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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K교회와 B목사

상식으로 본 큰믿*교회


              사진 오리지널 출처: 교회와신앙 (amennews.com)


'상식'이란, 그야 말로 늘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지식을 가리킵니다. 일반 사람이 다 아는 보통의 지식이나 판단력..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논리를 뜻하기도 하지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상식이란, 거기에다 성경 상식을 보탠 것을 말합니다. 웬만한 교인/신자/성도는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경지식을 가리킵니다.
이 글은 그런 상식으로 큰믿*교회를 미뤄 본 제 나름의 소감입니다.


변 목사는 섬김이인가, 섬김받음이인가?

큰믿*교회의 실태를 바라보건대, 상식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부터 말해 보죠.  

변*우 목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해 보이나 실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굳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만사를 모른다고 봐야겠지요. 

왜냐고요? 성경 상식으로 볼 때, 사역자/목자/목사/목회자는 섬김이입니다. 다름 아닌 주님께서는 섬김이로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섬기지 않고 주로 섬김을 받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양지기 내지 목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변 아무개 목사는 섬기기보다 아무래도 섬김을 받는 목회자로 비칩니다. 큰믿* 카페를 보면 대뜸 느껴지는 인상이 그겁니다. 만세부대인지 박수부대인지 모를 수많은 그곳 교인들은 변 목사 따르미들로 보이지, 예수 따르미로 보이질 않는 군요. 그 교회의 왕은 예수님이 아닌 변 아무개 목사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한들..저의 느낌은 그겁니다. 변 목사가 어떤 말을 하든 그 교인들은 100% 믿고 받아들이도록 훈련 받았기 때문입니다.
절대군주가 아니고서야 어찌..?


신약시대에 있을 수 없는 '선지자학교'

그 다음..
그 교회는 소위 '선지자학교'란 것을 운영합니다.  변 목사의 동생이라는 변 모 씨가 '교장'입니다.

요즘 미국이나 한국에서 소위 신사도개혁(NAR)운동을 한다면서, 곳곳에서 '선지자학교 '어쩌고, 현대의 '사도'가 어쩌고, '엘리야' 어쩌고들 하지만 '선지자학교'란 것은 신약시대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시대 한 때의 전통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선지자학교'란 것은 구.약.시.대.의 것입니다.

물론..행전 기자 루카나 사도 파울은 여기저기서 당대의 대언자(代言者)들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어디를 봐도 선지자/사도들을 대거 양성했다거나 구약시대 같은 '선지자학교'가 존재했다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예루샬렘 교회는 교인수 1만명이 넘는, 당대로서는 초대형교회였지만, 12 사도들이나 7 집사들 중 그 누구를 '선지자학교 교장'이라고 했거나 '선지생도'들을 모아 훈련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세의 지말인 지금..'선지자학교'라니, 우리가 지금 타임 머쉰이라도 탄 걸까요? 시계바늘이 거꾸로 달리는 걸까요? 큰믿*교회 교인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나요.. 아니라면 '지성전' 지역들에선 해가 서쪽에서 뜨나요?

아, 예..구약 때는 선지자 공동체도 있었고 선지자 학교란 것도 있었지요. 맞습니다.
통일 왕국 당시 판관(=사사)/대언자(선지자)를 겸했던 슈무엘(사무엘)이 라마 나욭에다 대언자 공동체를 개설한 것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엘리샤가 키웠던 선지자생도들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요. 또 남쪽 유다에서는 성전과 주변 공동체에 대언사역을 겸한 레빝 음악인들이 활약했습니다. 
당대로서는 그런 교육기관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주로 왕정이 엉망진창이어서 경고할 대언자가 수시로 필요했던 까닭이지요.

그러나 그후 남/북 왕국들이 멸망하면서, 또 흩어짐 시대가 오면서 선지자학교 전통은 흐지부지 됩니다. 선지자학교가 부활된다거나 전통 재현의 필요성을 말한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그 어느 대언자도 그런 예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시가 끊어진 중간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마지막 대언자는 침례(세례) 요한과 예수님인 셈이었습니다.

오히려, 대언자 요엘은..말세에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그 분의 영을 부어주시면, 신자와 남녀 종들이 모두들 예언할 것이라고 예언했지요(행전 2:17,18).
성령 안에서 다들 각각 예언한다는데, 왜 도로 구약으로 돌아가서 누가 누굴 선지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인지요?
 
코린토A(고전) 12-14장에서 파울은 거듭 예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께서 직접 각자에게 은사로 주실 뿐이지, 우리 각 사람은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교사 직능/은사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지요. 다만 누가 누굴 직접 가르치고 배우고 서로 관여되면서 스승/명사 개인에 대한 소속감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초기교회 그 누구도 상호 동역자들은 있을지언정 개인에게 속하여 일방적인 섬김을 강요하거나 강요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은사자들은 많아도 '예언학교'나 '예언자학교' 따위는 없었습니다. 이젠 성령님이 직접 개인을 가르치시기에 그런 학교가 불필요하기 때문이지요(요한A서=요일 2:27. 참고: 코린토A 2:10-16). 그러나 현대 교회 다수는 예수님이 아닌 대형 교회 목회자나 특정 인사에게 모종의 소속감을 갖고 따르미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가 있습니다(코린토B=고후 3:17). 이 말은 교회엔 무질서가 판 쳐야 합니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 만약 예언학교나 예언자학교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비단 예언뿐 아니라 나머지 8개의 영적 은사별로 각각 별도의 훈련을 시켜주는 곳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영언자(방언자)학교/영언통역자학교/신유학교 등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지시를 하지 않습니다. 왜 '선지학교'만이랍니까..?

사도들 당대와 후대 초기에 모 교회 예루샬렘 교회를 비롯해 수많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교회/안티옼교회/코린토교회/에페소교회/카파도키아교회/바빌론교회/크레타교회/로마교회/갈라티아교회/필리포교회/콜로새교회/테살로니카교회/아테네교회/튀아티라교회/사르디아교회/페르가무스교회/스뮈르나교회/필라델피아교회/라오디케아교회..등등.
그밖에 아퀼라-프리스킬라, 코르넬리우스, 필레몬 등 여러 개인 가정에도 교회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교회에 '선지자학교'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고, 그 필요성을 논한 교회조차 없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가장 가깝고 권능을 부여받았던 초기교회가 이랬거든..하물며 현대에 왜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큰믿*교회가 말세에 구약 선지자학교 재개를 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 받았다는 말일까요? 그렇다면 요엘 선지자나 그 누굴 통해 성경에다 미리 이런 식의 예언을 했어야 할 터입니다:
  
    "말세에 선지자학교를 재개설하리니..곧 한국의 큰믿*교회에 내가 대언의 영을 보내어 당대를 위한 선지자학교를 세우게 할 것이니라. 내가 과거 엘리샤를 세웠듯 미래의 선지자학교 교장으로 변 모 전도사를 세워 수많은 선지자들을 기르려 하노라.."

-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방금도 들여다 본 제 성경엔 그런 구절이 나타나지 않네요. (혹시 그 비슷한 성구를 찾은 독자는 제게 즉각 알려 주시길.) 


아무튼-성경이야 어찌 됐든, 큰믿*교회는 그런 선지자학교란 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선지자학교란 곳을 방문한 '교회와신앙'의 J모 기자도 기가 차서 기사에서 나름 평가를 가했지만, 그 교회는 성경보다 예언이란 걸 더 중시한답니다. 그러니까 '교장'이라는 변 모 전도사는 여러 시간 예언만 얘기하고 예언만 중시했지, 성경 연구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 변 전도사의 주장은 한마디로 '항상 예언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살라'는 것인데, 강의가 진행된 한 시간 내내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1년 동안 열심히 순종하자'는 말은 단 한 번도 강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변*우 목사는 '항상 개인예언을 녹음하고 예언의 내용을 자주 들으면서 묵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상 '교회와신앙' 보도문에서)


예언을 멸시하지 마라..예언은 끝나지 않고 더 잦아질 것입니다..예언은 중요하다..
이런 말들은 파울의 말을 원용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파울이 이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예언을 중시하여.. 구약 때의 선지자학교를 다시 세우도록 하시오. 옛 전통이 되살아날 필요가 있소. 큰믿*교회에 개설하고 변 모 씨를 교장으로 세우시오." (내가서신서 x장 x절? 유사 성구를 찾은 분은 필자에게 알려 주시길.)

파울은 모든 성도가 예언하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교회를 위로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시기 위해 개인을 통해 하신 권위적(勸慰的)인 예언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은 구약 시대 같은 유의 미래적 예언이 구약 때처럼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대다수의 예언들이 예수 크리스토와 교회를 통해 성취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말세의 나머지를 위한 미래적 예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도 여태 다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다니엘 서와 계시록을 바로 이해하고 그 예언들의 성취를 기다리는 것도 큰 일이겠거늘..어떻게 개인마다 하는 미래적 예언들을 날마다 일일이 챙겨 다 이뤄지길 바라보고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물론 개인을 향한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예언으로 만들어 교육시키라는 말은 성경엔 없습니다.  

그런 구약적 선지자 교육을 이 시대에 잘못 하다간 모두 '교회 점쟁이'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큰믿* 선지자학교를 통해 양산된 '선지자'들이 행여 비슷하게라도 자신의 예언이 '성취'됐을 때 "이거 보라!"고, "나는 예언자"라며 동네방네 길길이 뛰고 성경보다 자신의 예언이 중요한 양 신자에게마다 두루 다니며 예언자 행세할 날이 머지 않다고 상상해 보세요. 소름 끼칠 노릇입니다.

미쉘 노스트라다무스, 죠셒 스밑, 윌리엄 밀러, 에드거 케이시, 진 딕슨, 허버트 암스트롱, 애플 화잍헤드, 에드거 위즈넌트, 이장림, 해럴드 캠핑..같은 숱한 문제성 '예언자'들이 괜히 생긴 줄 아십니까? 달리 특출한 방법으로 나온 겁니까? 또 신사도운동권과 캔저스시티그뤂의 "위대한 대언자"들인 밥 조운즈, 폴 케인, 맄 조이너 등이 남발해대는 '예언'이란 거..성취와 함께 알차긴커녕 알량하다는 게 입증돼 오지 않았나요?

기억하십시오. 아하브(아합) 시대 때 쟁쟁하던 제데키야(시드기야)를 비롯한 북 이스라엘 대언자 400명이 모두 미혹의 영 하나에 사로잡힌 쓰레기(?)에 가까웠던 사실을(왕들A =왕상 22:5-36 참조). 당시 아하브 궁중에 출두한 참된 대언자는 미카야 한 명 뿐이었음을. 예언/선지자 너무 좋아하다간 영적인 '선지피'를 흘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신사도운동권 대언자들이나 그들의 따르미들은 모두들,
성경보다 자신의 예언을 중시하며..
성경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거룩한 성구 말씀들을 제멋대로 갖다가 억지춘향 격으로 자기 예언에다 끼어맞춰 이용하고 있음이 흔히 발견됩니다. 

읽거나 들어 보면 너무나 뻔하고 낯 간지러운 내용들이 대부분인 자기네 '예언'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 하기 위해 성경과 주님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렇게 양산된 엉터리 선지자들을 조심하도록 모든 영을 검증하라고 교훈하고 있으며..각 신자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분별력, 분별의 영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거짓 영들도 '예언'이란 걸 한다

여기 관련되는 한 가지 상식적인 얘기를 더 해 봅니다.

거짓 예언의 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성경에 의하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 예언의 영이 큰믿*교회 '선지자' 내지 선지생도들에게 역사할 가능성이 있을까, 없을까요? 분명히 있지요! 없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엔 그런 영이 없다"고 한다면, 그가 곧 거짓 대언자입니다!

세상 어디서나 거짓 예언의 영들이 활개를 치며 특히 혼동과 혼란이 잦은 교회, 검증과 분별이 부재된 곳에선 더구나 더 역사합니다. 그런 거짓 영들은 성경에서 '친숙령'이라고 불립니다(제임스왕역/KJV 영문 성경 참조. 'familiar spirits'). 온갖 거짓 것을 도맡는 친숙령들은 미혹의 영과 함께 작용합니다.

오랫동안 이단성 여부를 저울질 받다 연전에 간신히 의문의 망을 벗어난(?) 어느 명사는 과거 여대언자에게 홀려 교회를 '말아 먹을" 뻔 했다는 얘기가 있지요. 그런데도 그의 집회에서는 '여선지자'가 따라 다니며 입신/예언이란 걸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여선지자'는 교회 방바닥에 누워 자빠져 입신 속에서 예언을 하는데..낯 간지러워 차마 계속 들어 주기 어려운 아부성 발언들을 '예수님'이라는 존재와 나누고 있었는데..그 느낌이 감격스럽긴커녕 끔찍했습니다! 비성경적인 그 내용상 예수님을 가장한 악령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물론 다른 은사들과 함께 예언도 있습니다. "없다"고 한다면 그는 비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대언자 요엘의 말세 예언을 따라 초기교회에 시작된 은사들이 여전히 말세인 현대에 '중단'될 리가 없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언들은 성경 기록계시에 포함되거나 동등시 될 순 없습니다. 또한 파울의 말처럼 교회의 예언들은 반드시 검증돼야 마땅합니다! 예언자들의 영은 대언의 영에 의해 제재를 받습니다. 뭔가 내용이 성경과 달리 이상하고 뿌리가 이상하고, 내용이 모두 '긍정적'이고 듣기에 달콤하면 그건 거짓 예언이고 가짜입니다.
물론 겁 주고 저주와 공포를 주는 부정적 예언이라고 해서 맞는 것도 아닙니다.
분별의 영과 대언의 영에 의해 검증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각 신자에겐 분별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분별을 안하는 데 있습니다. 


입신에 관한 상식

예언과 함께 큰믿*교회의 다반사 한 가지는 '입신'.
한 번 "홀까닥" 자빠지고 혼절해 '영계'라는 데서 뭔가 '메시지'를 받고 다녀오면 모조리 성령님의 이름을 거들며 그 분께 책임을 돌리기가 일쑤지요.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입신이란 게 그리도 중요하고 잦아야 한다면 왜 보통 교인들은 안 주시고 그 교회 교인들만 그리도 잦은지요? 하나님은 차별 대우하신다는 뜻인가요? 왜 성경에는 '입신' 기록이 고작해야 사도 파울이나 계시록을 기록한 때의 요한 밖에 없습니까? 입신이 그토록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면 사도들마다 주당 한 번씩이라도 "자빠져" 자주 입신을 해야 옳지 않았겠나요? 그러나 초기교회에서 자주 그랬다는 기록을 우리는 좀체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입신 역시 잘못된 입신이 있을 수 있을까..없을까요? 잘못된 입신이 훨씬 더 많지요! 이 역시 친숙령들이 '영계'라는 데서 '입신자'들에게 헛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영계에서 (문제종교집단 '새교회'의 교주) 스베덴보리의 영을 만났다는 순다르 싱(썬다싱/선다싱)이나 그 순다르 싱의 영을 영계에서 만났다는 타드 벤틀리 같은 사람들은 성령님이 아닌 친숙령들이 보여 준 엉터리 입신을 한 것입니다. 요즘 신사도개혁운동권에 아주 흔한 얘기들이지요.

그래서 분별 또 분별, 검증 또 검증이 필요한 때가 오늘입니다!


사족 같은 상식 차원 얘기 하나 더

본 티엘티는 큰믿*교회 인사들의 '권리침해' 신고란 것을 받아 10여 회 아티클 임시 근접불가 제재를 받아 왔고 지금도 일부는 유효한 상태입니다. 

우리, 또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큰믿*교회라면, 큰 믿음을 지닌 사람들답게 마땅히 믿음으로 행해야 할 터입니다. 이런 인본적 방법으로 잔 머리나 굴리는 게 큰 믿음은 못 된다는 말이지요. 

티엘티의 아티클이야, 성경의 명령을 따라 모든 영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 교회에 비성경적 문제가 자꾸 생겨나니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만..그들의 이런 제재 방식은 비굴하다 못해 욕지기까지 납니다.

세상 법정이나 세상 법을 빌려 성도를 타도하지 말라는 파울의 교훈에 따라 왜 정정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왜 얄팍한 세상 방식과 세상 법이나 이용해서 뒤통수나 뻥뻥 쳐 댈까요? 그건 큰 믿음이 아니지요! 만약 그들이 주장하듯 티엘티가 그리도 주의 종과 성령을 '대적'하는 사악한 곳이라면, 큰 믿음으로 금식기도라도 해서 무너뜨려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면 뭐..예리코 공략 때처럼 티엘티 '주위'를 묵묵히 (마우스로?) 일곱 바퀴 돌고 나서 쇼파르나 하초체롵(고대의 유대식 은나발)이라도 드높여 불든가.

그런 의미에서 큰믿*교회 교인들은 말만 큰 믿음, 이름만 큰 믿음이지, 모두 일방성 "변 목사 따르미"들에 불과한, 실상 작은 믿음의 보유자들로 보인다면 과언일까요.

다른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믿*교회처럼 1인 목회자 따르미 체제라면 귀 교회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한 섬김이요, 교회의 한 섬김 기능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결코 대사제나 왕이나 왕회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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