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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언(방언)론

영언(방언)과 미국 남침례회(SBC)




영언(방언)과 미국 남침례회(SBC)



이 글의 토핔은 사실 퍽 오래 전부터 한 번쯤은 다루고 싶었는데도, 좀 시사적이면서도 특정 교단에 얽힌 사안인지라 티엘티 글로서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적어서 미뤄 왔다. 하나님은 특정 교파나 특정 교단을 선호하시지 않으며..사실 교파나 교단 등 제도적 교회는 실상 그 분의 관심 밖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참 교회로서의 거듭난 성도에게만 관심이 있으실 뿐이다. 우리가 믿든 말든 말이다. 

그런데도, 민감한 영적 주제의 하나인 영언(방언)[각주:1]에 관한 이슈여서, 결국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최근 영언을 이단시하는 일부 이단비평가까지 등장했기에, 영언이 그렇게 홀홀히 볼 수 없을만큼 세계적이고 범교계적인 보편 현상임을 예시하기 위해서라도 이 글을 쓸 필요성이 느껴진다. 



필자는 미주 교계의 다양한 뉴스를 다루면서, 자연히 남침례회(SBC) 소식통이 두드러진 데 주목해 왔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미국 신교권 최대의 단일 교단이며, 더 나아가 세계 최대급 복음주의 교단이기 때문이다. 남침례회는 교인수 약 1600만으로 웬만한 소형국가의 인구와도 맞먹는다. 신교 '교세(敎勢)'로서 한국은 장로교가 단연코 우세하지만, 미국은 침례교 교세가 가장 크다. SBC 말고도 미국침례회(ABC) 등 다양하고 굵직굵직한 침례교단이 있다. 


남침례회는 보수성이 강한 교단이면서 정치권과 은근히 가깝다. 미국 정치보수권인 공화당계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교세가 큰 점을 이용하거나 역작용을 하는 듯한(?) 실정치인들도 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진보주의자이면서도 SBC 교인인 빌 클린턴 전대통령도 그 한 명이다. 그런가 하면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교단인 진보적인 연합감리교(UMC) 소속으로, 힐러리와는 달리 자기 교단에서 괄시를 당하다시피 하면서 SBC와 더 친근했던 조지 W. 부쉬 전 대통령도 있다. 정치계의 헷갈림성 소속의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세계적인 부흥강사라는 빌리 그래엄과 그 가족도 (장로교인이었던 그의 아내 고 뤁 그래엄 부인을 빼 놓고는) SBC 소속이다. 대형교회 목회자, 맄 워런도 그렇고. 



참고로 미국은, 거의 건국 영웅으로 취급받아온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유명 프리메이슨(!)이었던만큼 결코 기독교국가라고 할 수 없으면서도, '기독교국가'로 혼동할 만큼 기독교가 정계와 밀착돼 있다. 예를 들면, 수도인 워싱턴DC에는 대다수 교단의 오피스가 포진해 있다. 리처드 랜드 전 SBC 윤리종교자유위원회(ERLC) 의장도 정치권 보수계의 큰 '입김' 역할을 했다. 


이상은 교단으로서의 SBC에 대해 참고로 한 말이며..이 글의 주된 이슈는 앞서 밝힌 대로 영언에 관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미 교계언론의 기사들을 다량 참고한 내용이다.  


"선교사는 영언을 하지 마라"?


지난 1993년 쟄 디어 목사/교수가 침례교계를 뒤흔들다시피 했다. 전 댈러스 신대원 교수였던 그는 '성령의 권능에 놀라'(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라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성경해석의 변화와 현대 교회에도 보이는 성령의 나타내심(참고 코린토A서/고전 12'7)에 관한 개인체험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이때로부터 수많은 남침례교인들은 전통적인 '종식론'(cessationism, 일명 은사중지론/중단설/중지설/종료설..) 교리-즉 오늘날 교회에는 예언과 영언 등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견해-를 재고하도록 도전을 받아 왔다. 

그렇더라도 남침례회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성령의 공개적 나타내심을 반대하는 쪽이다. 


이에 앞서 2005년 11월 15일, 앨러배마 헌츠빌에서 열린 교단 국제선교국(IMB, 국장: 제리 랜킨) 이사회에서 개인기도언어로서의 영언 등 은사를 활용하는 사람이 선교사 후보로 신청하는 것을 금한다(!)는 방침을 표결로 굳혔다. IMB는 이미 공적인 경배 때의 영언자들을 선교사로 보내지 않고 있었지만, IMB 이사회는 사적으로 영언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로 (찬반 25대18로) 공식 표결을 한 것이다. 그러나 IMB는 자체 문제를 갖고 있었다. 다름 아닌 랜킨 국장 자신이 과거 30여년간 영언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다!  


IMB의 이 결정에 도전하여 국내 아프리칸계(흑인) 목회자이자 사웉웨스턴침례교신대원(SWBTS)의 신임 이사인 윌리엄 드와잍 매키싴 목사(코너스톤침례교회)가 학교 채플에서 "개인기도언어"를 이슈화하여 옹호운동을 펴기 시작했다. 그는 채플 메시지에서 영언은 "현대에도 정당한 영적 은사"라고 강조했고, 이 강조점은 현재까지 여러 침례교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수용과 환영을 받아왔다. 그러나 신대원 측은 그날 오후 매키싴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학교 웹사이트에서 매키싴의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 얼마 후, 페이지 패터슨 SWBTS 총장이 비공개리에 소집한 이사회 포럼에서는 이사회 실행위원회가 추천한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는데, 오직 매키싴 이사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성명서는 교단에 대한 신대원의 역사적인 연대와 충성을 재확인하고, "전체 침례교와 특히 남침례회의 역사적 입장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성경의 증거와 강조점에 충실하기를 원한다"고 발표했다. 


패터슨 총장은 매키싴의 채플 메시지를 가리켜 "시의적절하지 못하고 부적절했고, 도움이 되긴커녕 불필요하게 분열적이며, 남침례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이해와 전통에 어긋난" 언행을 처리하게 됨이 "유감스럽다"고 표현했다. 


그러자 매키싴은 5쪽 짜리 반박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의 양심과 성경적인 확신이 총장님의 권장 내용에 부표를 던지게 만들었다"는 그는 해당 성명 내용은 잠정적으로 학교 교수진과 운영진, 학생들, 후원자들, 그리고 전체 남침례회 가족에게 SW 침신대원은 침례교 역사와 신학 속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관용되지 않은 곳임을 알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문제의 성명서가 "사웉웨스턴 신대원의 역사적인 입장을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BF&M)의 변수 속에서 열려 있던 다양한 신학토론의 장에서부터 초기교회 이후 성령의 어떤 영적 은사들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실상의 종식론 학교로 옮겨가게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종식론 학교'라.. 참으로 그럴 듯한 표현이다. 매키싴은 또 자신의 체험에 따른 개인기도언어 용례를 인용하면서 "남침례회 생활의 분열의 뿌리는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권능의 실재를 더욱 원하고 그분의 권능을 더욱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오히려 우리의 입을 막으려 하고 이 문제에 관하여 결정적으로 다뤄본 적이 없는 교단에서 섬기는 우리의 자유를 부정하려는 사람들 탓"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또 "성경에 명백하게 입증된 성령님 사역의 이 부분에 대하여 열려 있는 우리를 그늘 속으로 몰아 넣으려는 그들의 어젠다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매키싴은 특히 영언 등을 하는 은사자가 선교사로 지원하는 것을 막는 결의를 한 IMB의 의장인 제리 랜킨 자신이 전부터 영언 생활을 해온 사실을 상기하고,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남침례회 선교사(후보)들이 자기 개인 경건생활 속에서의 성령님의 역사(즉 영언) 때문에 사역을 거부 당하는 기분이 어떨지 목하 이해가 간다"며 "제리 랜킨 IMB 국장 같은 지도자가 바로 자신이 섬기는 그 부서에서 사실상 섬기기 시작하자마자 섬김을 금지하는 정책을 통과시켜야 하는 기분이 어떨지 이해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매키싴은 남침례회 교인들이 이 문제에 관한 다양성을 인식할 때라며 온 SBC가 이 이슈를 재론해 주기를 촉구했다. 


매키싴 채플 발언 몇 달 후, 프랭크 페이지 당시 SBC 총회장은 "다양한 해석이 있다고 믿으며 어느 한 쪽을 믿는 것도 오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적어도 영언에 대하여 부정 일변도는 아닌 셈이다. 


교단내 찬반 파벌


교단이 워낙 크다 보니 남침례회 영언 문제는 미국 전국 일간지에서도 다루게 되었다. USA투데이는 2006년 4월 초순 보도에서 한때 오순절교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영언이 미국은 물론 침례교 선교사들이 나가 있는 나라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목회자들이 이 문제를 관여하다 보니 남침례교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IMB 국장은 자신이 개인기도 때 영언을 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랜킨은 IMB의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지만, 같은 영언자이면서 IMB 이사인 웨이드 벌슨 목사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드러내어 이사회에 저항했다. 그러자 동료 이사들은 "신뢰를 깨뜨리고 책무에 반항하고 있다"며 벌슨을 지도자직에서 축출하려다가 철회했다. 그 해 3월 IMB는 모든 이사들이 공적인 비평이나 IMB의 결정을 폄하하는 형태의 발언을 삼가라는 내용의 새 지침서를 채택했다. 


남침례교 목회자 다수도 기도 도중 성령께서 이끄시면 자신들이 흔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게 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교인수 6,000인 테네시주 프랭클린, 피플스 (침례)교회의 맄 화이트 목사는 "주권자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기도언어를 주시면 곧 그들을 실격시키는 정책을 세우려는가?..다음은 누구 차례일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영언금지 정책에 반대하는 사역자들은 이 정책이 현지 선교사들의 자유로운 영적 표현을 질식시켜 결국 미국의 침례회 교단은 교인들의 기도까지도 좌지우지 하는 독재적 교단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항변했다. 


테네시 주 언론인 '테네시언'은 안 그래도 남침례회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신앙의 영적 자유를 누리려는 침례교인들을 소외시키는 메시지라는 교단 사역자들의 말을 인용했다. 화이트 목사는 "교단은 남침례회에 참여할 기회의 자리를 점점 더 좁히는 선을 그어놓는 것 같다"면서 이런 성향은 "더 다양화를 원하는 젊은 세대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신은 영언을 한 경험이 전혀 없지만 자기 교회 직원들과 회중들은 해 왔다고 밝혔다. 


침례교윤리센터(BCE)의 롸벑(=로버트) 파햄 목사는 영언 이슈가, 다년간 진보주의자들에게 대응하여 성경은 문자적으로 진리라는 교리를 굳건히 세워온 SBC 교단의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공적인 갈등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국내외 크리스천들에게 점점 더 대중화돼가는 영언이 과연 침례교적인가라는 물음과 긴장이 남침례교인들 사이에 커져가고 있다는 것. 밴더빌트 신대원의 제임즈 보이드 2세 부원장은 남침례교의 경배 스타일은 전통적으로 회중의 감정표현과 그런 참여를 자제하는 쪽이라고 평가한다. 


이 언론은 성경의 영언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대 영언 반대자들은 신약성경에 언급된 영언은 당대 고유의 현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영언 옹호자들 일부는 이 은사가 오늘날도 여전히 건재하지만 공적인 경배보다는 사적인 기도에서 체험하는 무엇이라고 반론을 편다(이 견해도 그다지 성경적이지는 않다. 사도 파울은 교회에서 영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고, 당대 교회들의 모임 때 공적인 영언과 아울러 영적 화답송(옛 번역: '신령한 노래')-곧 영언으로 하는 노래가 있다고 명시한 바 있다). 침례교 전문가들은 침례교회 회중석에서의 공적인 영언은 드문 현상이며 교단 사람들 대다수가 난색을 표하는 대상이라고 귀띔한다. 물론 교단 인사들이 곧 표준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질서와 법만 다룰 뿐 성령의 흐름에 밝은 영적 권위라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탐 해틀리 IMB 이사장은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하여 내적인 그뤂에서 이 결정을 사전에 재평가하도록 위촉하는 한편 목회자들에게 가능한 한의 제언과 개정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해틀리는 미래의 침례교인을 만들 길을 찾는 먼 곳에서 교단을 대표할 5200여명의 남침례교 선교사들 간에 영적인 관행을 통일화하려고 한 결정이라며 영언을 "우리의 선교사역에 침입할 수 있는 은사적 문제"라고 넌지시 위협의식적인 표현을 했다. 


그렇다면 같은 남침례회 산하의 또다른 선교단체인 북미주선교국(NAMB)의 입장은 어떨까? '침례회 신앙 및 메시지'(BF&M)는 성령님은 "크리스천 품성을 함양하시고, 신자들을 위로하시며, 그 분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영적 은사들을 부여하신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주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신약교회는 침례 신자들의 자치적인 지역 회중으로서, 복음의 신앙과 친교의 언약으로 뭉쳐 있으며,  크리스토님의 두 가지 성례(성찬과 침례)를 준수하고 그분의 법에 의하여 다스려지며, 그 분의 말씀 속에 저장된 은사들, 권리들, 특권들을 활용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교회"라고 명시해 놓았다. 이 진술 속에는 어떤 은사들인지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지도 않고 어떤 은사들이 "사라졌을 수 있는지"도 언급치 않았다.  

하지만 NAMB는 BF&M가 말하는 "영적 은사들"에 관한 아무런 공식 입장이 없다. 아울러 남침례회가 실시한 영언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아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 모리스 채프먼 전 SBC 실행위원회 의장은 대강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BF&M만 갖고서는 영언에 대한 실천적인 목적의 찬/반 근거로 삼지 못한다. 그런데도 남침례교인들 대다수는 성경이 사도시대 이후로는 공적인 경배 때 신비적 언변으로서의 영언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침례교 대중은 영언을 설파하지도, 가르치지도, 공적으로 실천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BF&M에 성문화돼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남침례회이들이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는 한 케이스이다."


아무튼 IMB가 영언을 하는 선교사는 발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니, 선교사 및 선교사 후보자들은 영언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교지로 나가기 위해 영언을 한다는 사실을 숨겨야 할지 양심상 솔직히 드러내야 할 지를 놓고 고심하게까지 되었다. 


영적 무장해제


알고 보면, 선교사들이 영언을 해선 안 된다고 우겨대는 것은 출전하는 군사를 무장해제시켜 놓겠다는 황당하고 우스꽝스런 조치와 다름 없다. 왜냐 하면 영언은 통역하기 전엔 어떤 영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영적인 모르스 부호 같은 중요한, 선교사들을 비롯한 일선 사역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영적 무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참고: 코린토A서/고전 14'2b; 에페소 6'18, 로마서 8'26,27; 유다서 20b). 그러나 종식론자들에게는 이런 성구들이 긴가민가 하고 도무지 눈과 귀와 머리와 마음과 영에 도무지 들어오지를 않으니, 성령이 아닌 딴 영(어떤 영이겠는가..헐~)이 좋아하는 신학이론에 묶인 노예들인가 보다. 


이런 동태는 성경상으로 볼 때 사실 안타깝고도 좀 우스운 노릇이다. 사도 파울은 분명히 영언을 금하지 말라(코A서  14'39a)고 코린토교회에 권계했건만, 교단측은 이와는 정반대이면서도 애써 성경적이라고 자체 주장하기 때문이다. 파울은 코린토A서를 비롯한 그 어떤 서신에서도 영언에 대해 부정적인 적이 없으며 단지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려 들거나 자랑하기 위해 하는 영언에 대해서만 그랬을 뿐이다. 더구나 자신이 모든 교우들보다 더 적극 영언을 하고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14'18)는 파울은 기본적으로 모든 교우들이 영언을 하기를 바라지만(이것은 예수님이 모든 신자의 표징이 되리라 하신 예언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 예언을 하길 더 바란다고 했고(이것이 14'5a의 그리스어 원문에 대한 바른 풀이이다! 하지만 대체로 다양한 성경 번역자들은 이를 교묘히 뒤틀어 부정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중단론자들은 이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민다. 혹 파울이 교회에서 영언을 허용했더라도 그 영언은 이미 '그쳤다'고 옆차기 식 주장을 하는 것이다.  


파울이 영언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왜 영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겠는가?! 파울이 영언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왜 자신은 그들 모두보다 영언을 더 말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겠는가?! 이에 대해 종식론자들은 그것은 사도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처럼 해석하곤 한다. 파울이 영언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왜 코린토 교회를 비롯한 당대 교회의 공식 경배의 한 요소로 영언이 포함되어 있었겠는가(14'26~29)?! 그러나 종식론자들은 나름 '신학적' 해석의 잣대를 들이대며 이런 성구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므로 종식론자들의 눈에는 성령이 아닌 딴 영이 씌워 놓은 콩깍지가 끼어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 것이다.  


여론조사 


여하튼, 그러던 차인 2007년에 남침례회 산하 여론조사기구인 라이프웨이 리서취(LR)가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록 통계는 통계일 뿐이지만, 다양한 층과 그뤂의 영언관을 폭넓게 살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가 아닐 수 없다. 


교단 소속 목회자들의 절반 가량이 성령님이 어떤 신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특수언어 곧 영언을 주셨다고 믿는다는 것. 이에 비해 전체 신교의 경우, 과반수의 목회자(63%)와 일반신도(51%)가 영언을 믿는다는 결과도 곁들여졌다. 비록 모든 신자에게 영언을 주셨다는 믿음보다는 약간 덜한 내용이지만, 평소 자주 '주눅' 들어있기가 쉬운(?) 영언자/은사자들로서는 고무적인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신교 교인('평신도')들 1,004명과 남침례교 목회자 405명, 그리고 600명의 여타 신교 담임목회자들을 상대로 한 이 조사는 아울러 이에 앞서 NAMB 선교연구센터(CMR)가 신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도 인용했다. 이 (후자)조사에는 1998~2004년 교단 신대원 석사과정 이수자들 곧 미국 골든게이트침신대원(GGBTS), 사웉웨스턴(SWBTS), 미드웨스턴(MWBTS), 사웉이스턴(SEBTS) 및 캐나다남침례회(CSBS) 신대원 졸업자들의 견해(+ 남침례회신대원 졸업자들에 대한 제한된 일부 조사)가 반영됐다. 


이 조사는 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설문을 던졌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개인기도를 할 특수언어의 은사를 주셨다고 믿으십니까? 일부인들은 이것을 개인기도언어 또는 '영언의 사적 용도'라 부릅니다." 이에 대해 남침례회 목사들의 50%가 '예'라고, 43%가 '아니오', 7%는 "모른다"고 각각 답을 했다. 

말하자면 세계 최대급 신교 교단인 SBC 목회자들의 절반은 본인이 직접 영언을 하든지 자기 교인들이 하든지 긍정적인 영언관을 갖고 있는 셈이다. 


(SBC 목회자들을 포함한) 전체 신교 목회자들은 현대 영언을 더 많이 믿는 경향이다. 그들의 66%가 "예", 32%가 "아니오", 3%가 "모른다"로 답했다. 또 신교 목회자들(63%) 역시 일반 교인(51%)들보다 더 긍정적인 영언관을 갖고 있다. "모른다"고 답한 응답자들 가운데 목회자는 4%, 교인들 가운데 15%였다. 

이로 미뤄 보건대 영언은 목회자가 교우들보다 더 체험하고 있고, 교우들은 이에 대해 약간 더 부정적이거나 목회자들만 누리면서 교우들에게는 덜 가르치거나 덜 강조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영언의 개념을 "하나님이 주신 타 언어 구사력"으로 (성경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SBC 소속자들(62%)이 바깥 사람들(54%)보다 더 많다. 신교 목회자들 과반수(55%)는 신약의 영언을 "과거에 구사할 수 없었던 다른 언어를 할 수 있게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역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영언을 "성령께서 회중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해석자(통변자)의 도움으로 전달하는 특수언어"로 (성경대로) 바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30%였고, "모르겠다"는 목회자들은 15%였다. 

영언에 대한 일반 신교인들의 반응은 "하나님이 주신 타국어 구사력"(32%), "성령께서 주신 특수언어(37%)", "모른다"(31%)로 각각 나타나 목회자들과는 상당한 이해차를 보였다. 


영언 은사가 "그쳤다"며 "이 은사는 사도시대에만 주어졌다"는 부정적인 주장자들은 남침례교 목회자들(41%)이 여타 목회자들(29%)보다 더 많은 편이다. 신교 목회자들의 과반수인 53%가 영언 은사는 "오늘날에도 아직 일부 신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견해를, 30%는 이 은사가 "사도시대에만 주어졌다", 13%는 "이 은사는 오늘날도 참 신자에게 주어진다"였고, 3%는 "모르겠다"로 응답했다.   


영언의 공적인 활용에 대한 견해로는, 신교 신자들 과반수가 영언 은사가 오늘날도 주어진다고 답했고, 20%는 사도시대로 국한됐다고 주장했다. 27%는 현대에도 이 은사가 모든 참 신자들에게는 주어진다고, 26%는 일부 신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각각 답변했다. 반면 25%는 "모른다"는 반응. 


냉랭해져 가는 신학교


SBC 교단 산하 신학교의 근래 졸업자들은 (신학도들답게?) 목회자들(41%)보다는 더 종식론을 믿는 입장이다. 그들중 과반수인 55%가 "코린토A서(고전)에 기록된 대로의 영언은사는 과거에만 합당했고 지금은 그친 은사"로 치부했다. 이에 대하여 LR의 스캍 매카널 부(副) 디렠터는 최근 졸업자들 가운데는 SBC 목회자들보다 더 많은 종식론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신학교 졸업생 그뤂은 유일하게 과반수인 부정론자들로 보인다. 그만큼 현대신학은 영언과 은사들을 과거의 것으로 보기 쉽다는 말이다. 이들 졸업자 가운데 현재 영언 실천자로 자임한 사람은 6% 이하, 졸업한 뒤 현 일선 사역자들인 영언자는 4% 미만에 그쳐, 신세대 사역자 및 후보자들 가운데 영언자는 극소수라는 결론이 난다. 

따라서 향후 영언 활용도에 있어, 목회자/신자들과 근래 신학교 졸업자들 사이에 극적인 '괴리현상'을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2007년 봄(4월 27~29일) 텍서스 주 알링턴에서 침례교 성령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한 언론에 따르면 여기엔 은사계 사람들, (은사)지속주의자들, 반(半)종식론자들, 종식론자들 등이 함께 모였다. 매키싴 목사는 오순절과 성령님은 침례교회에서 전반적으로 무시되고 있다며 인식부족이 그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회의론자인 바트 바버 목사(텍서스 파머즈빌제일침례교회)는 영언 또는 개인기도언어 사용에 대한 현대적인 정당성의 물음에 성경주석이 해답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두 사람이 똑같은 해석방식을 써도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누군가 '난 영언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성령님께로부터 왔다'고 한다면 남들이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있다. 그것이 차이다."라고 말한다. 

바버는 또 선교사 후보자들의 배경 검토 과정에서 "침례교식 선교가 아닌 오순절교식 선교"임이 밝혀질 때 그런 사람에게 후원비를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를 막는 건 아니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벌슨 목사는 IMB 정책이 너무 구속적이라고 비판했다. 벌슨은 자신이 모든 영적 은사들이 작동하는 것을 봐 왔고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며 체험은 성경 본문과 떨어져 있을 때 약간만을 입증하지만, 성경 본문에서 보는 것들을 예시하거나 구현할 때 주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가


우리는 여기서 굴지(屈指)의 신교 교단인 남침례회의 지도층에게서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을 발견한다.  


첫째로, 그들은 적어도 교단 사람들 절반(또는 그 이상)이 현대 영언을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깡그리 무시하고 반대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고, 계속 그러고들 있음을 본다. 


둘째로, 남침례회 지도층은 하늘에서 내려진 것이 아닌 인간의 언어를 영언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영언과 지상언어, 거룩한 언어와 세속 언어, 영적/초자연적 언어와 습득된 외국어의 차이가 도대체 뭐냐는 점이다. 그와 동시에 영언을 하지 않거나 숨기는 선교사들은 과연 영언을 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아무 구분도, 구분할 의미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현지 언어인 외국어도 영언일 터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선교사 영언자와 현지인들과의 구분도 애매모호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본래부터 영언을 해 왔고 선교사는 현지어 습득 때부터 영언을 시작했다고 주장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 


셋째로, 바로 그런 이유로, 남침례회 교단 주요인사들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영언의 개념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난다. 심지어는 현재 영언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몇 가지 착각과 혼동을 하고 있는 점들이 있다. 

우선, 영언은 '개인기도언어'로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120명의 첫 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초기 교인들이 시작한 일반영언 내지 기도영언 또는 ('상향적') 영언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께 영의 비밀을 직고하면서(코린토A서=고전 14'2a) 말로는 안 되는 탄식/신음을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로마서 8'26), 교회에서 영언은사자들만이 하는 하향적 영언은 해석(통역)이 될 경우 예언과 다름없는 계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성령의 뜻대로 경배하는 교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영언은 단순한 사적인 개인기도언어일 뿐더러 교회에서 공개적인 합심기도와 영적인 찬양에 사용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사도 파울이 말하는 영적인(옛 번역: '신령한') 화답송은 영언으로 함께 아울러 부르며 화답하는 찬양이다. 영언은 통역될 경우 하나님을 기리는 내용일 때가 잦다. 파울이 영으로도 찬양했다는 말 뜻이 바로 이것이며..주님께서 쇼므론(사마리아)의 쉬카르 성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예언한 말씀-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자가 영과 진리로 경배할 때가 오리라-고 했던 예언의 말씀이 바로 이런 기도와 찬양을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남침례교의 이런 현상들을 보며 느끼는 점은.. 이런 거대교단에서도 영언 이슈가 주요 쟁점화가 되어 있듯 모든 군소 교단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해 왔으며, 앞으로도 영언교인과 비영언교인 사이의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서, 바른 영언자들은 영언을 통한 영적인 혜택을 계속 누릴 것이로되, 비영언자들의 경우 속으로 영언을 갈망하지 않고 영언자들을 비웃는다면, 계속 냉랭한 '종교생활'로 만족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는 쪽이기가 쉽다는 것이다. 


영언을 갖고 가타부타, 이단입네 아닙네 하느라 세월만 자꾸 가고, 영언자들은 하나님께 영적 비밀을 아뢰면서 기타 영언이 가져오는 다양한 영적 혜택의 복과 권능을 누릴 동안, 비영언자들과 반대론자들은 권능과 무관하게 정신적/이성적으로만 살아갈 것이다. 그 점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1. '방언'이라는 한글 번역은 영적/초자연적인 언어이기보다 지방언어, 사투리라는 뉘앙스가 더 강해서 첫 단추를 잘못 낀 오역이다. 본 필자는 그래서 영언(靈言)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