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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바람직한 예배와 교회상은?




본향님이 오래 전 올리셨던 댓글에 대하여 '물음과 답' 형식으로 답합니다. 답이 너무 늦어져 매우 송구한 마음입니다.  



물음

정말 초대교회에서 했던 예배(경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대처럼 주일날 모여 앉아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주기도문 외우고, 목사님 말씀을 듣고, 각자 봉사하는 처소로 흩어졌다가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일요일을 마감하는 이것이 원래의 교회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은 주일날 교회 가서 자리에 앉아있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극동 방송 라디오 예배를 듣는 거나 교회가 앉아 있는 거나 뭐가 다른지.. 그리고 큰 교회들은 봉사를 안 하면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예배만 드리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죠.



위 본향님의 질문에 대해  문장by문장으로 답합니다.


"정말 초대교회에서 했던 예배(경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이것에 대해선 본향님의 댓글 위에 있던 저의 원글에도 비친 바 있지만, 예루샬렘 교회를 비롯한 초기 교회의 모임과 경배 모습은..

예수님의 예언(요한복음 4'23,24)에 경배의 성격이, 그리고 그 실체가 루카(누가)가 쓴 행전의 여러 기록들(행 2'4,42~47; 4'29,30; 32~35; 5'12~16,42; 6'1~6; 8장; 9'17,26~31,32~43; 10'23~48; 11'22,23~30; 12'12; 13'1~3; 15'22~30; 16'13~15; 19'5,6; 20'7..등등)과 (루카와 시종 함께 한) 사도 파울의 계시(예: 코린토A서 14'26, 에페소서 5'19) 등에 나타나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적 경배와 다른 새 경배적 모습은.. 


의식(儀式)보다는 성령을 통한 영(성령)과 진리(말씀)의 경배라는 것, 

따라서 성령의 나타남(참고: 코린토A 12,14장)을 바탕으로 한 사역이 중시된 점..

의식보다 말씀 선포와 말씀 묵상이 주를 이룬 경배라는 것, 

사제들을 통한 속죄가 아니라 하늘 대사제(대제사장)이신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을 통한 성도 모두의 직접적인 경배/찬양/기도/속죄가 이루어지게 된 것..

하나님-백성 사이의 수직적 친교 뿐 아니라 성도 사이의 수평적 친교도 강조된 점..

선교와 침례(세례)..그리고 성령침례 및 충만이 강조된 것..

등입니다. 


그래서 그 구체적인 요소로 들어가 보면..

초기 교회 모임은 말씀의 가르침과 권면, 신유와 악령축출 등 이적/권능사역, 위로/친교/애찬, 봉사와 (구호 등)도움사역, 회의/치리(治理) 등이 늘 또는 수시로 진행되고,  

경배 자체는 역시 말씀과 계시 나눔, 기도와 헌물, 영적인 찬양(영언 노래의 화답)등이 강조되었으며..

가장 중시된 것은 선교와 전도였다는 것 등입니다. 

 

"현대처럼 주일날 모여서 앉아 성가대 찬양 듣고 주기도문 외우고 목사님 말씀 듣다 각자 봉사 처소로 흩어지다 집으로 돌아가서 일요일을 마감하는 이것이 원래의 교회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 사도의 말씀에 서로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으니 주일날 함께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중요하고요(행 2'46, 히브리서 10'25)^^. 그렇다고 혼자 경배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경배할 경우 친교와 애찬, (십일조/헌금/헌물의) 봉헌 등 교회 삶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게 되는 셈이죠. 

초기교회의 어떤 모습도 개인 혼자만의 경배를 지지해 주는 구석은 없습니다. 여행 등 부득이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또한 방송 시청자/청취자, 네티즌/웨비언들 등의 경배를 돕는 사역기능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미디어가 교회의 장소적 기능의 불필요성을 입증해 주지는 않습니다. 미디어가 성경이 강조하는 교회모임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성가대 찬양을 그냥 '듣는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놀랍고 아름다운 창조물의 하나인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등 다성부(多聲部) 합창으로 하는 대표적인 찬양에 동참하여 함께 찬양하는 것이겠고요. 그러나 (칸타타/오라토리오 등) 성가대 합창에 회중찬송을 자주 곁들여야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가대의 중세적인 귀족화는 저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주기도문' 외우기에 관해서는 저의 다음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truthnlove.tistory.com/m/post/83

http://scissurl.com/6/sew

http://scissurl.com/6/sey



설교자/목회자의 메시지 듣기는 누구나 별 문제가 없을 거 같은데요^^. 설교의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또 교회는 누구나 봉사자/사역자가 되어 활동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각 부서는 친교에도 크게 도움되고요. 


하지만 현대교회에 꼭 필요한 것이 좀 더 강하고 끈끈한 지체적/유기적 작용 및 결합, 치유 및 위로에 꼭 필요한 권위적(勸慰的) 기능의 강화, 코린토A서 12장, 에페소 4'11~16, 페트로A서(벧전) 4'10 등에 나타난 다양한 은사와 사역기능의 활용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것이 없기에 더 이단세력이 침투하기에 쉬운 환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교회는 형식적인 집합체가 아니라 내적으로 서로 깊고 친밀하게 연계된 유기체가 되어야 합니다. 초기교회는 성도끼리 서로 입맞춤을 할 정도로 정답고 자연스러웠는데, 현대는 워낙 (이성애/동성애/양성애 등) 그만 온갖 성의식이 강하게 발달하다 보니;;..교회마저도 그런 의식을 초월하지 못하고 물든 셈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서로 부담이나 '딴 생각' 없이 키스하는 외국인교회들은 아직도 있습니다. 


엄연한 사실은, 꼭 내 맘과 내 뜻에 100% 맞는 완전한 교회는 지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초기교회가 추구한 교회상을 모임과 경배 속에 최대한 반영하고 구현하도록 성경적인 주장과 뜻을 율법주의적/부정적/비판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펼쳐 결과적으로 어느 개인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인들도 교인들이지만 목회자/지도자의 섬김과 헌신, 겸허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독단적, 중앙집권적, 고자세적 정책과 태도는 성경에 어긋납니다. 그는 섬김을 받기 전 우선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바람직한 교회상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위와 같은 이상적인 교회상에 맞도록 끊임없이 훈련되어야 합니다. 훈련되지(disciplined) 못한 교인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우선적으로 지도자들의 책임이죠. 

교회 안의 이런 위협적 요소들이 말썽의 불씨 내지 교회 분리의 시한폭탄과 같은 요소들입니다. 


심리적인 교회 건강과 행복이 아니라, 실로 영적인 건강과 행복이 한국 교회마다 넘치길. 

성도마다 성경적인 경배와 교회상을 바로 알고 배워, 다음 세대의 미래 교회상에도 계속 구현할 수 있기를.


본향님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도움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