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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아사왕의 개혁시대(1) (메시아계보대장정33)



바탕본문: 왕들A 25:9-15, 연대기B 14:1-5

해당 성경권명 약칭
왕들A(약칭 '왕A'): 열왕기(列王記) 상
왕들B(약칭 '왕B'): 열왕기하
연대기B(약칭 '연B'): 역대하


흘러간 역사 속엔 중요한 개혁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다수는 신교권 안에 살고 있지요. 그러나 16세기 교회권 개혁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지상에다 인위적으로 '하나님 왕국'을 이루려는 소위 '주권주의'(dominionism)와 명사사상주의라는 궁극적 어젠다가 틀렸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개혁은 개인과 개체 교회의 회개/금식통회와 성경 말씀 실천 차원으로 실천돼야 할 과제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유다 신정(神政, theocracy) 시대에도 하나님은 때에 따라 곳곳에서 개혁가들을 내셨습니다. 

    참고로, '신정'이라는 것은 신약시대에 속한 현대엔 있을 수 없습니다. 신정은 오직 거듭난 무리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이뤄질 뿐입니다. 현대에 신정이 있을 수 없음은 이 말세의 지말(至末)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카톨맄 교회의 신국화, 칼뱅의 제네바 통치, 아브라함 카이퍼의 네덜란드 '신정', 잔 루서스 러쉬두니의 주권주의와 현대의 각종 주권주의, 그와 결부된 신사도운동 등은 시대착오적입니다. 현대에 세속적/제도적인 '신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권주의-신사도운동권 사람들, 유엔과 손 잡은 목적운동권, '땅 밟기'식 중보운동권, (비성경적) 영적 전쟁론자들, 그리고 천주교회와 비밀집단 사람들이지요. 


개혁은 언제나 장기간의 부패 끝에 오는 것이 상례입니다. 
슐로모(=솔로몬)의 거창한 잡혼과 우상숭배 후 하나님의 중재로 나눠진 남/북 왕국의 분열 사건으로부터도 하나님은 따로따로 개혁을 기대하신 것이지만, 일부 소수 군주들을 제외하곤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로 오랜 만에 별빛처럼 신선한 개혁가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 남 왕국 유다의 제3대 왕 아사(Asa). 그 역시 메시아의 선조였지요(마태복음 1:8a).

아사 왕은, 불과 3년간 나라를 다스린 아버지 아비야(아비얌)와는 대조적으로 41년이라는 퍽 긴 통치기를 누립니다. 통일 왕국의 군주들-샤울/다빋/슐로모 등이 누리던 기간에 버금가는 길이입니다. 물론 이후에도 (유다의 메나쎄/우찌야 등) 장수통치기를 누리는 군주들이 더 있긴 합니다.
아사 왕 재임 기간은 초기 남북 왕국 역사상 퍽 중요한 의미성을 띤다고 봅니다.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은 무려 6대나 줄이어 교체됐기에 더 그러합니다(나답-바아샤-엘라-지므리-오므리-아합)!
사상 최악의 이스라엘 왕 아합, 야로브암2세(왕B 13:24-29) 등 악한 왕들의 통치기도 꽤 길었음을 염두에 놓고 보면 다스린 기간의 길고 짧음이 반드시 해당 군주의 영적 중요성을 의미하진 않으나 하나님이 적어도 왕위의 장기 지탱을 허용하셨다는 데서 원인과 의미성을 찾게 만듭니다.

아사 왕은 조부 레호보암, 선왕 아비야에 비하면 매우 선한 군주였고 특히 생애 전반부가 그렇습니다. 왕가 자체 내 상황으로 볼 때, 그는 과히 좋은 배경도 아니었고 따라서 좋은 영향을 받기가 어려웠지요. 아사의 할아버지 레호보암은 우리가 아다시피 생애가 영 엉망진창이었고, 아버지는 단기간(3년) 통치자였습니다. 아사의 증조모는 이교 숭상의 주된 근거지였던 암몬 족 출신의 나아마였고, 조모는 압샬롬의 후손인 우상숭배자 마아카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사가 이처럼 선한 개혁 마인드로 집정하게 된 원인은 뭘까요?

첫째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던 옛 다빋..그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신 것이지요(왕A 15:4). 주/야웨님은 슐로모의 우상숭배 죄 탓에 레호보암 때 왕국 분열을 허용하신 뒤, 남쪽에서 레호보암-아비야 두 대에 걸쳐 별 선한 열매가 맺히지 않자, 각별한 배려를 베푸셔서 좋은 임금을 내시고 통치기간도 크게 늘려 주십니다.
 
둘째로 짚이는 요인 한 가지는..전임자 아비야 때의 제마라임 전쟁(본 시리즈 32회 참조)의 교훈입니다. 북 이스라엘군 50만이 전사한 제마라임 전쟁은 비록 아비야 왕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이긴다"는 커다란 교훈을 유다 국민들과 왕세자 아사의 마음에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순전히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어 낸 제마라임 전승(戰勝)은 더 선한 임금 아사를 얻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장치였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제마라임 전승 이후 무대에서 이내 사라져 버린 아비야의 단명 통치에서도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싸탄 마귀의 책략과 훼방에도 불구, 다빋의 등불을 지탱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감한 중재가 아사 등극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북 왕국의 '딴전'

여기서 잠시..비록 메시아 계보와는 무관하지만, 북국 이스라엘에 눈길을 돌려 봅니다.

아사 왕의 즉위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북왕국 초대왕 야로브암(=여로보암)의 통치 말기였습니다. 즉 야로브암이 22년간 다스릴 동안 유다에서는 왕이 두 번 갈린 것입니다. 그러나 전술했듯, 이제 남쪽에서 아사가 통치하는 40여년 어간 북국은 그야말로 끔찍한 '하극상'이 되풀이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앞서 이미 이스라엘 왕조를 버리셨다는 예언을 대언자 아히야를 시켜 북 왕국에 던지신 바 있습니다(왕A 14:14-16). 즉 슐로모의 범죄로 인해 왕국을 둘로 쪼개시어 10 지족(=지파)이나 되는 좋은 땅들을 야로브암에게 넘겨 주셨건만, 야로브암은 하나님의 '메네 메네 테켈..'(다니엘 5:25-27 참조)의 실험대/저울대 위에서 철저히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열 왕국을 시도하신 하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 프리메이슨 등 비밀집단들은 하나님을 실패한 '악신'으로, 싸탄을 성공한 '선신'으로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매도하여 섬기지만, 그들 나름의 전제에 의한, 공상의 소산일 뿐입니다. ]

하나님은 그후에도 약 180년간 이스라엘을 지탱시켜 주시지만, 선한 왕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다만 악한 군주들을 견제하는 선한 대언자들을 통해 나라를 근근히 잇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은 대언자 아히야를 통한 예언 그대로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왕A 14:14)


이 예언은 정확하게 이뤄집니다! 즉 이스라엘 왕조는 선한 군주가 전혀 없이 바람 속 물 갈대밭처럼 요동하다 남 왕국보다 약 136년전 아씨리아 군대에게 패망해 국민들이 사로잡혀 흩어집니다. 그 결과 훗날 오므리 왕 때의 새 수도권인 쇼므론(=사마리아, 원 소유주였던 '쉐메르'에게서 딴 이름. 왕A 16:24)은 이방인들과의 잡혼으로 순수혈통을 잃어 버린 혼혈족이 되지요. 훗날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멸시 받는 사마리아인들의 선조이죠.   

하나님은 인간 야로브암에게 22년이라는 퍽 통치기를 주셨지만, 야로브암은 그 기회를 선용하긴커녕 하나님이 베푸신 이 관대한 호의/선의를 철저히 배신하고 짓밟았습니다(본 시리즈 제30,31회 참조). 우리가 앞서 살펴 본 대로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우려와 두려움 탓에 남 유다의 수도 예루샬렘에 소재한 성전으로 매년 예배하러 가는 북국 국민들을 막으려고 벹엘과 단에는 각각 금송아지 신상을, 쇼므론엔 아쉐라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을 세우고 그곳에서 섬길 사제들을 지원제로 모집해 세웠습니다.

그 결과, 야로브암의 집안은 씨가 말라 버립니다(왕A 14:13,14)! 후대를 잇지 못하고 아들 나답 왕까지 단 2대로 끝난 것입니다. 당초 야로브암 부부는 착한 아들 아비야(유다왕 아비야와 혼동 말 것)를 왕세자로 고려했지만, 이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 탓에 병 들어 죽습니다. 그나마 남왕 아사의 초기에 즉위한 차기왕 나답은 불과 2년만에 신하의 반역으로 시살되지요(왕A 15:25-28).   
 
그뿐 아니라, 야로브암은 대남전인 제마라임 전쟁에서 남군의 2배나 되는 수적 우세와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복병전에도 불구하고 대패해 나라의 기운이 여지 없이 사그라듭니다(시리즈 32회 참조). 하나님을 자신의 등 뒤에 버린 결과이지요(왕들 14:9).
  
이처럼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는데, 그 기회를 얼마나 선용하는가는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책임 전가할 건덕지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책임 소재를 분명히 아는 것도 삶의 지혜입니다.


아사의 나라 개혁

아사 왕은 즉위와 거의 동시에 드높이 개혁 기치를 내걸고 대폭적인 신앙/윤리적 '물갈이'를 단행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율법 말씀을 최우위에 놓은 매우 혁신적, 모범적인 정책이었지요. 이 개혁정신은 차기 왕 예호샤팥(=여호사밧)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훗날 요아쉬(=요아스), 히즈키야(=히스기야), 요시아(=요시야) 왕대에 각각 있었던 비슷한 개혁의 전형과 귀감이 됩니다.

우상숭배로 점철된 슐로모(후기)-레호보암-아비야로 이어 내려 온 사악했거나 변변치 못했던 선대의 통치윤리에 비해 볼 때, 같은 핏줄에서 이런 훌륭한 개혁적 군주가 나타났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슬기와 섭리, 은총이 깊고도 크십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아사의 개혁을 눈여겨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개혁은 사람의 됨됨이로부터

아사의 마음은 후기의 슐로모, 레호보암, 아비야 같지 않고 다빋 같았습니다(왕A 15:11). 가까운 못된 선조를 본 받지 않고 고조 할아버지 다빋의 마음을 본 받은 것입니다. 슐로모의 타락 이후 유다의 위기를 내다 보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아사 속에 다빋 같은 마음을 심으신 하나님의 사려 깊은 중재/개입/간섭의 결과가 큰 열매-대 성공-를 거둔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렇다고 하나님께 '실패'도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실패는 마귀에게 자주 속는 인간의 몫일 뿐입니다. ]

아사는 다빋처럼, 주/야웨님 보시기에 정직하여 선과 정의를 행했습니다(연B 14:2). 그는 말년의 일부 문제를 제외하곤 거의 평생 심지가 곧았습니다(왕A 15:14). 진리와 선, 의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병행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아사에게서 우리는 하나님과 늘 마음이 맞았던 왕 다빋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아사의 이런 개혁 열정은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시던 주님의 그 열정을 연상시킵니다. "주/야웨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이 나를 삼키리"라고 한 고대의 예언(구약 시편 69:9)이 예수 크리스토에게서 성취되는 바로 그 장면이 떠올려집니다(신약 요한복음 2:17).

오늘날 교회의 개혁, 개혁, 개혁을 외치는 교계 사람들이 많지만, 참 개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감화와 개혁자의 됨됨이로부터 옵니다. 제도나 겉 모습을 바꾼다고 해서 참 개혁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개혁의 뿌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과 모습에서 솟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혁을 외치기 앞서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개인이 아사 왕처럼 다빋의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이 정직과 선과 정의를 행해야 비로소 개혁 마인드가 갖춰지고 뭔가 일이 이뤄질 발판이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개혁을 진정 바란다면, 개혁에 앞서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썩은 현실 직시보다 앞서는 선결 과제일 것 같습니다.  
 

    2. 남색자 추방
 
'왕들'에 따르면, 아사 왕이 겨냥한 개혁 대상 1호는 놀랍게도 남색자들. 오늘날로 말하면 동성애자들이지요. 고대 모쉐 율법엔 남색자들이 처형 대상이었습니다.
아사는 남색자들을 죽이지 않고 나라에서 추방해 버립니다. 아사 왕이 남색자들에게 개혁의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오랫동안 나라 안에 없었던 이 관행이 할아버지 레호보암 왕 때 타국에서 침투한 아쉐라 등 우상숭배와 함께 시작된 때문입니다(왕A 14:24a). 

짐작할 수 있는 대로, 남색자들은 으레 이교와 우상숭배에 곁딸리기 쉬운 존재들이지요. 흔히 이교 신전의 여사제 겸 창녀들처럼, 남성 간 성행위를 일삼은 '미동'(美童/남창)과도 직결됩니다(개역한글성경 구약 신명기 23:17. 다른 번역은 '남창').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색자/남창들은 카나안 등 주변 민족들의 관행이 우상숭배와 함께 침투한 결과입니다(왕A 14:22-24). 현대엔 동성애가 직접적인 우상숭배에 결부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정당한 짝으로 정해 주신 이성이 아닌 동성을 상대로 음욕을 피우고 불태운다는 것 자체가 곧 우상숭배입니다.
 
동성애는 주/야웨님이 미쯔라임출국(출애굽) 사건 후 카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 내신 타국의 혐오스런/가증한 관행들의 대표적 본보기였습니다. 일찍이 신명기 23:17에 경고하신 대로입니다. 남색 행각은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서도 쉽게 발견되듯 이교적 관습이지, '기독교적 관습'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 교계 일각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소위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도 '삶의 한 방식'이라는 자작(自作) 구호 아래, 동성애 파트너 생활과 '교회생활'을 겸하는, 이율배반적 삶을 살아 갑니다. 동성애자들 플러스 양성애자/성전환자들(LGBT로 약칭)을 위한 단체는 물론 '교회'도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회의 하나인 맨해튼 리버사이드교회 같은 경우, '사랑'과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동성애자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들여 대상 '사역'을 하며 그들을 교회 안에 방치해 둡니다. [ 라커펠러 가문이 대대로 지원해온 이 교회는 미로명상(labyrinth)을 비롯한 관상영성, 뉴에이지 영성을 추구함. ]
그런데도 교회 지도자/목회자/교인들은 이제 소위 '정치공정'을 내세우는 동성애자들의 말발과 세력을 두려워 하여 이렇다 할 지적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동성애는 엄연히 죄악입니다. 소돔/고모라 시대부터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동성애는 죄악으로 규명됩니다(구약 창세기 19:4-11, 신약 로마서 1:24-27). 성경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죄이기도 하고 죄 아니기도 한 정의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가 성경의 잣대입니다. 동성애가 마치 죄가 아닌 듯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욕심에서 비롯된 자기착각과 자기환상에 젖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와 자신들의 육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자행하는 온갖 성경 왜곡은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들이신다고 해서 죄까지 받아 들이시는 건 아니지요. 죄는 버려야 할 대상이지, keep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동성애자의 잃어진 영혼들을 사랑할 뿐이지, 그들의 관행까지 사랑해 줘야 하는 건 참된 평등이 아닙니다. 그건 껍데기만의 '인류애'일 뿐 아가페, 즉 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리 안에서,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신약 코린토A=고전 13:6b). 참 사랑은 진리 말씀에 따라 죄를 지적해 주고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진리/비진리를 불문하고 그냥/마냥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계는 세속사회와 다름 없이, 소금과 빛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세속사회를 본받아 거룩과 속됨의 경계를 허물고 동성애를 교회 안으로 허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나날이 동성애가 정당화 되고 활개치는 교계와 사회가 돼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평생 동성애의 영을 지녔던 예수회 사제, 보편구원론자, 관상영성가-헨리 나웬 같은 사람을 거룩한 인류애의 표본으로 삼아 신교 설교자들까지 그의 책과 말을 선호하고 충실히 애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봅니다. 나웬을 존중하고 그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교계 명사들, 설교자들을 검증하십시오. 짐 베이커의 아들 목회자 제이 베이커는 동성애자들을 적극 옹호하고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친동성애파 목자의 한 명입니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시켜 바로잡아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의 현실 그대로 교회 안에 방치해 둔다면, 머지않아 타 교인들까지 물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동성애의 영'(spirit of homosexuality) 즉 동성애 악습을 타고 인간에게 침입하는 악령의 전이(transfer) 탓입니다. 

아울러, 다년간 성당 안에, 독신 '사제'들의 비밀스런 성추행/남색 행위를 방치해 두었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카톨맄의 한심한 작태를 경고와 교훈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과거의 피해자들은 바티칸을 상대로 제소하기 시작할 전망입니다.   

아무튼 아사왕의 이 개혁과 같은 정신의 개혁을 훗날 요시아 왕 당시에도 보게 됩니다. 즉 요시아는 당시 (놀랍게도) 성전 한 가운데 있던 미동/남창의 집을 헐어 버립니다(왕들B 23:7). 


    3. 우상 제거

아사는 또 국내의 모든 우상에다 철퇴를 가하는 과감한 과업에 발벗고 나섭니다.
이 과업은 읽기와 보기엔 쉬워 보여도 대단히 힘겹고 어려운 과제로 여겨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우상숭배는 슐로모 왕대로부터 3대에 걸쳐 나라 안팎에 깊이 뿌리박힌 종교관행이고 악습 중 악습입니다.

슐로모는 무려 1천명의 아내들을 거느리면서 이방여성들이 시집 올 때 가져 온, 시돈 족의 여신 아쉬타롵(바빌론의 '이쉬타르'), 모압의 케모쉬, 암몬의 밀콤과 몰렠(몰롴) 등 온갖 이교 우상들을 용인하고 함께 섬겨 줬고, 더 나아가 케모쉬/몰롴 우상의 산당까지 세워 주는 극단적인 죄악을 통해 나라 안팎에 널리 이교를 보급했습니다(왕A 11:4-8). 그러니 그 아들 레호보암과 손자 아비야 왕, 더 나아가 북쪽의 야로브암 왕도 자연히 본 받을 밖에요. 따라서 수 십 년간 이 악행은 사라지질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암몬 족 출신 어머니 나아마의 자식인 레호보암 왕 시대엔 그 모든 선조들을 능가할 만큼 더 많은 이교신들을 섬기되, 산 위와 모든 푸른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 특히 아쉐라 목상들을 짓고 세웠습니다(왕A 14:22-24). 게다가 비슷한 왕대의 북국 왕 야로브암도 금송아지와 아쉐라를 섬겼습니다(12:28-33).

하나님이 대표적 율법인 십계명의 첫 계명에서부터 그토록 엄금하신 이방의 사악한 관행들이었지요. 그런 해묵은 것을 백성들로부터 도로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 결코 홀가분하고 쉬운 작업이 아닐 터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그 일을 유감없이, 거침없이 해 냈습니다.

즉 이교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柱像)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도끼로 찍어 버리고 유다의 도시마다 있는 산당과 태양상을 모조리 없앱니다(왕A 15:12b, 연B 14:3,5).

    [ 여기서 '주상' 즉 기둥 모양의 우상은 아마도 현대에도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처럼 고대 미쯔라임에서 생성된 우상의 하나일 것입니다. 바티칸 산 페트로 대성당 광장을 비롯, 미국 워싱턴DC(워싱턴기념탑)과 세계 곳곳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우리가 인정하든 말든 분명히 고대 우상들의 하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기독교계와도 간접 연계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공할 일입니다. 흔히 주상은 남성을 상징합니다. ] 

여기서 우리는 '태양상'이란 말을 주시하게 됩니다. 고대로부터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섬기는 이교와 우상숭배가 있어 왔습니다(구약 예레미야 8:2 참조). 하나님도 일찍이 미쯔라임출국(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월성신 숭배를 경계하신 바 있습니다(구약 신명기 4:19). 그러나 이 악습은 훗날에도 이어집니다(왕들B 21:3)
한국에서도 해와 달과 별 등은 일종의 수호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늘에 드높이 떠 있어 밤낮으로 우러러 보게 되니 자연히 신격화 하게 된 모양입니다.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해신, 달신을 숭배하거나 점성술과 별자리점(astrology, zodiac) 등을 통해 그러합니다. 일찍이 의인 욥도 그런 유혹을 경계한 바 있지요(구약 욥 31:24-26).

특히 아침이면 변함 없이 떠서 온 누리를 비춰주고 온갖 식물을 자라게 하고 동물과 인간에게 강력한 빛과 열기를 제공하는 하늘의 해는 의인화 차원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신격화 하게 되는 존재이지요. 그러기에 고대로부터 태양은 주신의 하나로 모셔졌습니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태양신을 섬겨 왔습니다. 카나안 족들은 샤마쉬(태양신)를 주신의 하나로 섬겼습니다. 대표적 태양신이라면 아마도 중남미 마야 문명권의 아즈텤 태양신이나 일본의 하늘여신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일 것입니다. '일본'(日本)이라는 나라이름 자체에 반영돼 있는 데다 일장기의 '히노마루'로도 상징되지요. 신사참배 당시 동방요배의 대상이었지요. 일본 신화를 보면 소꿉장난 얘기처럼 유치한 발상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대 미쯔라임(에집트), 바빌론, 카나안에도 태양신상들이 존재했습니다. 레빝 서(레위기)에서도 '태양주상'(히브리어 '하만', 복수 '하마님')이 나오는데, 카나안 주신 '바알'을 상징하는 태양 모양 및 기둥과 관련돼 있습니다. [ 바알이 태양신이 아니었다는 일설도 있음 ] 최근 고고학적 발견에서 고대 카나안의 다양한 태양상들이 발굴되곤 합니다. 

고대 미쯔라임의 태양신 '라'(또는 레)는 대표적 주신의 하나로 그리스어 '헬리오폴리스'(=이누누)라는 미쯔라임(=에집트)의 고대 도시명은 '태양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흔히 외눈으로도 묘사되는 '라'는 훗날 아문라/아툼라/하랔티(=호루스) 등 다양한 태양신들로 발전합니다. [ 외눈은 프리메이슨리 등 여러 비밀집단들을 비롯한 다양한 신비학/심령술에서 중요한 상징임. ] 
오늘날도 태양은 카톨맄의 둥근 면병, 성체안치기(monstrance, ostensorium), 소위 '성화상' 머리 둘레의 '원광'(halo, nimbus)의 경우처럼, 다양한 문화권에서 은근히 신격화 되다시피 하며..[천주교에서는 예수 크리스토가 의의 태양으로 비유됐다는 것을 핑계로 삼지만, 태양상 상징물 제작의 근거가 못 됨. ]
동녘에 뜨는 광선에 둘러싸인 태양은 프리메이슨리의 주요 상징물들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여명의 아들, 루키페르(=루시퍼)도 흔히 태양으로 상징되곤 하지요. (횃불을 든) 디아나의 원명은 '디아나 루키페르'입니다.   

달도 고대로부터 남신/여신으로 지칭돼 왔고 아씨리아의 니네베나 카나안의 예리코 등의 이름도 월신 숭배와 연계됩니다. 미쯔라임/에집트의 '콘수', 수메르의 '난나'(수엔), 아카드/바빌론/아라비아의 '신', 페르시아의 '마'(=마옹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셀레네), 로마의 '디아나'(=루나, 디아나루키페라), 켈트 족의 '곤티아'(=군티아) 등이 모두 달신들입니다.
 
별신도 그러합니다. 후기 왕국시대 이스라엘도 아시리아의 토성신 '키윤'(=70인경의 '레판', 라이판/렘판) 등 별신들도 섬겼습니다(구약 아모스 5:26). 이스라엘 국기 한 복판의 육각별은 '다빋의 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성경이나 다빋왕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카발라 등 고대 마법과 연계돼 있지요. 오각별/육각별은 다양한 심령술/오컬트/메이슨리와도 연계됩니다. 

아무튼..아사의 우상/이교 타파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훗날 쿠쉬 나라 세라왕이 1백만 군사와 전마차 300대를 끌고 쳐들어 왔을 때 믿음과 기도로 궤멸시켜 대승을 거둔 뒤 대언자로부터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을 듣고나자 더욱 용기백배하여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온갖 가증한 물건들까지 제거합니다(연B 15:8). 여기서 '가증한 물건들'이란 테라핌을 비롯한 작은 가신상(家神像)들, 우상과 관련된 장신구와 장식품, 부적 등 미신거리들이 포함되지요.       

 
    4. 친족 징계

더 나아가 아사는 레호보암 왕 당시 아쉐라 목상을 제작/건립된 제작/건립했던 장본인인 조모 마아카(시리즈 제32회 관련 내용 참조)를 태후에서 폐위시켜 버리고 그 목상을 도끼로 찧고 빻아서 키드론 시냇가에서 불태워 버립니다.
태후 폐위 사건은 왕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왕들'엔 아사 업적의 대표적 사건으로 먼저 나타나 있어, 언뜻 즉위 초기에 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대기B 15:16을 보면, 대(對) 쿠쉬 전 이후 일어난 일처럼 기록돼 있어 상당 기간 후의 사건이 아닌가 싶군요. 즉 나라 안의 모든 우상들을 철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아쉐라 목상과 태후 직에까지 손을 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간 대단한 결심과 용기가 아니고선 단행키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사는 친할머니인 마아카와 그녀가 필시 직접 비용을 내고 제작/건립했고 아끼고 음란하게 섬겨 온 아쉐라 우상 처리 문제에 있어 퍽 망서렸거나 고심했을 법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저질러야" 할 일이면 해야 한다는 결단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것은 대 쿠쉬 전 후 대언자 오덷에게 임한 하나님의 예언과 교훈에 자극과 격려를 받은 뒤 필시 그랬을 법 합니다. 

개혁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아사 왕의 이같은 정의롭고 용감한 '거사'는 백성에겐 진정 쾌거로 보였을 것입니다. 나라 지도자로서, 야웨 경외자로서의 왕의 열성과 순수함, 자세가 얼마나 진지하다는 것을 느꼈을 터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주/야웨님과 왕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적극 개혁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날 거의 대통령이 갈릴 적마다 근친 비리 문제로 골치를 앓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사는 정말 시대를 초월하는 모범이라고 아니할 수 없군요.  

이런 태도를 우리는 예수님에게서도 느낍니다.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에서 오히려 참 진리를 더 강조하면서 대범한 자세를 취하셨던 장면들이 그러합니다(맑 3:31-35, 뤀 11:27,28, 요 2:4).

 

필자는 외래어 발음을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