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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떠오름(이머징)영성

이머징 영성의 대책 없는 절망


                  '코니 2012'의 한 장면. 앞 줄 오른쪽 끝이 제이슨 러슬. 


지난 (2012년) 3월 16일,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샌디에고의 퍼시핔 비취의 분주한 거리에서 해괴한 광경이 벌어졌다. 멀쩡하게 생긴 백인 남성이 달랑 아래속옷만 입은 채 길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뭐라고 소리치며 두 주먹으로 땅바닥을 쾅쾅 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행인들과 지나가던 차 속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웃으면서, 일부는 그가 어쩐지 낯익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는 급기야 남은 옷도 벗어젖히고 완라 바람으로 돌아다니며 손으로 자위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가 크게 뇌까린 말은 "마귀는 너희들이야!"였다. 


당황한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해 그를 연행/조사한 결과, 풍기문란으로 체포될 대상이기보다 몸과 정신 모두 문제가 있는 상태로 판단되어, 우선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탈수에다 영양실조, 중독성 물질 흡입, 부분적인 정신이상 등의 증상을 나타낸 것.  


남자의 신원은 이내 밝혀졌다-제이슨 러슬. 불과 몇 주 전 유튜브에 띄운 '코니 2012' 동영상으로 무려 1억에 가까운 8,000만 회 접속을 통해 거액의 기금을 거머쥔 단체,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Invisible Children 이하 'IC'로 표기)의 공동설립자였다. 그랬던 그가 왜 돌연 이 지경이 된 걸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유튜브 동영상에 대한 반박 동영상과 댓글 탓에 시달리다 이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코니 2012'는 한 마디로, 우간다의 수많은 어린이들을 잡아 전쟁에 출전시키거나 성폭행을 하거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등 상상조차 어려운 만행을 저지른 민병대인 '주의 반군'(The Lord's Resistance Army)의 대장, 조셒 코니를 올해 안에라도 한시 바삐 때려 잡고, 현지의 피해 어린이들을 돕자는 내용이다. 


동영상은 무용가이기도 한 러슬 자신이 안무를 하고, 다양한 지원자들이 출연하는 등 거액을 들여 매우 화려하고 뻑적지근하게 제작됐다(참고: 한글 해설). 돈을 왕창 들여서라도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 탕" 해 보자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짙다. 


의혹스럽게도 IC는 엄청난 규모였을 모금 내역도 알리지 않은 데다 "삼분의 일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럼, 나머지 돈은 뭐란 말인가? 동영상 제작자들이 다 나눠 먹겠다는 건지? 썩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더 놀라운 것은 IC가 처음부터 흡사 (기독교) 자선단체인 것처럼 행세해 놓고는, 추후 자기네가 자선단체가 "아니다"고 입장을 뒤집었다는 점. 

 

IC는 음란하기 짝이 없는 레이디 가가와 같은 수많은 사회/연예계 명사들, 심지어 맄 워런까지 '지원자'로 표적지명을 해 놓고 추후 이들의 발언을 받아내려던 중이었다. 일부는 받아냈다. 



그런데 이 유튜브 동영상이 나간 얼마 후, 정작 현지인 우간다에서 심한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마워 해야 할 거기에서 긍정적인 반응은커녕 현재까지 부정적인 반응만 나온 것. 특히 당시 어린이였던 피해자들은 그랬다. 심지어 우간다 정부의 아마마 음바바지 총리까지도 나서서 공식 동영상 성명을 통해 해당 비디오가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까닭은 문제의 사건들이 10년도 더 지난 과거사인 데다 코니가 현재 우간다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 따라서 '코니 2012'의 내용 대부분은 현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정확한 '어거지'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우간다 현지인들은 동영상이 옛 백인들의 식민지 정책을 다시 떠올려 준다며 현지 상황을 이용하여 일확천금 해 보겠다는 생각이 아니냐는 의혹을 내비쳤다. 한 쪽에서는 또 우간다가 아프리카의 최다 산유국임을 빗대어, 우간다의 광물자원을 노린 '음모'의 일환이라고 내짚기도 했다.   

러슬은 결국, 현지와 주변의 이런 격한 부정적 연쇄반응으로부터 충격을 받아 이 지경이 됐다고 추리해 볼 수 있다. 물론 러슬의 이런 상태와 모습은 IC의 미래에 커다란 물음표를 내던졌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러슬은 평소 '복음주의 신자'를 자임해 왔고, 이 동영상에서도 연거푸 '주님'을 파는 장면들이 나온다. 왜 신자라는 사람의 행실이 이렇게 되었을까..?  

한 가지 추정이 가능한 것은, 러슬이 떠오름( 이머징 ) 영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머징 영성의 절망적인 끝자락을 보여준 셈이다. 왜 기독교의 일부로 보이는 이머징 영성이 소망 아닌 '절망'이란 것인가? 독자가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미루어 알 수 있게 된다.  



   그 이름, 떠오름( 이머징 ) 영성


오늘날 한국교계에도 상당기간 전부터 침투해 있는 이머징 영성과 이머징 예배 등은 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글 구글에서 검색 바람). 이머징 영성은 기본적으로 관상영성, 향심/호흡기도, 렉치오 디비나 등 기존 영성을 모조리 흡입했을 뿐더러, 기존 대형교회 체제 등을 부정하고, 새로운 '유행 교회'의 형태로 소규모인 소위 '미셔날 처치', '가정 교회' 등을 특히 그들의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머징 영성의 훨씬 더 심각한 면모는 보편주의와 아울러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대속(代贖/Atonement)사역 내지 구속(Redemption) 사역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크리스토님의 대속 사역을 부정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한 마디로 기독교의 절반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 크리스토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대속은 주요 구약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 



미국 뉴욬시의 중심부인 맨해튼 섬의 서부인 헏슨 강변 쪽에는 리버사이드 교회가 있다. 종탑 모양이 독특한 신(新) 고틱식 건물로, 미국에서는 최고, 세계 24번째 높이의 종탑 안에는 세계 최대/최다 규모의 크고 작은 조율된 종들의 집합인 카리용(carillon, 편종)이 들어있어 유명하다. [ 존 D. 라커펠러가 세운 시카고 대학교의 라커펠러 기념채플에 있는 카리용(72개 종)과 함께, 로라 스펠먼 라커펠러 여사가 기증한 것이다. '라커펠러 어머니의 십계명'이라고 해서 신교계에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장본인이다. ]


리버사이드교회는 헏슨 강변에 거나하게 우뚝선 이 편종탑처럼 예나 이제나 미국 진보주의의 온상이며, 현대주의 최전방에 첨병인 양 서 있다. 이 교회 건립에 큰 힘을 보탠 사람들이 바로 라커펠러 가문이다. 라커펠러센터가 자리잡은 맨해튼 49가 일대는 라커펠러 가의 총본부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빌리 그래엄 십자군대회도 바로 이 센터에 임시본부를 두었다. 라커펠러는 맄 워런 목사와도 상당한 연계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교단적으로는 미국침례회와 연합 크리스토교회-양쪽에 다 속해 있어 한 마디로 '초교파적'인 이 교회는 또한,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을 본 따 만든 본당 내부의 앞 '제단'에 비교적 정교하게 새긴 수많은 조각상들이 널려 있어, 구교 성당인지 신교 교회당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수많은 교계/정치/문화/음악 행사 등이 여기서 개최되곤 한다. 이 교회당 바닥에는 샤르트르 성당 등을 본떠서 만든 미로(labyrinth)가 있다. [ 헉~! 교회 안에 웬 이교적인 미로람? 교회 맞는가? ] 이 교회는 또 진보파답게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여 회개/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생활하게 놓아둔다.  


독자는 이 교회에 대해 아직도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않는다면, 독자의 영은 퍽 둔감한 편이다. 

이 교회는 지난 1957년 당시, 자신의 뉴욬 십자군('전도')대회를 연 빌리 그래엄이 결신자의 절반을 보낸 교회이기도 했다. 그래엄은 결신자들의 일부는 노먼 빈슨 필('긍정적 사고방식'의 저자. 프리메이슨 스카티쉬 라잍 33단!,메이슨 신전 채플린)이 담임목회자로 있던 맨해튼 남쪽의 칼리지에잍 마블즈 교회로 보내고, 나머지는 이 교회로 보냈었다. 결신자들을 이런 교회로 보내다니, 그래엄의 본질을 극명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엄 전도협회(BGEA)는 또 전술한 대로 2005년 뉴욬 집회 당시, 라커펠러센터에 임시 본부를 두기도 했다. 그래엄은 앞서 청소년 메이슨 단체인 '디몰레이'단을 적극 장려하기도 했었다. 그래엄이 아끼는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디몰레이 단원 출신이다.  



  '도살장 신학'?


[ 이하에서 필자는 라저 오클랜드의 관련 비평을 상당량 참고했다. ]


라커펠러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이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바로 해리 에머슨 포즈딬(Harry Emerson Fosdick , 1878-1969)이었다. 포즈딬은 20세기에 처음으로 크리스토님의 대속을 정면 부정한 사람이다. 그의 '설교'란 것을 통해 크리스토님의 대속은 '도살장 신학 이론'(Slaughterhouse theology theory)이라고 불렀다. 포즈딬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분의 아드님이 우리 대신 대속물로서 죽어 우리의 죄를 속죄했다는 대속 교리를 "전(前) 문명적 야만"이라고 유식(流識?) 또는 무식한 말로 정리했다.  


포즈딬은 자신의 책, '성경의 현대적 용도'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신 것은 "섬김과 희생의 삶의 본보기"로 봐야지, "옛 짐승 제사"와 비교해선 안된다며, 대속이란 것은 "하나님이 마귀를 놀리시려고 한 '경건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포즈딬의 또 다른 책, '브라운 씨에게'에서도 "너무도 숱한 대속교리들이, 크리스토의 단 한 번의 자기희생의 대사제(대제사상)적 행위가 세상을 구원했다고 추정하고들 있다"라고 전제, "그게 아니다! 대속의 이런 율법주의적 이론은, 나의 판단으로 보건대, 하나의 신학적인 치욕거리다."라고 썼다. 


독자는 보았는가? 리버사이드교회의 개척자이고 그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존경받아온 '목회자'인 포즈딬은 대속교리를 "신학적인 치욕거리"라고 불렀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의 아드님을 보내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는 개념을 "난폭한 피투성이 종교를 위한 기초"라며 거부했다. 


포즈딬은 또 1922년 그의 설교 '근본주의자들이 이길 것인가?'란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근본주의자들이 교회주변에 말뚝 박고 사선을 쳐놓고, 그 안에서 운전하면서 합의한 조건 밖에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어떤 특정 이적들, 특히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 등의 역사성을 믿어야 하고, 물론 현재 우리 수중에 없는 성경원본의 다량이 마치 속기사가 필사하듯 정확무오하게 필사됐다는 특별한 영감론을 믿어야 한다고, 대속적 죽음으로 흘려진 우리 주님의 피가 소원했던 어느 신을 달래어 돌아오는 죄인을 환영하게 될 수 있다는 특별한 대속론을 믿어야 한다고, 우리 주님이 하늘 구름을 타시고 천년왕국을 건설하시러 재림하심을 믿어야 한다고, 그것을 하나님이 역사를 가치있는 대단원으로 이끄시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죠. 그런 것들이 교회 주변에 쳐진 교리의 사선을 표시하는 말뚝의 일부랍니다."

 

포즈딬은 여기서 성경적, 근본적 대속교리를 광신적이라고 광적으로 몰아대고 있다. 



   포즈딬의 후예들


포즈딬의 이 비성경적인 반 대속 사상을 이어받은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이머징-떠오름 영성이다. 2006년 10월, 리버사이드교회에서 설립자 포즈딬을 추모하여 열린 제5차 포즈딬 기념대회에는 다른 명사들과 아울러, '이머징 교회'의 대표인사 두 명이 초청받아 연설을 했다. 브라이언 매클러런과 토니 캠폴로였다.  


이머징 영성의 선구자 격인 매클러런은 다양한 문제발언으로 미 교계 변증/검증권에서는 악명 높은 한 명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한국 기독교 서적가에서는 아무 검증 없이 무차별로 버젓이 그의 책이 소개/판매되고 있다. 게다가 강력추천(헉~!)까지 하고 있다. 대표적인 무검증적 호평 사례를 보면: orthodoxy.tistory.com/418

 

나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과연 대속의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이 참 크리스천일 수 있느냐고.. 매클러런의 책을 선호하는 사람은 결국 자연히 대속부인자가 될 것이 뻔하다. 


각설하고..구체적으로 떠오름 영성가 매클러런의 말을 빌려 보자: 


   "거대한 문제의 하나는 지옥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십자가의 의미는...하나님의 왕국은 세상 왕국들처럼 사람들을 폭력으로 괴롭히고 강압하는 형태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왕국은 희생과 기꺼이 자원하는 희생을 통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옥교리는 기본적으로-아뇨, 이건 참이 아닙니다-종말에 하나님의 왕국이 다른 모든 왕국처럼 그분의 방식대로 강압과 폭력과 협박, 지배로 온다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중심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거의 광기(distraction)요, 하나님에 대한 거짓 홍보입니다." 

  

매클러런이 '지옥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라고 에두른 표현은 사실 '지옥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라고 봐야 맞다. 위에서 보듯,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을 위한 희생을 통하여 온다면서도 십자가의 희생은 거부한다. 즉 크리스토님의 죽음이 아닌 다른 어떤 인본주의적/인간애적 희생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의 크리스토님의 희생을 하나님의 폭력행위, 강압, 협박으로 보고 있다. 즉 포즈딬의 '도살장신학'과 흐름을 같이 한다. 

그는 지옥교리를 '하나님에 대한 거짓 홍보'라고 부르면서, 성경적인 십자가 대속교리와 아울러 지옥교리를 정면 부정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일부 한국 교계 서점들이 무차별 홍보하고 교계 일각에서 흡입해온 이머징 영성의 선구자, 매클러런의 참 모습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새벽기도와 십자가적 순교의 전통을 소중히 간직해온 한국 교회의 처녀성은 21세기에 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외래 영성에 무차별 유린 당하고 있다. 그리고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기독교' 서점가와, 검증무풍지대의 뒤안길에서 '꼬붕' 노릇하는 '쫄따구' 영성가들이 그 바람잡이/'뚜쟁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로 참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무리는 크리스토님과 함께 모으는 자들이 아니라 헤집고 헤치는 자들이다. 십자가의 증언자들이 아닌 십자가의 적대자들이다. 


매클러런은 위 발언을 그와는 인척간인 진행자와의 인터뷰에서 했는데, 그 인터뷰 도중에 교계 명사인 누군가(매클러런은 그의 이름을 지켜준다며 익명으로 했다)의 이런 말도 소개했다: 


   "하나님은 스스로도 하실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용서도 못하신다. 하나님은 용서할 대상 대신 누군가를 징벌하지 않고는 용서하실 수 없다...대속의 통상적인 이해는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다. 남을 걷어차버리시지 않고는 말이다."   


이것이 매클러런이 지지하고 존중한다는 한 명사의 말이다. 


또 다른 떠오름 영성의 앞잡이가 성공회 사제인 앨런 조운즈(=존스)이다. 조운즈는 그의 책 '기독교 재상상하기'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죄의 대가로서 예수의 희생/수난을 결코 의도하시지 않았다"고 시뻘건 거짓 주장을 펴고 있다. 

독자여! 그렇다면..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조운즈 자신의 죄의 대가는 예수님의 수난으로도 어쩔 수 없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말의 그날, 자기 죄의 대가가 전혀 치러지지 않은 상태의 조운즈의 끔찍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성공회 사제'라는 조운즈는 계속 이렇게 지줄댄다:  


   "예수의 죽음을 보편적인 구원 행위로 보는 교회의 고정인식은 종식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의 신앙에서 십자가의 자리는 재상상돼야 한다. 왜냐고? 수난 컬트와 그 배후의 보복적인 하느님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례전이라는 것을 매일 집전하는 사제라는 조운즈가 대속교리를 '수난 컬트'라고 부른 어처구니 없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빵/면병이 목구멍을 넘어가자마자 피어린 살덩이가 되고, 포도주가 목구멍을 넘어가자마자 피가 된다는 카톨맄/성공회/정교회의 '성체성사'란 것이야 말로 피투성이 '수난 컬트'가 아닐까? 흡혈귀/포르노 영화 출연 배우들을 골고루 동원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아무튼 조운즈의 말을 계속 읽어 보자:


   "또 한 쪽의 정당한 비평은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희생은 진노하는 하느님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관해서다. 형벌 대체물[십자가]이라는 것이 이 야비한 교리의 이름이다."

  

성경의 구속교리를 "야비한 교리"라고 부르며 그것을 '정당한 비평'이라니, 과연 이런 사람들이 크리스천 맞는지, 그저 할 말이 없다. 

조운즈의 이 야비한 책을 추천한 한 사람이 바로 매클러런인데, 매클러런은 이렇게 썼다: 


   "조운즈는 정통적인 영성에서 떠오른(이머징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재상상의 선구자이다. 그의 노작은 나를 고무시키고 격려해 준다."    

 

떠오름, 재상상이라.. 과연 그렇게 해서 참되고 바른 진리가 떠오르고 재상상될지 잘들(?) 해 보길 바란다. 


하나님의 심판/형벌이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 지워졌다는 성경 진리를 대놓고 거부하는 정황은 비단 포즈딬, 매클러런에 국한되지 않는다. 

20세기 관상영성(contemplative spirituality)의 선구자이자 종교다원주의자/혼합주의자였던 토머스 멀튼의 전기를 쓴 윌리엄 쇄넌은 1991년에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개념이다. 그는 사람들의 죄악이 깊음을 보고 그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고, 그들을 진멸함으로써 해결한다는 신이다. 그는 자기 백성이 그에게 불평한다고 뱀들을 보내어 물게 한 광야의 신이다. 그는 실로 백성가운데 (괴질이 들) 대상들을 골라 죽인, 다윗의 하느님이다...그는 아들의 피를 최후의 한 방울까지 추출해냄으로써 죄로 기인된 자신의 정의로운 분노를 달래려고 하는 신이다. 은혜로움과 혹독한 분노 사이에서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아직도 수많은 신자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런 하느님은 참 신의 한 캐리커처(희화)이다. 이런 하느님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는 예수 크리스토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 신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이 '압바 아버지'(Abba)라고 부르신 그 신이 아니다." 


이런 말이 그들의 진심이고 사실이라면, 머클러런, 조운즈, 쇄넌..이들은 실로 기독교계의 '지도자'라는 자리를 타고 앉아, 크리스토의 십자가를 현저히 욕보이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신교에서도 꽤 존중하는 관상가(contemplative)인 카톨맄 사제, 브래넌 매닝은 자기 책 '모든 것 위에(2003년)'에서 쇄넌의 말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바 있다.  


   "은혜로움과 사나운 분노 사이에 왔다갔다 하는 신, 죄 때문에 불거진 그의 정의로운 분노를 달래려고 자기 아들에게서 마지막 핏방울을 뽑아내는 신은 예수 크리스토에 의해 그 안에 계시된 하느님이 아니다. 예수의 하느님이 아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 마디로 신약성경의 알맹이인 핵심 교리를 다 빼고 껍데기만 믿겠다는 태도가 바로 이머징 영성의 실체이다. 


대속교리에 대한 이머징 영성가들의 이런 발언들은 일찍이 예수의 피는 돼지 피나 별 다름 없다고 기발한 선언을 했다가 퇴출 당한 감리교 '신학자', 홍정수를 연상시킨다. 


이런 태도는 바로 뉴에이저들의 생각이며, 또한 비밀집단 사람들의 견해와도 같다. 뉴에이저들과 비밀집단 사람들이 끔찍히 싫어하는 것이 예수 크리스토님의 대속 교리요, 어린양의 보혈이다. 물론 이런 성향은 바로 그들의 아비인 마귀 싸탄의 성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은 "피 흘림 없이는 용서도 없다"고 선언한다(히브리서 9'22). 또 "그분은 자신의 희생으로써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나셨다"고 했다(히 9'26). 

 


우리는 여기서, 향후 이머징 영성을 받아들여 그대로 믿는 젊은 한국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구루/스승들처럼 대속을 믿지 않게 되어, 구원의 여망조차 없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머징 영성-그것은 한국 교계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대속 교리는 하나님의 정의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라는 것을 이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1서 4'9,10)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교인이나 교회에게는 구속과 구원의 여망 대신 캄캄한 절망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