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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사악한 폭군 메나쉐(므낫세)의 범죄와 회개(메시아계보대장정64)





바탕본문: 왕들B서(열왕기하) 21장; 연대기B(역대기하) 33장  


히즈키야 왕이 죽고 나자 그 아들 메나쉐(다른 표기: 므낫세/메나쎄/마나쎄)가 왕이 됩니다. 그는 남유다 왕국의 제13대(또는 14대) 왕이었습니다.
즉위 당시 12세였던 메나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최악의 군주가 됩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하브(아합)를 연상시키는, 남유다 왕국 사상 전무후무한 우상숭배자에다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는 남북 역대 왕들 가운데 최장기인 55년 동안이나 다스립니다! 물론 말년엔 다소 착해졌습니다만.

가장 선하고 훌륭한 군주의 씨로서 이런 후계자가 되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이럴까요?

히즈키야 왕가의 자녀교육상 무슨 헛점과 약점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묘하게도, 메나쉐라는 이름은 '잊다', '잊어버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연 메나쉐는 히즈키야가 선한 업적을 세운 과거, 하나님께 사랑과 복을 받던 시절을 다 잊어 버렸습니다!
 
왜 히즈키야는 왕세자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을까요?

마치 고대의 요셒이 미쯔라임(에짚트)의 국무총리적에 올라 초기에 종살이/옥살이하던 고달픈 추억들을 다 잊게 됐다는 뜻에서 아들에게 마나쎄란 이름을 지었듯이, 히즈키야는 지난 날 나라가 외세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자신이 중병에서 구원받음으로써 한 시름 놓았다는 기분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단순히 '메나쉐'라는 이름이 좋아 지었는지도 모르고요(히즈키야의 '메나쉐' 작명 내력에 관한 구구한 학설들이 있어 왔음).

그런데..메나쉐는 마치 예언적인 이름처럼 돼 버렸습니다. 선왕이던 아버지의 좋은 시절이나 하나님이 히즈키야에게 베푸신 은총을 모두 잊어버린 셈이 됐으니까요.


히즈키야가 메나쉐를 낳은 때는 그가 하나님께서 예샤야후를 통해 그에게 중병으로 인한 임종을 선언받은 후, 기도 끝에 병이 나아 15년간 생명 연장 선언을 받고 난지 3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히즈키야는 뒤를 이어줄 아들이 아예 없었거나 왕세자를 잘못 선택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석가 내프(Knapp)의 말대로) 만약 히즈키야가 아들 메나쉐가 자라서 이런 끔찍하고 악한 임금이 될 줄 미리 내다봤더라면, 자신의 생명 연장을 후회했을지도 모르지요. 과연 그는 임종 때까지 그러니까 메나쉐가 12세가 되기까지도 아들에게 숨은 이런 악의 성향을 보지 못했을까요?

메나쉐가 특별히 악한 임금이 된 데에는 어떤 연유라도 있을 터입니다. 히즈키야가 자녀교육에 퍽 소홀했거나 마음이 무척 교만하던 때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말년으로 갈수록 왕가 관할에 대해 무력했을 수도 있지요.

아무튼 분명한 것은 히즈키야는 자녀교육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케이스를 성경에서 종종 봅니다.

단적으로..지도자의 가정교육이 온전하지 못했던 경우는 사제(제사장) 엘리, 대언자/판관(사사) 슈무엘, 다빋 등의 예를 볼 수 있지요. 더욱이 슈무엘, 다빋, 히즈키야 등의 예는 훌륭한 신앙위인들이었기에 자녀들의 심각한 문제점들과 궁극적인 파탄은 더구나 충격적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는 훌륭할수록 자녀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격언도 있을 법 합니다.

히즈키야는 15년 연장된 삶이 하나님께 고마워서라도 과거보다 더욱 근신하며 살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흔적이 여실합니다. 히즈키야-헾지바 부부는 후대를 이어 줄 왕세자의 영혼도 소중히 여겨 잘 교육해야 하는데, 거의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히즈키야는 자신과 자기 왕대만 평안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자기 후대가 바벨론 포로기를 지낸다는 예언 때문에 "어차피.." 같은 심정으로 자녀교육도 중시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 결과로, 자신의 간구와 하나님의 은총 덕에 15년 생명연장을 받은 기간이 최악의 군주를 기르는 모밭이 됐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스럽고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릴 순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메나쉐가 이런 왕이 될 줄을 미리 모르진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히즈키야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을까 라고 말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히즈키야는 15년 연장된 기간동안 그로서는 중대한 죄과라면 죄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저질렀습니다. 허영스런 맘으로 바빌론 사신들에게 나라의 모든 보물을 자랑하고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15년 연장시키신 하나님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니라, 인간 히즈키야의 죄과는 스스로의 것이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린다면, 우리는 실족한 셈이 되고 맙니다.

또 하나님은 왜 좋은 임금에게서 이런 악한 왕이 나올 사태를 미리 막지 못하시고 놔 두셨으며, 55년간이나 통치하게 하셨을까 라고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메나쉐가 히즈키야의 유일한 아들이었다면, 이 악한 왕을 통해서라도 메시아의 계보가 유지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는 찬양해야만 합니다.


메나쉐의 중범죄

아무튼, 메나쉐는 과연 얼마나 악한 임금이었을까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찍이 카나안 땅에서 내쫓으신 여러 민족과 패망한 북 이스라엘의 죄를 본받아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 아버지 히즈키야가 파괴한 산당들을 재건했습니다. 즉 부왕의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되레 역행한 것이지요. 당대 개혁이란 것이 기껏해야 얼마 못가고 고작 한 때 또는 몇 년뿐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 북이스라엘의 옛 군주 바알을 본받아 바알 제단을 쌓았고 목상을 세웠습니다. 유다의 가장 선한 군주인 부왕을 본받기 보다 이스라엘 최악의 왕을 본받는 쪽을 택한 것이지요.
그래서 심지어 몸소 아쉐라 상을 새겨 성전 안에 두었습니다. 다산의 신인 이 여신 숭배엔 흔히 여사제들과 숭배자들 사이에 성제(性祭: 제의적 성교)가 따르곤 했습니다.
메나쉐는 거룩한 주님의 성전을 영적인 사창굴로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

- 일월성신 등 모든 천체를 신으로 받들어 섬겼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과거에 없던 새로운 우상숭배 형태입니다. 아마도 당대에 유행하던 바벨론의 신화적 천체 숭배를 본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성전 안에다 나름의 단을 만들었고, 성전의 두 뜰에다 천체신을 위한 단을 쌓았습니다.

- 자기 아들을 카나안신 몰롴(몰렠) 신상 앞의 불 속을 지나가게 만들었습니다. 몰롴은 자녀들을 불태워 제사하는 대상이었습니다. 

- 복술/점술(점성술 포함)/요술(마술)/접신술 등을 자행했습니다. 오컬트는 노골적인 싸탄/악령 초청 행위입니다.

- 그는 모든 백성들을 꾀어 이방보다 더 심하고 더 나쁜 우상숭배 죄를 짓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기꺼이 왕의 유혹을 따랐습니다.  

- 그는 선왕이 충실히 했던 참 하나님 예호바 경배를 완전히 폐기처분해 버리고, 과거보다 나라를 더욱 악화시켜 전적인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 결과 나라는 불경건과 부도덕의 절정에 잠겨 거의 회복불능이 돼 갔습니다.

- 메나쉐는 잔혹한 폭군으로도 한 몫 하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그는 예루살렘 한 쪽에서 다른 쪽까지 무고한 피로 가득 채웠습니다. 수많은 박해와 순교자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아하브-예제벨 부부의 우상숭배 뿐 아니라 잔인성까지 본받은 셈이지요.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더 나아가 메나쉐와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백성과 지도자에게 타이르고 말씀하셨지만, 마이동풍 격으로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예고

메나쉐와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했듯, 하나님의 진노도 극에 달해, 유다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 패망한 옛 북이스라엘의 수도 쇼므론(사마리아)을 다루신 줄자와 아하브 왕가를 다루신 다림추를 예루살렘에까지 적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 예루살렘을 접시를 비우고 씻듯 말갛게 쓸어 버리고 뒤집어 엎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 또한 향후 유다의 남은 자들을 내버려,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주심으로써 온갖 노략과 겁탈의 대상물로 삼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같은 경고를 한 대언자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히즈키야 시대에 활약한 늙은 이사야는 메나쉐의 대 박해 시대에 죽고(순교?), 거의 무명/익명의 대언자들이 활약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고된 이 심판은 단/장기로 성취됩니다.

    1. 우선, 메나쉐 시대에 아슈르 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갑니다.
    2. 훗날, 유다 말기에 후손들이 또 다시 포로돼 바벨론으로 떠납니다(참고: 왕들B 22'16,17; 34'24,25. 연대B 32'25,26. 이 훗날의 심판 성취도 주로 메나쉐의 죄과 때문임을 명확히 밝혔다: 왕들B 24'3,4).
이 심판의 일부는 히즈키야의 죄과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즈키야 당대에도 부분적으로 이미 예언된 바 있습니다(참고: 왕들B 20'17,18).

참으로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의로우십니다.


메나쉐 당대에 받은 일차 심판과 결과

아슈르 군대가 쳐들어 와 메나쉐 왕을 사로잡고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그토록 사악하고 잔인했던 폭군 메나쉐는 포로로 잡혀간 현지에서나마 비로소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예호바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크게 회개하고 겸손해집니다.

더욱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토록 진노하셨던 대상인 사악한 메나쉐 왕의 간구를 들으시고 즉각 용서하셨다는 사실이지요!
비슷한 사례가 아하브 왕대에도 있었습니다(    )만, 메나쉐는 좀 더 나아가 아버지와 같은 유형의 재개혁을 하게 됩니다.

메나쉐는 다시 고국에 돌아와 왕위를 지켜 남은 생애를 살게 되자, 그제서야 예호바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메나쉐 왕의 재개혁

하나님의 온정과 은총으로 귀국한 메나쉐는 심기일전하여, 국방 강화와 영적인 재개혁을 합니다.
 
우선 다빋성 기혼 서쪽 골짜기 안에 드높은 외곽 성을 쌓되, '어문'(생선문) 어귀까지 쌓았고 오펠 언덕 둘레까지 모두 쌌습니다.
또한 유다의 모든 요새도시에 군대와 지휘관을 배치했습니다.

그는 또 과거 자신이 앞장서 섬기던 이방 신상들, 성전 안의 우상들, 모든 우상 제단들을 다 제거하고, 성전 제단을 보수해 그 위에다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전국에 명령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호바님을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
백성이 그 명령에 복종했으나, 히즈키야 시대에 일시 근절됐다가 메나쉐가 재개한 산당 제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메나쉐의 기도를 들으시고 제사도 받으셨지만, 예고하신 미래 심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메나쉐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

아슈르 왕 에사르하똔(통치기: 주전 680-664년) 당대의 한 연감 비문에는 메나쉐 왕에 관한 언급이 있다. 아슈르 왕궁에 바친 팔레스타인 군주들의 조공물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유프라테 강 넘어 지역은 물론, 하티(즉 팔레스타인) 지역의 왕들에게도 명을 내렸다. 즉 튀로(쪼르: 한글 표기 '두로')왕 발루, 유다(원문 표기: 야우디) 왕 메나시(또는 '민세')..하티의 해변과 섬나라를 포함, 모두 22명(일설엔 12명)의 왕들 전원에게 내가 왕이던 수도 니네베(니느웨)의 내 궁으로 건축자재를 수송하라는 난제가 주어졌다."

에사르하똔은 당대에 바벨론 통치자를 겸했다.
 

악한 후계자 아몬 왕

메나쉐가 55년간의 통치를 끝내고 잠들자, 그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오릅니다. 나이 22세였는데 재임 기간은 불과 2년에 그칩니다.
그는 회개/재개혁 전의 아버지 메나쉐를 본받아 또 다시 모든 옛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섬겼으며 끝내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신하의 반역에 의해 왕궁 안에서 암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