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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

예수님은 왜 되살아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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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되살아나셨나?

-부활의 신비와 의의


김삼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 때를 '부활절'로 지킵니다. 천주교가 만들어 놓은 '교회력'이라는 것에 따라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이 봄철에 돌아가시고 되살아나셨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그래서 흰 백합으로 교회 강단을 장식하거나 삶은 계란 또는 난형 초컬맅을 나눠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언제-어느 계절, 어느 날-에 부활하셨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를 꼬박꼬박 부활절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일 곧 주님의 날이 바로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부활은 연중 특정일만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기억하고 기려야 할 진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분명히 어느 날 세상 역사 속에 오셔서 30년을 사시다가, 성령으로 약 3년간 하늘 왕국의 임재를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기르시며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사역하셨고, 사람들에게 수난(受難)하여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셔서 40일만에 하늘로 오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과 달리, 주님은 유골이 아닌 빈 무덤을 남기셨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주님은 그냥 혼자 하늘로만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차 있을 처소를 마련하려 가시면서 그 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교회에 보내셔서 각 신자 속에 머물게 한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되 교회의 머리로 계시며, 그 몸인 신자를 위해 중보자로 사역하시며, 또한 오늘날 신자 속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이 계절에 부활절 제전(祭典)을 지키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및 주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이 수난과 부활의 진리를 온 세상에 전파하여 사람들이 믿게끔 하여서, 그들 역시 영생의 부활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죽으시고 되살아나시고 승천하신 그 분이 이제 곧 되돌아오셔서 성도들을 하늘로 불러 올리신 뒤, 찬연한 천년왕국 시대를 여시어 성도와 함께 다스리시고, 세상과 적들을 심판하신 뒤, 새 하늘 새 땅에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전통'에 따라 '부활절'을 지키면서도 유감스럽게도 몸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어떻게 몸이 죽었다가 되살아날 수 있느냐? 

    도대체 어떤 몸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이냐? 

      말도 안 된다..

        못 믿겠다고들 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초기 교회 당시 아니 예수님 이전부터도 이미 있었지요(행전 17'32).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교인들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방인 신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코린토A서=고전 15'12,35). 

고대에 부활을 믿던 파리세(바리새인)들과는 정반대 입장이었던 사두케(사두개인)들은 대표적인 반부활사상가들이었지요(마태 22'23~33, 행 23'8). 예수님들은 이 사두케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교훈들을 주셨고, 후대에 사도 파울은 사두케와 파리세 사이에 부활논쟁을 북돋기도 했습니다(행 23'6~10). 


어떤 현대인들은 그래서 예수님과 사람의 '정신적 부활'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몸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미국 성공회의 '신부'라는 좐 쉘비 스팡 같은 사람이 그 한 예입니다. 기독교 지도자 및 '사제'를 자처하는 이런 사람은, 알고 보면 기독교교리의 가장 초보단계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믿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불편한 진상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간파할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6'1,2 참고). 실은 초신자보다 못한 사람이고, 비신자보다 더 위험한 상태의 사람이죠.


그런가 하면 파리세들 대다수는 비록 부활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부활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마태 27'62,64).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니코데모 같은 사람은 주님을 만나뵙고 거듭남의 신비와 영생의 진리를 깨달은 후, 주님을 옹호하고, 주님이 돌아가신 후 그 몸을 씻고 향유를 바르고 수의(壽衣) 속에 향품을 재워넣기까지 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참고: 요한복음서 3'1~21; 7'50; 19'39~42). 



자, 성경은 사도들에게 내려진 계시를 통하여 주님의 부활 사건 속에 많은 진리와 신비가 담겨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심


주님은 사망의 권능을 깨뜨리셨습니다. 

무혐의가 확정된 수감자나 형기를 모두 채운 만기수감자, 또는 감형/감면을 받은 사람들은 법이나 특령에 의해 석방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옥을 깨고 탈출하는 탈옥자들도 있습니다. 불법으로 말입니다. 정의로운 탈옥자들도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에 의한 그 분의 부활로써, 합법적으로, 정의로, 죽음의 사슬과 옥을 깨 버리셨습니다(코린토A서=고전 15'54~57, 티모테B서=딤후 1'10, 히브리서 2'14)! 죄와 죽음의 권능이 주님을 이길 수 없었고 범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아담 이후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사의 인간이었던 우리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 크리스토님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을 통해 죽음을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는 죽음도 심판 받아 사라지게 됩니다.  


부활의 첫 열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코린토A 15'20,23)! 이 진리는 사도 파울만이 주님께 받은 독특한 계시였습니다(코A 15장 전체 참조). 여기서 '첫' 곧 처음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처음일까요...? 부활에도 앞 뒤 순서가 있다는 말입니다(15'23).

사실 부활 사건들은 주님의 부활이 처음은 아니잖습니까?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들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런 사람은 있었고[각주:1], 신약 시대에도 많았습니다[각주:2]. 주님이 세상에 계실 동안 병도 고치실 뿐더러 죽은 사람을 몸소 일으켜 주시기까지 했지요.[각주:3] 또 아예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는 주님이십니다! 바꿔 말하면, 전에 있었던 부활 사건들은 익은 열매가 아니라, 일종의 "덜 익은", "설익은" 열매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되살아났더라도 때가 되니 다시 죽었고 결국 시신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즉 일시적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세상 끝날 그들 역시 영과 합해져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여기에 더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살펴 보도록 하지요.


주님의 부활체, 곧 그 분의 되살아나신 몸은 이전과 똑같은 몸이 아니라 영적인(기존역: '신령한') 몸입니다. 반면 주님 이전에 되살아났던 사람은 이전과 똑같은 몸이었습니다. 그들의 부활체는 주님과 달랐습니다. 지금 하늘에 계신 주님의 몸은 부활하신 이래 영원히 지니고 계시는 몸입니다.   


마태복음서 27장 50~53절에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독특한 사건이 있습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직후 성전 휘장이 찢어져 지성소가 열린 순간, 지진이 나고 바위가 터지면서 수많은 성도들이 되살아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덤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주님이 되살아나신 후에야 '거룩한 성'에 들어가 자신들의 몸을 보이며 증언했습니다. 언뜻 해석하기 어려운 신비사건이지만, 이 역시 주님의 되살아나심이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임을 입증한 사건입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영적 부활체


주님의 이 몸은 되살아나신 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잠깐 만나신 후 즉시 하늘로 오르셨다가 땅에 다시 오신 몸입니다(요한복음서 20장 17절과 19절 비교. 필자의 글 '예수 승천은 딱 한 번?' 참조)! 순식간에 하늘로 오르내릴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이죠. 즉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입니다. 


주님의 부활체는 또한 공간에 전혀 제약 받지 않습니다. 하늘로 자유자재로 오르내리실 뿐더러 땅의 어디서든 순식간에 나타나실 수 있는 몸입니다. 주님의 죽음 후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꼭꼭 닫아둔 채 숨어 있는 동안 갑자기 방 한 가운데 나타나 보이셔서 제자들이 유령인가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 겁을 냈습니다(요복 20'19,26). 즉 주님의 몸은 문이나 벽도 그냥 통과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이죠. 

아니 그럼, 주님의 부활체가 단순한 영 또는 도깨비나 유령이란 말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이 점을 주님은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주님은 되살아나신 모습을 보고 긴가민가하며 두려워하며 신기해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게나. 또 나를 만져 보게.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그대들 보는 대로 나는 있다네."(루카복음서 24'39)  


그러면서 십자가 처형 때 상처난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도 너무 기뻐서 좀체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구운 생선 토막을 잡수시는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은 영이 아니시고 몸 뿐이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주님의 실체는 영이지만 동시에 혼과 몸도 지니고 계신다는 것이죠.   


예수 부활=참 성탄


주님의 부활은 곧 그 분의 참 성탄 곧 진정한 태어나심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약간의 신학적 혼동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베틀레헴 초생(初生)과 자주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자체는 혼동을 주지 않습니다. 

시편 제 2편 7절에서 "너는 내 아들,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언은 인간으로서의 성탄인 베틀레헴 탄생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참 인간이신 그 분이 성령의 권능으로 온전히 다시 하나님으로서 승귀(昇貴)되신 사건이 그 분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사도 파울이 (행전에서) 역설했지요(13'33). 행전 13장 33절 이후 구절들(34~37절)의 문맥이 이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파울은 또 그의 로마서(1'4)에서 말하기를 성령으로는, 권능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심으로써 참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확증/선포되셨다고 증언합니다.   


파울은 특히 행전 13'34~37에서 주님의 부활을 예언한 다뷔드 자신의 죽음과 이 부활을 대조하면서 "하나님이 살리신 분은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 성도의 부활도 다시는 썩지 않는 몸으로서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 '불후(不朽, incorruptibleness, imperishability)의 변화' 역시도 파울이 코린토A서 15장에서 상세히 풀어줍니다(15'42,52~54). 즉 썩을 몸들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부활은 성경 여기저기에 나타난 일시적인 부활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처럼 성도의 최후 부활체로서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나중 아래에서 다시 상세히 말해 보렵니다. 


예수 부활은 하늘의 대선언식 사건! 


히브리서 1장에는 우리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의 대사건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부활하신 그 새벽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 시2'7b이 여기서도(히 1'5a) 인용됐지요.

어떻게 부활하신 뒤 지상에 계신 주님께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새벽, 예수님은 일차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 승천은 딱 한 번?' 참조). 이 부활/승천 사건으로 예수님은 성부님의 아들로 확증/재선언되셨습니다.  

이 대선언식 직후에 주님은 "다시" 세상에 들어오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1'6a).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불문(?)에 가까운 담론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서론에 담긴 이 숨은 진리를 성도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부활 > 맏형 인정


히브리서 1장은 바로 주님의 부활로 인한 이 대선언식 사건을 통해.. 

 1. 하나님의 품에 독생하신 예수님은 모든 천사들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로 재선언되셨고(1'5),

 2.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더 뛰어나도록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셨으며(1'9),

 3. 하나님의 맏아들 곧 모든 (성도)형제들의 맏형 곧 진정한 'Big Brother'가 되셨다고 선언합니다(1'6,9;

    2'10~12. 비교: 시 22'22). 


위 말씀에 따르면 예수 크리스토님은 부활하신 그 날 우리의 맏형이 되셨습니다! '맏오라버니'가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새벽, 남녀 불문하고 모든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그것입니다(요복 20'17b). 그러므로 모든 여성도들 역시 남성제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부활한 후 하늘에선 지상에서와 같은 성적인 구분도 없고, 따라서 결혼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참고: 마태 22'30). 

땅에서는 성도끼리 형제/자매라고 부르지만 하늘에선 영원히 그런 성 구분이 없게 됩니다. 그 곳에서는 모두가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이에 대해 신자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첫 열매 따라 우리도!

-성도의 부활체 변화: '몸의 거듭남'


아무튼 전술했듯, 주님의 이 신비로운 몸은 바로 그 분이 부활하신 그 아침에 지니시게 된 것입니다. 사도 파울의 부활계시는 바로 이 영적인 부활체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면서(코A 15'39~49), 주님의 이 첫 부활 열매의 뒤를 따르게 된 성도들도 마지막 날 한 순간에, 곧 눈 깜짝할 사이에 홀연히 변화된 몸을 갖게 된다고 예언했습니다(15'51,52). 코린토A서 15장의 이 부분은 이 부활체에 관한 이해에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


우선 주님이 공중 재림하시는 마지막 그 날 하나님의 웅장한 나팔 소리가 온 세계 성도의 귀에 울리게 됩니다(마태 24'31, 코A 15'51,52.; 테살로니카A서 4'16).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과연 어떤 것인지는 구약 성경에 이미 설명돼 있습니다(미쯔라임출국기=출 19'16,19). 빽빽한 구름 속에서 울려나는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처음 듣는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 하여 사시나무처럼 떨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지도자 모세도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히브리서 12'18~21 참조). 그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습니다. 


마지막 날 이 웅장한 나팔 소리가 울리면, 지상의 모든 성도들은 두려워 떨며 숨을 게 아니라 눈 깜박할 사이에 신비한 부활체로 변화받아 하늘로 들려 올려집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먼저 예수님을 믿을 때 영이 거듭난 뒤, 말씀으로 혼도 새로워지고, 마지막 때 몸도 "거듭나는" 셈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성도 가운데 맨 먼저는 그동안 구약시대부터 현대에까지 잠 자던 성도들이 그렇게 됩니다(코A 15'23b, 테살A 5'16b). 그러니까 주님 다음으로 부활의 열매가 되는 셈이죠. 그 때까지 생존해 있던 성도들은 그 다음으로 들림받게 됩니다(테살A 5'17a). 차례가 그렇게 됩니다. 

    

성도를 깨우고 불러올릴 이 마지막 나팔 소리에 관하여 미국의 찬송작가 제임즈 밀턴 블랰은 자신이 쓴 찬송가 '하나님의 나팔소리'(When the roll, is called up yonder 새180장)에서 설명하듯 표현했습니다. 블랰은 자신이 가르치던 교회 노래 교실에 한 알코올 중독자의 딸인 누더기 옷을 입은 십대 소녀를 데려다 가르치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결석한 것을 알고 방문한 결과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본 그 날로 이 노래를 썼으며, 결국 소녀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불렀습니다.   


핸델도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제48번 곡인 베이스 독창곡 '나팔 소리 울릴 때'(When trumpet shall sound)에서 트럼펱 소리를 곁들여 실감나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https://youtu.be/LkBEEJi_igo 


그러나 우리의 뼛속까지 떨리고, 심령까지 울릴 하나님의 엄청난 나팔소리가 이 음악 따위에 비견될 것은 아니죠!


너도 나도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나팔소리가 울릴 때 눈 깜빡할 사이 우리의 몸은 썩지 않을 몸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완전한 영/혼/몸의 전인(全人)으로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몸이 영적인 부활체로 변화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이든 살아있는 사람이든 반드시 마지막 날인 그 날, 이 마지막 나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날 이 나팔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인 부활체로 변화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누구든 예수님을 믿고 심령이 변화 받아 거듭나야 이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혹 죽더라도 반드시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죽어야 합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의 복음전파사역 곧 전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만 달랑 구원받고 나만 달랑 부활체를 받아 혼자 영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잃어진 영혼에 관심이 없는 그런 신자는 상급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만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전파하여 비신자들에게 예수 크리스토님이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분이심을 증거해야 합니다(참고: 로마서 10'9b). 그만큼 부활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부활과, 잠들었던 성도의 마지막 날 부활에 뒤이어 누구나 신비의 부활체로 변화 받아 주님을 뵙게 되기를~! 아멘



  1. 예컨대 대언자 엘리샤가 수넴 여인의 어린 아들을 되살린 사건. 왕들B(왕하) 4장 참조 [본문으로]
  2. 사도 페트로는 여제자 도르카(=타비타. 행전 9'36~42)를, 파울은 청년 유튀쿠스(행 20'9~12)를 살려냈다. [본문으로]
  3. 베타니의 라자루스, 나인의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루스의 딸 등을 되살려주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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