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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음악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좀 어둔 배경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좀 어둔 배경



김삼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하늘 가는 밝은 길'(현행 새찬송가 493장)은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한국 찬송가'(?)의 하나다. 또 가장 은혜롭고(?)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가 중의 하나란다. 그런데 예배 때보다는 주로 장례식장이나 장의차 속, 장례행렬 등에서 눈물과 함께 많이 불린다고 한다. 정작 죽음에 관해선 아무 언급조차 없는 이 찬송가가 어느새 장례 전용 내지 추도 전용 찬송가로 전락해(?) 버렸다는 말인가. 비록 (번역가사의 경우) 하늘과 천국에 관한 언급은 꽤 많지만 말이다. 



역사적 배경과 주변담


오소운 목사 등 찬송가 연구가에 따르면, '하늘 가는 밝은 길'은 우리네 초기 찬송가인 '찬셩시'(1905)의 128장에 최초로 실린 이래, 한국 교회의 주요 애창곡의 하나가 되어갔다[각주:1]. 그후 한국 최초의 장로교-감리교 합동 찬송가인 '찬숑가(1909)'에서 원 가사는 좐 H. 로지어[각주:2]의 것, 곡조는 윌리엄 커크패트맄의 편곡을 채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흑인 영가가 대부분 백인들로부터 받는 서러움을 그렸듯, 이 찬송가의 가사와 구성진 가락이 일본의 조선 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당하던 설움과 잘 맞아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한때 기독교에 몸 담았었다는 작가, 춘원 이광수의 작품 속에도 주인공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나온다[각주:3]. 또 한국 최초로 미국에서 서구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서 활동한 월북 음악가, 안기영의 생애를 보면[각주:4], 일제 강점기 때 취입한 여러 독창곡 가운데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있다[각주:5]



이 찬송가의 가사는 한때, 초기에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에 의하여 1905년에 창작된 찬송시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개편찬송가(1967년) 488장에 수록된 데 따르면, 그 선교사는 윌리엄 스월런(William Leander Swallen, 한국명 소안론/蘇安論, 1865-1954)[각주:6]. 그래서 한 때나마 그 분의 작사로 오인된 것이다. 

그러나 스월런은 애당초 이 찬송시를 번안하지 않았나 싶다[각주:7]. 오소운 목사 등 한국 찬송가 관계자들에 의하면, 한 때는 어느 찬송가학 여 교수[각주:8]가 이 찬송가를 스월런이 우리말로 "작사"한 것이라고 주장해, 찬송가 해설마다 이를 인용하기도 했단다[각주:9]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면,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스월른의 작품으로 알고 지낸다[각주:10]



아무튼 그런 배경 때문에 당시로서는 순수 한국인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한국 찬송가라고 할 만한 가닥이 잡힐(?) 정도였다고 보인다. 이런 상황들 탓에 이 찬송가는 잠재의식 속에 아예 한국 찬송가의 하나로 자리잡은 셈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실화가 있다. 


지난 1960년대에 배를 타고 유랑하는 '마도로스'[각주:11]였던 한국의 한 크리스천 뱃사람[각주:12]이 호주에 일시 상륙했다가 주일날 어느 항만에 있는 교회를 방문했다. 그는 평소 바이올린을 즐기던 차라, 그 날도 그 교회에 자청하여 '특송'으로 바이올린을 켜는데, 그 교인들은 "당신네 한국 교회 찬송가를 켜 보라"고 주문하더란다. 그래서 연주한 것이 바로 이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었다. 예배가 끝나자 호주 교인들이 다가오더니, "그게 한국 찬송가 맞아요?"라며, "그건 '애니 로리'라고 우리네 민요인데.." 하더란다. 그 뱃사람은 그 말들을 듣고 적지아니 당황되더란다. 

그때까지 으레 한국 찬송가의 하나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 교인들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곡조가 영어권 노래인 데다 호주 역시 영어권이기 때문이다. 그 호주 교인들은 곡조만 알았지, 이 곡조에 찬송시가 붙은 미국 찬송가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 같다. 



곡조 이야기


사실 '하늘 가는 밝은 길' 자체의 곡조명 'Annie Laurie'가 밝혀 주듯 이 노래는 본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순수 세속 연가였다. 그런데 이 세속 가락이 워낙 가슴을 파고들듯 애절하고 감동적이선지, 어쩌다 찬송가로 둔갑하여 한국에도 상륙한 것. 원래의 연가 자체로도 여전히 존재하면서, 한편으로 그럴 듯한(?) 찬송가로 변모한 과정은 오소운 목사에 의해 상세히 밝혀졌다. 


아무튼 그래서 세상의 연가이자 교회의 찬송가로 양립한 채 여태 애창되고 있으니, 이것을 과연 바람직하다고 해 줘야 할지, 단지 흥미롭다고 해야 할지 모를 현상이다. 비슷한 처지의 찬송가들이 우리 찬송가 안에 꽤 된다. 무조건 곡조가 좋다고 해서 찬송가나 성가로 둔갑시키는 노력은 이제 좀 하지 말고, 좋은 가사는 처음부터 순수창작으로 이끌었으면 한다. 가장 최근의 You Raise Me Up도 비슷한 경종 사례다(필자의 글 You Raise Me Up은 성가? 참조). 



이른 바 '개편 찬송가'(1967년)는 외국의 국가, 민요, 가곡의 곡조로 된 곡은 다 뺀다는 원칙 하에, 이 곡조 대신 안신영 장로의 창작곡으로 대체했었다[각주:13]. 그런데 안 장로의 가락이 다른 문제를 파생시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곡 작곡가의 한 분인 서울 음대 김성태 교수의 가곡, '이별의 노래'와 가락의 흐름이 너무나 비슷했기에, 김 교수 측에서 교계 언론에다 이 '문제점'을 지적하여 제기하면서 왈가왈부된 것이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그 후 안신영의 새 곡은 잘 불리지도 않았거니와 이내 퇴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각주:14]


이 찬송가를 원곡 '애니 로리'에 바탕을 두고, 과거 필자의 은사였던 두 분의 K 교수님들이 각각 멋지게 편곡한 합창곡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필자는 대학 재학 시절에 이 곡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머지, 이 찬송가 가사로 신곡을 써 봤다. 얼마 후 필자가 사역하던 미주 한인교회들의 성가대에서 연주를 하여 몇 번 호평을 들었고, (지금은 목사인) 나의 제자 한 명도 자신이 지휘하던 교회에서 연주한 뒤 만족해 했다. 당시 내친 김에 한국찬송가공회 쪽에 관여된 미주의 어느 교회음악인의 요청으로 제출까지 해 보았지만, 그 쪽은 무반응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외려 그렇게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 작시자 로지어


그런데 위에서 비쳤듯, 이 곡의 찬송시마저도 전혀 한국 작품이 아님이 오소운 목사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찬송가 작곡가/연구가인 오 목사는 미국에 있을 당시 영문 찬송가나 찬송가 자료 300여권을 수집하면서, 의문스럽던 이 찬송가의 원시를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 가는 밝은 길' 찬송시의 원작자는 한국인도, 주한 선교사도 아닌, 미국의 좐 호갍 로지어(John Hogarth Lozier, 1832-1907) 목사였다. 

바로 이 사실을 밝혀낸 것은 우리 교계와 교회음악계에 퍽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필자는 평가하고 싶고, 오 목사의 노력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전에 한국 찬송가의 영문판을 만들면서, 좐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가사의 한글에 기초해 영문시를 나름 번역해서 병렬해 넣었는데, 그것 자체도 영문학적으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래도 원시는 아닌 것이다. 원시의 제목은 엄연히 '갈릴리 사람(The Man of Galilee)'이었다. 

그러므로 Bright Heavenly Way라고 영문 제목을 병기한다면, Lozier와는 매칭이 안 된다. Lozier로 표기한다면, 가사 첫 줄은 'I Am on the Shining Pathway'여야 하며 제목은 'The Man of Galilee(갈릴리 사람)'여야 한다. 

이 찬송가는 미국 오순절교 찬송가 제3권(제161장) 등에 수록됐다( https://hymnary.org/hymn/PH3W1902/page/161 ). 



로지어는 누구였나?


이제부터 필자가 풀어 나가고 싶은 본론은 이 찬송가의 작시자, 로지어 목사에 관한 것이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교인들을 열광시켜온 찬송시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원작자인 로지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호기심 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써 우리 마음을 모두 하늘나라로 향하게 할 만큼 믿음과 영감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을까? 


로지어는 감리교 찬송가 작가로, 아이오와주 슈 시티 감리교회와 인디애너 주 인디애너폴리스의 애즈베리 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또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일부였던 인디애너 제37 보병연대의 군목(소령)을 지냈고, 훗날 미 육군, 해군, 해병대 및 군인력이었다가 제대한 전역장병들의 우애조합인 '공화국 대군'(GAR)의 첫 군목으로도 활약한 사람이다. 


그가 모리슨 오페라홀에서 행한, 카톨맄 측 B.F. 포스터 신부와의 신학 토론을 담은 '보편주의와 영원한 형벌에 관한 신학토론'(1867)이라는 책자도 있다. 

로지어 목사는 또 1875년 전매회사 반대를 기조로 삼아, 아이오와주 주지사 후보로도 나섰던 정치성 인물이다. 득표는 불과 737표 밖에 못했지만. 목회자가 주지사가 되길 원했다고? 가장 영적이라고 자처하다시피 해온 미 기독교 방송국(CBN) 설립자/회장 퍁 롸벑슨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때를 연상시킨다[각주:15].


이처럼 로지어는 단순히 목회자, 찬송가 작가라고만 하기엔 상당히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1896년엔 자신이 엮고 로지어 형제 출판사에 의해, '공화당 클럽과 싱어들을 위한 '옛 영광' 선거운동 노래집'을 발간해 내기도 했다( http://bitly.kr/AMWH ). 그의 아내도 '여성 클럽들의 교육적 영향'이란 책을 써 냈다. 


이보다 더 유명한 작품은 그의 풍자서사시, '그대 어머니의 앞치맛끈(Your Mother's Apron String)'. 지금도 계속 폭넓게 애송되고 있다는, 그의 대표작이다. 남북전쟁 전몰용사들을 기린 '우리 영웅들이 누워 있는 이름 없는 무덤들'이라는 시도 있고, '전시 군목의 탄환 마흔 발―옛 전쟁노래와 낭송시들'이라는 시집도 있다. 역시 그가 편집한 일종의 군가모음인 듯한 '북군의 옛 병거'라는 노래집도 있다. 군인 가족을 위로할 목적이었던 듯한 '뒤에 남은 사랑하는 이들의 오두막'이라는 노래책도 있다. 


로지어는 순수한 찬송 작가라기엔 특이한 사람이었다. 군목을 지내어선지 목회자치고는 정치색이 강하고, 주위와 민중과 인기에 대해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일시 프리메이슨이었으며[각주:16], 대학 시절부터 학생 (비밀) 우애조직(fraternity)에 관심이 많았던 경력이 있다. 미국 대학교마다 그리스어 알파벳 첫 자로 시작되는 수많은 우애 동아리가 있는데, 로지어도 그 멤버로서 그들의 초기 헌장 같은 것을 써 주어, 지금껏 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여러 로지어 가문 사람들이 이 우애 조직에 적극, 깊이 관여돼 있었다. 그런 경력이 점철되어 결국 메이슨리에도 가입할 수 있었나보다. 


19세기 인디애나 주에서 여성 참정권 및 선거권 확보 등 여권운동을 펴서 훗날 여성들의 선거권 시대를 몰고 온, 강력한 연설로 유명했던 (헬렌 M.) 잭슨 구거 변호사(1843-1907)가 있다. 그녀가 한때 토론 상대였던 로지어 목사를 향해 대중 앞에서 도덕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즉 "저 분은 부도덕한 행위로 감리교 (남동부)연회에서 두 번 재판을 받았다"면서, "두 번째 때는 2표차로 연회에서 쫓겨날 뻔 했다가 자신에게 '정신착란' 증세가 있다고 호소하여 겨우 면했다"고 폭로한 것. 연회에서 쫓겨날 뻔한 로지어의 '부도덕' 행위가 무엇이었지는 모르겠다. 


'그대 어머니의 앞치맛끈'이란 로지어의 서사시를 대강 읽어봤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을 높인 내용이고, 기독교적인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앞치마(apron)는 그가 몸 담고 있던 메이슨리 단원들의 앞치마를 연상시킨다. 왜 하필 앞치마와 치맛끈을 그다지도 기리려고 했는가? 뭔가 석연치 않고, 앞치마라는 상징적인 요소를 범상한 척 다원적으로 비범하게 다루려 한 것 같다. 아무튼 이 시 '...앞치마끈'은 지금까지도 폭 넓게 애송되고 있다. 


필자로선,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원시를 통해 나름대로 엄청난 감동(?)을 끼쳐온 로지어 목사는 그다지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과연 그가 노래한 대로 우리 앞서 하늘 가는 밝은 길을 걸어가, 그 밝고 찬란한 천국문에 이르게 됐을까? 잘 모르겠다. 



원시 분석


이제 끝으로..하늘 가는 밝은 길의 원시인 '갈릴리 사람'(the Man of Galilee)을 직역하고 분석해 보자.


갈릴리 사람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원시)[각주:17]


시: 좐 H. 로지어 

김삼 옮김



나는 그 밝은 길 위에 있네

삶의 짧아져가는 세월 동안

내 마음은 슬픔을 알고  

내 눈은 눈물을 봐왔다네 

하지만 나는 그림자들이 물러감을 봤고

지금 그 밝은 빛을 보네

그 갈릴리 사람의 공로를 

내가 믿고 있는 동안.


내 혼은 싸움을 벌여왔다네 

엄청나게 많은 죄와,

그리고 내 밖의 불구대천 원수들, 

내 속의 더 끔찍한 적들.

그러나 난 적의 무리가 달아남을 보았고

내 혼은 승리를 찾았네

그 갈릴리 사람의 공로를 

내가 의지하였을 그 때.


나는 그 성에 가까이 다가가네 

내 구주님이 몸소 쌓아올린 그 곳

또 나는 아네, 내 아버지가 

그 자녀를 집으로 맞아들이시려고 기다리심을

나는 비록 가치가 없어도 

그 분은 날 위한 처소를 마련해 두실 테니

그 분은 영광의 왕

갈릴리 사람이시네 



감동적인가? 영감이 넘치는가? 유감되게도 본 필자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우선 우리 번역시/번안시의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제목은 물론, 본문에서 '천성'까지 3번 나오는 '하늘'이라는 낱말은 원시에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하늘이 아닌 '위'(above, upper world)를 강조하는 점은 메이슨적 특징의 하나이다.  


예수님이나 크리스토, 주님이란 말도 없고, 3절에 한 번, '구주'라는 말만 나온다. 메이슨들은 예수 크리스토를 직접 언급하기보다 '갈릴리 사람' 같은[각주:18], 간접적 또는 제 3자적 대상으로 에둘러 표현할 경우가 잦은데[각주:19], 로지어에게서도 이 점을 예외 없이 느낀다. 로지어는 예수, 또는 크리스토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고, '주님'이란 말조차 최대한 피하고 있다.  


다음으로, 빛과 그림자/어둠, 선과 악의 대비 개념은 성경에도 있지만, 프리메이슨들도 특히 강조하는 요소이다. 예를 들면 메이슨 신전 바닥마다 있는 흑백 바둑무늬의 상징성이 그렇다. 선과 악의 싸움을 다룬 '스타 워즈'(별들의 전쟁) 같은 작품에 메이슨들은 열광하곤 한다. 

2절은 1절의 빛과 그림자를 보충 설명하는 듯한 내용으로, 특히 지은이가 19세기에 겪은 남북전쟁에다 죄와의 싸움을 내적으로 빗대고 있다. 청색 군복의 북군과 회색 군복의 남군의 전쟁을 역시 메이슨적인 선악 전쟁으로 비유해 묘사한 작품의 예들이 퍽 많다. 

그런데 영적 싸움은 사실상의 동족인 블루와 그레이의 싸움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악령들과의 복합적인 백병전이며, 예수의 이름과 보혈, 성령의 권능과 말씀, 은사 등 이미 제공된 영적 무기로 직접 대적하여 맞서 싸우는 실전이다! 


남북 전쟁 당시 특히 각 군대에 프리메이슨들이 득시글댔다. 당대 사진들을 보면 군복 앞섶 단추를 열고 손을 꽂고 있는 머사닠 포즈들이 흔하다[각주:20]. 일부 표면상 크리스천들도 그랬다. 예를 들면, '벤 허'의 원작소설 작가, 루 월리스 준장(다음 사진)은 자칭 '크리스천'이면서 메이슨이었다[각주:21]



과연 천성은 예수님이 손으로 일일이 쌓아올리셨을까, 아니면 말씀으로 단번에 창조하셨을까?3절에서, 지은이는 특이하게도 천국이 "나의 구주가 손으로 쌓아 올린" 성(城)이라 주장하고 있다. 본디 석공(石工) 조직체인 메이슨리를 간접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앞치마를 두른 채 한 손엔 벽돌장을, 한 손엔 손삽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메이슨리 의식 체계가 연상된다면, 과언일까?


메이슨들은 특별히 따로 유일 구주를 믿지 않아도 다 위의 낙원 곧 내세의 '그랜드 라지'에 들어갈 것을 굳게 믿고 지낸다. '비록 가치가 없어도(비록 유일한 구주로 믿지 않아도?)'란 문구는 나는 비록 강도처럼 죄인이어서 지불할 몸값이 없어도 크리스토님의 대속을 믿으면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보다도, 메이슨들은 다 위의 낙원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자신하는 그 자신은 아닐까? 


필자가 로지어의 이 시를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풀이하는 이유는 시가 그럴 듯해 보여도 그가 메이슨이었고, 또 예수 크리스토를 직접 드러내어 표현하기보다 끝끝내 '갈릴리 사람'이라고 막연하게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 예호봐도 막연하게 '우주의 대 설계가(TGAOTU)'로만 표현하러 들듯 말이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안된 현재의 '하늘 가는 밝은 길'에 대하여 나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것은 원시와는 다르니 거룩한가? 한 가지 폭넓게 알려진 사실은 초기 선교사들 중 상당수는 메이슨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양화진의 선교사들 무덤에 가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1. 참고링크 http://blog.daum.net/osowny/15971999 [본문으로]
  2. 이 글에서 주로 논해 보려는 사람이다. [본문으로]
  3. 이광수는 자기 소설에서 이 찬송가 가사를 두 번 써 먹었다. 소설 '사랑'과 '애욕의 피안'에서였다. 특히 '사랑'의 여주인공인 안식일 교도 석순옥이 부엌에서 이 찬송가를 불렀다. 참고로, 이광수는 (안식일교 계열인 위생병원의 전신인) 상하이의 홍적십자병원을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만식과 함께 자주 드나들면서 안식일교의 영향을 받았고, 석순옥의 모델은 안식일교 주요 인사인 임기반의 딸인 여의사 임순실이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안식교는 율법적 안식일과 채식주의 등의 이단성 집단이다. [본문으로]
  4. 그는 홍난파보다 먼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왔다. [본문으로]
  5. 1931년에 취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본문으로]
  6. 당시 개편찬송가엔 소안론이 아닌 '소안련'으로 기재됐는데, 아마도 곽안련 선교사(Charles Allen Clark)의 이름과 혼동한 것 같다. [본문으로]
  7. 오소운 목사는 안애리 선교사가 그랬다고 추정한다. [본문으로]
  8. 아마도 미국 출신의 찬송가 학자인 원성희 교수인듯. [본문으로]
  9. 사족이나마, 오소운 목사는 2개 관련 글에서 스월런이 무려 1975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표기했는데, 아마도 그의 딸 올리벹 스월런(1893-1975) 선교사와 일시 착각한 것 같다. 윌리엄 스월런이 1975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116년 살았으니 세계 최장수인의 한 명인 데다 사상 최장수 선교사일 것이다. 또 개편찬송가 출판 당시 자신이 직접 오리지널 작사자가 아니라고 증언했을 터이다^^. '온화한 목회자'로 알려진 스월런은 1859년 3월 24일에 오하이오 주 캐럴 카운티 맬번에서 태어나, 1892년 매코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아내 샐리 여사와 함께 조선에 입국해 48년간 사역한 뒤, 1940년 일본의 압력으로 부부가 함께 도로 귀국해, 1954년 5월 8일 플로리다주 피네야스 카운티의 세인트 피러스벍에서 95세로 죽었다. 그의 묘비 사진 링크: http://bitly.kr/N2ay . [본문으로]
  10. 정보 부족 탓이겠지만 공신력 있어야 할 기독교 언론까지 확인 없이 아직 그러고 있으니 아쉽다. https://www.facebook.com/cbsjoy/videos/1684364988324810/ [본문으로]
  11. 네덜란드어 '마트루스'의 일본식 발음에서 왔다. 외항선원의 통칭이다시피 했다. [본문으로]
  12. 실은 필자의 외사촌 매제였다^^. [본문으로]
  13. 개편찬송가의 가사도 일부가 바뀌었다. 작시자는 스월런으로 돼 있지만, 원 번역시(내지 번안시)와는 약간 다르게 편시됐다. [본문으로]
  14. 개편찬송가에 실렸다가 힘 없이 퇴조한 곡 가운데는 이동훈 교수의 민요조인 5음계 중심의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도 있었다. 이 역시 우리네 가사가 서구 가곡을 빌려 붙여지고 불린 것이어서 한국적인 새 곡으로 대체한 것이었으나, 작곡가가 기존 곡의 리듬을 십분 살리려 했던 것인지 기존 곡의 리듬과 서로 너무나 비슷하여, 성가대가 열심히 불러대고 방송국 등에 보급하느라 했으나, 일반 교인들은 계속 기존 곡과 혼동을 하면서 나중엔 뒤죽박죽 돼 버려 결국 역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본문으로]
  15. 그가 축복기도라는 것을 할 때, 그의 악마 같은 '사탄적 손짓'을 기억하는가? [본문으로]
  16. 그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신비의 매듭' 라지(MTL)의 단원이었다. [본문으로]
  17. 영어 원문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www.hymntime.com/tch/htm/m/a/n/manofgal.htm [본문으로]
  18. 물론 마태복음 26'69에 나오는 별칭이다. 그런데 자칭 아닌 타칭이다. [본문으로]
  19. 그런 예를 자주 본다. 예: http://www.masonicworld.com/education/files/mf.htm [본문으로]
  20. '숨긴 손'이라고 불린다. [본문으로]
  21. 남북전쟁 당시 장군이었던 루 월리스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화 '벤 허'의 원작소설 저자다. 그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는데, 그가 군복 앞춤에 손을 꽂고 있는 사진들이 전에는 더러 보이곤 했는데, 놀랍게도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이 사진에서는 손을 꽂고 있었던 열린 단추 흔적이 보인다. 그는 인디애나주 커빙턴의 파운튼 헤드 라지(FHL) No.60의 회원이었다. 그는 변호사, 군인, 발명가, 정치인, 탐험가 등 다방면으로 유능했지만, 참 크리스천은 아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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