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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골 2:6-8] 철학의 함정, 조심합시다 (김삼)


그러므로 여러분은 크리스토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 모셨으니 그분 안에서 걸어 가시오.

그분 안에 뿌리내리고 세워져,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고, 감사로써 차고 넘치시오!
아무도 여러분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지 않게 조심하시오. 그런 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른 것이지, 크리스토님을 따른 게 아닙니다.

(콜로세 서신 2:6-8. 사역)


현대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복잡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가 차고 넘칩니다.
고대 특히 그리스 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현인'들의 모든 철학과 세상적인 지혜, 속임수들이 세계통합과 지상종말이라는 한 저수지로 합류돼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결말은 더 통일돼 있고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철학 속에 진리가 있는 줄로 알고 살아 갑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사상을 비롯한 다양한 세속의 지혜들을 성경과 대등한 것으로, 또는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세상 지혜들을 성경진리와 거의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병행 인용하는 설교자들에게서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아직도 철학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하거나 그 유용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위 본문의 다양한 성경번역에서도 느껴집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명기된 원문을, "헛된 철학" 등으로 표기, 원문엔 없는 수사어를 삽입해, 가치 "있는" 철학과 그렇지 못한 철학으로 애써 이분화해 나누려 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에 대한 끈끈한 정 탓인가 봅니다.

많은 신자들이 다양한 철학에 믿음과 신념을 두고 천착하려고들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그 어느 것보다 앞섰고 뛰어나다고들 생각할 겁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의 대표적인 예가 카톨맄일 것입니다. 로마를 "영원한 도시"로 구축하기 원했던 카톨맄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 철학을 적극 본받길 원했고 카톨맄 박물관만 해도 로마와 그리스의 유산으로 차고 넘치니까요. 중세 화가들은 그리스 철학계와 교회를 함께 묶어 그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철학 전반에 대한 성경의 태도는 분명합니다. 절대 진리인 성경 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그 어떤 세상 지혜도 성경 진리를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스토잌 학파나 에피쿠리안주의가 성경 진리와 대등하다거나 버금간다고도 결코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너무도 극명합니다. 

사도 파울은 콜로세 교인들에게 보내는 이 서신에서, 철학 즉 '필로소피아'(슬기사랑)를 헛된 속임수와 한데 묶어 말하고 있습니다. 헛된 속임수란 원문상 '텅 빈 술수'라는 뜻입니다. 즉 진리라고 할 만한 알맹이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이지요. 파울이 말하는 필로소피아가 과연 뭐였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예컨대 카톨맄 웹사전 등은 극력 유대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으로 국한하려 듭니다.

그러나 철학은 어떤 것이든, 예외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텅 빈 술수와 대등할지언정 성경진리와 대등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버금가지도 못한다는 것이지요.
철학이 결코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최고의 철학은 무슨 '-스'로 끝나는 현인들의 이름이 우굴대는 그리스에서 찬연한 금자탑, 상아탑을 이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철학이란 모두 우상신들과 이교 신화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유래된 것들입니다. 유대 전통적 철학도 실은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중시하며 우상으로 떠 받들던 전통에서 온 것이지요. 

고대 올림포스 신화를 믿었던 그리스인들은 본래 슬기를 즐겨 찾았거니와 당대에 유행하던 슬기사랑 풍조는 행전 기록(17:16-34)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당대 최고의 철학 본부 격인 아테네의 시민들과 해외 여행자들은 첨단 유행에 관해 말하기와 듣기 빼고는 아무 데도 시간을 쓰지 않을 정도로 세상 지혜를 사랑하던 그들이었습니다. 마치 대학교 철학과 초년생들처럼 그들은 새로운 철학을 논하는 데 삶을 바쳤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슬기'란, 우상숭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파울은 지혜를 사랑하고 논하는 이 필로소피아의 도시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고 속으로 격분하며 회당과 거리, 장터와 아고라에서 토론을 벌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요한복음 서문의 로고스 개념을 그리스 철학에다-예컨대 필로의 사상에다 억지춘향 격으로 연계시키려 듭니다. 또 아테네 현인들과 토론하던 파울에게서 "철학적"인 무엇을 캐내어 들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발상은 철학에 대한 파울의 단호한 태도를 몰라서 비롯된 것이지요.
 
파울은 아테네에서 일시나마 변론적이었던 자신의 태도를 뒤늦게 코린토 서신에서 후회한 것으로 비칩니다.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던 파울이 코린토 교우들 가운데 머물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코린토A서 2:3). 코린토A 1,2장 전후 문맥으로 봐서 이 점은 확연해집니다.
 
아테네에서 설득의 힘과 구변을 의존했을 때 전도의 열매가 크지 못했기에, 코린토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면서 전적으로 성령의 권능을 의존하려 했습니다.

유대 최고의 라삐 가말리엘의 제자로, 초기 역사상 그리고 당대의 그 누구보다 학문이 뛰어났던 파울은 아테네에서 "학문엔 변론으로" 대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유혹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그런 유혹들을 많이 받습니다.
파울이 학문과 철학에 귀착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조지 W. 부쉬처럼 예수 크리스토를 '최고의 철학자', 철인/현인/사상가/도덕군자로 생각하거나 그럴 확률이 높거나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울의 제자 에파프라스가 당대 스토잌 학파의 명교사 에핔테투스를 만나 복음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에핔테투스의 글에서 기독교 복음을 빌린 언어들이 나타난다는 근거로. 그러나 복음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영향'은 별 의미가 없을 터입니다.  

아무튼 파울은 믿음이 사람의 슬기가 아닌 하나님의 권능에 있다고 굳게 확신했고(코A 2:5),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이론을 허물어뜨릴 수 있음을 믿은 분입니다(코B 10:4,5).

우리는 파울의 교훈대로..(코A 3:18-21)
세상에서 슬기가 있다고 믿어지면 어리석은 자가 돼야 합니다. 세상 슬기는 자랑할 게 없다는 뜻이지요. 세상 슬기는 하나님 앞에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인들을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가게 하시는 분이시며 현자들의 생각을 헛것-텅빈 것(!)으로 여기십니다. 
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가 주 예수님 외에는 세상에서 자랑할 대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자랑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기독교철학의 권능을 믿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프랜시스 쉐이퍼,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사람은 교계 일각에서 '기독교 철학자'로 알아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선 나름의 숱한 문제점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기독교철학의 총본부 같은 한 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자랑하는 최고 석학들, 엘리트들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결 같이 머리 중심이어선지 분위기가 차가웠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의존하고 자랑하는 모습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식과 세상 슬기, 두꺼운 책들과 연구 결과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권능 없이는 초라한 삶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없이는 같잖은 이론으로 끝날 뿐입니다.

파울은 철학의 허무와 크리스토의 충만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2:9,10).
하나님의 신비, 비밀인 크리스토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 감춰져 있습니다(2:2,3). 

세상 초등학문에 있어 우리는 크리스토와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2:20).
그러나 세상 초등학문 안에서 여전히 펄펄 살아(?) 움직이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크리스토의 유일한 진리보다 사람들의 생각, 특히 명사들의 고견을 높이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크리스토의 충만 안에서 충만해진 사람들입니다(2:10).
철학으로 충만해지려는 사람들은 이 크리스토의 충만을 억지로 비우려는 것과도 다를 바 없습니다. 
새롭게 된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까지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3:10).

사도 파울은 크리스토를 아는 것을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여기고 나머지는 똥처럼 버린 사람이었습니다(필리포 3:8).
철학에 귀착하는 사람들..철학을 똥 대신 금으로 여기진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