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 (9)

 

필리포 1'9-11

  그리고, 이것을 내가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 가운데서 점점 더 넘쳐 가기를!
  그래서 여러분이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 내어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기를!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들이 가득해져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기를! 
    (사역)



필리포서에 나타난 파울의 기도를 두 번째로 묵상합니다.
10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내어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기를!


본 시리즈에서 그동안 하지 않던 얘기를 하나 합니다.
여태 8회에 걸쳐 파울의 기도를 살펴 봤지만, 우리가 새삼 느끼는 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파울의 기도의 중요한 특징 한 가지는 하나님께 직접 아뢰는 '대화형' 내지 직고형이 아니라, 도고(intercession/중재기도) 대상인 상대방을 위한 기원형/축복형이라는 것.

그래서 상대방인 성도들의 대명사인 복수 2인칭 '여러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기도의 직접적 대상인 하나님은 잠재적 3인칭과도 같습니다.

그래서..주 예호바님을 극존2인칭 상대로 직고한 야베즈/솔로몬의 기도, 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소위 '주기도'라 불리는) 기도모범,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아뢴 주님 자신의 기도들과는 차이가 있지요.


그러니까 파울은 편지의 대상자=수신인에게 쓰는 대명사를 바꾸지 않고 편지 속 기도에도 그대로 썼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더욱 연속성과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도가 정격적인 기도가 아니라거나 수준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수준이 더 높은 기도라고 할 순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한 형식입니다.
 
시편 등에 나타난 성경의 기도를 보면, 호소/간구형, 회개/고백형, 찬양/송축형, 기원/축복형.. 등 형태가 다양합니다. 


우리는 파울의 이런 기도형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 말은..기도를 상투적/습관적으로 똑 같은 형태인 "하소서, 주소서, 주시옵소서.." 형으로 하기 보다 형태를 달리 하여 다양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영광을 홀로 받아 주소서"란 호소적 표현은..
     "영광이 대대로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있기를~!" 하고 기원형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성도님의 오늘 하루, 범사가 잘 되게 해  주세요"보다도..
파울의 기도형처럼..

     "김 형제, 님(그대)의 오늘과 만사가 잘 되기를~!"
하고 기원형/축복형으로 빌 수 있다는 말이지요.

언뜻 그 말이 그 말 같아도, 파울의 기도형을 본받기도 하고..늘 끝말이 똑 같고 단순한 한국어의 단순성을 피할 수도 있고..일거 양득입니다.


하지만 제 얘기는, 기도 문장형을 달리한다는 얘기지, 관상기도/향심기도 식으로 비성경적인 기도방식도 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관상기도 등 엉뚱한 기도가 횡행하는 요즘 성경의 바른 기도 형태는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할 목표입니다.


자, 그럼..본론으로 들어가서, 10절은 9절에 잇댄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즉 성도의 사랑에 지식과 통찰이 곁들여져 점증/강화돼 가는 가운데, 9절의 결과도 있으라는 기원입니다.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낸다..?
원문에는 '같지 않은 것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이 말은 탁월한 결과를 위해 분별/검증을 잘 해야 한다는 말로 보면 그다지 틀리지 않습니다.

파울은 여기서 성도가 분별과 검증을 잘 하라고 기원하고 있음을 우리는 눈여겨 보게 됩니다. 후반절과 연결시키면, 그렇게 해야만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 이런 기원을 남을 위해 해 줍니까?
그러기를 빌어 줍니까? 좀체 하지 않지요.

혹시 친한 형제/자매한테라도 분별과 검증을 잘하도록 빌어 주면, 대뜸 속으로 "아니 뭐, 내가 앞뒤도 잘 못 가리는 흐릿한 멍텅구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고 반발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파울을 본받아 그렇게 빌어 주고 또한 빎을 받는 게 도리입니다. 분별/검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파울이 말하는 분별은 잘잘못의 시시비비를 가린다기 보다 보다 보통 것과 드높은 차원의 것들, 수준 이하의 것들과 탁월하고 뛰어난 것들, 하잘 것 없는 것들과 고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잘 가려서 놓치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추상적인가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를 갖고 예를 들어 보죠.


근래 상당수의 교계 사람들은 관상기도/향심기도 등을 차원 높은 영성의 기도라고 믿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엔 그런 주관적/신비적 유(類)의 기도를 바른 기도라고 가르치지도 않을 뿐더러 그보다 차원 높은 기도로 영언(방언)을 꼽고 있습니다.

정작 현실은..많은 교인들이 오히려 영언을 차원 낮은 기도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언을 '추잡'하고 '저질적'인 기도쯤으로 여기고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평시의 기도를 더 깨끗하고 고차원적인 기도로 생각하지요.
그런 사람들에겐 카톨맄식 관상기도는 유혹으로 다가올 법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언에 관해 뭐라고 말해 줍니까?

그것은 내가 뜻을 알지는 못하나, 내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아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영이 직고하니까 내 맘은 뜻을 알 수가 없지요. 내 정신으로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뭐가 비밀입니까?
내용을 몰라 답답해서 꼭 알고 싶으면, 해석을 간구해서 해석까지 곁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기도 방식 가운데 이 영언만큼 고차원의 기도는 없습니다.
물론 내용상으로 보면, 직접계시인 주님의 기도나 파울의 기도 등이 더 고차원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파울의 말대로라면, 방법과 성격 상으로 영언은 가장 영적인 기도임에 틀림 없습니다.
더욱이 파울은 날마다 때마다, 그 누구보다 영언을 더 많이 한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즉 영언의 계시를 성도에게 알린 파울 자신이 영언기도를 가장 많이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관상기도가 영언기도보다 더 차원 높다..?
성경적으로 전혀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사도 파울이 관상기도를 했다는 얘기가 어디 있나요?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조차도 발견하지 못하고 차원높은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지도자는 명약관하히, 지도자가 아니지요!

한 마디로 관상기도/향심기도 따위를 '차원높은' 기도라며 자랑스럽게 하고 다니고 남에게 가르치는 지도자는 성도 이하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눈 뜬 이들을 이끌고 길 안내를 하는 눈 먼 이 격입니다.

지도자들은 남보다 더 말/글 조심을 해야 하고 더욱이 소자들을 실족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순진한 성도에게 관상기도를 "차원 높은" 기도라며 보급하는 '지도자'들은 무지한 미혹자들이며, 끝날에 받을 특별한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사도 파울이 어느 기도보다 차원 높은 기도로 가르치고 본인이 실천한 영적인 기도는 바로 영언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다 우리가 지금 묵상 중인 파울의 기도들도 우리가 본받으면 더 없이 좋을 특별계시적인 기도들이지요.


파울의 이 기도에 따르면, 우리는 차원 높고 영적인 것들을 잘 분별함으로써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을 수 있습니다.
파울이 오가는 모든 세대의 성도에게 그렇게 빌고 있으니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에겐 득 될 것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참되다, 충성되다, 꾸준하다, 건실하다, 변함 없다는 술어와 일맥상통한 말입니다. 거짓이 없고 믿을 만 하다는 뜻에 가장 가깝지요.
하나님이 우리가 가장 믿을 만한 대상이심은, 그 분은 늘 참되시고 신실하시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흠 없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 사물들의 겉모습으로만 봐도 사람들은 흠 없는 것들을 눈여겨 찾습니다.
아낙네들이 장에서 고르는 과일만 해도 흠 없는 것들만 골라 바구니에 담습니다. 
요즘 신랑신부들이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 너그럽다 해도, 내심 배우자가 되도록 흠없는 상대이길 은근히 기대합니다. 살다가 뒤늦게 이런저런 흠이 나타나면 크게 실망하기도 하지요. 끝까지 덮어 주고 견디면 다행입니다만.

하물며 하나님은 성도가 흠이 없기를 기대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으로 예수 크리스토를 보내시고 희생시키셨습니다.

우리 자신도 그런 흠 없는 대상이길 원하거든, 우리는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별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바른 분별, 바른 검증엔 9절 말씀처럼 참 사랑과 참 지식, 참 통찰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파울의 이 기원을 동료 성도, 내 친구, 내 이웃에게 빌어줌으로써 모두 함께 유익될 수 있습니다!


티엘티 성도는 차원 높은 것을 가려내어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기를~
아멘


 

'성경묵상연구 > 파울의 기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울의 기도 (11)  (3) 2010.08.15
파울의 기도(10)  (3) 2010.07.03
파울의 기도(8)  (7) 2010.05.23
파울의 기도(7)  (1) 2010.04.25
파울의 기도 (6)  (0)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