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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7)


에페소 3'20,21 (사역)

    이제, 우리 속에서 일하는 그 권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넘치게 행하실 수 있는 분(=하나님), 곧 그 분께 교회 안에서와 크리스토 예수 안에서 대대로 영원히 영광! 아멘.



에페소(에베소)서에서의 파울(바울)의 이 둘째 기도의 간구 내용이 19절까지라면..
위 두 절은 기도를 맺는 결론, 또는 기도 끝에 덧붙인 송영(頌榮)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울은 언제나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즐겼습니다.
우리는 그의 모든 서신서의 머리나 끝 부분에서 으레, 또는 중간에서도 수시로 이런 송영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 앞뒤에 이런 송영을 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별식'/'별미' 내지 영적 '화법'의 방식임을 우리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날마다/수시로 뵐 때도 훈훈한 인사말과 그 분들의 덕을 기리는 좋은 말들이 그 분들을 흐뭇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삶의 한 비결입니다. 반대로, 그 분들을 모처럼 뵙고도 무뚝뚝하게, 무심히 대하거나 아무 진심 어린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이나 요구사항만 바삐 아뢴다면, 그보다 큰 불효도 드물 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의 아버지께도 그 분께만 걸맞은 영광과 찬양, 감사를 돌림으로써, 부족한 우리이지만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단, 빈말이 아니라 꼭, 믿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 잠언서엔 "때에 걸맞은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 위에 금사과"라는 비유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찬양/영광을 돌리는 것은 정말로 때에 걸맞은 말이 아닐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고 이런저런 요구사항과 희망사항들을 아뢰면서도, 그 분의 거룩한 존재, 그 분이 베푸시는 은총/은덕/평화에 대하여 아무런 응대가 없다면, 자칫 세상 부모만큼도 그 분을 귀히 여기지 않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삶이 바쁠수록 우리는 '얼른냉큼후딱퍼떡'..빨리빨리날래날래싸게싸게'식 소원기도를 드리기 쉽습니다.
그런 기도를 풍자하여 '달라 달라' 기도라고 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기도가, 더구나 이렇다 할 믿음 없이 상투적/습관적으로 남발된다면, 우리는 자칫, 우리가 우려하는 기복주의에 빠져 들 수 있는 겁니다.  

비록 무한히 은혜로우신 그 분인지라, 우리를 넉넉히 이해하시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눈 앞에 한 영혼이 죽어 가는 순간과 같은 매우 다급한 때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장문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에 맞는 말은 기도에도 적용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파울의 이 기도 결론을 보면, 짧은 송영 속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 속에서 일하는 그 권능을 따라.."

첫째로 깨닫는 것은 믿는 우리 속에서 늘 일하는 권능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권능의 원어는 '뒤나미스'입니다.
폭약을 뜻하는 '다이나마이트'가 이 어원에서 비롯했지요.

가끔 영화 같은 데서, 자의나 타의로 시한폭탄을 품 속에 장치한-이른 바 '자살폭탄'을 안고 있는 위태로운 광경을 봅니다. 거기서 들려오는 똑딱거리는 디지털 초읽기 소리는 다가온 급박한 위기상황을 의식하게 하며..따라서 주변에 커다란 위험 대상임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핵폭탄이나 핵발전소에 방불한, 아니 능가하는 놀라운 영적 에너지를 속에 안고 지냅니다.
바로 성령의 권능이지요.
2000년전 교회에 내린, 그래서 믿는 우리 모두에게 임한 권능! 성령님의 에너지입니다.
온 우주의 그 어떤 힘과 동력도 능가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에다 살아 움직이는 영적인 뉴크(핵탄), 핵발전소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사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정말 폭발력이 엄청난 "위험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쉽게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비밀/신비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심지어 못나고 약해 뵈는 우리지만, 영적인 거인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칫 우리를 잘못 건드렸다간, 이 핵발전소의 놀라운 에너지가 '폭발'하여 상상 못할 위대한 힘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에서 내린 권능이지요.
또, 우리 자신이 맘대로 부리거나 남용할 에너지가 아닙니다.
적절한 때..

크리스토(그리스도) 안에서!
크리스토 안에서!
예..크리스토 안에서!

믿음으로,
그 분의 이름으로,
그 분의 뜻대로 활용할
그런 힘이요 에너지입니다.
 

자, 그 능력을 따라 어떻게 됩니까?
파울은 그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넘치게 행하실 수 있는 분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할렐루야~..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입니까!
이 권능을 속에 담고 있는 우리는 간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넘치게, 풍요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천하장사도, 거부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최강의 레슬링 선수권자를 아버지로 모셔서 그 '역발산 기개세'를 힘입는다 할지언정, 그 자녀가 바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넘치게 해 줄 수 있나요?
빌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를 아버지로, 오프라 윈프리 같은 부자를 어머니로 모신들 이렇게 됩니까?
그런 육의 아버지가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 넘치게 채워 줄 수 있나요?
그렇지 않지요!


또 우리를 진정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면, 그럴 수가 없지요.

거부들은 평생 주변 사람들을 경계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기 피붙이나 아내라도, 언젠가 자신이 죽고 나면 재산을 몽땅 가로챌 까 봐 전전긍긍하게 마련이지요.
그래도 한 번 죽고 나면, 안고 갈 수도 없고, 머리에 이고 갈 수도, 등에 지고 갈 수도 없는 게 재물입니다. 그냥 죽는 그대로 빈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는 얼마나 위대하고 풍요로우시며..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우리 속에 두신 성령님의 그 권능을 따라 행하시고 일하십니다.
우리의 꾀나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님의 슬기와 권능 말입니다.
우리 자신의 사랑과 인륜도덕이 아닌, 성령님의 열매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늘 외치는 사랑의 뿌리도 열매도 오직(!) 성령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아가페 사랑이어야 합니다.
아가페는 십자가에서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린 것입니다. 

파울은 끝말을 잇습니다.

  "..곧 그 분께 교회 안에서와 크리스토 예수 안에서 대대로 영원히 영광! 아멘."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기도 해야 합니다.
영광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그 분께 돌려져야 하며..
영광은, 오로지 우리 주님과 하늘의 천군천사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곧 교회입니다.

위 구절은 크리스토께서 교회의 머리이심을 시사해 주기도 합니다.


바라건대, 티엘티 모든 성도는
늘 이 권능을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언제나 온전히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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