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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정.결혼

아내와 남편의 주고 받기 (뉴하우스 / neuhaus)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평등은 하나님이 남녀를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때부터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남녀를 성별 구분이 되게 신체 요건만 서로 다르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서로 다른 생리, 역할과 위치도 구분하셔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존재하게 하셨다.

물론 타락한 세상에 사는 우리는 애초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는 거리가 멀게, 죄로 오염되다 보니 스스로 만들어 낸 혼돈과, 위치와 힘의 남용, 그리고 이기심이 남녀의 기본적인 역할과 위치에마저도 도전하고 저항하고 대적하며, 끊임 없이 서로 투쟁하는 관계로 보게 만든다.


하나님은 남자를 공급자로 만드셨다. 대부분의 남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 거두고 쟁취하는 반면, 여자는 돌보고 양육하는 양육자의 선천적인 기질을 주셨다. 말할 것도 없이 시대의 변천이 남녀 간에 역할이 뒤바뀌는 현상을 초래하긴 했으나, 근본적인 남녀의 생리와 동기는 여전히 이런 창조원리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자는 생리적으로 ‘주는 자(giver)’이다.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주는 것’으로 정의를 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남자는 ‘받는 자(taker)’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는 받기를 좋아 하고 얼마만큼 대우받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한다고 볼 수 있다.

여자의 이런 ‘베푸는’ 선천적인 기질이 남녀관계에도 크게 작용을 한다. 좋은 관계의 열쇠가 ‘주는 것’이라고 대부분 여자는 믿기 때문이다. 여자는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계속 주고 베푼다. 

하지만, 이런 여자의 ‘주는 행위’는 사실, 동성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잘 적용이 되고 효과도 있지만, 남자와의 관계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여자가 가진 로맨스에 대한 잘못된 환상 하나가 남자가 호의를 돌려 줄 때까지 주고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여자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달리, 남자는 베풀면 베풀수록 받기만 한다. 남자는 주는 만큼 모조리 다 받으며, 여기에 익숙해질 뿐이다.

남자가 아내의 베풂에 호의로 보답하기 전에 대부분 주기만 하는 아내는 지쳐 포기하고 말게 된다. 이유인 즉, 남자는 부탁하기 전에는 호의를 베풀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리인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대부분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급이 있어야만 주고 베풀게 되어 있는 남자의 여자와는 다른 생리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런 관점은 낯설기도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상급과 연관된 것을 보면, 인간의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으로 미루어 추측할 법도 하다. 

열 두 제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말씀만 해도 보상이 나열돼 있다.

아마도 이들이 여자들이었으면, “주라”는 명령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추측도 해 본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에게마다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봐서, 하나님께로부터도 우리는 상급을 바라게 되어 있다.

하물며 결혼 관계에 있는 남녀 사이에서도 남자가 주고 베풀 때는 반드시 받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기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남자의 내면에는 ‘물물교환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서 원하는 것은 요청하여 ‘받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에게서 저절로 호의가 되돌아오거나 알아서 여자가 원하는 것을 주고 베푸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아내는 부부관계 특성상 ‘가져 간다’ 또는 ‘받아 낸다’라는 생각을 많이 불편해 한다. 여자의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들의 베푸는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먼저 아내가 무조건 준다는 것은 무척 논리적인 이론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내의 이러한 행동이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 상담 시 “나는 계속 주고 베풀고 이제는 더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라는 여자의 고백을 흔히 듣지만, “전 우리 결혼 생활에 전혀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남자의 고백 또한 흔하다고 한다. 

이런 남자의 고백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계속 받는 데만 익숙한 남편의 삶은 좋고 문제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가 가진 또 다른 잘못된 추정은 남편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데이팅 시절과 같이 사소한 일에마저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리라는 생각이다.  데이트하던 시절의 남자의 이러한 행동은 여자를 쟁취하기 위한 유일한 이유 때문이었음을 아내는 알아야 한다. 여자는 돌보기 위한 베풂의 행위를 하지만, 남자는 생리적으로 그렇지가 않다.

아내들은 내가 결혼한 남편이 일반적으로 ‘받는 자’라는 것, 그리고 부탁이나 요청이 없이는 호의를 자연스럽게 보답할 줄 모른다는 남자의 생리를 잘 알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아내는 남편에게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요청하고 부탁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아내가 이런 이유로 가슴앓이 하며 남편에게 실망하고 화 내며 사는지 모른다.


얼마 전 우연히 내가 방문하던 댁에 예고 없이 찾아 온, 아주 다소곳한 여자 분이 있었다. 자신이 한때 사역자의 아내였다가 오래 전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그녀의 덤덤한 이야기에, 비록 생면부지의 사람이건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머니 집으로 나를 바래다 주겠다는 그녀의 호의로 차 안에서 이런저런 그동안 힘겹게 산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야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뻔한 사실이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얼마나 그녀를 힘들게 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보고 싶으셨지요?”라고 어느 새 나는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아뇨”라는 그녀의 대답에 나의 추정이 많이 빗나갔음을 알고, 쓸 데 없는 질문을 한 어리석음을 자책하려는 순간,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신은 남편을 가정적으로나 사역 면에서도 한결 같이 순종하고 받드는 아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에게 고마운 마음이나 안쓰런 마음으로 아내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한결 같은 정성스런 보살핌이, 아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 남편에게는 너무 당연하였다는 것이다. 아내보다는 일과 내조가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주고 또 주고 베풀기만 하던 아내의 멍든 가슴이 아직도 멍든 채 옛 기억을 되살리는 그녀의 모습이 진정 안쓰러웠다. 반드시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작고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무덤덤한 심정에 한 몫을 한 것 같았다. 


아내들이여!
무조건 주면서 기다리다 지쳐 화 내고 가슴앓이 하는 대신 당당히 요청하고 지혜롭게 부탁하여 남편에게서 원하는 것을 ‘받아 내며’, 책임감이 있고 아내의 필요에 민감해지는 남편의 변화를 기대해 보자. 

한 가지-이런 관계에 대한 자가 도움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기보다 일반적인 이론임을 명시해 둔다. 예외는 항시 있으며, 매 번 효력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지금까지 다룬 남자의 생리와 성향의 틀에 속하지 않는 남자도 있게 마련이다. 독자마다 지혜로운 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부탁/요청하자. 

상대의 필요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요구하기 전에 필요를 채우는 여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여자는 사랑하면 본능적으로 주게 되어 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의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우려 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여자의 관점에서는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부탁이나 요구하기 전에 반응하리라고 생각한다. 여자에게는 "사랑은 물어 볼 필요가 없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자가 남자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추정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아내들이 “내 남편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내가 부탁할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즉, 아내가 바라는 것을 남편이 해 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아내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지 않다. 표정이나 말투의 세미한 변화까지 읽어내는 여자처럼 민감하지 못한 남자의 뇌기능은 여자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저절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필요한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거나, 바라는 것이 있으면 아내는 남편에게 부탁이나 요청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남편에게는 논리적이고 당연한 처사이기 때문에,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한 번 이상 부탁하자
      

남자에게 한 번만 부탁하는 것은 전혀 부탁을 안 한 것과도 같다고 한다. 남자는 관계의 향상을 위해 내가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지 않는다. 사냥꾼이자 경쟁자, 공급자인 남자는 항상 ‘받는’  상태에 있으며 남자에게 삶이란 차지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내의 부탁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와 결부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아내의 부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베푸는 것을 통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여자에게는 너무 생소한 남자의 모습이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나 요구를 들어 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즉각 행동에 옮길 수 없으면,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난 후에라도 해야 할 일의 순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아내의 부탁이나 요청을 들으면, 좌우 뇌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남자는 자신이 얻는 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이런 남편의 아내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만다. 아내는 자신의 부탁이나 요청을 남편이 기억한다고 추정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등한시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남편의 모습이 자신이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지표라고까지 잘못된 추정을 한다.  그러나 실은 아내의 부탁이 남편의 한 귀로 들어가, 자신의 “nothing box”를 돌아서 다른 귀로 새어 나가 버린 상태이다.  남자는 아내의 요구를 들어 줌으로써 자신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기 전에는 아내의 요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얻는 것이 없으면, 남자의 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는 한 번 이상 부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고정 관념에도 아내는 한 번 이상 요청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남편이 나의 부탁을 안 들어준다고 화 내고 속상해 하기 전에 다시 부탁하고 요청해야 한다. 한 번 이상 요청하는 것은 잔소리가 아니다. 잔소리는 감정이 섞인 요구를 할 때 잔소리가 되지 정중한 요청을 되풀이한다고 잔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여자들이 남편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과 같이 생각 안 하고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아내의 요구는 비합리적이다. 남자의 생각과 행동이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평생 속상해 하면서 살 확률이 높다. 

또 남편에게 한 번 이상 부탁하지 않는 이유는 아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편에게 하도록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이 알아서 그리고 원하기 때문에 부탁이나 요청 없이도 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내의 생각은 남편에게는 비논리적이다. 아내가 부탁하는 것을 자신이 하기를 원했으면 진작에 남편은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데는 익숙해 있다. ‘받는 자’는 상대가 부탁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아내의 요청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기 때문에 남편이 원해서 하길 바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낫다. 남편이 원하든 안 원하든 해야 할 일은 한 번 이상 부탁 내지는 요청하자.

결론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는 남편이 나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부탁/요청을 하자
 

잘못된 방법은 아무리 나의 요청이 정당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남자는 절대로 협박이나 모욕에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칭찬과 상급에 반응하게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많은 아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화를 내며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해 남편을 조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모욕하면 할수록 남편은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여자의 격한 음성과 높은 음량은 남자의 뇌에 감정의 홍수를 일으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항상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화하는 법에 익숙해야 남편과의 의미 있는 신중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원하는 것을 한 번 이상 부탁하고 요청하되, 정화된 언어와 남편에 대한 존중 그리고 배려하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된다. 


긍정적인 강화법을 사용하여 남편을 훈련하자
 

사람은 상급(賞給)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상급의 힘을 과소 평가하면 안 된다. 설령 아내인 내가 상급에 관심이 없다 할지라도, 남자를 움직여 아내의 요청을 들어 주게 하는 동기 유발은 결국 상급이다. 남자는 여자가 생각하고 가치 있어 하는 것을 똑 같이 생각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남편에게 상을 줄 것인가? 

아내가 부탁한 것을 들어줄 때는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매일 비록 아주 작은 일이라도 고마움의 표현을 지나치고 만 극히 사소한 일도 고마워 하는 것이다. 작은 일을 고마워 하면 할수록 남자는 더 많은 것을 아내를 위해 하려고 한다. 

남자는 자신을 고마워 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설사 아내 생각에 당연한 일 일지라도 고마워하는 표현은 남자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게 만든다.

      “온종일 앉아만 있지 말고 좀 움직여.”
      “어쩌다 한 번 하고 생색 내지마!”
      ...등 아내의 모욕적인 언사는 남자가 아내의 부탁이나 요청을 행동에 옮길 기회를 스스로 앗아 가고 만다.
 

많은 경우 여자가 칭찬에 약한 이유는 여자는 주로 전혀 예상치 않은 친절이나 호의만을 고마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간에 사소하든지 예상했던지 간에 모든 것을 고마워 하면 남편은 더 많은 일을 아내를 위해 하려고 할 것이다. 

고마워 하고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설사 처음에는 불평스런 마음으로 아내의 요청에 응했다 할지라도 다음 번에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의 요청에 응하는 남편을 보게 될 것이다.


주고 받기에 익숙해지자 
 
사회 생활하는 남자는 주고 받는 것에 익숙하다. 

아내 역시 남자가 평소에 즐기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잘 알기에, 부탁과 더불어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배려로 주고 받는다. 

대신 장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한다.

주말에 식구들을 샤핑에 데려다 주고 장시간 기다려 주었다면, 오는 주말에는 운동이나 낚시 또는 카약을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혼자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떨어진 우유를 밤중에 사다 준 남편에게 환한 웃음으로 고마워하고 칭찬한다.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 잘 개켜 주었다면 남편의 배려와 부지런함을 칭찬하고 고마워한다.

주고 받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주고 받음은 서로를 돕고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이 즐거운 일상이 되게 한다. 

이렇게 잘 훈련된 남편은 모든 아내의 큰 기쁨이다. 남편이 아내인 나의 마음을 읽어 호의를 베풀고 나의 필요를 충족해 주길 무조건 말 없이 기다리는 대신, 가사  분담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당연시 하는 대신, 또는 스스로 알아서 움직여 주길 마냥 기다리는 대신... 

아내들이여, 당당히 그리고 지혜롭게 원하는 것을 요청하자.

가정에 책임감 있고, 아내 돕기를 마다 하지 않고, 아내의 요청에 민감한,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편은 이렇게 태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