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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정.결혼

결혼은 서로의 거울 (뉴하우스)



결혼의 특성상, 남녀의 수고와 노력 외에는 행복한 결혼의 다른 비결이 없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배에 탄 이상, 우리는 긴 이 여정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 이 여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건전하고 긍정적이고, 무엇보다도 환상이 아닌 정확한 현실에 근거해야 하겠다. 그래야 중간에 내려서 딴 배로 갈아 타고 싶은 충동과 후회 없이, 이 긴 여정 동안 즐기고 성숙하며, 크고 작은 많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관점을 갖는 남녀의 노력이 첫 번째 단계다. 

많은 결혼 생활의 문제가 결혼의 법칙을 몰라서 생길 수도 있고, 또는 관계 기술의 미숙으로 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결혼과 배우자, 그리고 일반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잘못되었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참 허다하다. 

제 아무리 기가 막힌 결혼의 법칙과 부부 관계 기술을 터득한다 하더라도, 결혼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기대에 근거한 기술은 관계에 진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대와 체험이 각각 다른 곳에 있다면, 누구나 감정적인 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혼은 우리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은 자신을 감추는 데 익숙한 동물이다. 자신의 가장 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남에게도 인식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런 남녀의 의도가 한 마디로 안 통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결혼 생활이다. 결혼생활에서마저도 각자 ‘신비의 베일’을 지키고, 인위적인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남녀가 좁은 공간에서 동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적으로 우리의 실제 모습이 상대방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스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결혼한 남녀의 관계는, 거울에 비취는 내 모습을 보듯, 나의 실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관계이다. 남녀가 좁은 공간에서 살을 부대끼며 가까이 살면서 남녀가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의 실체를 결혼을 통해서 보기 시작하고, 어떤 면을 바꾸고 고쳐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배우자를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썩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날 때 방어 기어를 작동하기에 바쁘고, 실망하고, 창피해 하고, 또 자존심이 상해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어차피 열린 관계이고 가장 안전한 관계이기에, 자기 성찰을 위한 기회와 도전으로 삼는다면, 남녀의 삶이 윤택하고 생산적으로 변화되는 데 결혼만큼 유익하고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남녀는, 이렇게 결혼의 부산물이자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불가피한 결혼의 현실을 인정하고 성숙하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숨기고 위장하며, 또는 자신에게서 도망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할 뿐 아니라, 결혼을 통해 자신의 실체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배우자에게 인식되기를 오히려 기대한다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가 나의 실체를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대신, 나의 실체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허물이 튀어 나오고, 남편이나 아내가 우리의 행동을 지적하거나 불만을 표시할 때면, 남녀는 결혼 자체를 원망하거나 결혼이 불충분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백설 공주' 이야기에서 거울이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자 거울에 화가 난 계모 왕비/마녀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거울인 배우자를 비난하고 오히려 탓한다. 

서로 상대를 탓하거나 비난하고 화 냄은 둘의 결혼 자체가 잘못된 결혼이며, 두 남녀는 무엇인가를 잘 못 하고 있고, 이 결혼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함을 서로 소통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렇게, 내적으로 결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남녀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에 국한된 어떤 외적인 노력도 결혼 생활에 변화를 가져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는 남녀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잘못된 결혼, 혹은 나쁜 결혼은 외부의 압력 때문에 올바른 결혼. 혹은 좋은 결혼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남녀가 결혼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바꾸기 전에는, 그 어떤 외적인 노력과 수고는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가 결혼에 대한 같은 시각과 관점을 같는 것은 그 어떤 관계 기술을 앞선다.

남녀가 같이 결혼을 귀하게 여기나?

남녀가 같이 결혼을 아무런 조건 없이 존중하는가?

남녀가 같이 결혼을 가치 있는 것으로 또 결혼한 것을 감사하는가?

결혼 자체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없이는 그 어떤 기술의 적용도, 배우자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기 위한 수법에 불과한 것으로 상대는 여기게 마련이다.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려는 마음 동기가 되어야지, 나만을 위해 가치가 있는 결혼으로 만들기 위한 임시 변통 식 노력은 결혼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남녀가 결혼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각각 딴 곳에서 '결혼 생활'을 하려고 한다.
결혼에 대한 이해와 기대가 서로 다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놀이공원에 관광버스가 사람을 풀어 놓고는 집합시간을 가르쳐 준다. 남녀가 같이 걸으며 여기저기 구경하는 동안 남편의 관심사도 아내의 관심사도 알게 된다. 같이 있음으로 서로를 알아 가는 계기는 더 많아지고, 같은 체험으로 많은 추억을 공유한다. 그러나 놀이공원 산책이 재미있고, 놀이 기구를 타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어느 것도, 두 남녀 외에는, 이 체험의 주인공도 아니고 궁극적인 목적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각자 따로따로 행동 하다가 집합시간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서 만나는 남녀라면, 이들의 여행 목적은 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결혼 자체와 남녀의 관계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결혼과 동시에 행복과 사랑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로맨틱한 사랑을 하는 결혼을 꿈꾸고, 남편은 아내의 절친 역할을, 아내는 남편에게 끊임 없는 쾌락을 주는 것이 남녀가 갖는 결혼에 대한 시각이라면, 분명 누군가는 잘못된 배에 오른 것이다. 

이런 남녀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결혼 생활을 통해서 드디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간다. 들통 난 우리의 치부도, 약점도, 흠도 다 서로 수용하고, 다독이며 불완전한 나의 남편과 아내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능한 곳이 결혼 생활이다. 

우리가 배우고 고쳐 나가면서 성숙하는 과정에 인내하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이 소중한 일을 남편과 아내 밖에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결혼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기대를 하고 있는 한, 아무리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관계의 기술을 배우는 노력에 올인한들, 아무런 변화도 가져 오지 않는 헛 수고로 끝날 수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남녀는 결혼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단정하고 만다. 

오래 전 핸드폰이 없던 시절, 교회의 한 청년이 그의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다.
굴곡이 많았던 둘의 관계를 재점검하는 뜻에서 어느 날 서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간 청년은 자기 여자 친구를 못 만나고 돌아오게 되었다. 반면에 그의 여자 친구는 약속 장소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리다 화가 나서 가 버린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타난 두 남녀가 서로 놓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들려 준 대로는, 여자 친구가 약속 장소에 있었음에도 그녀를 못 만난 이유가 이랬다.

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는 자기 여자 친구가 항상 앉는 자리가 있는데, 그녀가 그 날은 거기에 앉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다른 좌석에서 기다리던 여자 친구를 찾아 보려고 했을 만도 했건만, 항상 앉는 자리에 있지 않은 그녀가 아예 오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 그 청년의 기이한 일방적인 논리와 끝까지 그녀가 앉아 있어야 하는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지 않은 그녀를 탓하던 이 청년의 비겁하고 융통성 없는 사고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두 젊은 남녀처럼, 결혼이라는 한 배를 탔으면서도,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자신들의 배를 바라보고, 각기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만 상대를 만나기를 원하고 고집하는 남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바른 시각과 관점이 두 남녀가 공동으로 갖는 시각이자 관점이 되어야, 비로소 서로 알아 가고 이해하는 남녀의 모든 노력과 수고가 결혼 생활의 흐뭇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남녀는 결혼 자체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못지 않게, 결혼의 주인공인 남녀의 차이와 다른 역할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남녀의 다른 창조 원리를 거부하고 서로 도전하며 그 차이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거센 시대에 우리는 산다. 점점 여성화 돼 가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와 자리, 그리고 여성만의 특권을 오히려 분개하는 여성도 상당하다. 이들이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고 내 권리가 침해 당하고 상대가 나의 유익과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순간을 조심스럽게 견제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남녀는 이해심의 위력을 깨달아야 한다.

설사, 힘든 결혼 생활과 이미 사이가 벌어진 결혼일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의지를 보이고 노력할 때, 남녀는 결혼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대하는 마음에 변화를 준다. 설사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남녀가 서로 요구하는 것이 고쳐진 것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이해심은 서로 인내하려는 마음과 연민이 생기게 한다.

앞서 말한 대로, 결혼이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추한 죄를 들추어 내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결혼은 또한 남녀가 서로의 이런 부족한 모습을 넘어서서 남편과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게끔 도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녀가 갖는 서로에 대한 이해심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서로 노력하게 되는 동기와 힘이다.

남녀는 분명히 다르게 창조되었다. 사고방식이 다르고, 두뇌의 기능과 생물학적 기능도 다르다. 남녀는 원하는 것도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의사소통 방식도 전혀 다르다. 
남녀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는 남녀의 다른 역할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함을 또한 의미한다. 지혜로운 남녀는 자신의 성별의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부족함도 알고, 상대의 강점도 알기에, 서로의 도움과 영향을 또한 기꺼이 받아 들인다. 

결혼은 거울처럼 냉혹한 면도 있다.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결혼의 법칙도 있다. 무조건 가꾸고 정성으로 돌본다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순위와 절차를 밟는 지혜로운 수고와 노력으로 돌보아야 비로소 생명이 싹트는 까다로운 성격마저 있다.

결혼이라는 포장물에는 ‘파손 주의’딱지가 언제나 붙어 있다.
누구나 조심스럽고 귀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 취급하면, 파손되고, 내용물이 밖으로 내쳐지고 만다. 

그럼에도, 올바른 시각을 갖고 결혼의 혜택을 내 것으로 만들며, 이해심으로 조심스럽게 다루는 수고의 대가는 엄청나다.

결혼은 분명히 좋은 것임이 틀림 없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