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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법 제도를 강화한 예호샤팥(메시아계보대장정38)



예수님 당시 대사제 카야파스의 재판정 (상상도)


바탕본문: 구약성경 연대기B(역대하) 19 
 
미카야를 시켜 하신 하나님의 예언대로, 라뫁길레아드에서의 대 아람전이 이스라엘 왕 아합의 전사로 마감되고 나자 유다 왕 예호샤팥은 무사히 고국의 수도 예루샬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돈 아하브를 잃긴 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니의 아들인 선견자(대언자 그룹의 하나, 히브리어 '코제') 예후가 왕께로 나아와 말합니다.

"왕께서 사악한 사람들을 돕고 주/야웨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야 했습니까? 그래서 주/야웨님의 진노가 왕께 임하여 있습니다. 하지만 왕 속에는 선함도 있습니다. 아쉐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하나님만 찾기로 마음을 굳히신 일입니다." (연대B 19:1-3 이하 성구 사역)

예호샤팥은 이 예언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 그 결과 그는 이때부터 더욱 하나님을 경외한 흔적이 여실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 둘 사실은 분명히 하나님의 예언대로 예호샤팥은 진노 아래 있고, 그 진노가 아들/손자 대에 크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대아람전에서 아하브를 돕다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뒤, 진노의 경고를 받고 난 다음에도 여태 제대로 정신을 못 차려, 훗날 아하브의 사악한 손자 아하찌야와도 친교를 나누면서 재차 남북동맹을 체결합니다. 사돈 간이라는 이유 탓이지요.

이러한 예호샤팥에게서 우리는 비감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의 악인들과 끈끈하게 짝하려는 마음을 주는 마귀를 분별해, 쉽게 물리치지 못한다는 점에서지요. 때때로 그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갑시다"

아무튼 선견자를 통한 주/야웨님의 이 경고가 주효한 때문인지, 가책 탓에 뉘우친 때문인지, 예호샤팥은 이후 전국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는 데 힘씁니다. [ 기록의 특징 상 연대기B서 19:4 이하가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1-3 사건 내용 이후인지는 알 수 없어도. ]

즉 몸소 예루샬렘에서 향발, 유다의 최남단 베에르쉐바부터 최북단 에프라임 산지까지 전국 각처를 두루 순행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권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모습이 아닐 수 없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흐뭇하셨겠습니까.

참고로..과거 통일왕국 시대엔 '단에서 베에르쉐바까지'라는 말이 주로 쓰였습니다. 이스라엘 온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었지요. 그랬던 것이..슬프게도 분열왕국 시대엔 북 이스라엘은 '단에서 베텔까지', 남 유다는 '베에르쉐바에서 에프라임산지까지'란 말로 대체됩니다.

아무튼 예호샤팥 왕은 이런 대단한 정성을 품은 기특한 왕이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부귀와 영예, 넘치는 복을 주셨고 나라를 강하게 해 주셨건만, 딱 하나-악한 무리와의 친교 탓에 진노를 자초한 것입니다. 


최상최강의 법정제도

예호샤팥은 또 유다국 사상 최고의 법정제도를 강화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말씀과 정의, 법의 신이시기에 그렇지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예호샤팥'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야웨님의 판결", "주/야웨님이 심판하셨다"는 뜻이 있어, 왕의 이름이 예언적이고 이 업적을 이루는 데 적격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미쯔라임출국(출애굽) 및 광야시대 때 율법을 받은 뒤, 애당초 모쉐가 주로 맡던 백성 재판을, 모쉐의 장인 예트로의 조언을 받아 십부장/백부장/천부장 제도를 만들어 개선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던 것이 판관(사사)시대엔, 주로 역대 판관들이 억울한 사연이 있는 백성의 소송을 받아 재판을 맡아함으로써 질서를 다잡았습니다. 특히 판관시대 말기의 슈무엘은 주요 도시를 돌면서 판시를 했지요.
왕국시대에 들어서서는 다빋 왕이 백성들의 판건을 맡기도 했지만, 아브샬롬(압살롬) 같은 사람은 역심을 품고 재판 받으러 오는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또 슐로모 같은 현왕이 두 창녀의 아기 판별 소송을 갖고 슬기로운 재판을 베푼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정의가 구현되게 하시기 위해 억울한 사람들의 소송을 올바로 판가름하는 일에 마음을 쓰셨고, 나라 지도자들은 이에 부응하곤 했지만, 예호샤팥 만큼 딱 부러지게 법제도를 강화한 적은 없었습니다. 

왕은 전국의 요새지 도시마다 주무 판사를 임명하면서 그들을 직접 훈시합니다.

"..여러분은 맡은 법무에 신중을 기하시오. 여러분의 재판은 사람을 위하지 않고 주/야웨님을 위함이오. 그 분이 여러분의 판결에 함께 하실 터이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주/야웨님을 두려워하는 맘으로 삼가시오: 주/야웨 우리 하나님은 불의도 없으시고 차별하지 않으시며 뇌물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오!" (연대B 19:6,7)

왕이 이렇게 다짐을 두니 판사들이 어찌 함부로 판결하여,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요? 왕의 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로 (당대) 법무를 함부로 할 일이 아님은 본래 태초에 법을 제정하신 분이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신정(神政/Theocracy)시대에 속한 당대의 재판은 사람을 위하기보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법/정의/공평/공정/질서를 중시하는 올바른 재판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판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궁극적인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려면 판사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 섬기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차별과 뇌물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참고: 신명기 16:19).
일찌기 고대 광야시대 때 내리신 재판 지침을 보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호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재판에서 비정의를 저지르지 마라.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둔하거나 힘 있는 사람이라고 옹호하지 마라. 너희 이웃을 공정하게 판단해라." (레빝서/레 19:15)
[ 참고: 미쯔라임출국/출 23:2,3, 신명기 1:17, 27:19, 시편 82:2-4, 잠언 24:23b 등 ]

그러므로 판관이 불의/차별/뇌물 수수를 일삼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지요.

예호샤팥 왕은 또, 대법원 격인 수도 예루샬렘 법정 관련 법무와 성전 업무도 주요인사들에게 일임하여 강화합니다. 레빝 지족 사람들과 사제들, 이스라엘 각 지족 대표들 가운데서 적임자를 선정해 주/야웨님 경베와 성전에 관련된 법무와 함께 예루샬렘 시민들의 소송도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 경배 관련 업무는 대사제 아마리야, 왕실 관련 업무는 유다족 이슈마엘의 아들 제바디야, 일반 관리는 레비인들이 맡아 하게 됐습니다. 

왕은 선임된 예루샬렘 대 법관들, 성전/일반 법무관 등에게도 훈시를 합니다.

"여러분은 주/야웨님을 두렵게 섬기되, 꿋꿋하고 온전하게 행해야 하오. 여러분에게 건네어지는 어떤 판건-여러분의 도시에 사는 여러분의 형제가 제기하는 소송에 관하여..피흘림/살인 건이든, 법이나 계명, 율례나 규명 등이 올라오면, 그들을 경고하여 주/야웨님을 거스르는 죄를 짓지 말게 해야 하오. 안 그러면 그 분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임할 테니. 이렇게 해야만 여러분이 무죄합니다." (연대B 19:9,10)

법을 오용하는 재판관은 주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지요(시편 94:20).
그러니..예호샤팥은 하나님의 법과 공의를 만족시키는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높이 평가됩니다.

예호샤팥의 먼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예수 크리스토-님은 완전한 공평과 정의를 행하시는 분입니다(예샤야후=이사야 9:7, 16:5, 33:5, 예레미야 33:15).
그 분이야 말로 역사 최후의 판사요 우주의 대법관, 궁극적인 재판장/심판관이십니다(시 7:11, 68:5, 75:7, 82:1, 이 33:22, 행전 10:42, 티모테B/딤후 4:1,8, 페트로A/벧전 4:5)!

우리가 주님 앞에 재판 받는 미래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도 파울이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모두 크리스토의 심판좌 앞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개인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몸으로 있을 동안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 (코린토B/고후 5:10)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좌 앞에 서게 될 텐데 말이지요. 쓰여진 그대로입니다-'주님,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으리! 모든 혀들이 하나님께 고백(또는 찬양)하리!' 그러니 우리 개인이 자신에 관한 사실들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롬 14:10끝-11)

즉 나 스스로가 내 행위를 주님 앞에 '직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상 종말 후 인류 최후의 심판 광경은 어떨까요?

"그리고 나는 크고 하얀 보좌와 거기 앉아 계신 분을 봤습니다..나는 또 크고 작은, 죽은 사람들이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책들이 펼쳐 있고 또 다른 책 곧 생명의 책도 펴져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그 책들 안에 쓰여진 대로 자신들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3)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