키려고.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사순절을 제대로-율법적으로 철저히 지키는/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사순절이 왠지 필자에겐 '사순절'(死馴節)로 들린다. 삶이 아닌 죽은 전통에 길들이는 계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첫날인 '재의 수요일' 자체가 인간의 필사성(必死性/mortality)을 기억한다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기부인이면 자기부인이지 왜 하필 인간의 필사성인가? 그러면서 왜 인간 영혼의 불사성(不死性/immortality)은 거들지 않는가?

필자는, 아직 금식을 "즐기는" 경지엔 못 들어서도,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러나 40일에 걸쳐 한다는 제도적/율법적/전통적인 절식/금식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義)와는 거리가 멀다.

혹자는 "모쉐도 예수님도 40일간 금식하지 않았냐? 그러니 성경적이다!"고 응수할지도 모른다.
모쉐나 예수님 당시나 구약시대라는 것을 독자는 이해하는가? 우리는 사도들 중 그 누구에게서도 본인이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거나, 남에게 율법적으로 강요했다거나, 심지어 권장했다는 부분도 발견하지 못한다.
주님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오셨고, 그 과정에서 모름지기 둘째 아담으로서 첫 아담이 졌던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 한 가지가 40일 금식 후 유혹에 대한 승리였다. 이것을 "신자 모두가 본 받을 40일 금식기도"로 이해한다면 큰 착각이다.


대다수 종교전통은 사람이 만들어낸 속박이요, 거짓 의이며, '종교의 영들'의 장난이다.
사순절은 인본적인 카톨맄교가 빚어낸 또 하나의 종교전통에 불과하다. 


천주교 신부였다 현재 신교 사역자인 리처드 베넽은 사순절이 비성경적임을 명료하게 지적/비평한다.
그로부터 재인용해 보는 '천주교 새교리문답 참회 '파라 1438'은 다음과 같다. 

    "전례력(교회력의 의식달력)에 있는 (사순절과 매 금요일 등) 고행/참회 절기와 참회일은 교회의 집중적인 참회 행습 모멘트들이다. 이 기간들은 특히 영적 체험들, 참회 의식(儀式)들, 참회의 표징으로서의 순례과정, 단식/자선 같은 자발적인 자기부정..등에 걸맞다." (필자 역)

이 고행/참회는 다음 '파라 1435'에도 들어 있다.

    "회심은, 날마다 삶 속에서 화해의 제스처들, 빈민에 대한 관심, 정의와 옳음의 실천/방어, 형제들에 대한 과오 시인, 자애적 교정, 생활 수정, 양심 점검, 영적 지로(指路), 고난 수용, 의를 위한 박해 감수 등을 성취된다. 날마다 제 십자가 지고 예수님 따르기는 가장 확실한 참회의 길이다."

위에서 우리는, 천주교가 선행/고행/참회/회개/회심 등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 천주교가 믿음보다는 행위 중심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게 된다. 크리스토가 우리 대신 받으신 고난보다 사람이 이뤄 가는 고행을 더 강조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베넽이 강조했듯, 에페소 2'8-9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선물인, 크리스토의 객관적 수난과 그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 자신의 공로는 최소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의 사순절 전통은 인간의 주관적 노력과 공로를 최대화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구약 율법 앞에 인간이 무력하듯, 우리 자신의 공로로 우리의 의를 전혀 이룰 수가 없다! 사순절 기간동안 내가 제 아무리 무슨 노력을 해 봐야 그것이 나의 의를 전혀 이루지 못한다. 사순절 준수 행위를 통한 나의 의(義)의 점수는 제로(0)다.

천주교 워싱턴DC 대교구가 발행한 미국캐논공회의 캐논(Canon) 1251(1983년)은, 일년 내내 매주 금요일엔 (종교식전 상의 육식이나 음식이 아닌 이상) 주교회가 제정한 대로 절식(음식을 자제)해야 하고,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도 절제/금식을 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마치 중간기 유대인들이 율법을 이행하기 위한 온갖 복잡다단한 가지 치기식 규율을 만들어 놓았듯, 천주교도 사순절을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한 온갖 희한한 관습들이 이 시즌에 난무한다.
예를 들면, 중세 때는 낙농제품도 금했기에 목장/낙농업계 종사자들이 매일 생산되는 낙농 제품을 처치하기 곤란해서 성당이나 수도원 곁에 쌓아 놓기도 했다. 어떻게든 좀 처치해 보라고. 젖소들이 사순절을 지키긴커녕 전혀 개의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심히/마구 젖을 내기 때문이다! 천주교회가 사순절을 내기 앞서 젖소들을 천주교도로 개종시키는 데 실패한(?) 탓이다. 물론 신교에서는 젖소 신자 만들기 노력을 하지 않을 뿐더러 필요치도 않지만.  

티모테 4'1-3엔 사실 영락 없이 천주교 관습/전통에 대한 경고예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이 담겨 있다. 천주교도 페트로와 함께 그렇게 존중하는 파울(천주교식 발음: '바오로')의 예언이다! 과연 파울의 이 예언대로, 천주교는 교황 그레고리 7세 때부터 사제/수사/수녀들의 결혼을 금지하며, 절기와 전통에 따라 육식을 삼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베넽은 말한다:
    "그렇다면, 로마 카톨맄 법과 절기, 참회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그렇다! 로마 카톨맄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에게만 참 구원이 있다는 인상을 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뿌리는 로마가 아니라 성령님을 보낸 하늘 예루샬렘이다!

대언자 예샤야후(이사야)는 우리의 선행은 썩은 걸레 쪽 같다(예샤=이 64'4-5)고,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곧 인간의 마음이라고 통렬히 지적한다(예렘 17'9). 그러니 우리가 행위로써 이룰 의가 뭐겠는가?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나 공로로 이룰 게 전혀 아닌 것이다.


필자는, TULIP으로 요약되는 소위 5대 요리를 비롯한 장 칼뱅의 교훈들을 모두 다 받아 들이는 것은 아니나, 칼뱅이 바로 포착한 것이 있다. 그는 기도와 금식 등을 통한 경건은 믿었지만, 사순절을, 사람들이 금욕적인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은총을 얻도록 해 준다고 믿는 "영적 미신"으로 본 것이다.

학자들의 통찰에 따르면, 카톨맄교의 수많은 전통과 숨은 상징 등은 구약종교는 물론, 이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잔 매카터(=존 맥아더)는 사순절 전통이 님로드의 아내(앨맄잰더 히슬롶에 따르면, '세미라미스')가 아들 탐무즈를 위해 40일간 애통했다는 전설에서 왔다고 믿는다. 탐무즈는 실제로 카나안 족들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자들이 섬기던 신이었다(에제키엘=겔 8'14).
매카터는 그러면서 "사순절 준수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 상당히 일리 있다고 뵌다.


세계 신교계 최대 종합언론인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올해 사순절 특집으로 '사순절-왜 굳이 하는가? 영적 훈련을 위해서'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 CT는 옥한흠 목사가 주도하여 한국에서도 번역판이 발간되고 있다. 보수계 인사가 어떤 생각으로 진보적인 CT에 홀딱 반해서 한국으로 끌어 들이게 됐는지 모르나 우선은 다 돈 되라고 하는 것일 터. 그 점에서 동기가 별로 순수하지 못하다. 과연 순수하게 한국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빌리 그래엄이 창간했고, 에큐메니컬 언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CT는 알고 보면, 천주교 사상을 증진시키는 주요 교계언론의 하나다. 관상 영성 보급은 물론이다! 거기 대다수 필진들이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
 
아무튼, CT의 이 사순절 특집은 한 마디로 천주교식 사순절에 대한 찬사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중 한 필자는 사도 파울의 편지 일부의 ESV(영어표준역 성경)를 인용했다.

    "모든 체육선수들은 모든 것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을 월계관을 받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위해서  합니다. 나는 내 몸을 훈련시키고 복종시키니, 그렇지 않는다면 남들에게는 전하고 나 자신은 부적격이 될까 봐서입니다." (필자 역)

사족일 테지만,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핔 관련 보도를 보면, 특히 요즘 남자 선수들은 모든 것에 '절제'를 하는 게 아니라, 새 개최지에서 섹스 등 모든 것을 되도록 즐기면서 한다. 물론 잘못된 방법이기가 더 쉽다. 

그런데 위 성구를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고 사순절에다 적용한 것은 아전인수 격이고 넌센스에 더 가깝다. 파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율법적인 절기 금식이나 의례적 금욕에 관해 한 말이 아니라..결혼도 하지 않은 홀몸으로 독자적인 자비량 선교를 하다 보니, 사도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도 활용하지 않고 오직 내세의 상과 금관을 바라고 절제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천주교의 온갖 구속과 전통들도 이미 중세 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관행에 불과함이 입증돼 왔다. '캔터베리 이야기'나 '데카 메론'에서 보는 성습, 더욱이 오늘날 일부 천주교 사제들의 성적 괴벽은 그 윤리성에 있어 차라리 올림핔 선수촌만 못하다. 이건 굳이 사제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바티칸의 책임이다. 그런데 그 사순절을 지어낸 천주교가 실패한 금욕정신을 신교계 일각에서도 본받는다는 게 참 "거시기" 하다.  

사순절은 또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정점으로 한 40일간의 '순례여정'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순례여정은 영적인 훈련으로 자주 비유되기 때문. 그런데 중세 때 천주교의 순례란, 히브리서 11장 등에 묘사된 믿음의 사람들의 하늘 나그네 순례를 본받기보다, 주로 '성인'인 고인들의, 신통한 영험이 있다(?)는 유품들이 보존된 성당을 방문, 관람하는 게 고작이며, 순례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로마나 예루샬렘이었다. 지금도 대동소이하지만.

그런데 이런 고행의 순례는 광야 수사 시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대강 알 수 있다. 그들은 본능적인 욕정이나 '불순한 상상'이 일 때면, 스스로를 매로 다스리면서 고행을 한 것이다. 중세 때 수사들은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오래 지내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이상한 형태의 고행을 했다.

"아시시의 성자"로 불리는 프란체스코(본명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디네', 프란치스코, 성 프란시스)는 '미카엘마스'(대천사 미카엘 기념일)를 앞두고 40일 고행과 금식기도를 하면서 '성흔'을 받았다고 한다. 미카엘마스? 성흔? 뭔가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그러면서 40일에 더욱 힘을 준다.

그런데 이 이상한 프란체스코를 신교권에서도 아무 검증 없이 모두 '성자'로 받아 주는 데는 그저 할 말이 없다. 뭐가 성자이고 성인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다 성자이고 성인이고 성도임을 설교자여, 목회자여, 그대는 알고 있는가? 프란체스코를 깍듯이 '성자'로 부르는 그대는 혹시 성도가 아닌 건 아닌가?

구약에 40일 숫자가 자주 나타나면서도 신약에서 '40일 고행 개념'을 찾아 볼 수 없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며 유혹을 이겨낸 것도 고행을 통한 구원의 개념을 이루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순절을 굳이 지키련다면 다른 카톨맄 절기들도 다 지킬 일이지..
카톨맄교가 신교의 참 '뿌리'이기에 사순절을 지키련다면, 카톨맄 의식력에서 몇 가지 절기만 입맛대로 골라 잡아 교인들에게 강조할 게 아니라, 카톨맄 의식력 전체를 지켜야 제 격일 터이다. 왜, (재의수요일)/사순절/종려주일/수난주간/세족목요일/성금요일/부활절..대강절과 성탄절 등만 입맛 따라 골라 잡아 지키나? 그렇지 않은가?
'참회화요일'도 지키고, '미카엘마스'도 지켜야 '뿌리'를 따르는 것 아닐까?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온갖 명절과 절기들과 의식들로 풍요로운 게 카톨맄의 전례달력이니 말이다. 왜 입맛대로만 지키는가? 우습지 않은가? 골라놓은 것들만 성경적이어선가? 정말 성경적인가?

그리고 장로교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장로교 시조나 다름 없는 장 칼뱅은 분명히, '기독교강요'에서 사순절을 일종의 종교적 미신으로 봤다. 그런데 장로교 대다수는 왜 미신적인 사순절을 지켜 엄수하는가?  
이상하고 모양새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개혁가 츠빙글리는 1522년 사순절 전통에 최초로 반발하면서 취리히의 인쇄업자들이 매일 육식을 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사순절 규율들이 복음을 순종하기보다 로마를 더 순종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역시 바른 말이다.

마르틴 루터 역시 금식으로써 면죄될 수 있고 '구원점수'를 딸 수 있다는 거짓 개념을 신자들에게 심어주는 천주교 가르침을 경계하면서 선행 공로 사상에 근거한 금식을 경계했다.

필자는, 개혁가들의 사상에 다 동조하진 않아도, 사순절에 관한 개혁가들의 이런 견해가 100%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주요 신교 교단 다수가 뿌리도 알지 못하고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흐리멍덩하게 헷갈려 있는 교계의 실상이 필자는 못내 통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