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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자위행위 문제 어떡하나요? (Q/A)



물음: 


건강한 남성 신자입니다.


아직 '혼자 위로하는 행위'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속칭 '귀접'이라고 불리는 증상(?)도 가끔 겪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사역의 일부를 맡고 있어, 자주 마음이 괴롭습니다. 


결론은 육체의 정욕을 그만 좇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육체의 정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거스른다고 나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살 수 있는지, 도움을 주십시오.




답:


님의 고민을 이해하며, 성령님께서 몸소 쓰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밝은 해결의 길을 열어 주시길 빌며 축복합니다.  


크리스천 형제들에게 가장 흔한 '속사연'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세상 남녀 대다수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일 터입니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a dirty little secret'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민거리의 하나이기도 하죠.   

이왕 내친 김에 이 문제를 보다 폭넓게 다루고 싶네요. 



곤혹스럽게도(?), 성경은 이 문제를 따로 직접 취급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골고루 다룬 성경이 왜 이 문제에 관하여 딱히 이렇다 할 언급을 하고 있지를 않을까요? 

아마도 성도의 양심에 맡긴 문제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우리에게 충고와 도움, 격려가 되는 힌트를 많이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기를 자극하여 쾌감을 얻는, 자위 (자위행위) 또는 수음 (영어: 매스터베이션 / maturbation )으로 불리는 이 행실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 때부터 율법적이고 무조건 단죄적인 관행이 있어왔기 때문이죠. 자신의 민감부위를 아예 못 만지게, 정조대 비슷한 도구를 성기에다 채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위를 갓 시작한 어린이/청소년 등 자녀들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대하면서, 심한 책망과 비난/비소 등으로 모욕감이나 깊은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체벌을 가하면서까지 죄의식을 심어주는 신자 부모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녀의 건전하고 건강한 신체적/정신적 성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접근은 사랑의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더욱이 부모 자신들이 몰래 자위를 할 경우, 자녀에게 중요한 위선도 됩니다. 더구나 부부가 침실에서 하는 애무 가운데 비슷한 유형도 있어,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문제입니다.  



자위 문제에 대한 상투적인 접근 한 가지는 그것이 죄냐, 아니냐는 시비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상투적이고 율법적인 접근/의식을 삼갈 필요가 있습니다. 전술한 대로, 일부 극단적인 주장과 달리, 성경은 자위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행위 자체를 엄격히 금하거나 직접 단죄한 흔적이 없습니다. 자위를 뜻하는 한 영어낱말인 'onanism'의 어원이 되는 오난의 스토리(구약 창세기 38'8,9)도 자위를 단죄한 직접 근거라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오난이 사특한 꾀를 써서 일종의 피임책으로 체외사정을 한 것일 뿐, 단순히 자기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자위가 문제 될 수 있음을 성경이 충분히 시사해 준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로마서 14'23)라는 말씀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위행위는 혼자서 스스로 쾌감과 기쁨을 얻으려는 행위가 분명하기에 하나님과 무관하며, 더구나 사랑하는 배우자와도 거의 무관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죄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크리스천을 포함한 많은 학자/식자들이 자위는 성징과 성 발달의 한 단계라고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물은 물론, 사실 태아조차도 일종의 자위를 하고 있다는 학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태아가 자위를 한다 해서 모태에서부터 죄의 사람이니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부정적으로 개탄만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위 동작 자체는 미래 부부생활을 위한 한 예비적 단계라는 관점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침실에서 서로를 애무할 때, 손으로 서로의 민감부위('성감대')를 터취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애무의 정도가 깊어지거나 (조루나 삽입불능 등 신체 조건 탓에) 딱히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표면상 배우자의 (자위 비슷한 형태의) 매스터베이션 동작으로 극치감까지 얻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동작까지 죄악시한다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희박합니다. 

물론 '유사자위'가 주된 수단이어선 건강치 못하며, 삽입 등 정상적인 성행위로 극치감을 얻는 것이 늘 바람직합니다만. 그러므로 합법적인 부부간의 애무의 일부로서 동작 자체를 단죄하기란 어렵습니다. 


문제는 자위가 명칭 자체처럼 자애적(自愛的)이라는 점이지요. 그래서 자위가 반복되면, 자기 몸을 바라보며 만족하고 섬기는 자기 몸 숭배 또는 자애증세(신체적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지게 됩니다. 자애증도 중독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부 침실에서도 알게 모르게 스스로 쾌감을 얻을 목적으로 혼자서 자기 몸에 동작을 가하거나 아예 침소를 따로 달리할 때가 있지요. 이 때 배우자는 일종의 괴리감을 맛보게 되며, 경우에 따라 배신감까지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습관화 될 경우 자연히 악습이 되고, 이 괴리감은 의혹과 불신이 곁들여져 심한 경우 별거나 이혼으로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크리스천이 이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기혼자의 습관화된 자위는 부부의 침실생활로 해소돼야 마땅한 성욕을 혼자서 따로 해결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부부가 서로 사랑을 나눌 때 몸의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즉 잦은 자위가 부부 관계 때 조루/지루나 발기부전 등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린이의 자위 행위는 부모가 긍정적으로 접근하면서도 행위 자체나 쾌감에 치중하지 않게 건강한 다른 습관으로 비껴가게 이끌어주면 바람직합니다. 

예컨대.. "그렇게 만지니까 기분은 좋지? 네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하나의 숨은 표시란다. 아빠도 어릴 때 그랬어. 네 몸과 그 기분은 하나님이 내신 좋은 선물이야. 하지만 남 앞에서는 부끄러운 일이겠지? 그러니까 거기 너무 지나치게 신경 쓰고 마음을 쏟으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단다. 또, 다른 좋은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 계속 그러면 이 담에 크면 자기도 모르게 정말 나쁜 습관이 될 수도 있어." 라고 타이를 수도 있겠습니다. 


사춘기의 자위는 성징과 성욕 등이 가장 활발한 "끓어 넘치는" 시기에 하나의 손쉬운 성욕 배출/해소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또 미래 결혼 때의 조루를 예방하는(?) 하나의 '조절'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설도 있지만, 거기 치심하거나 잦은 습관이 되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짜릿한 쾌감을 주로 추구하니까 평소 사회생활 속에 필요한 인내력이나 지구력, 시간관념 등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또 워낙 수치스러워 몰래 혼자 하다보니, 대외생활 초기에 소심해지는 등 자의식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위는 또 제2차 성징이 고도로 발달하는 사춘기에 시작되는 성적인 동경심 내지 성적인 상상(sexual fantasies)과 결부됩니다. 조숙한 경우 어린이 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위를 하면서 성적인 상상을 하지 않기란 드물고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쉽게 다음 단계인 포르노 감상으로 치닫기 십상이죠. 

물론 성적 상상은 성경이 말하는 음란죄에 해당합니다. 주님께서는 설령 몸이 아니더라도 눈과 마음으로 하는 간음을 단죄하셨습니다. 

성적 상상이 잦아지면, 다양한 습관과 신체우상숭배 등 다른 죄로 이끌립니다. 정신 빠진 듯 멍하니 공상이나 망상에 몰입하는 때도 있고, 속으로 이성이나 동성의 나신을 그리기가 쉽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성적 상상이 악습이 될 때 악령이 쉽게 침투한다는 것입니다. 알코올/마약/흡연/포르노/커피(중독).. 등 모든 악습 및 중독은 악령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악령들은 인간에게 장난을 치면서 악습에 묶어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속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습화된 중독성 자위를 벗어나려면 더러운 악령을 축출하는 피땀어린 노력과 적지않은 기도와 도움기도, 금식 등이 필요합니다. 이때 성적 상상, 포르노 중독 등 다른 증상들도 함께 내쫓아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번거로운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미리 자위행위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위는 더 나아가 청소년 시절부터 이미 포르노그래피(음화)에 탐닉할 문을 열어 주기가 쉽습니다. 온갖 선정적인 그림/사진 등 음화와 소위 '야동' 등 포르노는 단순히 자신의 시각과 몸으로만 자극하기보다 뭔가 외부적 요소의 도움을 받아 쾌감을 급자극하려는 수단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성기를 터취함으로써 쾌감을 얻기 시작한 어린이/청소년이 포르노 등에서 자신과 비슷한 동작을 발견하면 모종의 공감을 느끼게 되어, 쉽사리 어른들의 음란 세계에 동화되고 희생되기가 쉽습니다. 

대아동 성애(pedophilia)나 어린이/청소년기에 이미 발달하는 관음증(觀淫症, voyeurism, 참고: 관음자: peeping Tom), 카톨맄계에 흔한 사제/아동 간 성애/성추행, 아동 포르노 제작 유포 등의 범죄가 이와 유관합니다. 

전술한 관음증이나 노출증 등 다양한 성적 변태행위가 자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자위는 또 자/타의 신체우상숭배와 직결됩니다. '남근숭배' 사상이나 여체숭배의식의 경우처럼 쉽사리 자기 몸을 우상화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 말씀대로,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곧 우상이며, 몸을 영보다 사랑하면 우상이 됩니다.  


자위는 어린/젊은 시절 (이성애보다는) 동성애에 쉽게 빠지는 한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자위가 지나치게 되면, 자신과 똑같은 행위를 통해 같은 쾌감을 얻고 똑같은 몸 구조를 지닌 다른 동성을 발견하고 동경하거나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주님의 인간창조 및 그분이 에덴에서 제정하신 신성한 남녀부부의 결혼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왜곡된 '사랑'의 불행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소위 '동성혼'은 처음부터 출산이 불가능하므로, 서구교계의 누구, 어느 '지도자'가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결코 창조주님이 제정하신 거룩하고 신성한 결혼일 수 없습니다.   


자위를 하여 극치감을 얻고 나면, 성적 자기만족이나 성욕을 해소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진 몰라도, 동시에 거의 예외 없이 공허감에 빠지곤 한답니다. 이 공허감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때때로 이 공허감은 속은 듯한 기분과도 통합니다. 자위를 계속 끝없이 반복하게 하여 중독으로 이끄는 악령들의 장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거듭난 사람들에게 자위행위 문제는 영적 생활에 하나의 큰 도전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달리는 성욕을 해소할 길이 없는 독신자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젊거나 건강한 교인들의 경우, 사도 파울(바울)도 여러 모로 지적한 바 있는 육과 영 사이의 싸움이라는 영적인 우려까지 겹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속에 모시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기 시작한 거듭난 사람이 자위를 하게 되는 경우, 일반 교인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고심하게 됩니다. 


거듭나서 하나님/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영을 모시게 되면, 우리가 사실상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게 됩니다(로마서 8'9). 영은 몸보다 더 실제적이고 존재가 확실하지만, 워낙 육의 감각에 익어있다 보니 잘 실감이 안 가지요. 

거듭났는데도 나의 속사람이 바라는 그것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들을 행하기가 더 쉽습니다. 내가 바라는 바 선 대신, 바라지 않는 악을 행한다는 것이죠(롬 7'15,19).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사실은 그것을 행하는 존재는 거듭난 이후 참 자아인 나의 속사람이 아니라 내 속에 머무는 죄라는 것입니다(7'17). 


그런데 몸조차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의 영으로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닙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스토님 안에 있는 사람에겐 이젠 결코 단죄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죄와 죽음의 법칙에서 해방됐기 때문이죠!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육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영의 생각에 머물어야 합니다. 



자위는 이처럼 영적인 생활에 상당한 장애를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도 파울이 로마서 7장에서 "아, 누가 이 죽음의 몸뚱이에서 나를 건져내랴!"했던 장탄식과 영과 육의 처절한 싸움의 고백은 신자들도 받을 수 있는 자위행위의 유혹을 포함했을 수도 있을 터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감사할 일은, 예수님께서도 인간으로서 모든 유혹을 받으시면서 우리와 같은 성적 유혹을 받으셨지만, 이겨내셨다는 진리입니다(참고: 히브리서 4'15). 할렐루야! 주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성적 유혹을 전혀 받으실 일도, 받으신 적도 없다면, 그 분은 우리의 구주님 되실 자격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시험과 유혹을 고스란히 다 받고 이기셔야 참 구주님과 중보자(mediator/intercessor)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 분을 힘입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위행위를 비롯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유혹을 이겨 승리할 믿음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귀접' 증상에 관하여


시쳇말로 '귀접'(鬼接, incubus, succubus)이라고 불리는 증상은 꿈 속에서 어떤 존재와 성교섭을 하는 현상으로 이 증상을 즐겨서 습관화할 경우, 상대는 악령이기가 쉽습니다. 성적인 몽상이나 자위, 포르노 등에 몰입할 때 잠재의식으로 악령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젊을 때의 몽정이나 악몽, 가위눌림과도 연루될 때가 있습니다. 


이 현상은 젊을 적 발생 초기에 혐오/거부하여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좋습니다. 이 현상을 즐기고 기대하면 더욱 악령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귀접에 대한 대답은 예수의 이름 및 보혈을 통한 축출과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자위행위 근절의 실제적 도움


자위행위 끊기는, "때가 되면 하나님이 끊어 주시겠지"라는 식의 '절대주권주의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모든 중독 증상처럼 스스로 끊으려는 강력한 의지와 열망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1. 거듭남과 구원의 확신


모든 문제 해결에 앞서 나의 거듭남 여부는 중요합니다. 나의 믿음을 확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고백하는 과정을 통하여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을 영접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2. 성령님의 도움 구하기


성령님은 모든 문제를 극복할 권능을 주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영이신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나의 상담자, 변호자, 중재자, 위로자이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그 분의 권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간구하십시오.



  3. 예수 이름으로 관련된 악령들 내쫓기


악습화된 경우, 연계된 악령이 으레 있을 터입니다. 이런 경우 우선 '자위'를 의인화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면서, 동시에 '중독의 영'(spirit of addiction), 속박의 영(spirit of bondage), 제어령(controlling spirit), '몸 숭배', '성기숭배', '자애', '자기우상숭배', '포르노' 등을 의인화하여 물리칠 필요가 있습니다.  


예: '자위'(위의 기타 명칭). 내가 네게 명한다. 나는 이제 너와 상관이 없다. 전능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거라(물러가!). 



  4. 속에 말씀 머물리기


구약시대에 묵상은 성경 말씀을 읊조리는(to chant)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고 시인/고백하고, 선언/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영/혼/육의 협력작업이 필요합니다. 

마치 영어 단어를 암기할 때처럼, 말씀도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는 듣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믿는 다섯 (또는 여섯) 가지를 동시 실천하는 작업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영에 담기게 됩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들이 도움됩니다: (추후 성구 추가 예정)


시편 16'11 (자위의 쾌감과 기쁨 대신 승화된 기쁨과 즐거움 추구)

요한A서 2'16 (합법적인 부부 사이의 쾌락을 제외한) 

잠언 21:17 (쾌락 사랑의 결과에 대한 경고)



  5. 영적 무기 활용


자위행위를 이기려면, 다른 영적 싸움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무기들(에페소서 6'10~18)의 사용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7대 완전무장(전신갑주/온몸갑옷)을 갖추고, 수시로 활용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판(호심경), 평화의 복음으로 예비된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 모든 기도(영언 포함)와 간구 등입니다. 

그밖에도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 찬송 등이 중요한 무기입니다. (본 블로그의 영적 싸움 도우미 시리즈 참조) 



  6. 금식


금식이 도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악령축출 기도 때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금식하더라도 계속 이기려는 강한 의지가 없이는 금방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금식의 효과는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지, 그것 자체가 습관을 고쳐 주는 전능한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금식은 딱히 직접적인 단식/단수를 의미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나 육식 등을 일부러 삼가고, 과일 주스 등을 조금씩 먹는 절제식도 포함됩니다.  



  7. 도움 얻기


혼자 힘만으로는 이기기가 벅차다고 느껴질 때, 마음을 같이하여 도움기도를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 배우자는 물론 다른 성도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되도록 신실하고 믿음이 건실한, 믿을 수 있는 기도동지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서로 성적인 유혹을 받을 만한 대상이어선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심리적 상담요법은 권장하기가 꺼려집니다. 인위적이고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님을 축복하며 도움 되셨기를~!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