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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고후 1:18] 구약의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미쁘십니다..(코린토B서=고후 1'18)
    예수 크리스토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 같으십니다. (히브리서 13'8).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

- 이런 인상을 받는 분들이 퍽 많은 거 같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자주 진노하시고 벌하시는 잔인하고 무서운 신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정반대로 늘 사랑만 해 주시는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그런 발상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런 신관을 맞는 듯 강조하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스베덴보리(=스위든볽) 사상 추종자들인 '새 교회'(일명 '새예루살렘교회')의 간판 마담 같은 헬렌 켈러나 그의 스승들이지요.
그러나 대단한 오해일 뿐, 성립될 수 없는 신관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이원론적이고 자체모순적인 신관(神觀)이지요.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 히브리어에서 진리라는 말은 참되다/신실하다/성실하다/꾸준하다/변함없다 등의 뜻을 고루 함유하고 있습니다. ]


다음만 봐도 분명해집니다.
우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언제나 한결 같은, 늘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의 그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 신약 복음서들 이후에 나타나신 그 예수님이십니다!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니까요!
바로 그 분이 그 분이란 말이지요.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결코 성격 상 다른 분이실 수 없습니다.
그 분은 때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자기 변모의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불변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구/신약 신관 차를 논하는 사람들은 이런, 논리적인 자체모순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늘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성경이 증언해 줍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므로 당신이 완전한 공의와 정의와 공평과 동시에 사랑과 온정을 실천하시며, 사람들 사이에도 공의와 아울러/동시에 사랑의 삶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구약 때도 공의와 심판을 행하셨고, 마지막 날에도 행하십니다.
구약 때도 사랑을 베푸셨고 마지막날까지도 그렇게 하십니다.
또한 신자들에게도 진리와 의와 사랑을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보니,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던데.."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구약 첫 쪽인 창세기 1장부터 다시 음미하며 읽어 봐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과 그 둘레의 우주는, 과학자/진화론자/무신론자들이야 인정하든 말든, 창조주께서 인간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지어졌습니다! 둘러 보십시오. 그 어떤 천문대의 천체 망원경, 전파/레이저 망원경으로 관측되는 그 어느 우주 끝, 모퉁이에도 지구와 같은 모습의 아름다운 초록색 별은 없습니다.
지구 비슷해 보이는 '아바타' 같은 것은 오직 제임즈 캐므런이 자기 꿈에서나 꿨을(?) 만한 가상/공상의 별일 뿐, 결코 존재하지 않죠. 

지구는 둘도 아닌, 오직 하나 뿐입니다.
천문학자들이 뭐라고 주장해도 앞으로도 결코 없습니다.
더구나 그 어떤 별도 지구와 같은 공기/물 등의 조건과 환경을 갖춘 별은 없습니다. 갈릴레오 전후로부터 지금까지 밤하늘의 무수한, 수 천 억 이상의 별들 가운데 지구 같은 별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온 우주에 인간을 위한 별/행성인 지구를 단 하나만 만드셨기 때문이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안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너무나 놀랍습니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뿐만 아니라 이 아름다운 지구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만들어졌습니다.
해와 달, 지구 주변의 행성과 멀리 항성들..모두가 그렇습니다.
물론 창조주가 그렇게 하셨지요.

그런데..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로 그 분의 형상을 따라 그 분 모습대로 몸소 흙으로 빚어 만드신 인간을 위해서였지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지어진 존재라면, 얼마나 존귀합니까?
태초의 순수무구한 인간이 그랬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인간에겐 그 형상의 일부가 남아 있고요. 거듭난 사람에겐 온전히 회복되고요.
 
하나님은 우주 이전에 지으신 천상계에도 그런 존재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귀해 보여도, 그들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 대로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비슷하게 닮아 보일 뿐입니다.  

진화론자/유물론자들이 뭐라고 떠들어도, 사람은 모든 동물과 달리, 영을 갖고 있습니다.
영은 사람의 본질이고 속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몸소 빚으신 흙사람 속에다 후우~ 하고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a living spirit)이 됐습니다. 

모든 동물과 달리, 영적 존재인 사람은 언제나 직립하여 걸으며, 위를 바라보고 영원을 그리며 살아 갑니다. 
모든 동물과 달리, 사람은 말을 하며 입술과 혀에 삶과 죽음의 권세(예~!)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살지요.
모든 동물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그 분께 감사합니다.
모든 동물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처럼 지.정.의를 지닌 존재로, 웃고 울며 감정 표현을 합니다.
모든 동물과 달리,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창의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지으신 대상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너무나 기대가 크셨습니다.
그들을 번성하고 잘 되라고 복 주시되, 땅 위의 온누리를 다스리고 관리하도록 청지기 역할을 맡겨 주셨습니다.  
아십니까? - 첫 사람은 처음에 복 받은 신성하고 존귀한 존재로 태어났던 것을.

그것으로도 모자라는지, 창조주 하나님은 땅 위에 아름다운 정원/동산 '에덴'을 만드셔서, 요람 같은 거기에다 갓 지으신 인간을 두십니다. 지상에서도 역사 상 가장 아름다웠던 그곳은 사방에 강물이 흘렀고, 온갖 향기롭고 달콤한 과일나무가 있어, 사람이 날마다 때마다 따 먹고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슬기로 모든 동물에게 이름도 짓게 하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인 사람과 오래오래 대화를 나누며 정답게 사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먹으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과일 나무도 동산 한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셨고, 하나님 당신과 서로 가깝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사람이 혼자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돕는 배필까지 지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다 보니 자유의지가 있는지라, 스스로 선택할 행동의 자유와 선택의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단지 기계적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과 정답게 지내려면, 하나님과의 상호 약속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마치 사람들도 '영원한' 친구이려면, 일정한 약속의 바운더리 안에서 지내면서 서로 약속에 충실하듯 그렇게. 
그래서..마치 어린이들이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우리, 꼭꼭 약속해~!" 하듯이, 선악지식의열매(일명 '선악과') 나무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약속을 하십니다.

    "이봐, 아담. 에덴의 모든 나무 열매는 다 따 먹어도 돼. 하지만 말야..저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기, 응?"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이 약속을 굳히시려고 혹시라도 따 먹는 경우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십니다.
말하자면, 에덴 한 복판 선악지식열매의 나무는 우리 모두 지켜야 할, 길 한 가운데의 빨강신호등과 같았던 것이죠.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창조주 하나님은 일부러 사람을 구속해 놓고 죽이려고 문제의 열매 나무를 내신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과의 신의와 약속을 지키면서, 그 분을 기꺼이 우러나는 맘으로 섬기길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래오래 에덴에서 함께 즐기길 바라셨던 것이고요! 

그런데..말입니다.
사람들은 묘하게도, 자신들의 친구가 약속을 어기면 몹씨 섭섭해 하거나 '배신자'라고 낙인 찍고 서로 "찢어"져, 두 번 다시는 좀체/결코 사귀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약속을 중시하시고 배약에 대해 응당한 징벌을 내리신 이런 하나님의 올바른 행동을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그래선 안 되징~" 하고 원망하며 비난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불의를 마냥 덮어 두고 결코 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세상은 왜 법과 정의를 지키고 불법자들을 징벌합니까? 세상은 그렇더라도, 하나님만은 사랑을 위해 법과 정의를 지키시지 말라는 말인가요?
사람들 자신은 친구의 배신에 펄펄 뛰며 그 원한을 돌에 새기고 뼈에 새기면서도, 당초 약속과 결과대로 실천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정한 하나님'이라고 뒤집어 씌워대니..하나님의 약속만은 물에 새기라는 겁니까?
이 어찌 괘씸한 어거지에다 경거망동이 아닌지요?
입장을 바꿔 독자가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얀" 심보, 맘보일랑은 제발 고쳐 먹기 바랍니다.
 
"왜 애당초 문제의 단초인 '선악과'를 내셨냐고요?" 하고 묻는 사람들에겐.."귀하는 친구와의 아무 신의와 약속 없이도 늘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친구지간에 신의와 의리라는 건 대체 무엇이며, 약속을 안 지켜도 늘 좋은 친구인지요? 심지어 조폭이나 깡패끼리라도 지킬 뭔가는 있지요.

하물며..하나님과 사람 사이..이겠습니까.
그래서..성경을 구약과 신약 - 옛 약속과 새 약속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구약의) 하나님의 사랑 얘기는 그 뿐만 아니지요.
더 진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짝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지요.  

결국 사람은 싸탄의 이간질 곧 뱀의 꾀에 속아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고, 당초 약속대로 징벌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겁이 나고 부끄러워 부부가 무화과 나뭇잎새들을 엮어 치마를 두른 채, 동산 나무 아래 숨었습니다.
그러나 어슬픈 나뭇잎 치마는 햇볕에 금방 말라 부스러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평소 동산에서 뛰놀던 아담/하와 커플이 눈에 띄지 않자, "아담, 아담? 아담! 네가 어디 있냐?"고 부르시며 찾으십니다. 그 이하는 독자가 성경(창세기 3장)을 직접 참조하기로 하고 일일이 되풀이하지 않습니다만.  

커플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죄상을 고하자, 하나님은 징벌과 저주를 내리시는데 당초 약속대로 하는 이 징벌이 '잔인'이고 '잔혹'이라면, 이건 뭡니까? :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테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으스러뜨릴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네 후손'이란 곧 마귀의 후예인 적 크리스토를, '여자의 후손'이란 오실 메시아 곧 예수 크리스토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장차 이행하실 인간 구속(救贖) 계획을 미리 앞서 공개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사랑이 아닌, 잔인인가요?

하나님은 또, 어슬픈 무화과잎 치마 대신 에덴의 짐승을 죽여 만드신 가죽치마를 입혀 주십니다.
이것은 곧 어린양 예수 크리스토를 죽게 하셔서 죄인에게 그 의의 옷을 입혀 주시겠다는 언약의 상징입니다!
이것도 사랑이 아닌 잔혹인가요?

하나님은 또 아담/하와를 에덴에서 내쫓으십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죄악 가운데서 영원히 살까 봐..
그런데 이 배려도 잔인이고..잔혹인가요?

..등등등등


이렇게 구약의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진실과 진리는 창세기부터 성경 끝까지 좌악~ 두고두고 계속 할 수 있는 항구적인 얘깃거리입니다. 
구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끈끈한" 인간 사랑 내지 인간에 대한 '짝사랑' 같은 진한 러브 스토리라는 말이지요.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왜 구약의 하나님을 '오직 진노와 공포의 하나님'이라는 딱지를 붙여, 차별대우해 드린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미처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딱 첫 인상만으로 섣불리 판단해선 안됩니다. 일생일대의 실수요 과오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첫 인상으로 비롯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민만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은 무조건 미워하신 게 아니라, 이방인들도 사랑하신 흔적이 구약 도처에 있습니다. 여성을 차별 대우하신 게 아니라, 구약 도처에 하나님께 인정 받고 사랑 받은 믿음의 여성들이 있고, 이방 여성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선민에게 인정 받고, 심지어 메시아의 선조가 되기도 합니다. 예리코(여리고)의 기생 라합, 모아브 여인 뤁(룻)이 그랬지요.  

하나님은 온 세상의 영혼들을 사랑하셨지만, 그 분이 귀히 보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보다 그 분께 대한 믿음,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을 귀히 보십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들까지도 거저, '공짜로' 돌봐 주진 않으십니다.
조건이 믿음입니다. 구약 때나 신약 때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불신이 곧 죄이고 악입니다. 그래서 불신은 곧 마귀 편을 뜻합니다. 불신을 버리고, 말씀과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사랑 받을 길입니다.

사랑은 "무조건 몽땅 거저 주는 것"이 아니지요. 부부 사이에도 엄연히 서약과 조건이 있습니다. 부부가 사랑한다고 해서 아무나 마구 사랑한다고 다 거저 용서되는 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을 조건 없이 모두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건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다른 속성-진리/공의/거룩에 어긋납니다.
그 분은 의의 하나님이시므로, 불의는 반드시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기본 조건도 안 지키면서 그 분의 사랑을 바랄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건 보편주의이고 타협이지, 참 사랑, 참 관용은 아니죠.

모든 종교와 모든 신들이 다 옳으니 무조건 다 구원 받고 내세의 '낙원'으로 간다는 식의 뉴에이지 종교는 막무가내이지, 참 진리도 참 사랑도 아닙니다.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 착각된 종교요 착각된 신입니다.
참 하나님은 그런 싸구려 신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거짓됩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진리이실 뿐입니다.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이미지를 바꾸십시오.
그 분에 대한 잘못된 첫 인상과 선입견을 버리세요.

구약의 하나님도 신약의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고,
같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십시오.

아울러, 동시에 진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세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예수 크리스토님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어제나 오늘,
그리고 영원히
한결 같으십니다.


사랑과 진리의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