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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우리의 도피성이신 주님 (물음과 답)




 Q.물음 : 도피성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나요? 


  

 A.답 : 


도피성(逃避城: 비고의적 살인자가 도망하여 피신할 수 있는 성. 히브리어 '마클랕')은 고대에 고의적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를 저지른 사람을 '피의 보복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인권보장 체제로,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와 동시에 사랑을 만족시키는 제도였습니다. 


이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구약 민수기 35'6~32에 나오며, 그밖에도 신명기 4'41~43; 19'1~13, 예슈아(여호수아)서 20'2; 21'13~38 등이 있지요. 이 성구들에 따르면, 부지 중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추격을 피해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달려가서 성문 어귀에서 그 성의 장로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면 성에서 받아들여 한 구석에 살도록 해 주고, 추격자가 오더라도 내어주지 않고 계속 보호를 하되 회중 앞에서 재판 받기까지, 또는 당대의 대사제(대제사장)가 죽기까지 거주하게 하다가 그 후 자기 본 성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도피성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카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예호봐(여호와/야웨) 하나님이 모쉐에게 미리 지시해 두신 대로, 처음엔 카나안 땅 전체를 3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당 하나씩 3개 성을 구별하여, 길을 잘 닦아 모든 (비고의적) 살인자가 조속히 피신할 수 있게 한 곳들입니다(신 19'2,3). 정복이 끝날 무렵엔 3개 성을 추가하여 모두 6개 성을 지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예슈아가 이끄는 제 2 세대가 카나안 정복을 끝낸 후 (6개) 성들을 실제로 도피처로 배정했지요(예 20장 참조). 도피성은 대체로 각각 하룻길씩의 거리(약48km 이내)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배정이 비교적 과학적이고 공평했습니다. 도피성들은 요르단 동쪽과 서쪽에 각각 3곳씩 모두 6 군데였습니다(민 35'14). 


도피성의 위치


  요르단(요단)강 동쪽: 


   베제르(개역: '베셀') 

   라뫁 길레아드('길르앗 라못') 

   바샨('바산')의 골란 


  요르단 서쪽: 


   헤브론(=옛 키리앝 아르바 개역: '기럇 아르바') 

   쉐켐('세겜') 

   케데쉬('게데스')



그리고 6개 도피성들은 모두 사제족인 레빝(레위) 지족(지파)들이 나눠 거주하는 성들이었습니다. 레빝들이 주로 살인자를 보호해 주다가 재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레빝 지족들은 단지 제사예물을 먹거리로 할당받은 반면 본래 기업(基業)으로 대물림할 땅이나 성이 없었지만, 12 지족들이 각각 분할한 지역에서 거주 및 목초지로 배당 받은 성읍들이 있었는데, 6개 도피성들을 포함해 모두 48 군데였습니다(민 35'6,7). 



도피성과 비고의적 살인자 보호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지정/지시 내용은 놀랍게 매우 상세합니다! 여기서 살인자란 이스라엘 사람만 뿐 아니라 타국인 및 거류민도 포함됩니다(민 35'14). 

그러나 이 도피성에 피신할 살인자는 오직 비고의적인 경우라야 합니다. 미움이나 원한 관계로 철 연장이나 돌, 나무 연장 등 흉기로 사람을 쳐 죽이면 고의적 살인이므로 피신/보호 대상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피의 보복자'가 보복할 수 있게 놓아 두거나 성에서 밖으로 넘겨 주어 죽이게 했습니다(민 35'16~21, 신 19'11~12). 여기서 하나님의 철두철미한 공의를 느낄 수 있지요.


반대로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지 않고 무엇인가를 던져 죽였거나 부주의로 미처 보지 못하고 죽인 경우 등은 도피성 보호대상자였지요(35'22~25). 여기서 우리는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봅니다.  


하지만 만약 도피했던 살인자가 도피성 영역을 빠져나갈 경우 스스로 보호권 밖에 나갔으므로 피의 보복자가 복수를 할 수 있게 되고 말며, 따라서 보복자나 도피성의 보호자들에겐 책임이 없었습니다. 즉 도피성 안에 머물러야만 계속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35'26~28). 여기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삶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고의적 살인자는 재판을 통해 최소 2명 이상의 목격자 또는 관련 증인의 증언에 따라 사형을 했고(참고: 마태복음서 18'15,16), 몸값(속전) 지불을 통한 대속 및 귀향을 허용하지 않고 필히 죽여야 했습니다. 또 비고의적 살인자라 해도 재판 또는 대사제의 죽음 이전에는 몸값 지불 및 귀향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35'30~32). 물론 이런 법칙이 신약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지요. 


도피성 제도는 후대인 판관(사사)기나 왕국시대에 아무 언급이나 구체적인 실례가 없는 것을 보아, 실제로는 별로 활용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훗날 성막/성전 제단의 네 귀퉁이에 솟은 청동 융기물인 '(단)뿔'(참고: 미쯔라임출국=출애굽기 27'2, 29'12, 왕들A=왕상 1'50, 2'28 참고: 시편 18'2)을 잡는 것으로 공동 대체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왕A' 1'50; 2'28).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 크리스토(메시아)님의 그림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포착해야 좋습니다. 사실은 신약성경에서는 유일하게 히브리서 6'18의 '피난처'(카타피곤테스)가 구약 그리스어 역본인 70인 성경(LXX)의 '도피성'과 같은 개념의 단어이며, 히 6'17~20의 내용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즉, 이 비고의적 살인자 보호제도는 신약시대에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전술했듯, 하나님은 공의(公義=정의/正義)와 동시에 사랑의 신이시라는 진리를 표상해 줍니다.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고대에 고의적 살인자는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비고의적 살인자는 살아남을 길을 내신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사랑](요한서신A=요일 4'8)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부분적 이해 밖에 되지를 않지요. 하나님은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예: 신 32'4, 시편 9'8; 33'5; 50'6; 89'14; 96'13; 98'2; 99'4; 103'6, 예샤야후=이사야 5'16; 11'5; 61'8, 야코보서 4'12; 5'9). 공의로 번역된 히브리어들중 주요어인 '미슈파트'는 "심판하다"는 뜻인 '샤팥'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원론적으로 오인해선 안 됩니다.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신 그 분은 어제나 오늘, 언제나 한결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죠! 


악과 전혀 무관한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과거의 죄를 간과하실지언정(행전 17'3, 로마서 3'25) 악을 "눈감아" 주시고 징치하시지 않고 그냥 적당히 무마하시는 것은 아닙니다(욥기 4'8, 잠언 12'2, 로마 13'4). 그러므로 때가 되면 예수 크리스토님의 심판을 통하여 악인들을 벌하시며(요한복음서 5'22), 예수 크리스토님을 끝내 믿지 않고 악을 행하던 사람들과 악의 뿌리들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마 5'22; 18'8, 요복 3'18, 행 17'31; 24'25, 롬 2'5,12,16, 테살로니카B서=살후 1'7~9, 히브리서 10'26~31; 12'29, 페트로A서=벧전 4'5; 펱B서=벧후 2'17; 3'7, 유다서 7, 요한계시록 19'20; 20'10~1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의적 살인자에게 오늘날도 우리가 직접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법 정의와 재판에 의하여 해당하는 징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원수나 박해자를 사랑하고 선대하고, 축복하라(루카복음서 6'27,28; 롬 12'14,20,21) 하셨고, 또 보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요(시 94'1, 잠 20'22, 롬 12'19, 테살A 4'6, 히 10'30). 비고의적 살인자든 고의적 살인자든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그들이 뉘우칠 때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 과거에 예외없이 모두 악인이었고 남을 미워하던 살인자였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악인 또는 살인자라 할지라도 잃은 영혼들을 사랑하시며 따라서 그들을 모두 구원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에제키엘=에스겔 18'23; 33'11, 티모테A서=딤전 2'4, 펱B 3'9). 



둘째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도피성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크리스토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 피하여 숨어 있을 바위그늘이시고, 어미닭이 병아리를 보호하듯 우리를 덮어 보호해 주시는 날개입니다(마 23'37, 히 6'18. 비교: 시 61'3). 도피성에 피하여 들어온 살인자를 사제족이 지켜 주듯 하늘 대사제이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변호하고 아버지 앞에서 용서해 주십니다(히 4'14~16; 7'24~26, 롬 8'33~39). 


주님은 과거 살인자나 다름없는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구해 줄 유일한 피난처인 도피성이심을 믿.고. 달려가 그 분의 구출과 보호를 부르짖어 호.소.하면, 이를 귀담아 들어 주시고, 받아 들여 맞아 주시고 우리를 건져내어 영원히 보호해 주십니다(행 2'21, 롬 10'11,13, 히 4'16; 7'25; 10'19~23)! 그러나 우리가 끝내 뉘우치지 않고 미움을 버리지 않을 때 주님도 어쩌실 수가 없지요.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모범(일명 '주기도')에도 있듯이 우리가 도피성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은 곧 남의 죄가(빚)를 먼저 용서하는 것입니다. 남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우리의 빚도 탕감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마 6'12; 7'1, 18'23~35, 얔 2'13; 5'9). 



도피성에 피했을 당대의 대사제가 죽으면, 도피성에서 나와 귀향할 수 있었음도 놀라운 진리를 나타내 줍니다. 즉 하늘 대사제이신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어 우리의 죄값과 몸값을 치르심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요복 12,32, 팀A 2'6, 히 2'9,10; 11'16, 펱A 2'24,25; 펱B 3'13)! 바로 그래서 크리스토님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셋째로, 도피하는 살인자는 전력을 다하여 도망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고의적 살인자가 도피성에 닿기도 전에 피의 보복자에게 잡혀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그래서 애당초 도피성을 향한 길들을 고루 잘 닦아 놓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보복자의 추격에도 편리한 활로이므로, 도주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잡히지 않게 되도록 일찍, 그리고 빨리 최선을 다해 현장을 빠져나와 도피성으로 달아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쉴 틈도 없고 그저 도피성에 무사히 다달아 숨기까지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려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저 죄악 세상에서 우리를 해치려고 덮치려는 무리를 피하여 되도록 일찍 그리고 빨리 우리의 도피성이신 주님께 피하여 그 그늘 아래 숨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의 백성아, 거기서 나오너라! 그래서 그 곳(=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곳이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마라"(요계 18'4. 이하 사역)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떨어져 있고, 부정한 것을 건드리지 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맞아들여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코린토B서=고후 6'17,18a)   


우리는 마치 달음박질하는 마라톤 주자처럼 전력을 다하여 세상에서 벗어나 영원한 소망의 처소인 하늘길로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수가 따라오며 마구 날려대는 불화살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신 예수 크리스토님을 의지하여 이 세상 죄악과 원수인 마귀의 손길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도피성인 주님의 품에 안겨야만 합니다.  



넷째로, 도피성에 피해있던 살인자가 언젠가 공평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듯이, 우리 모두 또한 언젠가 행위심판을 받기 위해 최후의 판관이신 주님의 심판보좌 앞에 서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전도서 12'14, 마 25'41,46, 히 6'6~8; 9'27; 10'26~31; 얔 5'9, 펱A 4'5,17 유다 15, 요계 20'11~15). 주님은 그 분을 끝까지 믿고 의존하는 사람들은 변호/보호해 주시지만, 악인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를 따라 "잘 했다, 충직한 종아!" 또는 "넌 부족했다", "악하고 게을렀던 청지기야, 넌 네가 행한 그대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는 각각의 평가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얔 5'9). 



한편, 도피성에 숨어 있던 살인자가 그 곳을 빠져 나가면 그 이상의 보호를 더 받을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거나 그 분의 보호를 벗어난 사람은 위기를 당할 수 밖에 없고, 피를 찾는 원수의 보복 아래 놓이게 됩니다(민 35'26,27). 

우리의 숙적인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처럼 성도를 삼키려고 수시로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펱A 5'8).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요복 6'56; 15'4a; 16'33, 롬 8'1, 요서A 2'28). 그 분의 보호권을 벗어나면 안 되죠! 늘 그 분 안에 머물어야 합니다. 도피성에서 몰래 벗어나 제맘대로 헤매어선 결코 안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길을 잘 못 찾는 "삐딱한" 양처럼 간혹 정로를 벗어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하는 일이 결코 있어선 안 되지요! 언제나 주님의 보호 영역 안에 머물러 있어 늘 신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 받습니다(롬 8'39).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 그 분이 우리 속에 계시는 상태를 늘 원하십니다(요복 15'2~7, 코B 2'14, 5'21, 요서A 4'13). 또한 그 분의 진리/교훈을 잊지 않고 우리 속에 머물리기를 바라십니다(요복 15'7a, 테살A 3'8, 요서A 2'14b; 3'6,24; 요서B 1'9).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 크리스토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그 분 안에 늘 머물러 있읍시다! 아멘.