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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다니엘과 세 친구는 고자였나?

고대 아슈르(아씨리아)의 벽 부조에 새겨진 내관들. 우두머리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수염이 없다. 



물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환관 내지 고자였다는 설을 최근 들어봤습니다. 맞는 주장인지요?




환관(宦官)이란 내시(內侍)와도 같은 말로, 고대 중동의 하렘(후궁)이나 동양의 궁중의 남성 시종들이 일차적으로 왕비나 궁녀 등 여성에 대한 임금의 절대권이 행사되는 대상 주변에서 큰 구애(拘碍)를 받지 않고 일하도록 할 목적으로, 고환을 들어내어 남성으로서의 주요 기능을 잃어버린 관원을 뜻합니다. 고자(鼓子) 역시 어떤 계기나 동기로든 남성의 기능을 잃게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각주:1]. 성경에는 여러 환관들 이야기가 나오며, 주님 말씀(마태복음서 19'12)처럼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도 있었습니다[각주:2].   


구약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로, 환관은 '사리스'(סָרִיס)입니다[각주:3]. 그런가 하면 내시, 환관이라는 의미의 영어 낱말 eunuch(유누크)는 신약 원어인 그리스어의 '에우누코스(유누코스 εὐνοῦχος)'에서 왔습니다. 이 낱말은 침대를 뜻하는 '에우네'(εὐνή)와 갖다/소유하다/책임지다/관장하다..등 폭넓은 의미를 가진 '에코스(ἔχω)'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침대 곧 부부생활과 직결된 낱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누코스는 첫째로, 부부생활 없이 혼자 사는 독신자를 가리킵니다. 둘째, 태어날 때부터 남성 성징이 약해 부부(성)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 셋째로, 남이나 자신에 의해 거세된 고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폭넓은 정의지요.


참고로, 성경에서 환관/내시 또는 고자를 가리키는 사리스와 유누코스 및 파생어가 나타난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37'36; 39'1; 40'2,7; 슈무엘A(삼상)서 8'15; 왕들A(왕상) 22'9; 왕B(왕하) 8'6; 9'32; 18'17; 20'18; 23'11; 24'12,15; 25'19. 연대기A(역대상) 28'1; 2, 에스테르(에스더)서 1'10,12,15; 2'3,14,15, 21; 4'4,5; 6'2,14; 7'9. 예샤야후(이사야)서 39'7; 56'3; 56'4; 예레미야서 29'2; 34'19; 38'7; 39'3,13; 41'16; 52'25; 다니엘서 1'3,7~11,18. 마태복음서 19'12, 행전 8'27,34,36,38~39.  



구약 대언자(선지자/예언자)의 한 명이자 성경 '다니엘서'의 기자였던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환관이었냐는 논란은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전부터 줄곧 있어왔습니다. 


논란이 돼온 주된 이유들부터 우선 살펴보면..

첫째로, 네 소년이 환관장의 감독 아래 있었다는 점입니다(구약 다니엘서 1장 참조). '환관장'이라는 히브리어 '랍 사리사오'는 '환관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바꿔 말하면 아랫 사람들이 환관이라는 의미입니다[각주:4]. 이를테면 환관장은 궁중에서 일하는 모든 환관들을 관할할 뿐더러 앞으로 환관으로 일할 젊은이들을 훈련하는 책임을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래 속한 모든 사람들은 거세된 환관임을 시사하는 것이겠습니다. 이 점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궁중에서 환관으로 일하기 위해 훈련받기 전, 이미 거세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특별히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로서 고자가 된다는 것은 몸과 맘으로 대단히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불완전한 남자라는 인식 때문이죠. 고대 성전에는, 율법에 따라 있어야 할 생식기가 없거나 태어날 때부터 이상이 있어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상처가 나 일부 기능을 잃었거나, 거세된 고자 등등 신체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남성은 드나들 수 없었습니다(신명기 23'1)[각주:5]. 즉 성전에서의 공식 경배나 제물 바치기가 거부된 사람들이었다는 뜻이죠. 


남성의 기능을 잃는 고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저주의 일부였습니다. 예호봐(여호와)님의 대언자들은 우상숭배와 불순종 탓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스라엘 왕자나 왕족들이 현지의 환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왕들B=열왕기하 20'18, 예샤야후=이사야서 39'7).  

고대에 고자가 된다는 것은 아울러, 약속된 영구한 후손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태어날 수도 있는 복에서 애당초 제외된 사람인 것입니다. 


고자나 환관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견해는 후대로 가면서 차차 감소됩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다름 아닌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이스라엘 왕족들이 궁중의 환관이 되어버리는 모습을 알게 되자, 고자에 대한 비판이나 저주스런 생각들을 함부로 표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 역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령 바벨론 왕명에 따라 환관장에 의해 고자가 됐더라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을 터입니다. 어차피 종속국 사람들인데 고자가 되고 안 되고가 율법적으로 어떤 의미이든 간에 이미 포기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지 우상 제사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을 피하는 것 외엔 순복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고자였을 만한 또 한 가지 가능성은 그들의 후손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자식을 두었다거나 후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성경에 기록된 바, 다니엘에 대한 대천사(천사장) 가브리엘의 예언((다니엘서 12'13) 내용입니다. 이 예언에서 가브리엘은 다니엘의 후손에 관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니 분명히 할 만한 말인데 말입니다. 물론 가브리엘이 내다보기에 다니엘이 그냥 혼자 지내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후손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또 포로들 가운데는 바벨론 관리를 지내면서 결혼이 허용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설령 고자였다손 치더라도, 그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물음이 뜹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별로 중시되지 않는, 뭔가 특이한 요소 또는 '발견'을 갖고 남보다 성경을 더 잘 아는 양, 그것이 대단한 지식이고 진리인 양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죠. 

이것도 그런 종류의 하나가 아닐까요?


더군다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고자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첫째로, 당대 환관장은 결국 하렘 등 궁중의 여성들에게 좀 더 부담없이 출입할 수 있는 내관들 가운데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 환관장 아래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일개 환관이라면, 어떻게 당대 최대 제국을 다스리는 제왕이 임명한 (거의) 국무총리에 방불한 제 2인자로서 나라를 함께 다스릴 수 있었냐는 것이지요(참고: 다니엘 2'48,49; 6'1~3). 


과연 왕이 일개 포로 소년 출신에 불과한 환관을 그런 높은 직위에 올려 쓰려고 할까요? 환관이 궁중에서 가장 높아져 봐야 환관장이고, 환관장은 아무리 높아봐야 궁내대신에 불과합니다. 물론 훨씬 후대에 쿠쉬(구스. 현 에티오피아로 추정)의 칸다케(여왕)가 내시를 국고를 맡은 내탕관으로 쓴 적은 있지요(신약성경 행전 8'27). 또 고대 중국에서 내시가 나라를 쥐락펴락한 적도 없진 않다는군요. 그러나 역시 다니엘과 같은 고위직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아마도 그건 다니엘이 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영과 지혜를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 답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다니엘이 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과 메대, 파르사(=페르시아, 한글성경의 '바사')를 연이어 다스리게 됐다고 왜 명시하지 않았을까요? 다니엘의 개인 신분과 사적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 점이 의문입니다. 



둘째로는, 사리스 곧 환관은 내시만이 아니라, 내시를 포함한 모든 '관리'(official)를 뜻하는 용어였다는 전통적인 정의(定義)와 해석이 있습니다. 참고로, 다니엘서 1'3 등에 나타난 랍사리사오 즉 환관장은 내시들의 우두머리라는 뜻도 되지만, 총관리(chief official), 또는 궁중(궁내)대신이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리스라고 해서 다 거세된 남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창세기 40'2에서는 똑같은 낱말인 사리스가 술 관원장과 빵 관원장을 가리키는 데 쓰입니다. 만약 이 관원장이 꼭 고대의 거세된 남성을 뜻한다면, 파르사의 제왕 아르탘샤사(아닥사스다)의 포도주 관원장이었던 이스라엘 총독 느헤미야(참고: 느헤미야서 2'1)도 거세남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당시는 율법의 중요성을 새롭게 회복하고 강조하던 시대였으니, 환관으로서 지도자들 및 백성과 함께 공동으로 경배하기가 힘들었을 터입니다.


결론적으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환관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틀테면 가능성이 각각 50%씩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들이 별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1. 참고로, 그 옛날 교회당에서 여성(女聲)이 허용되지 않던 중세 때 교회나 연예계에서 여성 같은 남자 소리를 얻기 위해 거세를 한 카스트라토(castrato)도 하나의 고자였다. 영화 '파리넬리'는 그 한 예. [본문으로]
  2. 여기서 고자 곧 '에우누코스'는 거세했다는 의미가 필수적으로 담겨 있지 않음. [본문으로]
  3. 복수 '사리소/사리심'. 이 낱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기 후 '중간기' 용어인 아람어로는 '음하임나/마임나에 해당했다. [본문으로]
  4. 참고: 왕들B서=왕하 18'17의 아씨리아 장군명 '랍사리스'는 이와 같은 뜻이라는 추정이 있어옴. 위 사진 부조벽화 참조. [본문으로]
  5. 참고: 레빝서=레 21'17~2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