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유다 말기-후 요시야 왕국시대 (메시아계보대장정67)

바탕본문: 왕들B(열왕기하)서 23'31-24'16; 연대기B(역대하) 36장   

                 현재의 하맡 리블라. 파라오 네코(2세)가 예호아하즈 왕을 포로로 잡아간 곳.
                땅이 비옥하여 후에 네부칻네자르 2세가 이곳에 전진기지 본부를 설치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난 이후, 후대 왕들 가운데는 이제 더는 좋은 군주가 없어,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을 향한 가속만이 붙게 됩니다. 나머지 왕들은 모두 요시야의 아들/손자입니다.
유다 왕국의 패망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22년 6개월인데, 왕은 4번이나 바뀝니다.

후 요시야 시대 유다 왕들과 재위 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속은 같은 사람의 딴 이름과 즉위 당시 나이)

*제16대 예호아하즈(샬룸)                   3개월 (25세)
    17대 예호야킴(엘야킴)                     11년 (23세)
    18대 예호야킨(예코니아/콘야후)       3개월 (18세 또는 8세)
    19대 제데키야(마탄야/마탄야후)        11년 (21세)
      [ 이후 바벨론 포로기 ]

(* 제 스스로 왕이 된 비정통군주 아탈리아 여왕까지 포함시킨다면, 제17~20대임)


어떻습니까? 단명한 재위 기간 숫자부터가 묘한 것이 하나의 굴레 같은 반복처럼, 하나님의 마지막 경륜 같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왕들은 모두 요시야의 아들/손자인데도 언제나 거의 악한 군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두 왕-예호야킴과 그 아들 예호야킨-이 역시 메시아 선조 계보를 이어 나갑니다.
 
사실 이 왕들은, 피를 토하듯 외쳐대는 당대 참 대언자들의 불 같은 멸망/포로 예언이 이어지자, 적어도 내심으로는 이제나 저제나 전전긍긍하며 살아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욱 더 외세를 통한 심판의 뜻을 굳히시고 시행하십니다.


대언자들

하나님은 요시야 이후 시대에도 과거처럼 수많은 대언자들을 통해 유다를 이리저리 어르시고 타이르시기도 하고 강력히 경고하시기도 해 오셨건만, 이젠 때가 마지막 때인지라 온유하게 사랑으로 이르시기보다 다가온 무서운 심판에 대한 통보를 주로 하십니다.

당대 대언자로는 예레미야/하바쿸(하박국) 등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로 요시야 때부터 멸망 직후까지, 하바쿸은 과도기를 다룹니다. 공식 대언자인지는 모르나, 예레미야 시대에 그와 똑 같은 예언을 했다가 순교한 우리야도 있습니다.
[ 포로기 이후부터 귀환 이후, 계시가 끊긴 소위 '중간기'까지 다니엘과 에제키엘(에스겔), 하까이, 말라키 등이 말기-포로기의 계시를 다룸. ]

특히 예레미야는 자신의 본서 외에도 일부 사기(史記)와 함께 조국의 멸망이 슬픈 나머지 애가도 남겼고, 그의 예레미야서와 또 다니엘, 에제키엘서는 분량이 길어 소위 '큰대언서'('대선지서'. 영어 Major Prophets)로 불리기도 하지요. [ 큰대언서로는 그밖에도 예샤야후(이사야)서가 있어 앞의 3권과 합해 모두 4권이 있고, 나머지 모두는 작은대언서(소선지서, Minor Prophets)로 불림. ]

이 대언자들은 한결같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왕들과 백성, 주변 나라 등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렸습니다. 특히 예레미야는 그랬습니다. 그는 결국 반 바벨론 파에게 잡혀가 미쯔라임에서 순국/순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명왕 예호아하즈

지난 회에서 봤듯, 요시야 왕은 미쯔라임의 파라오 네코의 군대를 대항했다가 중상을 입은 뒤 죽었습니다.

 



국민들이 그의 아들 가운데서 예호아하즈(딴 표기: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나쁜 선조들의 모든 악행을 본받았습니다. '샬룸'이라고도 불린 그는 즉위 당시 23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하무탈은 '립나(Libnah)의 예레미야'의 딸이었습니다.
[ 립나의 예레미야: 당대 대언자 예레미야와는 동명이인. 기자가 서로 구분하려고 '립나의 예레미야'로 썼음. ].

옆 사진: 파라오 네코 2세의 두상


하무탈의 자식들 가운데 예호아하즈 말고도 제데키야(딴 표기: 시드기야) 역시 훗날 왕이 됩니다. 역대 유다 왕들 중 유일하게 한 왕비에게서 두 왕이 난 셈이지요. 그런데 둘 다 악한 왕이었던 것을 보면, 하무탈은 그다지 선했거나 훌륭한 어머니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악한 왕의 부모라고 해서 다 반드시 나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경이 왕의 선조들의 배경/이름 등을 밝힌 것은 어떤 점에서 그런 유의 참고가 됩니다. 
하무탈의 두 아들 왕은 메시아의 선조로 선택되지 못했습니다. 과거 스스로 왕이 된 아탈리아 여왕, 예호아하즈, 제데키야 등은 모두 메시아 계보에 직결되지 못합니다.

요시야 역시 손자를 포함, 슬하의 넷이나 모두 왕이 되지만, 개혁 국정에 주로 힘쓰다 보니, 좋은 왕세자를 한 명도 기르지 못했고요. 아내들도 선하게 이끌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처럼 선한 왕의 아들들이 다 한결같이 악한 임금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의아스럽습니다. 새삼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아무튼, 예호아하즈는 즉위 후 불과 3개월 동안 우상숭배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하나님은 그의 부왕 요시야를 부득불 죽인 파라오 네코의 침공을 허용하십니다. 네코는 예호아하즈 왕을 포로 삼아 하맡 땅 리블라(Riblah)로 잡아갑니다. 재즉위를 미리 막기 위해서였죠. 예호아하즈는 결국, 미쯔라임에서 여생을 마칩니다(예레미야서 22'11,12의 예언 그대로입니다).

네코는 또 종주국 왕으로서, 차기 왕과 유다 왕국에게 은 100 키카르(=탈렌트), 금 1 키카르를 벌금/배상금 조로 매깁니다. 아마도 예호아하즈는 석 달 내로 조공을 바쳐야 했거나 네코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엇보다 요시야 사후, 예호바 하나님께 대해 불충했습니다.


    예호야킴 시대

파라오 네코는 이어서 후기 왕을 요시야의 다른 왕자 엘야킴(딴 표기: '엘리아김')으로 갈아치우고, 이름도 '예호야킴'으로 바꿔 부릅니다.



미쯔라임 신 앞에 무릎 꿇은 파라오 네코의 전신상(1세 또는 2세)

 

네코는 왜 엘야킴을 '예호야킴'으로 개명했을까?

우선, 자신의 종주적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현재 수하국가인 나라의 군주도 바꾸면서 이름도 바꾼다는 전환 의지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아마도 네코는 엘야킴 즉 단순히 '하나님/신이 일으키시다' 보다는 때때로 파라오인 자신에게도 영감을 주시는 이스라엘의 고유신이신 예호바가 몸소 이런 일을 행하신다는 의미로 '예호야킴'(예호바님이 일으키시다)이 더 구체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 참고: '엘'은 하나님일 뿐더러 아람어로 여느 예삿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변국가에 폭 넓게 사용되던 통칭이기도 함. ]

또 네코는 예호바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예루샬렘 침공과 왕의 전격 교체, 은/금 부과 행동을 모두 예호바가 직접 하시는 것으로 정당화하면서 내심 만족감을 얻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예호바님이 직접 일으키신다는 이름 뜻처럼. 
아울러 그는, 자신과 자신의 나라인 미쯔라임이야 말로 자신이 섬기는 미쯔라임의 여러 신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 예호바까지도 공인/보장해 주셔서 일으키시는 대국으로 생각했을 터이다.  
이것은 네코가 참된 하나님 경배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심판 또는 영향을 위해서는 때에 따라 주변 나라 군주들까지 영감을 내려 부리실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예로 우리는 파라오, 네부칻네자르, 메대-페르시아의 다루쉬(다리오)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코가 단지 아람어 '엘'이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파라오 네코에게 새로 임명 받은 예호야킴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내 제부다의 아들이었습니다. 즉위 당시 25세. 11년간 통치합니다. 그는 전왕인 이복동생 예호아하즈와 별 다름 없는 악한 군주로, 역시 나쁜 선조들의 모든 악행을 따랐습니다.

예호야킴의 일차 국정은 파라오가 매긴 벌금을 갚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이를 내탕고 내지 국고에서 내는 대신, 세금으로 물리기로 하여, 국민 1인당 얼마씩 정해서 은/금을 거두어 네코에게 바쳤습니다.

동생인 선왕 예호아하즈가 등극 석 달만에 네코에게 잡혀간 것을 보면, 뭔가 깨달음과 뉘우침이 있어야 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11년간이나 기회를 주셨으나 그는 도무지 바뀔 줄을 모릅니다.


신흥 대제국 바벨론

옆 사진: 점토문서 '바벨론 연대기'. 유다왕 예호야킨('야오킨'으로 표기)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즈음 신흥 제국 바벨론은 영웅 네부칻네자르 2세(딴 표기 느부갓네살)의 위세 아래 아씨리아와 미쯔라임 등 기존 강대국들을 압도하거나 제압하는 대 제국으로 커 갑니다.
바벨론은 또다른 강대국인 미쯔라임의 해외 영토를 나일강 유역지대 인근부터 유프라테까지 모조리 빼앗아 네코의 중동 출입을 막아 버립니다. 유다를 비롯한 중동에 대한 미쯔라임의 영향력을 차단해 아예 손도 못쓰게 하려는 차원에서입니다.

네부칻네자르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유다를 공략하면서 내정 간섭을 하게 되고 결국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사실 바벨론의 이런 침공은 일찍이 바벨론 대표단에게 유다의 보물을 자랑했던 히즈키야 왕의 실수로 자초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훗날 히즈키야의 후손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신대로입니다. 


예호야킴 재위 8년 째 되던 해에 네부칻네자르가 예루샬렘에 첫 공략을 해 옵니다. 당대 대언자 예레미야는 예호야킴 즉위 제4년이 '네부칻네자르 왕의 원년'이라고 기록했기에, 이 때는 네부칻네자르가 왕위에 오른지 4년째 되던 해였지요. 
그동안 네코만 섬기며 의존해온 예호야킴은 항복하고, 바벨론을 섬기다가 3년만에 다시 배신하여, 네부칻네자르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이것은 과거 주로 현재 왕의 증조부인 메나쉐 왕 때 저지른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심판을 향해 불붙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모든 주변국가들-칼데아/아람/모아브/암몬 등이 유다를 적대하게 하여 심판하시기로 하십니다.   
메나쉐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온 땅에 가득 흘린 바 있습니다. 비록 뒤늦게 뉘우치긴 했지만.

왕들B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호바님은 용서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 성경의 이런 표현을 갖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가 나라를 세워 놓고 자기가 복 주고 벌 주고 용서했다가 용서하지 않는, 변덕이 심하고 잔인한, '이상한 신'이라고 평가하는 소위 '안티'적 견해가 있습니다. 안티들은 "신이 용서하려면, 무조건 다 용서해 줘야 하지 않냐"며 하나님보다 더 관대한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또 스베덴보리 사상의 추종자였던 헬렌 켈러 등 일부 명사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으로 여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죄 많은 인간의 변덕이 심한 탓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유다 등 고대에 택한 아브라함의 후손을 아브라함과의 언약대로 기르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공적인 거짓 신들(실상은 유형별 악령들임)은 "인간과 닮은 친근한 신들"이라고 관대히 봐 주면서 유독 성경의 하나님을 비판하고 적대하는 안티들의 불균형을 이런 데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몸소 사람에게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신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신 예수 크리스토님 자신, 성삼위 하나님이신 성자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


예호야킴 시대에 주변국가들이 이처럼 유다를 괴롭혔고 특히 칼데아의 립나에서 올라온 네부칻네자르의 군대는 예루샬렘으로 들어와 예호야킴을 쇠사슬로 결박해 가고, 성전의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 자기네 신전 안에다 둡니다.


    예레미야의 당대 기록과 예언

예호야킴 왕은 하나님 앞에 다양한 가증한 일을 행했고, 마음가짐도 사특했다는 기록이 이스라엘-유다 역대 왕사에 기록됐다고 연대기B에 적혀 있습니다(36'8 참조). 그러나 해당 기록인 왕들B서(23장 뒷 부분)에여기 해당하는 상세한 내용이 없어, 어떤 소행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따라서 추측컨대 우선 왕들B서에 적힌 대로, 미쯔라임 네코에게 은/금을 바치려고 내탕고에서 왕실의 보물을 내 주는 대신, 전국민의 혈세를 거둔 것이 예호야킴 왕의 대표적인 나쁜 착상이 아닌가도 싶습니다만..왕실과 국고의 은/금이 모자라거나 텅 비었기 때문이라거나, 네코가 은/금 확보책으로 혈세까지 명했다거나 등의 여부는 확실치 않습니다. 네코가 그랬을 가능성은 적습니다만.

 

그러나 예호야킴과 그 국민들의 죄악상이 어땠는지는 예레미야서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25, 26장 전후는 그렇습니다.
예레미야는 예호야킴 왕대 초기에 몇 회에 걸쳐 한 경고와 대언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의 예언 다량은 그의 개인 서기였던 바뤀에 의해 필사됐지요.

예레미야는 예호야킴 왕 즉위 초에 성전 뜰에 서서 그곳으로 경배하러 오는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려던 계획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계속 순종치 않으면, 이 성전이 과거의 쉴로(한글성경 표기: '실로')처럼 되게, 온 세상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쉴로는 수 백 년 전 고대 판관(사사)시대에 성막, 곧 모쉐 시대 때부터 여러 세기동안 줄곧 전수돼온 하나님의 법궤를 놓아 둔, 거룩한 천막이 자리잡고 있던 작은 마을이었지요.
그후 판관시대 말기에 타락했던 판관/사제 엘리와 그 두 아들을 비롯한 백성의 죄 탓에 진노하신 하나님이 법궤를 적국 펠레쉩에 빼앗기게 허용하시고, 성막이 있던 자리도 황폐하게 하신 곳입니다. 그후 다빋(다윗) 왕 시대에 와서야 옛 법궤를 발견해 새로 마련한 예루샬렘의 성막으로 옮겨왔습니다. 물론 슐로모(솔로몬) 시대엔 성전 안에 모시고요.  

그러자 예레미야의 경고 예언을 듣던 성전 사제들과 대언자들, 백성이 분노하며 "넌 죽어 마땅해! 네가 어찌 감히 이 성전이 쉴로처럼 된다고, 예루샬렘이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냐?"고 소리치며 달려듭니다.
요시아 서거 당시 애가도 지어 읊고 지난 23년간 자기네를 가까이 해온 하나님의 존중스런 대언자를 일반 백성은 물론, 사제나 대언자들까지도 이렇게 대하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그 정도로 시대가 사악해진 것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이 왕궁에서 이 급보를 듣고 서둘러 와서 성전 '예호바님의 새 문' 앞에 앉았습니다. 사제/대언자들이 예레미야가 저주스런 예언을 했다고 입 모아 규탄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지도자들까지 포함하여 다시 한 번 회개를 촉구한 뒤에 "나는 어차피 여러분 손 안에 있으니 맘대로 하라"면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 그 죄과를 면할 순 없으니, 이 모든 메시지가 바로 참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을 듣고 두려워진 지도자들과 백성은 그제야 예레미야를 죽여선 안 된다고 옹호합니다. 그러자 예루샬렘의 원로들 몇 사람이 일어나 과거 히즈키야(히스기야) 시대에 대언자 미카가 역시 미래 예루샬렘의 멸망에 관한 흉보 예언을 했지만, 히즈키야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서 예레미야를 죽이면 무서운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보충 발언을 합니다.

그즈음 예레미야 말고도 예호바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우리야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대언 내용은 예레미야와 똑 같았는데, 그것을 들은 예호야킴 왕은 분하여 군인들, 신하들과 함께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야가 겁이 나 미쯔라임(에짚트)으로 피신을 가자, 왕은 사람들을 시켜 추적하게 했고, 잡아온 뒤 끝내는 그를 죽여 평민의 묘지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 와중에 다행히도 예레미야의 안전은 아히캄이 지켜,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예호야킴 시대 사람들은 이 정도로 사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서 22장에서 유다의 말기 군주들에게 차례로, 조만간 다가올 심판을 통보하시면서, 예호야킴 왕이 죽을 때 애곡해 주는 사람조차 없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예렘 22'18-19).


예레미야는 예호야킴 왕 제4년에도, 예루샬렘 시민을 비롯한 온 백성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합니다(예레미야서 25장 참조). 그 해가 바벨론 왕 네부칻네자르의 원년(서기 주전/BC 약 605년)이었기에 이를 기해 더욱 중시될 만한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메시지에서, 요시야 왕 제13년때부터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대로 여태껏 무려 23년간 백성들에게 자신이 부지런히 이르고 경고해 왔고 다른 대언자들도 그랬지만, 도무지 듣지 않았다고 통탄부터 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예언의 어조와 강도를 보입니다. 이전엔, 당장이라도 회개하면 살아 남으리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이 늘 보장되다시피 했지만, 이젠 그나마 마감이 박두해 그럴 기회도 사라지고, 심판만 남아있다는 것이죠! 정말 두려운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늦게나마 회개하는 개인에게는 여전히 어떤 좋은 길을 제공하셨을지 모릅니다만. 그리고 심판인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잔혹/공포/심판만의 하나님이라는 발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바벨론 왕 네부칻네자르를 '나의 종'(예렘 25'9)이라고 부르시며, 유다와 주변 국가들까지 바벨론에 다 망하게 하여 모독과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포로기 70년간 땅은 황무지로 남겨두시겠다고 하십니다. 희희낙락하는 소리, 신랑신부의 소리나 맷돌소리, 등불 빛도 사라지리라 예고하십니다. 단, 70년이 지나면, 공평하게 바벨론에게도 보응하시겠다고 다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나라들 속으로 진노의 칼(전쟁)을 "들이미신다"고 비유하시고, 환상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진노의 술잔을 건네시며, 나라마다 이 술잔을 들이켜서 만취하여 비틀거리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환상 속에서 그렇게 했습니다(25'15-26절).

또한, 이미 심판의 맛을 보고도 끝내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백성과 지도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며,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무섭게 예고하십니다:

    "그 때는 예호바한테 살륙된 사람들이 땅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널브러질 터이다. 아무도 애도를 받거나 거두어지거나 묻히지도 않고, 마치 땅에 굴려 다니는 똥덩어리 같을 것이다." (33절)

특히 양떼의 목자인 지도자들이 달아날 길 없어 꼼짝없이 다 죽고, 평화의 목장들이 허탈한 적막강산처럼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34-38).

그러나 이래도 반발만 했지, 마음에 충격을 받아 진정 회개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예호야킨 왕의 100일 천하



예호야킴 왕은 리브나에서 죽어가고, 그 아들 예호야킨(딴 표기 '여호야긴')이 빈 자리를 계승합니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와 비슷한 이름이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선지(?), '예코니야/콘야후(한글성경 표기 '고니야')'로도 불립니다.
등극할 때 나이 18세(또는 8세)였던 그는 메시아 선조로서는 마지막 왕입니다.


옆 사진: '예코니야 정량(rations) 문서': 바벨론 이쉬타르 성문 부근에서 발견된 쇄기문서 점토판으로, 예호야킨 왕이 에빌메로닼 왕에게 받은 예우와 정량배식 등에 관해 상세히 기록돼 있다.   
 

18세? 8세?

    예호야킨 왕의 즉위 때 나이가 왕들B서엔 '18세'로, 연대기B서엔 '8세'로 돼 있는데, 이 나이차의 까닭은 불분명하다. 대다수 히브리어 사본에는 '8세'로, 1개 히브리어 사본과 70인경(LXX)의 몇몇 사본, 아람어 사본 등엔 왕들B(24'8)처럼 '18세'로 돼 있다.

이 점에 대해, 필자는 18세 쪽을 더 선호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상식적/논리적으로, 8세 쪽은 여러 모로 무리다.

    1. 8세 어린이의 우상숭배(?) 등 악행이 불과 100일만에 백일 하에 (하나님과 사람들이 공히 보고 알 만큼) 충분히 드러나고 입증되기란 혹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쉽진 않다.

    2. 그런 전례가 없다. 하나님은 8세 어린이 왕에겐 좀 더 성숙한 판단이 서기까지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으리라고 믿는다. 과거의 어린이 왕들(요아쉬/요시야)은 비록 일찍이 선한 뜻을 품었어도 성숙한 뒤에 제대로 집정했다.

    3. 불과 8세의, 불과 100일 천하에 어린이 왕이 "사악"하다고 판단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갈 그런 섣부른 네부칻네자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4. 또 왕과 함께 왕의 아내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고 돼 있다. 물론 생존한 과거의 왕후/태후도 포함됐을 수 있으나, 우선적으로 현왕의 왕후를 뜻할 수 있다. 8세의 어린 왕에게 아내들이 있었을 리 만무하나, 18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남은 왕자들에게서 미리 후대를 보기 위해 조기결혼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언뜻 생각하면, 예호야킨이 등극시 18세였다면, 아버지 예호야킴이 그를 17,18세 무렵에 낳았다는 얘기가 되니, 너무 예외적으로 이르지 않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몬 왕에게서도 비슷한 전례를 본다(시리즈 제65회 참조).

    6. 거의 동갑내기인 21세의 차기왕 제데키야가 예호야킨의 '숙부'였으니 어린 8세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18세에도 충분히 자식을 볼 수 있으며, 나이차가 얼마 안 되는 젊은 삼촌도 가능하다.

    7. 가장 중시되는 문제점은, 예레미야서 22'24 이하에 기록된, 콘야후(예호야킨) 관련 예언들이 어린이에겐 도무지 걸맞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 어느 모로 보나, 이 예언은 18세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그럼 왜 연대기B서는 왕들B서와 달리 18세가 아닌 8세로 기재한 것일까? 필자의 추정으로는, 유다 왕대의 합리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영감 받지 않은(?) 후기 연대기 필사자가 머리를 굴려 고쳐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성경은 (첫) 원본만이 기자들이 성령께 초기의 대언적 영감을 받아 가장 참되고 완전하게 기록됐다고 필자는 믿는다. 현재는 원본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수의 사본들과 파편들만이 남아 있다. 


예호야킨 역시 아버지의 소행을 본받은 나쁜 왕이어서, 삼촌 예호아하즈처럼 기껏 석달 열흘(100일) 동안 통치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버지 때처럼 바벨론 군대의 침공을 받아 왕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성전의 기구들도 빼앗깁니다. 

먼저 바벨론 왕 네부칻네자르의 직속 사령관들이 예루샬렘 성을 포위했지요. 이 때가 바벨론 군의 제2차 침공이었습니다. [ 바벨론은 상당기간의 간격을 두고 모두 4-5차에 걸쳐 연거푸 예루샬렘을 침공하여 결국 유다를 패망시킵니다. ]

이들이 포위하고 있는 동안, 네부칻네자르 자신의 군대도 도착합니다. 예호야킨 왕이 그 어머니 네후쉐타(딴 표기: 느후스다), 신하들, 귀족들, 내관들과 함께 성밖으로 나서서 네부칻네자르에게 나아가자마자 모두 체포됩니다. 때는 네부칻네자르의 즉위 제8년 되던 해였습니다.
네부칻네자르는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다 꺼내고 탈취하고, 슐로모 시절에 제작된 성전의 황금 기구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예레미야 20'5)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지요. 또 생존해 있는 왕비/빈들과 내관들, 예루샬렘 시민들, 귀족들, 용사 등 10,000명 이상, 석공/목공/금속공 등 각 분야의 장인들 1천명 이상을 끌고 갔습니다. 군인들은 7,000명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이후 차기왕 제데키야의 말기에도 와서 만행을 저지르고 예루샬렘 침공 총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예호야킨에게도 진노하셨습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유다 왕 예호야킴의 아들, 콘야후! 설령 네가 내 오른손의 인장반지라고 해도 난 너를 빼 버리고 말 테다. 너의 생명을 찾는 무리들, 네가 겁내는 바벨론 왕 네부칻네자르와 바벨론 사람들에게 너를 넘겨 주련다. 내가, 너와 널 낳은 네 어미를 너희 둘이 나지도 않은 나라로 내쫓을 테니 거기서 둘 다 죽을 것이다. 네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땅으로 결코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예렘 22'24/사역)

이 말씀은 무섭게 그대로 성취됩니다(왕들B 24'12,15).

하나님은 계속 톤을 높여 질책하십니다.
 
    "이 사람 콘야후는 버려진 깨진 항아리,
     아무도 달가워 하지 않는 그릇인가?
     어찌하여 콘야후와 그 자녀들이 내던져져
     자기네가 모르는 땅에 들이쳐졌나?
     땅, 땅, 땅아! 예호바의 말을 듣거라.
     이것은 예호바의 말이다:
     너희는 기록해라: "이 사람은 (차라리) 무자하리라"고.
     평생 번영하지 못하리라고.
     그 후손 중 아무도 번영하지 못하여,
     이제 더는 다빋의 보좌에 앉아
     유다에서 다스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예렘 22'28-30절)

이 말씀 역시 그대로 이뤄집니다. 예호야킨 왕의 후손들은 그 이상 아무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다만 몇몇 총독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그 후손인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만 진정한 유대인들의 왕, 최후의 왕들의 왕으로 오십니다!
 
예호야킨 왕은 훗날 바벨론 포로생활 37년째 되던 해 (네부칻네자르 1세의 후임자 에빌메로닼의 원년) 12월 27일, 바벨론 왕의 특혜로 옥에서 풀려납니다. 서력기원으로 한다면, 주전(BC) 약 561년 되던 해 4월 2일 경이었습니다.
에빌메로닼(딴 표기: 아멜마르둨, 한글성경 표기: 에윌므로닥) 왕은 자기 앞에서 예호야킨이 고개를 들 수 있게 하고,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죄수복을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머물던 여러 왕들 가운데서 가장 높여주고, 여생 내내 바벨론 왕궁에서 에빌메로닼의 식상에서 함께 먹게 했습니다. 또한 매일 쓸 용돈과 생활필수품도 지정해 놓고 계속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특별한 배려였지요. 그래도 요시야의 왕자들 가운데 이 예호야킨 왕이 70년 바벨론 포로기에 메시아의 계보를 면면히 이어갈 직계 선조였지요. 마태복음서 1장의 메시아 계보에서 '예코니야'(한글 성경 표기 '여고냐')가 바로 그입니다. 그러나 예호야킨 왕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에서 죽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다빋에게서 일으키실 의로운 가지 곧 메시아가 나타나리라고 예언하십니다.

    "보라, 그 시대가 오고 있다!" 예호바의 말이다.
    "내가 다빋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테니,
    왕 곧 슬기롭게 다스리고 올곧고 바른 일을 행할 사람이다.
    그의 시대에 유다는 구원을 얻고,
    이스라엘은 안전 속에 거하리.
    그의 이름은 '예호바 치케누'(예호바님은 우리의 의)라 불리리."

'예호바 치케누'는 예호바 하나님의 이른 바 '9개 구속적 명칭'들의 하나이며, 예수 크리스토 안에 성취됩니다.
예호야킨의 후임자로는, 그의 (의붓) 숙부였던 제데키야가 역시 네부칻네자르에 의해 임명됩니다. 유다국 최후의 왕이지만, 그는 아탈리아 여왕, 예호아하즈처럼 메시아의 선조가 아니었습니다.

역시 나름 유난히 악했던 이 왕과 왕국의 최후에 관해 다음 회에 다루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