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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 (6)


신약 에페소서 3:17b-19


    "(믿음으로 말미암아)..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 내리고 자리 매김하기를!
온 성도와 더불어 깨달을 수 있기를: (사랑의) 너비와 길이, 또 깊이와 높이!
그리고 크리스토의 사랑을 아시길: 그것은 지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길..(빕니다)!"



이 부분은 에페소서에 나타난 파울의 두 번째 기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울은 여기서 참으로 극중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지요.


마치, 태초부터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 우리 자신이 삶 속에서 활용하듯, 사랑도 그러합니다.
사랑도 하나님께 아가페를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밖의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일 뿐,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인들은 고대로부터 아가페 외에 가정/사회적 관계에서의 '필리오'/'스톨게'/'에로스' 등의 사랑을 논했습니다만, 그들이 철학적으로 논한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로서의 사랑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 자체는 아니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고대에 하나님의 자애(인자)/온정으로 알려진 사랑이며,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주어진 아가페입니다. 그것은 그 분의 독생자까지 인류를 위해 아낌 없이 희생시킬 수 있었던, 그런 사랑입니다. 파울은 '사랑의 시'인 코린토A(고전) 13장에서 이 사랑을 노래하면서, 이 사랑 없이 우리의 존재와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파울은 그래서, 이 기도 부분에서 우리가 우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뿌리내리길 빌고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 자리매김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풀, 나무 등 식물들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바탕과 근거는 뿌리입니다. 
뿌리 없이는 수분과 자양분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씨가 자라 버젓한 식물로서 살려면, 위로는 하늘로 솟아오를 싹을 내고, 아래로는 땅으로 뻗어 내릴 뿌리를 냅니다.  이 싹이 자라고 커서 열매를 맺으려면, 열심히 뿌리에서 수분과 양분을 빨아 올려야만 합니다.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든든히 박혀야 합니다.
풀/나무가 아무리 초기에 뿌리를 내려도 땅 속에 깊이 박히지 않으면 비바람에 흔들려 뽑히게 되고, 그 다음에 시들어 말라죽고 맙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림 비유'에서 파종자가 씨를 뿌렸어도 더러는 흙 두께가 얇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나왔지만 햇볕 아래 말라 버렸다고 하셨지요(마태복음서 13'5,6)
우리네 옛 노래에도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며,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고 했습니다.


파울은 우리 성도가 아가페 사랑 속에 그렇게 뿌리가 박히고 든든히 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기도인데도, 우리는 이런 기도를 좀체 하지를 않지요.
이런 기도가 계속 없다면, 자연히 우리의 사랑은 메마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는 사랑 속에 뿌리내리고 든든히 자리매김하길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파울은 이어서..우리가 온 성도와 더불어/함께 깨닫기를 열망합니다.
(사랑의) 위대한 4차원(four dimensions)-너비/깊이/길이/높이를!

(18절 부분에 해당하는) 이 4차원이 무엇의 4차원인지 원문엔 표시돼 있지 않지만, 앞절인 17절 후반절의 사랑에 연결됨이 확실합니다. 눈에 띄는 유한세계의 3차원에 익숙한 우리는 영적인 4차원을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4차원은 뉴에이지가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파울의 계시로 전해진 하나님의 사랑의 측정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한 마디로 무한하고 조건 없는 사랑이기에, 헤아릴 수 없고 측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파울은 왜 저런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 마치 사랑이 측정 가능한 양.
헤아리려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사랑임을 힘써 알고 깨달으라는 말과도 같지요.
그래서 그는 크리스토의 사랑은 우리의 지식-앎의 한계-을 초월한다고 결론 짓습니다.

흔히 엄마아빠가 어린아이에게 묻곤 합니다:
엄마 또는 아빠를 얼마큼 사랑하냐고.
아이는 팔을 있는 대로 벌려 "이만큼" 사랑한다고..
또는 하늘만큼, 바다만큼 사랑한다고 답하곤 합니다.
그 작은 팔로 그리는 그 작은 크기의 의미를 엄마아빠는 잘 압니다.

연인들도 가끔 그렇게 '사랑 측정치'를 주고 받습니다.
이를 테면, '애량계기'(愛量計機)의 바늘과 디지틀 숫자를 올리곤 합니다. 

사랑은 물론 그렇게 측정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측정 안 되는 차원이 곧 사랑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부단히 헤아리기를 바라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얼마만큼 사랑하셨습니까?

온 우주 가운데서도 사람이 지어 살게 하실 지구촌을 중심으로 천지창조를 하시고..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지으시고..
우리의 최초 선조를 위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에덴 동산을 '요람'으로 조성하시고..
거기 사람이 따 먹기 좋은 온갖 과일나무를 내시고..
따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과일, 선악지식의 열매와 함께 경고도 내리시고..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만큼 슬기를 주시고..
사람이 독처하면 좋지 않다시며 짝을 지어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는데도 끝까지 사랑하셔서..
말라 바스러진 무화과 잎새옷 대신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시고..
다시 생명나무를 따 먹으면, 죄 가운데 영원히 살까 봐 동산 밖으로 내 보내시고..
열심히 일을 하면 번성하도록 해 놓으시지 않았나요..?


그뿐인가요?
   
독생자를 내려 보내셔서 온 인류의 더럽고 악한 죄를 위해 어린양으로 희생시키기까지.
그래서 누구든지 그 분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도록.
우리를 입양해 그 분의 자녀의 권세를 주시기까지.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뿐인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마다 성령님을 받아 모셔 권능을 받아,
이 죄악세상에서 나그네로 승리하며 살게 하시기까지.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가장 큰 까닭은..
그 분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기까지는.. 
우리가 그 사랑에 뿌리 내리고 자리매김하여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을 초월하는 크리스토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열매 중 으뜸가는 첫 열매인 사랑을 맺기 위해서는..
믿음/소망/사랑 중 으뜸인 사랑을 완성해 가기 위해서는..
파울의 이런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가페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 내려 주실 수 있는 신적 사랑입니다.
페트로가 말한 그 "신적인 성품(속성)"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사랑에 뿌리 내리지 않고 이 사랑 위에 든든히 서지 않고..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이 사랑의 4차원을 헤아리지 않고..
이 사랑을 알고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을 논하고 말할 건덕지조차 없는 셈입니다.


이제..파울은 이 기도의 총 결론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우리가 가득 채워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과연 뭘까요?
아가페를 비롯해, 하나님의 온갖 선하고 좋은 것들의 충만일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육에 필요한 모든 것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우리 존재와 생명, 삶의 바탕입니다.
하나님의 충만 없이, 우리의 충만은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심 없이 우리의 성령충만은 있을 수 없지요.

오늘날 소위 '뉴에이저'들은 흔히 '가야'로 불리는 지상의 모든 충만을 그네들 속에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의 충만이 아니지요. 하늘과는 단절된 헛되고 거짓된 충만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겉으로는 선해 봬도 도전과 죄와 악의 충만입니다.
이 세상의 메이트릭스는 처음엔 혹 무지개빛처럼 아름다워 보여도, 그것은 결국 가득한 허상과 환멸 뿐입니다. 그 '충만'을 찾다간 결국 어둠과 유황불과 잃어진 영들로 가득한 불의 호수에서 종국을 맺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충만이 온갖 선하고 좋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풍요한 것들로 가득한, 참된 충만입니다!
그리고..오직 크리스토 예수님 안에서 그 충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를 위해 참된 충만을 바라는 파울의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길 희구합니다!


티엘티 독자들은
파울의 기도를 따라
믿음으로, 사랑 속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 자리매김하며
사랑의 4차원을 헤아리며
크리스토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길~

전능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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