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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유다 최후의 왕 지드키야(메시아계보대장정 68)

바탕본문: 예레미야서 (다양한 장/절들) 


 

참고: 외래어는 되도록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려고 애씁니다. 괄호 속은 현행 한글 성경들의 표기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예호야킨(여호야긴)의 뒤를 이은 지드키야(시드기야. 딴 표기: 찌드키야후) 왕. 유다 제19대-아탈리아(아달랴) 여왕을 포함하면 제20대-왕인 그는 남북 왕국을 통틀어 최후의 군주였습니다. 이스라엘/유다 왕국시대에 종식을 고한 사람이지요.
 
그 역시 다른 선대 왕들처럼 꼭두각시 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벨론 왕 나부칻네자르(느부갓네살) 2세가 포로로 잡아간 선왕 예호야킨 대신 숙부인 그를 대신 앉혔기 때문이지요.

지드키야는 요시야 왕의 또 다른 아내인 하무탈 왕비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예호야킨의 친숙부는 아닙니다. 자신보다 3대 선왕(先王)인 예호아하즈(여호아하스)의 친 동생이었지요. 따라서 그는 메시아의 직계 선조가 아닙니다. 즉위 당시 나이 21세였습니다.  
나부칻네자르가 지드키야에게 충성 맹세를 요구하자,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남국 미쯔라임(에짚트)을 믿고 배신해 버립니다. 단순히 나부칻네자르 상대 차원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었죠.

중동 한 가운데 위치한 나라의 성격 상 이스라엘-유다 나라의 왕들은 대체로, 주변 대국들에게 시달릴 수 밖에 없었는데, 아슈르 등 북국보다는 본래부터 남쪽의 대국 미쯔라임을 더 의존하는 성향이 있어 왔습니다. 미쯔라임과는, 워낙 선조들 아브라함-야콥-요셒 시대 때부터 모쉐 시대를 거쳐 다빋-슐로모 시대까지 인연이 깊었습니다. 400년 노예 종주국에다 도움도 없지 않았지만 탈도 많은 대국이었지요. 미쯔라임은 비록 비옥한 나일 강 유역의 풍부한 농산물로 유명했지만, 온갖 신상/우상들의 유혹이 컸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슈르-바벨론 등 북국 사람들은 피정복 국가 사람들의 신체 부위 절단, 산 채 몸 껍질 벗기기, 깎은 막대기로 몸통 꿰뚫어 세우기, 두 눈 뽑기 등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기에 주변국가들이 무서워 했고, 아무래도 미쯔라임보다 선호도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벨론에 항복하는 나라 사람들은 목숨의 안전이 보장됐습니다. 그래도 국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친(親) 미쯔라임 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유다 안에서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은 곧 배신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올곧은 말만 하는 대언자 예레미야에겐 외적으로 퍽 불리한 상황이었지요.

아무튼, 지드키야 왕은 요시야의 아들/손자인 다른 세 선왕들에 비해 악했으면 악했지 거의 전혀 착하지 않았고, 더욱이 대언자 예레미야(히브리 발음: 이에르미야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은 갖지만, 거의 귀 담아 듣지 않습니다.

왕의 마음이 이처럼 강팍하자, 덩달아 지도자/사제들과 백성들의 마음도 나날이 악해져만 갑니다. 주변 나라들의 악행을 본받았고, 하나님이 성전의 청결을 유지하라시는데도 여전히 더럽힙니다.

예호바(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다빋을 통해 언약을 맺으신 자기 백성과 그 분의 성전이 있는 예루샬렘을 불쌍히 여겨 대언자들을 계속 보내어 경고하셨건만, 그들은 대언자들을 비웃을 뿐더러 대언가들이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혐오하고 능멸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쌓여만 가서 더는 참아 주려야 참아 주실 수 없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그래서 지드키야가 집정한 지 불과 9년만에 몸소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 나부칻네자르의 군대를 유다에 보내시게 됩니다. 거의 인정사정 봐 주지 않는 무자비한 군대였죠.
그러나 그들은 참 하나님의 사람은 알아보고 돌봐 줍니다. 하나님의 배려와 온정 때문이었죠.


    왕과 대언자 (27장)

지드키야가 나부칻네자르의 임명을 받아 등극하자, 각국의 축하 사절들이 예루샬렘을 예방했을 때의 일입니다.
예호바 하나님은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여럿 만들어, 자기 목에도 걸고 사절들의 귀국 시 자기 왕들에게 메시지와 함께 전달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메시지 골자는..예호바 하나님이 곧 창조주/주권자이심을 먼저 상기시키고, 나부칻네자르 대왕에게 주변 열국을 지배하고 통치할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를 섬기지 않거나 그가 메우는 멍에를 메지 않는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직접 벌하실 것이지만, 순응하면 계속 자기 나라에 살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요사스런 거짓 예언으로 바벨론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이어서 유다 국왕과 성전 사제들에게도 비슷한 메시지를 차례로 전하면서, 특히 언필칭 '대언자'와 사제들의 거짓 길보(吉報)를 경계하라고 타이릅니다. [ 그 후, (지난 회에서 살핀 대로) 거짓 대언자 하나니야가 '길보'를 전하면서 예레미야가 목에 건 멍에를 짐짓 꺾기까지 하더니, 결국은 저주를 받아 이내 죽습니다. ]

메시지 끝에서는 지난 번 예호야킨 왕이 끌려갈 때 바벨론 군대가 남겨 둔, 놋쇠로 된 성전 앞 두 기둥들, 놋쇠 '바다'(제사 전후 정결례를 위한 대형 놋대야/물두멍. 역시 놋쇠로 된 열 마리 소가 받치고 있음)와 받침대들, 기타 성전/왕궁/성 안에 남아있는 성전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졌다가 훗날 회수된다고 예고하십니다.     

축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메시지가 온통 축제 무드인 수도권에 찬 물을 끼얹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지드키야와 대관 백작들, 사절들, 성전 사제들은 어이 없고도 무거운 표정으로 예레미야를 바라보고 있었겠지요.

신왕 지드키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곧이 곧대로 전하는 예레미야를 참 대언자로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대로 행동하고 대우합니다. 때로는 예레미야를 위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기 속에 방치하기도 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합니다. 예레미야서에 내비쳐진 지드키야의 대인 관계에 따르면, 그는 대체로 우유부단하고 눈치를 잘 보며, 때로는 간교한 면모도 있습니다. 군주로서의 자존심과 체면 치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의 대언 내용을 주로 그의 개인 서기인 바뤀이 필사/기록한 '예레미야서'(약칭: 예렘)는 왕들과 대언자의 갈등 관계를 매우 상세하고도 미묘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예레미야서는 내용의 순서 일부가 다소 뒤섞인 느낌도 드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갑니다. 예언서답게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다루어 회고하는 내용도 섞인 데다, 무엇보다 조국의 패망을 눈물 속에 지켜 본 예레미야와 바뤀이 그만큼 슬픔에 넘쳐, 거의 "정신 없는" 가운데 기록했으리라는 실감이 절로 가기 때문이죠.

네리야('예호바님의 등불'이란 뜻)의 아들인 바뤀은 앞서 예호야킴 왕 제4년부터 이렘야후의 예언을 받아 적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내용은 지드키야 시대에 관한 것들이 가장 많습니다. 아무래도 왕국의 멸망을 앞두고 가장 많은 관심과 예언 내용이 기록됐기 때문이지요.


    바벨론으로 보낸 편지 (29장)

앞서 선왕 예호야킨과 태후, 내관/신하들, 장인(匠人)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 신왕 지드키야가 사제 족인 엘라사와 게마리야 두 사람을 바벨론 왕 나부칻네자르에게 파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대언자 예레미야가 그들 편에 긴 편지를 보내어, 이미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위한 예호바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만군의 예호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루샬렘에서 바벨론으로 쫓겨난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머릿글로 시작되는 이 긴 편지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들을 짓고 느긋이 눌러 살아라
     텃밭/과수원을 일궈 그 소출을 먹어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라
     자녀도 결혼시켜 왕성한 후대를 이어 가라
     사는 도시의 평화를 빌면서 위하여 기도해라
     자칭 예언가/점쟁이들의 말과 꿈 얘기/해몽 따위는 귀 기울이지 마라
     70년 후엔 포로에서 풀어 주어 모국 귀환 약속을 지키마
     나는 너희에게 재앙이 아닌 소망의 미래를 줄 테다
     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온전한 맘으로 찾으면, 들어 주고 만나 주마 


이 부분엔 분명히 포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한 온정, 사랑과 함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격려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자비한 심판의 신이 아니라, 공의와 진리, 사랑과 온정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이지요.
이 편지는 또, 예루샬렘에 현재 남아 있는 왕과 백성은 대언자들을 보내어 아무리 경고해도 말을 듣지 않아서 칼과 굶주림, 역병을 보내어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바벨론 포로기에 갓 돌입한 현지 유대인 사회에서 엉터리 예언을 하여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유명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후리는 무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콜라야의 아들) 아하브, (마아세야의 아들) 지드키야 등 두 사람은 예호바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이웃 사람들의 아내들과 간통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나부칻네자르에게 공개 화형을 받게 해, 현지 유다인들에게 두고 두고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고 예고하십니다.

또 역시 현지 포로인 네헬람 사람 쉐마야가 앞서 예루샬렘 사제들과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와, '자칭 대언자'인 예레미야를 혼내 주라고 간교하게 모함한 사건과 관련, 쉐마야와 후손들이 이 백성 가운데 살아 남지 못할 것이며 미래의 모국 귀환의 영광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한 예고를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참 대언가인 예레미야를 몸소 계시로써 변호하시고 돌보십니다.

 

포로기 대언자들

참고로, 당시 바벨론 현지에 살던 유다인 포로들 가운데 참 대언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언자/현인/정치가 다니엘은 예호야킴 왕 제3년에 바벨론에 끌려간 국민들 가운데 한 명으로, 바벨론 왕실에 의해 특선된 유다 족 청소년 현인들 4명 가운데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는 왕궁에 살면서 나부칻네자르 2세의 즉위 제2년부터 계속 하나님께 예언을 받아 쓰거나 전하면서, 바벨론-메대/페르시아 총리까지 역임하는 한편 고국을 위한 기도에도 힘썼고, 포로기 70여년 내내 장수하다가 생을 마치게 됩니다.

다량의 종말 예언을 포함한 그의 예언은 분량이 많아, 예샤야후(이사야)/예레미야(예레미야)/예헤즈켈(에스겔) 등 다른 3권을 포함한 4권의 '긴 대언서'(일명 대선지서)들 중 하나입니다.

또, 역시 칼데아 케바르 강변 정착촌에 머물러 살던 사제 출신, 예헤즈켈(='에스겔')은 예루샬렘 함락 때로부터 약 5~6년 전 그러니까 예호야킨 왕 일행이 끌려간 지 제5년부터 계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30세 무렵이었지요.
하나님께 '사람의 아들'(人子)이란 애칭으로 자주 불린 그는 주로 독특한 환상 계시를 많이 봐 왔고, 그곳에서 고국을 위한 중재기도도 했습니다. 예헤즈켈의 계시 역시도 양이 많아서 '긴 대언서'의 하나로 꼽히지요. 예헤즈켈서에 기록된 그의 끝 예언은 그가 사로잡혀간 제 제25년(예루샬렘 함락 후 제14년) 1월 11일 날짜로 돼 있습니다. 예헤즈켈은 특히 포로시대의 탁월한 현인이자 동료 대언자인 다니엘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훗날 포로시대 말기인 페르시아 왕조 때 활약한 대언자로는 하까이(학개)와 제카리야(스가랴), 귀환 전후 시대에 활약한 대언자/학자 에즈라(에스라), 대언자/총독 느헤미야 등이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또 편지와는 별도로 이어진 예언에서, (70년 후) 포로들을 반드시 다시 불러 들일 것이며 장차 참 군주인 메시아를 보내시리라고 굳게 약속하십니다.

    "만군의 예호바의 말이다. '그 날에 내가 그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리고 그가 매인 줄을 끊을 테니, 이방인들이 다시는 그를 (노예로) 부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나 예호바를 섬기고, 내가 그들에게 보내 줄 그들의 왕 다빋을 섬길 것이다.'         
여기서 '..왕 다빋'은 바로, 다빋의 후손으로서 약 4세기 후 메시아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크리스토님을 가리킵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의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모든 구약 대언자들은 예수 크리스토님이 오실 메시아이심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 본 사람들입니다. 

메시아의 도래는 이미 오래 전 부터 대언자들이 입을 모아 외쳐 온 것이며, 옛 히즈키야 왕대의 예샤야후와 현재의 예레미야의 예언들(참고: 예렘 30, 31장 등)이 특히 그렇습니다. 



 판 치는 거짓 대언자들 (23장 등)

하나님은 특히, 당신께서 몸소 보내시지 않았는데도 예언을 뇌까리는 거짓 대언자들을 혐오하셨습니다. 당대는 특히 유다 왕국 패망기였기에, 제멋대로 '유다의 (빠른) 회복'을 예언하는 거짓 대언자들이 유다 안팎에서 까불며 활개치던 때였죠. 현대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그 때도 종말 의식을 갖고 장난 치는 인사들이 많았나 봅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의 부도덕상을 지적하십니다. 목자라는 지도자들이 양떼를 버리니 유다 땅에 영적/육적으로 음란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며, 대언자/사제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통렬히 지적하십니다(23장 참조). 그들은 밖에서는 거룩한 체 하면서 안으로는 온갖 짓을 다 했으며 심지어 성전 안에서도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쇼므론(사마리아)의 옛 거짓 대언자들이 북 이스라엘을 패망의 지름길로 이끌었듯, 예루샬렘의 대언자들이 음행을 일삼고, 악한 무리를 더욱 부추겨 전혀 뉘우침이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샬렘 대언자들로부터 온갖 악이 흘러 나와 온 땅에 번져 간다며, 바로 거기가 소돔/고모라나 다름 없다고 통탄하십니다.

자칭 대언가들은 예호바님의 이름은 빌려도 하나님의 입이 아닌 자기 속에서 나온 것들을 '예언'으로 꾸며 말하고, 늘 하나님을 경시하는 무리를 충동질하면서 짐짓 '샬롬'을 선언하고, 강팍한 무리에게 재앙 따위는 내리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여 아부를 합니다.
그들은 간교한 속 생각을 예언화하여 말하면서, 한낱 백일몽이나 개꿈을 꾸고도 "와, 내가 좋은 꿈을 꿨어!"라며 기발하고 대단한 계시를 받은 듯 속이고 과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꿈을 꾼 대언자들은 꿈 얘기나 할 것이고, 내 말을 받은 사람은 신실하게 내 말만 해야지. 겨가 어찌 밀과 맞먹냐! 내 말이 불 같지 않냐? 바위를 깨 부수는 쇠망치 같지 않냐?" (23'28)

하나님은, 당신께서 세우시거나 보내신 적이 없는데도 두루 활개치고, 말씀을 주시지 않았는데도 예언하고 다니는 그들이 혹시 예레미야처럼 정녕 예호바님의 하늘회의에 참석했더라면, 응당 백성을 뉘우치게 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런 사악한 거짓 대언자들에게 '쓰디쓴 빵'을 먹이고 '독물'을 마시게 하겠다고 다짐하십니다. 또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그들의 머리통을 치실 것이라며 그들에 대한 징벌 심판이 끝나기까지 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엉터리 사기꾼 대언자들이 하도 많아 넌더리가 나다시피 하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한 가지 대응책을 사전에 귀띔하십니다. 혹시 백성이나 지도자들이 예레미야에게 접근하여 "예호바님의 (최근) 신탁이 뭐요?"라고 물어 오면, "어떤 짐 말이오? '내가 (짐 되는) 널 내동댕이쳐 버리겠다!'는 게 예호바님의 말씀이오"라고 대답하라고(23'33-36).
이것은 동문서답이 아니라, 예언/신탁을 가리키는 '마싸'가 무거운 짐을 뜻하는 '마싸'와 똑 같은 낱말인 데 바탕을 둔 것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빗대어 풍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참 대언자 외에는 '예호바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곧 짐이 되기에 함부로 쓰거나 믿지 말라시며, 그런 말을 하고 듣는 자들을 영원한 웃음거리, 영영 잊지 못할 수치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오늘날 이상한 영성을 대변하면서 두루 활개치고 판 치는 교계 명사들, 헛꿈이나 '개꿈'을 꾸고도 계시/환상/비전을 봤다며, 구약 성구들을 쥐락펴락 대강 주물럭거려서 맞지도 않는 엉터리 예언을 참 예언으로 포장해 내 놓는 '신사도운동가'들이 귀담아 들을 말씀이 아닐 수 없지요. 

임박한 참 메시아의 재림을 앞둔 시점에서 연못에다 돌을 던지다시피 성경과는 다른 온갖 길보/흉보를 툭툭 내던져 파문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는 현대의 '대언가'들도 참 많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주권 왕국이 이뤄질 양 주장을 하지요.
하지만 천만에~!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참 신자들의 맘 속에 이뤄질 뿐이며 현재 이 세상의 신과 왕은 마귀-그 자입니다. 한시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착각해선 안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자칭 대언가들, 거짓 대언자/사도들에겐 동일한 심판이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메시아 시대가 도래하기 전 약 400년간이라는 긴 세월동안 참 대언자도 엉터리 대언자도 거의 없는 무계시시대가 계속되다가 홀연히 침례(세례)요한이 메시아 시대를 앞서 준비하는 참 대언자로 나타나며, 메시아 자신이신 예수 크리스토님도 참 대언자로 일컬어지게 됩니다.
 

     박해 받는 참 대언자 (19,20장)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는 격으로, 엉터리 대언자들은 또 참 대언자들을 질시/괄시하거나 공개적으로 모욕/모함을 하고, 학대합니다(아울러, 여타 종교 지도자들과 왕의 태도도 이와 과히 다르지 않지요). 과거에도 여러 대언자들이 악한 대언자들에게 억울한 수모를 자주 겪었지만, 예레미야 역시 그랬습니다. 참 대언자들이 각별히 존중받고 사랑받던 시절과는 너무 딴판이지요.

어느 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토기장이 한데서 흙단지 하나를 사 들고, 몇몇 백성과 사제들을 데리고 '질그릇조각문' 밖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토펱'으로 갑니다(19장 참조). 역대 왕들이 바알에게 수많은 자녀들을 불살라 죽이던 바알 신당이 있던 곳이지요. 하나님은 불에 타 죽은 억울한 목숨들 대신 여기서 수많은 시민들이 바벨론 군에게 살육 당할 터이므로, 이 곳이 앞으로 '살육 골짜기'로 불릴 것이라고 하십니다(19'6).
또한 이 성이 멸망해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소의 대상이 될 것이며, 포위 기간 동안 사람들이 먹거리가 없어 굶주린 나머지, 자기 자녀들은 물론 이웃끼리도 서로 잡아 먹게 될 것이라고 무서운 예고를 하십니다.

이 시점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 단지를 깨뜨리면서, 하나님이 이 백성과 이 성을 단지처럼 깨뜨리시고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궁도 이 토펱처럼 더럽히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토펱에서 돌아온 예레미야는 다시 성전 뜰에 서서 말합니다:

    "만군의 예호바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오: '보라, 내가 이 성과 주변 마을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가져올 테다. 그들의 목이 빳빳해 내 말을 듣지 않는 탓이다.' " (19'15)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예언하는 광경을 보고 들은 사람들 가운데 파쉬후르가 있습니다(20'1). 성전 수석관리인 그는 옛 사제 임메르의 증손이자 말키야의 아들로, 사제 명문가 출신이어도 악한 사람이었고, 그 역시 친구들에게 거짓 예언을 해 온 터였습니다.
파쉬후르는 예레미야를 잡아 아랫사람들에게 구타하게 한 뒤, 성전 곁 '빈야민(딴 표기: '베냐민') 윗문'에 있는 형틀 차꼬에 채워 밤새 방치했다가 이튿날에야 풀어 줍니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예호바님께서 귀하의 이름을 '파쉬후르'가 아닌 '마고르-미싸빕'(전방위의 공포)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봐라, 이제 내가 너를 네 자신과 네 모든 벗들에게 공포가 되게 할 테다. 그래서 그들이 원수들의 칼에 쓰러지는 광경을 네 눈으로 보게 할 테다..파쉬후르, 너와 네 가솔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고, 넌 거기서 죽어, 묻히게 된다. 네가 거짓 예언을 해 주던 네 친구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져, 파쉬후르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거기서 죽고, 포로기가 끝난 70여년 뒤 그의 후손은 1,247명이 돌아옵니다(에즈라=스 2'38 참고: 연대A 9'12,13). 거짓 예언을 일삼고 참 대언가를 박해한 악행 탓에 자신은 복을 못 받고 씨만 잔뜩 남긴 셈이지요.
파쉬후르는 이 일 후에도 예레미야 살해 공모에 가담하는 등 악행을 계속합니다.


    여전한 우상 숭배

요시야의 대 개혁 때 일시 근절됐다가 그 이후 다시 20년 가까이 재개돼 온 온 나라의 우상 숭배도 여전했습니다. 날마다 높은 산 위와 상록수 아래서 사람들의 영적 간음이 자행됐고, 심지어 편리하게 자기네 집 지붕에다 단을 차려 놓고 바알 신 등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제를 붓곤 합니다. 이교 사제들의 종교의식의 일부로서 교도들과의 성행위에 의한 육적 간음도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 백성의 죄가 너무 지독해서, 금강석 끝이 달린 철필로 바위에 새긴 듯 하다고 비유하십니다(17'1). 하나님은 그래서 중재력이 뛰어났던 고대의 지도자 모쉐와 슈무엘이 하나님 앞에 다시 나타나 중재를 한다고 해도,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바벨론에 당신의 백성을 넘겨주시기까지는 고쳐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십니다.


     포위된 예루샬렘 (34장 등)

예호바 하나님께서 여러 번 엄중하게 해 오신 경고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지드키야 집정기 제9년 10월 10일(주전BC 588년 1월 15일)을 전후한 즈음.
미쯔라임을 더 의존하는 지드키야의 오랜 배신에 분노해온 바벨론 왕 나부칻네자르와 칼데아(갈대아: 바벨론과 거의 같은 뜻) 군을 주력으로 삼는 그의 모든 군대, 그를 돕는 모든 피정복국가들의 연합군이 유다에 침공해 예루샬렘과 요새지인 모든 주요 도시들을 포위하고, 수도권 성 둘레에 높은 흙돌 언덕길을 쌓기 시작합니다. 포위 상태는 예루샬렘 함락까지 약 1년 5개월간 지속됩니다.
 
긴 출정 기간 동안 나부칻네자르는 주로 전진 기지인 하맡 땅 리블라에 머무르곤 합니다. 한 때는 남쪽의 미쯔라임 군대가 바벨론 군을 견제하느라 유다까지 진출하자, 바벨론 군대가 일시 후퇴했다가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예루샬렘에 앞서, 전국의 다른 모든 성읍들에 이어 강력한 두 전략 요새도시 라키쉬('라기스')와 아제카('아세가')도 이미 함락돼 가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이 대언자들을 통해 오래 예고해 오신, 유다의 마지막 날이 코 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포위된 예루샬렘 안에서는 식량이 점차 떨어져 가 백성들이 굶주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친 미쯔라임 계열인 왕과 지도자들 다수는 별 뉘우침 없이 여전히 악한 생활을 하면서, 특히 대언가 예레미야를 적대하곤 합니다.

예루샬렘이 포위된 얼마 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국왕에게 보내어 통보하십니다.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길 테니, 그가 이 성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너는 그의 손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반드시 잡혀 그에게 넘겨지게 된다. 너는 눈과 눈, 입과 입으로 바벨론 왕을 마주 대하게 될 것이며, 너는 바벨론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유다 왕 지드키야! 나 예호바의 약속의 말을 듣거라..너는 칼에 죽지 않고 편안히 죽을 터이요, 사람들이 네 앞서 너의 역대 선왕들에게 향불을 피우던 대로 네게도 분향하면서 '슬프다, 주여!' 라고 애도할 것이다. 내가 약속한 대로 된다!" (34'2-5)

왕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아마도 헛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대로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왕은 자신이 배반한 바벨론이 지독하게 무서워져 항복이 아니라 벗어날 궁리만 하게 됩니다. 위 말씀에서 하나님은 정확하게, 1년 여 후 함락 때 지드키야가 항복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도로 잡혀 네부칻네자르를 직접 대면할 것, 바벨론에서 죽을 것 등을 예언하셨고, 성취됩니다.  


    왕의 기도/자문 요청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고, 정작 성이 온통 포위되자, 평소 우습게 여기고 괄시하던 대언자를 왕의 고위 인사들이 제 발로 찾아 듭니다. 지드키야 왕이 보낸 성전 수석관리 파쉬후르와 사제 제파니아 등 대표가 와서 하소연을 합니다. 이 파쉬후르는 얼마 전 예레미야를 마구 때리고 하룻밤 차꼬에 채웠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부탁인데, 우리를 위해 예호바님께 간구해 주시오! 바벨론 왕 나부칻네자르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니 말이오. 혹시라도 예호바님께서 그 모든 (옛) 기적들로 우리를 도와 주신다면, 그가 우리를 떠날 수도 있지 않겠소?" ()

사람을 패고 박해할 때는 언제이고, 참 얌치가 없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바벨론 군대에 항복할 생각들은 하지 않고, 기적적으로 물러가기만을 바라니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당시는 예루샬렘 시 수비군이 바깥을 포위한 칼데아 군대를 상대로 치열한 방어전을 펼쳐 봐도 수세에 몰리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샬렘 군대가 가진 무기들조차 소용 없게 하시고, 바벨론 군이 정녕 침공해 들어와 시민들을 아낌 없이 쳐 버릴 것이며, 성 안에 남으려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을 테지만, 지금이라도 칼데아 군대에 항복하는 사람들은 목숨만은 건질 것이라고 통보하십니다.    

그 후 지드키야 왕은 다시 제파니야, 예후칼(유칼) 등 대표 2명을 예레미야에게 보냅니다.

    "예레미야,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 예호바님께 기도해 주시오."

당시는, 지드키야 왕의 비밀지원 요청을 받은 미쯔라임의 대군이 남쪽에서 유다를 돕기 위해 진격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안 그래도 포위 공방전에 지칠 대로 지친 칼데아 군사들이 작전 상 일시 후퇴했을 때입니다. 따라서 지드키야는 혹시 칼데아가 이대로 영 떠날 것인지, 그래서 안심하고 성 밖으로 나가도 될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여쭐 수 있을까고 예레미야의 자문을 구하려고 대표단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보내어 내게 자문을 한 유다 왕에게 가서 전하거라. 보라, 너희를 구하려고 돌격해 온 파라오의 군대는 미쯔라임으로 되돌아갈 것이고, 칼데아 군이 도로 와서 이 성을 치고 불태울 것이다..너희는 스스로를 속여 가며, '칼데아 군대가 기어이 우리를 떠나고 말 거야' 하지 마라. 그들은 안 떠난다! 설령 너희가 너희를 공격하는 칼데아 군을 전멸시켜 그중 부상병들만 남는다고 해도 그들이 각각 장막에서 나와 이 성을 불태울 게다."


     체포 수감되는 대언자

어쨌거나, 미쯔라임 대군이 떴다는 소식에 칼데아 군대가 떠나자, 성엔 모처럼 활기가 돌고 사람들은 그동안 굶주리거나 아껴 먹던 먹거리를 다시 사 재느라 바빴습니다. 예레미야도 고향인 빈야민 족의 땅 아나톹의 자기 몫인 땅을 찾아 확인하려고 예루샬렘을 떠나 '빈야민 문'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문지기들의 우두머리인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잡아 "당신, 칼데아 군대에 항복하러 가는 길이지?"라고 다그쳐 묻습니다. 예레미야는 "천만에! 난 칼데아 사람들에게 항복하려 가는 게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이리야는 들은 척도 않고 그를 체포하여 관원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관원들은 평소 바벨론 군에게 항복만 하라고 예언해서 고깝던 예레미야가 잡혀온 것을 보자, 속으로 '요 놈, 잘 걸려 들었다, 어디 두고 보자!'며 자초지종은 들어 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분통을 터뜨리면서 마구 때리고, 감옥으로 쓰이던 '(서기관) 요나탄의 집'에 가둬 버립니다. 친 미쯔라임 세력이 얼마나 센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깜깜한 지하감방에 여러 날 갇혀 있자니, 국왕이 그를 호출해 궁으로 불러다 몰래 묻습니다. 미쯔라임 군대가 오고 바벨론 군대가 물러간 시국에 하나님의 뜻이 뭔가 궁금해서였습니다. 

    "혹시 예호바님께 받은 예언 말씀이 있소?"
    "있습니다. 님께선,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실 겁니다."
    "허, 참...!"

왕은 곤혹감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초지일관된 대언자를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곧 이어 예레미야는 탄원합니다.

     "제가 왕께나 왕의 신하들이나 이 백성에게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저를 옥에 가두어 두십니까? 바벨론 왕이 와서 왕이나 이 땅을 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님의 대언자들이 지금 어디 있나요? 자, 들어 주소서, 내 주, 왕이여, 지금 청을 올립니다. 저를 '서기관 요나탄의 집'에다 도로 가두지 마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봐서입니다."

왕은 예레미야의 청을 들어 주기로 하고, 특명으로 예레미야를 호위 부대 뜰에 데려다 놓고 빵 만드는 거리에서 날마다 빵을 갖다 주되, 성 안에 먹거리가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밭을 사라" -포로 후 귀환/회복 예언 (32장)

지드키야 왕의 제 10년째, 나부칻네자르 왕 제 18년 째 되던 해(주전 587년경)였습니다. 당시 바벨론 군대가 밖에서 에워싸고 있고, 예레미야는 국왕의 지령으로 호위부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왕은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즉위 초 예언을 떠올리면서 묻습니다.

     "그 때, 왜 그런 예언을 했소?"

그러자 예레미야는 동문서답 격의 긴 예언으로 답합니다.
먼저 바벨론 포로기와 (70년 후) 귀환과 회복까지도 정녕 이뤄질 것임을 자신의 실례를 들어 입증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시기를, 예레미야의 사촌동생 하나멜이 곧 찾아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그에게 고향 아나톹(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서 몫으로 차지하라는 청을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전통법에 따른 기업무름의 일환이지요(본 시리즈 제 회 참조).
얼마 후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숙부 샬룸의 아들인 하나멜이 호위부대 뜰로 예레미야를 찾아와, 기업무름 권리/임무를 이행하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말대로 은돈 17쉐켈에 고향의 그 밭을 매입합니다.
또 땅 문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고 도장을 찍은 뒤 증인들을 세워, 저울로 밭 값을 달아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관례에 따라 도장 찍은 거래문서와 그렇지 않은 문서-두 가지-를 다 받아서 매매자 하나멜과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비서인 바뤀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증인들도 문서에다 모두 자기 이름을 써 넣었습니다. 당시 뜰에는 다른 유다인들도 많아 이 광경을 지켜 봤습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목도하는 가운데 바뤀에게 말합니다.

   "만군의 예호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오: 이 문서들, 곧 도장을 찍은 문서와 찍지 않은 문서를 갖다가 단지 속에 넣어 두고 오래 보관하여라. 만군의 예호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내가 말한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밭을 사게 될 것이다."

이 희망 찬 포로귀환 약속에 속으로 감격한 예레미야는 그 자리에서 꽤 긴 기도를 올리는데 하나님의 위엄, 지난 사역과 함께 현재의 포위 상태를 언급하면서, 끝에 말합니다.
    "그런데도..님께서는 돈으로 밭을 사라고, 증인을 세우라고 하셨네요. 이 성이 바벨론 사람들의 수중에 곧 넘어갈 텐데도 말입니다."

그러자 곧 이어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긴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나는 예호바, 모든 육신들의 하나님이다. 내게 무슨 그리 힘든 일이 있겠느냐?.."

그리고는 이 도성이 바벨론 군에 넘겨져 점령 당할 것,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죄의 실상, 포로 상태에서 반드시 풀려나 돌아오게 될 것과 재앙을 내리신 만큼 회복시켜 주실 것 등을 약속하신 뒤,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너희는 말한다: '땅이 황폐해져 사람도 짐승도 없다.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고. (하지만) 장차 사람들이 은돈으로 밭을 사고, 문서에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고, 증인을 세우게 될 것이다. 빈야민 땅에서도 그렇고, 예루샬렘 주변 지역과 유다의 마을들과 산지 마을들과 서쪽 저지대의 마을들과 네게브 마을들에서도 그럴 것이다. 내가 그들을 회복시켜 줄 테니 말이다. 예호바의 말이다."    


과연 이 실화를 들은 왕이 얼마나 실감이 갔을지는 밝혀져 있지 않아서 모릅니다.


    이름만의 '반짝' 노예해방 (34'8-22)

언제인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벨론 군대가 일시 포위망을 풀고, 물러난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중재기도를 들으셔서 그래도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유다를 도와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한 미쯔라임의 대군이 남쪽에서 올라와 유다로 진입하던 중이어서, 이를 겁낸 칼데아 군이 일시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유다와 예루샬렘은 한 동안 포위에서 풀려나 잠시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바벨론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을 섣불리 자축하는 무드이기도 했지요.
국왕 지드키야는 새삼 자유가 소중하다고 느껴졌는지, 한 가지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것은 지드키야가 행한 유일한 개혁이면서 그가 행한 몇 가지 드문 선행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백성의 각 집에서 부려 온 동족인 히브리 남녀 노예들을 다 풀어 주기로 성전 앞에서 예루샬렘 시민들 및 백성과 언약을 맺습니다. 옛 언약 관습대로, 송아지를 둘로 쪼개어 놓고, 사람들이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언약이 체결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기도 했습니다.

모쉐 율법서에는, 본디 이방인이 아닌 한 겨레를 종으로 삼을 수도 없거니와 또 7년마다 이 전통을 확인/실행하여, 혹 몸값 대신 팔려 왔어도 6년간 일했다면 그 후엔 반드시 해방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조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 언약에 따라, 지드키야 이하 백성들은 모든 동족 남녀 노예들을 풀어 주고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삼지 않기로 굳게 약조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그들 없이 지내다 보니 아쉬웠는지, 황당하게도 노예들을 다시 불러 들여 계속 노예로 삼았습니다. 동족끼리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은 지드키야 왕과 백성이 맹세를 어기고 사실상 노예해방선언을 무효화함으로써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젠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칼과 굶주림, 역병이 너희에게 맘껏 덮칠 자유이다. 내가 너희를 땅의 모든 나라들 앞에 끔찍한 본보기로 삼아 줄 테다." 

이어서 하나님은 물러난 바벨론 군대를 다시 끌어 들여 대다수의 백성의 목숨을 넘겨 주고, 온 나라를 초토화 하다시피 하겠다고 다짐하십니다. 언약을 되물려 어긴 왕과 백성에게 그만큼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로잡히지 않은 천민들, 빈민들은 유다 땅에 남아 주로 포도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400여년 후 유다 땅을 찾으신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 그 분은 싸탄의 노예제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을 선언하십니다(루카복음서 4'18-21)! 은총의 '유빌리'-희년이었지요. 예샤야후(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예샤야후서=사 61'1,2). 이것은, 인류 범죄 이래 그동안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온 마귀로부터 노예해방으로서, 죄와 율법의 저주, 가난과 질병, 신체 부자유 등 영/혼/육의 온갖 억눌림과 악령들로부터의 자유 선언입니다.  


      웅덩이에서 구출되다 (38'1-13)

그 후 하나님의 예고대로 파라오의 군대는 물러가고 바벨론 군이 다시 예루샬렘 성벽을 에워 쌀 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을 받들어, 주변의 모든 백성에게 다시 예언을 합니다. 내용은 한결 같습니다. 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칼과 굶주림, 역병으로 죽지만, 칼데아 군에게 항복하는 사람들은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다고. 그러면서, "나 예호바의 말이다. 이 성은 기필코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겨질 테니, 그가 점령할 것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의 예언을 믿고 이미 밖에 나가 항복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고 사로잡히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친 미쯔라임 성향이 압도적인 관리들 가운데 쉐파티야, 파쉬후르의 아들 게달리야, 왕명으로 예레미야의 자문을 요청했던 예후칼과 파쉬후르 등은 예레미야의 이 예언을 듣고 "이 놈 이거 진짜 안 되겠네!" 하고선, 왕에게 고자질을 합니다.
 
    "이 사람은 지금 죽어 마땅합니다! 이 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무리의 팔 힘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 사람은 백성의 평화를 바라긴커녕 그들이 망하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왕은 안 그래도 예레미야 탓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맘대로 하라고 맡겨 버립니다.

    "보시오, 그가 그대들 손에 있소. 짐이 그대들을 거스를 리야 있겠소?"   

왕의 오락가락하는 헷갈림 성 태도는 실로 당혹스럽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왕의 오케이를 받은 관원들은 예레미야를 끌고 가서 호위부대 뜰 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 웅덩이' 속에 밧줄로 달아 내려 가둡니다. 그 곳은 물이 없고 진흙만 있어, 예레미야의 몸이 진창 속에 빠졌습니다. '합법적' 살해 공모/기도였지요.  

하지만 어디에나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손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평소 하나님을 믿으며 예레미야를 속으로 존경해 온, 쿠쉬(고대의 에티오피아) 출신의 왕궁 내관 에벧-멜렠은 이 황당 뉴스를 듣고 큰일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허둥지둥 왕궁 밖 빈야민 문 곁에 앉아 있는 지드키야 왕을 찾아 바삐 아룁니다.

    "내 주, 왕이시여! 저 사람들이 대언자 예레미야님께 저지른 만사가 악합니다. 성 안에는 이미 먹을 것이 동이 났는데도 그들이 웅덩이 속에 잡아 넣었으니, 그 분은 굶어 죽습니다!"

그도 옳다고 생각한 왕은 에벧-멜렠에게 명합니다.

    "자네는 지금 30 명을 데리고 가서 대언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냉큼 그를 웅덩이에서 꺼내 주게!"

에벧-멜렠은 즉시 궁중 일꾼들을 불러, 왕궁 창고 아래 골방에서 해어진 헝겊과 헌옷을 찾아 꺼내다가 함께 웅덩이로 서둘러 가서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달아내려 주면서 아래 쪽으로 외칩니다.

    "자..이 헝겊과 헌옷을 두 겨드랑이에 대시고 그 밑에 밧줄을 걸고 매달리세요."

그렇게 해서, 대언자 구출작전이 성공했습니다.

에벧-멜렠은 예레미야를 해치려는 사람들의 생리와 행동거지를 익히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머나먼 타향 출신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맘이 투철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과 착한 일을 기억하시고, 곧 보답하십니다.
어느 날 예레미야가 에벧멜렠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내가 이 성에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않겠다고 한 나의 말을 이루련다. 그 날, 바로 네 눈 앞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내가 그 날 너를 구해 주겠다! 네가 두려워하는 그들의 손에 너는 넘겨지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너를 구해 줄 테니, 네가 칼에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질 것이다. 네가 나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39'15-18)    

얼마나 마음 든든한 생명보장인가요!


      지드키야의 최후 자문 (38'14-28)

예레미야 구출 보고를 받은 지드키야 왕은 예레미야를 성전의 셋째 입구로 데려오게 하여, 말을 건넵니다.

    "물어 볼 게 있소. 아무 것도 숨기지 말고 대답해 주시오."
    "제가 님께 대답해 드려도 저를 결코 죽이시지 않을까요? 혹 제가 충고를 드려도 듣지 않으실 텐데요."

의문이 담긴 예레미야의 말을 일리 있다고 느낀 왕은 그를 죽이지도 적국에 넘기지도 않겠다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 그러나 왕은 예레미야를 여전히 호위부대 뜰에 가둬 둡니다. 요행껏 이용하기 위해서였지요. ]

예레미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아룁니다. 내용의 핵심은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네가 바벨론 왕의 신하들에게 항복하면, 네 목숨이 보존되고 이 성도 불타지 않는다. 너도 네 가족도 살 것이다. 네가 만약 바벨론 왕의 신하들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이 성이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불타 버릴 것이다."

그러자 지드키야 왕은 불안해 하며 말합니다:

    "난 칼데아 사람들에게 항복한 유다 사람들이 두렵소. 혹 칼데아 사람들이 나를 그들에게 넘겨 주기라도 하면, 그들이 나를 욕보일지 모르잖소."

지드키야의 불안은 별 근거도 가치도 없습니다. 다 함께 항복하는 처지에 감히 누가 그런다는 말입니까. 예레미야는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넘겨 줄 리가 없습니다! 제발, 제가 님께 일러 드린 예호바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러면 일이 잘 되어 님의 목숨이 보존될 터입니다. 그래도 왕이 항복하기를 거부하신다면, 예호바님이 제게 알려주신 것을 그대로 전할 밖에요:

    '보라,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인들이 바벨론 왕의 신하들에게 끌려 가게 된다. 그 여인들은 네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님과 가깝던 벗들이 님을 꾀어 이겼군요.
    님의 두 발이 진창에 빠지니 뒷걸음쳐 떠나는군요.

네 아내들과 자녀들은 칼데아 사람들에게 끌려나갈 것이다. 너도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체포된다. 또한 이 성은 너 때문에 불타버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전은 물론, 자신이 소중히 여겨 온 영예도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한꺼번에 매장될 내용이기 때문이죠. 해결책은 딱 한 가지-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드키야는 끝끝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왕은 그 대신 예레미야에게 경고합니다. 죽지 않으려면, 이 예언 내용을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말라고. 혹시 신하들이 소문을 듣고 둘이 무슨 단독 대담을 했는지 궁금해 해도 "요나탄의 집에 돌려 보내어 죽게 놔 두지 마시라고 했다"고만 말하라고 합니다. 이렘야후는 그대로 했고, 별 탈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것은 예루샬렘이 바벨론에게 함락되기 전, 왕이 대언자에게 한 마지막 자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